
이명환 < 찬란한 색실 타임> _병마토용, 가변크기_ 2015.3 / 삼탄아트마인 2층 cam_2 현대미술관설치
현대미술로 만나는 < 진시황제 Qín Shǐ Huáng > 전
< 찬란한 붉은 색실 시간 > 이명환 설치미술
Meet the King of Qín Shǐ Huáng Dynasty through contemporary art.
< Brilliant red Color yarn time> Installation art by artis Myung Hwan LEE. 2015. 3.
서양의 폭군 네로 황제 ( Nero Claudius Caesar Augustus Germanicus )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이름이 영정(嬴(政 )인 진시황제 秦始皇帝)가 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폭군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기원전 259년~ 210년 제31대 중국 최초의 황제이다.
중국내 6개의 나라를 정복하고 스스로 진의 시황제 라고 칭하였으며 전국 시대 국가들의 장성을 이어 만리장성을 완성하였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병마용 발굴 이후부터 시황제의 진취성과 개척성에 평가의의를 두고 있다.
Samtan artmine ( 삼탄 예술광산) 2층 현대미술관 CAM_2에서 설치된 현대미술 <진시황제> 이명환의 설치미술전시는 중국 문화재청의 산하 문화재기념사업 부의 오리지널의 4배 축소한 크기의 병마토용을 직수입하여 진시황제전시개념을 중국대륙 통일의미 를 반영하여 알파벳 W 대열로 병마토용을 설치하고, 중국역사 상 가장 꽃피운 문화예술이면에 동양의 폭군에게 희생된 피의 역사의 흐름 속의 찬란함을 붉은 실로 빛이 퍼지는 개념을 반영한 설치미술이다.
이 설치된 붉은 실들은 진시황제로의 시간을 거슬러 가며 폭군이면에 흐르는 문화의 찬란함과 만나게 된다.
동양의 네로 폭군 진 시황
그의 전국 통일 과정은 이미 시황제가 즉위 전 이전인 아버지인 장양 왕 때부터 시작하여 기원전 250년 주나라 정벌전쟁 <진주전쟁> 에서 승리하여 나라를 병합하면서 정복의 야욕을 절재 할 수 없는 듯이 기원전 230년부터 동원할 수 있는 모든 군사를 이용하여 통일야욕을 전개로 제일 먼저 가장 힘이 없는 소한을 그 뒤이어 기원전 228년에 조나라까지 정복하였다.
이러한 폭군을 제거하기 위한 연나라 태자 희단은 자객 형가에게 잔치자리에서 영정을 시해하라는 특명이 실패에 그치는 가운데 시횡제는 기원전 225년에는 위나라, 기원전 223년에는 강세한 초나라 , 기원전 222년 연나라를 멈춤이 없이 멸망시켰다.
이로서 통일의 대업을 이루는 날이 머지않은 최후의 제나라를 기원전 221년에 멸망시켜 나이 40세의 황제는 전 중국 땅을 손아귀에 넣으며 스스로 시황제라 칭하였다.
중국통일의 대업을 이루며 폭군으로 불린 가운데 150 만 명을 동원하여 북방 흉노족의 침입을 막을 만리장성을 쌓아 그 규모는 유일한 존재로서 가장 문화가 꽃피운 업적 또한 대단하다.
시 황제는 봉건제와 군현제를 놓고 봉건제로 부활을 주장하는 순우월내 반기를 든 승상 이사의 진나라의 역사와 의술, 농경 등 모든 책들을 소각시켜야하다는 주청에 분서(焚書)를 실행하였다,
방사 후생과 노생에게 불로장생의 약을 바치라고 명한 시황제를 비판하고 도주한 사건이 있었고 조정 안에 의심받을 만한 학자가 일하고 있다는 말들이 돌자 서로는 부인하며 몸을 낮췄으나 시황제는 모든 학자들 460여명을 잡아들여 구덩이 속에 생매장시킨 갱유(坑儒) 사건이 자행되면서 두 사건을 분서갱유(焚書坑儒)라 한다.
시황제의 야심은 국가의 재정을 축내는 대단위 규모의 아방궁을 쌓도록 하였고, 이어 함양 근교의 여산 전체에 자신의 능묘를 건설하는 대 토목 공사에 70만 명을 동원하는 계기로 국력은 쇠락 衰落해 졌다.
기원전 210년 50세의 나이에 진시황제는 세상을 등지고 자신이 만든 지하궁전인 여산에 들었다. 1974년 우물 공사를 하면서 능묘와 부장품인 병마용(군사와 말 모양의 인형)들이 더불어 발견되면서 세기의 불가사의 할 규모에 세상은 쇼크를 받았으며 현재도 발굴 중이다.










T.V조선 촬영 보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