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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항해 92회 방송.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 (1)” : 서론, 중국, 인도, 페르시아, 유대
들어가기: 본 강의는 독일의 위대한 철학자 헤겔 (Hegel)의 “역사철학 강의” 라는 저서의 전체를 3부분으로 나누고 그 1부를 방송용으로 편집한 강의입니다. 1부의 내용은 헤겔의 역사철학의 기본 원리와 중국, 인도, 페르시아 그리고 유대의 역사를 다루고 있습니다.
참고로 2부는 이집트와 그리이스의 역사 이고 3부는 로마와 유럽의 역사입니다. 2부와 3부도 곧 올리겠습니다.
헤겔의 역사철학은 세계 역사를 한 개의 원리를 통해서 전체를 분석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역사 서술입니다. 그 원리는 정신과 자유입니다. 헤겔에 의하면 정신의 본질이 자유입니다. 그리고 이런 정신과 자유는 고대 그리이스와 중세와 근세의 유럽 (게르만 세계)을 통해서 구현됩니다. 그런만큼 헤겔의 역사 파악은 철저히 서양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은 당연히 변방의 역사로 치부됩니다.
이런 점은 헤겔의 역사철학의 단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원리로 그토록 복잡하고 무궁무진한. 각 나라와 민족 그리고 동서양의 문명을 발전사적으로. 일이관지(一以貫之). 꿰뚫고 있다는 점에서. 헤겔의 역사철학은 분명이 일독(一讀)할 가치가 있습니다. 이런 책은 전무후무(前無後無)합니다.
1장. 근대 역사과학의 시조 비코 (Vico)
헤겔의 말년의 작품인 “역사철학 강의”는 근대 역사철학의 시조인 비코 (Vico)에 대한 존경으로 시작합니다.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8세기 초두에 이르러 비로소 비코에 의해서 그때까지는 우연적인 사건의 계기(繼起)로 간주되든가, 혹은 신앙상의 것이어서. 인간에게는 알 수 없는 신(神)의 업(業)으로 간주되고 있었던 역사의 근저에는. 법칙(法則)과 이성(理性)이라고 하는 사상을 부여하려는 기도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비코는 18세기 이탈리아의 철학자입니다. 그는 고대 역사의 신비한 부분들을 합리적으로 해석을 했습니다. 가령 고대 역사 서술에 흔히 등장하는 탄생설화, 건국 설화 같은 것을 그 신비한 외관을 벗기고. 그 안에 담긴 합리적인 부분을 해석해 냅니다. 비코에 의한 재미있는 학설은 다음과 같습니다. 즉 모든 민족은 항상 자기가 가장 오래된 민족이고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자기네 나라에서 나왔다는 한다는 것입니다. 이 통찰력은 한국이나 중국 등의 고대사를 봐도 곧 이해가 됩니다. 즉 한국의 단군 설화 그리고 중국의 삼황오제 설화 등입니다. 자기 민족 중심주의 역사관입니다.
또한 비코는 인간은 자신이 만든 것 즉 역사를 자연보다 더 잘 알 수 있다고 합니다.
근대인들은 자연을 수학과 과학의 법칙들로 이루어진 현상으로 봅니다. 그런 만큼 수학적 자연과학은 큰 발전을 했습니다. 거기에 비해서 역사학 등 전통적인 인문 과학은 침체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태리 나폴리 출신의 철학자 비코가 나타나서 이런 물길을 돌려 놓았습니다. 그는 “진리란 만들어 진 것이다” 라고 주장합니다. 이를 베룸 팍툼 원리 (verum factum principle)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자신이 만든 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이 자연을 창조했다. 그러므로 자연은 신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반면 역사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는 인간이 가장 잘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자연 인식보다 오히려 역사 인식이 더 우위에 있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이런 통찰을 통해서 비코는 역사과학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이런 사상을 통해서 비코는 괴테, 헤겔, 맑스, 딜타이, 니이체 등 후대의 인문 사회 과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또 비코는 모든 인류의 문명을 “이념적인 영원한 역사.” (ideal eternal history) 라는 관점에서 봅니다. 이는 3단계로 이루어집니다. 즉 신적인 시대. 영웅적인 시대 그리고 인간적인 시대로 구성됩니다. 이 시대별 구분은 각각의 사회. 정치적인 구조를 반영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 구성은 또 거기에 맞는 비유와 상징의 체계를 지닌다고 합니다. 즉 신적인 시대에는 은유법이. 영웅적인 시대에는. 환유법이 그리고 인간적인 시대에는 반어법이 사회를 상징합니다. 모든 문명은 이런 3단계의 발전을 순환한다고 합니다. 이를 순환론적인 역사관. Cyclical history. 이라고 합니다.
2장. 헤겔의 역사철학의 원리. 이성의 지배
헤겔은 비코의 합리적인 역사 이념을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합니다. 즉 이성이 세계를 지배한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헤겔의 이성은 신과 같습니다. 단 신은 어떤 특별한 종교를. 예를 들면 기독교와 성경의 신을 연상시키므로. 헤겔은 이런 것을 없애기 위하여 굳이 이성이란 말을 씁니다. 이. 이성은 개인이 가진 이성이 아니라 우주를 지배하는 이법(理法) 혹은 로고스라고 합니다. 혹은 세계 정신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이성적인 역사관 또는 목적론적인 역사관에 많은 사람들은 당연히 반대할 것입니다. 그래도 헤겔적인 역사관을 가지고 세계 역사의 흐름을 보면 그 의미를 많이 파악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역사에 이성이 작용한다는 사상은.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낙사고라스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아낙사고라스는 누우스. (정신)은 만물들에 있어서 운동의 근원이며. 동시에 질서의 원리이기도 하다. 이 누우스는 무한한 것이요. 자주적인 것이며. 그 자체로서 존재하며. 전지하고 전능하며. 만물을 지배한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근대에 와서는 독일의 철학자 라이프니쯔가 변신론(辯神論)을 주장했습니다. 변신론은 신의 섭리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철학입니다. 그러나 이런 변신론은 많은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신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할 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특히 20세기는 나찌 히틀러의 유태인 집단학살. 즉 홀로코스트를 경험한지라. 세계역사가 신이나 이성의 통치를 받는다고 하기가 극히 힘듭니다.
특히 악인들이. 많은 선량한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을 보면 더욱 우주의 질서에 대한 반감이 생깁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도 중국의 노자(老子)는 천망이 회회 소이 불실이라고 했습니다. 천망회회소이불실(天網恢恢疎而不失). 즉 천지를 다스리는 신의 법칙은 엉성한 듯 보이지만. 악인에게 벌을 주는 일을 빠뜨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신의 섭리가 얼핏 보면 안 보이지만 길게 보면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3장. 정신과 물질의 구분.
역사를 이성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서 헤겔은 우선 물질과 정신의 본질을 규명합니다. 그는 물질의 실체는 중력(重力)이고 정신의 실체는 자유(自由)라고 합니다. 물질의 실체가 중력이라는 말은 쉽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물질 혹은 질량은 힘 개념으로 치환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헤겔은 또 정신은 자기 내부에 중심점을 가지고 있다. 반면 물질은 자기 외부에 중심점을 가지고 있다 라고 합니다. 물질은 외부에 중심점이 있다는 말은 물질들의 상호연관성을 말합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다고 합니다. 달리 말하면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헤겔은 물질은 자신의 외부에 그의 중심이 있다고 말합니다. 반면 정신은 스스로 있는 존재입니다. 이를 대자존재 (對自存在) being for itself 라고 합니다. 물질은 자연이라고도 합니다.
4장. 자유의 발전으로서의 세계역사
헤겔의 역사 이해는 아주 간단합니다. 세계사는 자유의 의식의 발전에 따라서 3단계로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즉 동양인은 한 사람만이 자유임을 알고 있었을 뿐이고. 이에 비해서 그리이스인과 로마인들은 약간의 사람이 자유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게르만 (유럽)의 시대에 와서 만인의 자유가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게르만계 제국민에 이르러서 비로소. 기독교 안에서 만인의 자유가
인간이 인간으로서. (모든 인간이) 자유이며, 정신의 자유가 인간의 가장 고유한 본성을 이루는 것이라고 하는 의식이 획득되었다”. 라고 헤겔은 서술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서구 중심의 역사관입니다. 오늘 날 이런 역사관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나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하여. 서구를 중심으로 동양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비판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상식이긴 합니다.
우리는 흔히 서양의 물질문명 동양의 정신문명이라고 하지만 헤겔은 그와 반대로 봅니다. 서양에서 비로소 정신 개념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동양에서는 정신 개념이 없었다고 합니다. 정신 개념이 처음으로 나타난 곳은 고대 그리이스라고 합니다.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
“동양인은 아직도 정신 또는 인간 그 자체가 그 자체로서 자유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그들은 이것을 모르기 때문에 현실에 있어서 자유롭지 않다. 그들은 단지 한 사람이 자유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은 자유는 단순한 자의 횡포. 둔감 또는 그 자신 단순한 하나의 자연적 우연. 또는 자의에 불과한 열정의 유화. 순종이다. 그러므로 이 한 사람은 전제군주(專制君主)이지 자유성인(自由成人)은 아니다” 라고 헤겔은 서술합니다.
자유의 의식이 처음 나타난 곳은 고대 그리이스라고 합니다. 그래서 헤겔은 말합니다.
“그리이스인에 있어서, 자유의 의식이 비로소 나타났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리이스인은 자유였었다. 그러나 그리이스인도 로마인도. 다같이 약간의 사람만이 자유라고 하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었고. 인간이 그 자체로서 자유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플라톤도 아리스토텔레스도 이것을 알지 못하였다”.
고대 그리이스는 자유시민들이 만든 민주주의 국가 였으나. 여전히 노예제를 가졌고 로마의 경우도 자유민과 노예가 공존했기에 그리이스인도 로마인도. 다같이 약간의 사람만이 자유라고 하는. 위의 헤겔의 말은 맞습니다. 노예제를 비로소 폐지하고 인간 평등의 사회를 만든 것은 서구 문명이었습니다.
동양인들은 한 사람만이 자유임을 알았다는 헤겔의 말을 필자는 이렇게 풀이합니다. 즉 동양에는 인간이라는 보편적 개념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동양에서는 황제나 평민 혹은 노예 등이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인권이라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거기에 비해 서양에서는 벌써 로마시대부터 노예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률이 제정되었고 노예들이 주인을 고소할 수도 있었습니다.
헤겔은 게르만의 여러 나라에서 자유가 성취되기는 하나 그 이유가 그들의 민족성 때문은 아니고. 기독교의 수용 덕분에 보편적인 자유가 이루어 진다고 합니다. 이 말도 많은 보충이 필요합니다. 헤겔이 본문에서 언급하듯이 게르만 족이 기독교로 개종한다고 해서 곧 만인평등. 만인 자유가 주어진 것은 물론 아닙니다. 이를 위해서는 입헌민주주의와 계몽사상. 그리고 시민 혁명 산업혁명 등. 엄청난 역사적인 사건들이 필요했습니다. 이를 도외시하고 단순히 기독교 때문에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자유를 쟁취했다는 것은 역사를 상당히 단순화시킨 것입니다. 특히 그는 루터의 종교 개혁과 이에 따른 독일 국민들의 심성 변화에 많은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종교를 통해서 자유에의 각성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헤겔은 역사철학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루터교회에 있어서는 주관성과 개인의 확신은 그대로 진리의 객관적 확신인 것이다. 루터파에게는 진리란 기성적인 것은 아닌 것이다. 주관은 자신의 특수적 내용을 실체적 진리를 위하여 내동댕이쳐 버리고. 이 실체적 진리를 자기의 것으로 함으로써. 주관 그 자체가 참다운 주관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 이와 같이 해서 주관적 정신은 이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되어. 자신의 개별성을 부정하고 자신의 진리 안에서. 자기 자신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그리스도교적 자유가 실현되는 것이다”. (역사철학강의 2권 256쪽)
이렇게 종교를 통한 내면적 자유의 쟁취가 독일 국가에서 일어 났다고 헤겔은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내적 자유의 원리가 프랑스에서는 행동으로. 즉 혁명으로 나타났고 독일에서는 철학과 종교 그리고 사법적 정의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또한 독일의 군주들은 지혜롭고 따라서 법.정의.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 노력했다고 합니다. 이런 면에서 노년 헤겔의 순응주의적인 면모가 있다고 말해지기도 합니다.
5장. 헤겔. 프로이센 국가 철학자?
위의 내용을 보면 헤겔은 엄청난 기독교의 옹호자인 듯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청년기에는 기독교와 교회에 대해서 크게 반감을 품었습니다. 기독교는 권위주의적인 종교이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썼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은 인간의 자율성을 방해한다고 했습니다. 이를 기독교의 실정성이라고 합니다.
헤겔은 세계사를 자유의 증가의 역사로 보는 한편 여기에 상응하는 정치 체계를 제시합니다. 즉 동양의 전제정체와 그리이스의 민주정체 로마의 귀족정체 그리고 게르만의 군주정체 라고 합니다.
당시 독일은 아직 군주제였습니다. 청년 시절 헤겔은 군주제를 반대하고 공화정을 찬양했습니다. 이런 면들을 감안하면 헤겔이 노년에 쓴 “역사철학 강의”는 큰 변화를 보입니다. 기독교를 긍정하고 군주제를 받아들인 것입니다. 이는 그가 초년기에는 대학교수가 못되어 오랜 기간 고생하다가. 남들보다 늦게 교수가 되어서 결국 기성 사회 질서에 편입된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 독일의 사회적 발전은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100년 이상 뒤떨어져 있었다고 하는데. 그런 조국의 현실을 찬양한 것을 보면 노년의 헤겔은 보수주의자로 변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헤겔은 그의 “법철학”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군주정치에 있어서는 한 사람의 주인이 있고 노예는 없다. 왜냐하면 노예제는 군주정치에 의해서 폐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거기서는 정의와 법이 인정된다. 그것은 참다운 자유의 원천이다. 이와 같이 군주정치에 있어서는, 개인 각자의 자의(恣意)는 억제되고 일개의 지배공동체가 확립되는 것이다”. 라고 썼습니다.
이 구절 때문에 종래 헤겔은 프러이센 국가의 어용철학자 라는 오명을 덮어 썼습니다.
그러나 이런 군주제의 옹호는 현실과의 타협이란 면이 큽니다. 당시 독일은 아직 분열되어 있었고 다른 여러 나라에 비해서 모든 게 뒤쳐진 상태였습니다. 언론의 자유도 대단히 제한된 상태였습니다.
원래 공화주의자였던 헤겔은 이런 현실과의 타협을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즉 “공화제가 설령 최량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느 곳에서도 실시할 수 있다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 또 인간이 여전히 인간인 이상 근소한 자유로서 감수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며. 따라서 이 현재의 상황 아래에서와 인민의 도덕적 상태에 있어서는 군주제가 유익한 것이라는 것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 117쪽)
이런 것을 종합적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청년기의 이상주의적인 열정은 이제 사회의 지도급 인사가 된 헤겔은 그대로 유지할 수는 없었습니다. 헤겔은 프로이센에서 피히테의 후임으로 베를린 대학에서 교수가 됩니다. 그리고 드디어 헤겔 학파가 성립되어 헤겔은 당대 최고의 지식인으로 숭앙됩니다. 그의 제자들도 왕성한 학문적, 실천적 활동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헤겔은 청년기의 이상인 공화주의는 버립니다. 그리고 교회와 기독교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완전히 바뀝니다.
이렇게 헤겔이 코페르니쿠스 적으로 변한 이유는 그의 철학 자체에 있습니다.
즉 헤겔의 철학은 현실의 부정성과 모순성을 핵심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반체제 인사들을 감시하고 탄압하는 절대 왕정 프로이센 치하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심을 해야 했습니다. 당시 반체제 인사들 가운데 헤겔의 제자들이 많았습니다. 헤겔은 이들의 위한 구명 운동에 애를 많이 썼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헤겔이 세습 군주정을 옹호하는 맥락을 다시 봐야 합니다. 그것은 도리어 군주정치에 대한 헤겔의 소망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법과 제도를 잘 따르는 군주는 폭정을 할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헤겔이 군주제도를 옹호하는 것은 현실 타협이며 동시에 올바른 군주의 모습을 그린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하자면 그는 맹자처럼 왕도정치(王道政治)를 희망한 것입니다. 당시 전근대적인 프로이센의 정치 문화에서 그는 민주주의나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인 공화주의 조차 공식적으로 지지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프로이센의 왕 프리드리히는 "무엇에 대해서든 너희들이 원하는 만큼 따져보되, 다만 복종하라!" 라고 했습니다.
6장. 중국 문명. 윤리적 실체.
헤겔의 “역사철학 강의”에서 중국 부분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헤겔은 다른 아시아 문명권들 중에서 중국의 문명을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뒤에 다시 말하겠지만. 헤겔을 비롯한 당시 유럽인들은. 중국의 도덕철학과 과거 제도 같은 것에 굉장히 열광했었습니다. 라이프니쯔 같은 철학자는 중국의 음양이론과 주역(周易)을 연구하여 오늘날의 디지털 전산이론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이런 중국 예찬에 비해서 다른 아시아적 문명권들. 가령 인도 같은 문명권은 브라만교와 카스트 제도 때문에 대단히 부정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헤겔의 역사철학은 중국에서 출발을 합니다. 중국이 가장 오랜 문명국이라는 점입니다.
이게 특이한 점입니다. 왜냐하면 이집트나 바벨론 혹은 페르시아의 역사도 엄청 오래되었고 또 많은 건축물과 문화가 있지만 그는 중국과 더불어 역사를 시작합니다. 이는 아마 헤겔 당시 유럽의 세계 역사 이해를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헤겔은 우선 중국의 실천 철학 즉 도덕와 예절 등에 주목을 합니다. 이를 헤겔은 인륜적 실체성이라고 지칭합니다. 중국인들은 예의와 윤리를 강조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공자의 논어를 언급합니다. 그리고 헤겔은 중국의 역사와 철학. 주역과 노자 사상 등을 언급합니다.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 역사는 중국에서부터 시작하지 아니하면 안된다. 왜냐하면 중국은 역사의 기록이 남아 있는 한에 있어서의 최고(最古)의 나라이기 때문이다. (...) 중국은 고대에 있어서 벌써 오늘과 같은 상태에 도달해 도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객관적인 존재가 그것에 대한 주관적인 운동과의 사이의 대립이 아직도 없기 때문에 변화라고 하는 것은 일절 없고 언제까지나 동일한 것이 되풀이되어서 나타난다고 하는 정체성(停滯性)이 우리들이 역사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에 대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09쪽)
중국 내지 아시아의 문화가 정체되어 있다는 관점이 피력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핵심 가치에 대한 주관적인 반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옛날 성현(聖賢)들의 말씀은 항상 옳다 라는 상고주의(尙古主義)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를 헤겔은 객관적인 존재와 주관적인 운동 사이의 대립이라고 개념화합니다.
헤겔은 중국 문화의 핵심으로서 오륜(五倫)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동양 윤리의 핵심인 오륜은 맹자에서 서술되어 있는데, 이는 서경(書經)에서 나오는 오교(五敎)에 뿌리를 두고 있고. 따라서 헤겔도 오륜을 서경에서 그 뿌리를 찾고 있습니다. “서경 안에서 더 할나위없고 변경할 수 없는 대도(大道)로서 오륜(五倫)이 설파되어 있다. 즉 ① 군신(君臣) ② 부자(父子) ③ 형제(兄弟) ④부부(夫婦) ⑤ 붕우(朋友)의 의무(人倫)가 그것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15쪽)
중국에서는 아버지가 죽으면 자식은 육식과 음주를 끊고 3년상에 복하지 아니하면 안된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 역시 과거에는 이런 중국의 관습을 따라했습니다.
또 중국의 과거 제도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과거제도는 유럽에 수입되어 공무원을 선발하는 각종 국가 고시(考試)의 형태로 발전된 바 있습니다.
헤겔은 중국의 황제가 제정일치의 수장임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 “황제는 국가의 원수인 동시에 또 종교의 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종교는 원래 국가 종교이다” 라고 헤겔은 기술합니다. 그리고 중국의 하늘 숭배 의식을 소개합니다. 그는 “황제는 한 해에 네 번의 제사를 바치고 조정의 연단에 서서 수확을 감사하고. 또 파종이 잘 육성되도록 천제(天帝)의 배품을 빈다. 이 천(天)은 우리들의 신(神)과 같과 같은 뜻으로 보아 자연의 주(主)라고 하는 의미로 취해질지도 모른다”. 라고 서술합니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26쪽)
중국의 학문에 대해서 헤겔은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중국인도 역시 철학을 가지고 있다 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헤겔은 우선 역경(易經) 혹은 주역(周易)을 언급합니다. “역경 즉 운명의 책이 벌써 생기와 소멸에 대해 논하고 있다. 이 책 안에서는 일원(一元)이라든가 이원(二元)이라든가의 추상적인 관념이 보여지고. 이 점에서 본다면 중국의 철학은 피타고라스의 설과 꼭같은 근본 사상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 원리는 이성(理性). 도(道:Tao)이며, 이것이 만물의 생성의 근본으로서 만물의 밑바닥에 있는 본질이다.”
여기서 일원 이원이란 주역의 음양(陰陽)을 말합니다. 아시다시피 주역은 음양 혹은 마이너스와 플러스 원리로 만물의 성장 변화를 풀이합니다. 음양과 뗄 수 없는 것이 도(道)의 원리입니다. 특히 도교(道敎) 즉 노장(老壯) 철학은 도를 우주의 원리로 봅니다. 그래서 헤겔은
“노자(老子)의 모든 저작, 특히 그의 도덕경(道德經)은 이름이 높다. 공자(孔子)는 기원전 6세기에 이 철인을 심방하여 경의를 표시하였다.” 라고 합니다.
헤겔은 이처럼 노자의 철학에 대해서는 깊은 존경을 표시하나 공자의 철학은 비교적 가볍게 보고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공자의 저작은 우리들에게 노자의 그것보다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 공자의 덕분으로 중국은 옛적의 모든 제왕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춘추(春秋)” 그러나 그밖에 공자에는 도덕에 관한 많은 저작들이 있는데. 그것들은 중국인의 처세법과 예의범절의 기본으로 되어 있다. 영역된 공자의 주저 논어(論語)를 보면 과연 그 가운데는 올바른 도덕적 잠언(箴言)이 있으나. 그러나 그것은 상식의 영역을 벗어나지 못한 유치한 설화(說話). 성찰(省察). 반어(反語)들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31쪽)
7장. 인도 문화. 브라만교와 카스트 제도
1) 종교를 통한 계급 질서의 합리화
카스트제도는 아리안이 기원전 15세기경 북인도를 침입하여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을 정복하고 자신들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아리안은 원주민을 평정한 다음 지배를 확고하게 하기 위해 '바루나'(Varna)나 불리는 신분제도를 만들었다.
'바루나' 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색'을 의미한다. 결국 피부색에 의해 신분이 구분된 것이다. 백인인 아리안이 지배계급이다. 그 뒤 아리아인들도 사회적 기능에 따라 계급이 구분되어졌다. 따라서 고대 신분제도인 바루나가 카스트 제도의 기본을 이루고 있다. [출처] 브라만교, 불교, 힌두교
이처럼 정복민족이 원주민들을 지배하기 위해서 만든 카스트제도는 브라만(승려계급). 크샤트리아(왕족. 무사 계급). 바이샤(서민계급) 그리고 수드라(노예계급) 라고 하는 4개의 사회 계급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지배구조가 종교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것이 인도 문명의 특징입니다. 즉 사회적 지배구조를 종교적으로 채색한 것입니다. 그럴 경우 사회 조직은 선천적인 기원을 가지게 되므로 더욱 지배 이데올로기는 강화됩니다. 이를 두고 마르크스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라고 했습니다. 즉 종교가 인간 평등이 아니라 도리어 인간 차별을 합리화시켜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도의 경우 이처럼 종교와 사회가 매우 얽혀 있습니다.
헤겔 역시 이를 말하고 있습니다. “브라만교의 신화에 따르면 천지의 주재인 브라만. 즉 범천(梵天)의 입으로부터 바라문이 나오고 무사계급은 그의 팔로부터. 실업계급은 그의 허리로부터. 노예계급은 그의 발로부터 탄생하였다고 한다.”
인도의 종교 즉 힌두교는 고대 인도의 종교인 브라만교로부터 유래합니다. 여기서는 두 종교의 차이는 무시하고 현재 인도인들의 살아있는 종교인 힌두교의 관점에서 인도의 사상과 철학 그리고 종교 문제를 접근합니다. 물론 헤겔의 해석을 따라 갑니다.
2) 인도의 종교
브라만 사상에 의하면 범(梵) Brahma 이 종교사상의 최고의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범(梵)은 상당히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입니다. 이것은 어떤 인격을 가진 신(神)이 아니라 하나의 추상적인 관념입니다. 헤겔 당시 인도를 여행한 영국인들의 관찰에 의하면 범(梵)은 모든 신들이나 우상들에게 붙여지는 하나의 형용사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를테면 인도의 하나의 신인 비시누(Vishnu)가 “나는 범이로다” 라고 말하는 것과 같이 태양도, 공기도, 바다도 범이라고 불려진다고 합니다.
이런 범(梵) Brahma 개념에서 다시 여러 종류의 신격들이 분화되어 나옵니다. 그런데 범(梵)은 중성입니다. 우선 범천(梵天) Brahmã이 나옵니다. 범천은 남성입니다. 범천은 창조의 신입니다. 범천을 브라흐마 라고도 합니다.
범천은 형상이 없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신이 비시누 혹은 비슈느 신입니다. 범천(브라흐마)가 창조, 시바가 파괴를 담당한다면 비슈누는 유지를 담당합니다. 그렇기에 비시누는 우주와 우주의 질서, 그리고 인간과 세상만물을 보호와 보존 및 유지한다고 하며, 질서의 신이자 우주를 관리하는 신으로 여겨진다고 합니다. (나무위키) 형태가 없는 브리흐마와 달리 비시누와 시바는 각종각색의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브라흐마, 비시누 그리고 시바 이 3위는 동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크리시나 라는 신이 있는데 이는 비시누의 화신(化身)입니다.
헤겔은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범천이 최고신(最高神)이지만, 그러나 비시누 또는 크리시나와 시바 및 태양, 공기 등등도 범 즉 실체적 통일 (實體的統一)이다. 범 그 자체에 희생이 바쳐지는 일은 없고, 그것이 숭배받는 일도 없다. 그러나 다른 우상은 그 어는 것도 다 기도의 대상이 된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44쪽)
서구 세계에서는 신분에 관계없이 인간의 본래적 가치. 인격적 가치는 존중됩니다. 그런 면에서 신분이 높은 사람도 낮은 사람도 평등합니다. 특히 종교는 절대자 앞에서 인간을 비추기에 신 앞에서 인간은 더욱 평등합니다. 그러나 인도에서는 종교 마저도 인간의 신분과 계급을 더욱 고착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헤겔은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그런데 전술한 바와 같이 인도에서는 구별이 정신의 객관성뿐만 아니라. 정신의 내면성까지 미쳐. 따라서 정신의 전체 관계를 포괄하기 때문에 인륜(人倫)도, 정의(正義)도, 종교심도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44쪽)
브라만 종교에서 최고의 경지는 나와 범천의 일치입니다. 이를 범아일체(梵我一體)라고 합니다. 이는 사람이 미망(迷妄)을 떨쳐내고 자신의 본질이 범(梵)임을 깨닫으면 된다. 곧 “내가 범(梵)이다, 내가 최고의 존재이다” 라는 인식에 도달하는 것이 종교의 목적이다.
브라만 계급은 타고난 종교적인 엘리트 계급이기에 그들은 범천(梵天)과의 합일. 소위 범아일체(梵我一體)가 쉽게 이루어 집니다. 헤겔에 의하면 바라문 계급은 특별한 수행을 하지 않고도. “자기 자신 안에 들어 박혀서. 모든 외관(外官)을 닫고 말없이 옴(Om)이라고 부를 때에 그것이 바로 범(梵)이라고 한다”. 이에 비해 다른 카스트들은 신과의 합일 즉 범아일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고행과 금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헤겔은 말합니다. “바라문에 속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갱생을 획득하려고 노력할 때에는 이것을 유가행자(瑜伽行者). 즉 요기(yogi)라고 부른다. 어떤 잉글란드인은 티벳의 달라이라마에게 가는 도중에서 본 유가행자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데. 그것에 의하면 그 수행자는 벌써 바라문의 힘을 얻기 위한 도정의. 제 2단계에까지 도달하여 있었다고 한다. 제 1단은 급제하여 있었는데, 그것은 그가 12년동안 앉는다든가, 잠자는 것까지도 하지 않고 끝까지 계속하여 있음으로써 비로소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선채로 잠자는 습관이 붙을 때까지, 처음에는 자기의 신체를 입목(立木)에 단단하게 묶어 놓았던 것이다. 끝내는 그가 제2단계에 급제하였을 때에는. 12년 동안이나 두 손을 머리위에 끼고 있었기 때문에. 손톱이 거의 손등살속에 파들어 가고 있었다고 한다. 제 3단은 벌써 이제까지와 같은 방식으로 해도 안된다. 보통으로는 유가행자는 다섯 개의 불 사이에서 즉 사방으로 태우고 있는 불과 태양 사이에서 하루를 지내고. 다음에 3시간 45분 동안 그 불위를 뛰어다닌다. 이 행동을 목격한 영국인의 말에 의하면. 반 시간을 지내니 그 남자의 온 몸으로부터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여. 점차로 기진맥진해져서 드디어 죽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험까지 통과하면 그 사람은 끝으로 또 한번 산채로 파묻혀진다. 즉 선 채로 땅 속에 넣어져 완전히 흙이 덮여진다. 이와 같이 해서 3시간 45분이 지나면 또 파내어 지는데. 그 경우에 아직도 살고 있으면 그 사람은 비로소 바라문의 내적인 힘을 획득한 것으로 된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45쪽)
위에서 간파할 수 있는 것은. 고행이라는 종교적인 과정이 마치 자격 시험보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즉 1단계, 2단계, 3단계를 거쳐야 최종 합격합니다. 신과의 합일 혹은 해탈 등 종교적인 활동에 세상의 자격증 따기와 같은 방식이 도입됩니다. 헤겔은 이를 브라만의 힘을 내면화시키는 과정으로 봅니다만 제가 볼 때는 이는 수행을 통해서 신분 상승을 하는 듯합니다. 즉 온갖 어려운 시험에 합격하여야 바로소 브라만 계급에 들어 갈 수 있는 것입니다. 브라만 계급의 특권과 이들의 타계급과의 차이를 헤겔은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마누법전 안에는 다음과 같이 씌어져 있다. 바라문에 대한 그의 의무에 대하여 가르치려고 하는 생각을 가지는 자가 있다면 왕은 그 자의 귀와 잎에 뜨거운 기름을 쏟아넣도록 명하여야 한다. 한 번 밖에 탄생하지 않은 자가 두 번 탄생한 자에게 비방을 가할 때에는 그 입 안을 불에 새빨갛게 달은 10인치 길이의 철봉으로 찔러야 한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49쪽)
3) 종교로 인한 사회적 무질서
이런 사회.종교적인 규정 때문에 인도인의 인륜 상태는 혼란의 극에 도달해 있다라고 합니다. “인도인의 인정의 특징은 그들이 동물을 살해하지 아니한다는 것. 동물 특히 늙은 소와 원숭이를 위하여 훌륭한 병원을 세워, 그를 돌봐주는 데도 환자나 노약한 남녀를 위한 시설은 전국에 걸쳐서 하나도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여실히 말해주고 있다. (...) 그들은 개미를 밟아 죽이지는 아니하지만, 가난한 방랑자는 버려서 굶어 죽도록 내버려 둔다. 특히 바라문은 부도덕하다. 바라문은 단지 먹고 잠잘 뿐이라고 영국인은 말하고 있다. 관습상 금지만 되어 있지 않다면, 그들은 전연 충동적으로 움직인다. 공공생활의 면에서는 탐욕하고, 부정직하고 음탕하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57쪽)
이런 불평등과 부자유 때문에 인도에서는 국가가 설 수 없었다고 합니다. 헤겔에 의하면 국가의 고유한 지반은 자유의 원리라고 합니다. 헤겔은 중국과 인도를 이렇게 비교합니다. “ 중국이 어느 점에서 봐도 국가인 데 대해서, 인도의 정체는 단지 하나의 민족에 지나지 않으며 국가인 것은 아니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60쪽)
브라만교에 대한 비판에서 나온 불교에 대해서 헤겔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불교의 원리는 범아일체라는 브라만교의 원리를 내면화 시킨 것이다. 즉 자기 안에서 절대자를 만나는 것이 불교이다. 이를 해탈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헤겔에 의하면 해탈에도 2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즉 부정적인 해탈과 긍정적인 해탈입니다. 부정적인 해탈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해탈입니다. 어쨌든 헤겔에 의하면 부정적인 해탈은 무(無)가 일체의 사물의 원리이고. 일체는 무로부터 출현하는 동시에 또 무로 환귀하는 근본 원리입니다. 긍정적인 해탈은 부처에 대한 숭배를 말합니다. 즉 예불 공양이나 삼천배 같은 현상을 말합니다. 또 라마교에서는 살아있는 부처인 “달라이라마”에 대한 공양과 예배를 말합니다.
8장 페르시아 문화. 선악 이원론의 윤리적인 종교
고대 페르시아 문명의 특징은 그 종교에 있습니다. 즉 배화교(拜火敎)라고도 하는 조로아스터교입니다. 이 종교는 불을 숭상합니다. 불은 밝음을 말합니다.
조로아스터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본명 자라수슈트라 스피타마)의 출생 연대는 대개 기원전 660년으로 보는 편입니다. 조로아스터는 방랑생활을 하다가 서른살에 이르러 천사장을 만났다고 합니다. 이 천사장은 참된 신은 오르무쯔트 (=아후라 마쯔다)이고. 너 조로아스터는 그의 예언자라고 알려주었다고 합니다.
조로아스터교는 역사가 유구합니다. 7세기 이후로 이슬람에 의하여 점차적으로 사회에서 소외되기 전에 수세기 동안 상당수의 이란 사람들의 국가종교 혹은 주(州)의 종교로 참배되었습니다.
밝음은 다시 말해서 선(善)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조로아스터 교는 윤리적입니다. 빛을 지배하는 신은 오르무쯔트입니다. 그 반면 악을 상징하는 신은 아리만입니다. 이처럼
조로아스터교에서는 오르무쯔트(Ormuzt)와 아리만(Ahriman)이 대립합니다.
오르무쯔트는 또 아후라 마쯔다라고 불립니다. 헤겔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르무쯔트는 빛의 나라 선(善)의 지배자이며, 아리만(Ahriman)은 어둠의 나라, 악(惡)의 지배자이다. 그러나 그 위에 양자의 근원인 또 하나의 상위의 존재가 있다. 제루아네 아케레네 즉 무한정의 전체라고 불려지는 대립을 절(絶)한 보편적인 존재이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81쪽)
이는 마치 우리의 현실에서 선과 악이 싸우는 것과 같습니다. 선과 악은 도처에 깔려 있습니다. 오르무쯔트가 아리만과 싸워서 이겨내야 이런 선과 악의 싸움이 끝이 납니다. 경전 속에서 오르무쯔트는 스스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이름은 일체의 존재의 근원이고. 중심인 동시에, 최고의 지혜와 지식이고. 세상의 재액의 파괴자이며 일체의 유의자이고. 복의 신이고 순수한 의지이다” 라고 합니다.
인간은 맑고 깨끗하게, 하늘과 비할수 있도록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순결 그것인 오르무쯔트 신자의 계율을 지킬 때. 바꿔 말하면 사상과 말과 행위의 신성을 지켜서. 그의 몸을 깨끗하게 할 때에 재차 순결한 것으로 된다. (역사철학 강의 1권 282쪽)
9장. 유대. 창조주 하나님. 선민사상
헤겔의 히브리 문명 이해는 구약성경에 근거를 둡니다. 헤겔은 유대교가 가진 신 관념 즉 창조의 신이라는 개념을 무척 존중합니다. 그러나 그는 여느 유럽인들과 마찬가지로 유대교의 선민 사상은 좋게 보지 않습니다. 선민(選民) 사상이란 유대인만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배타적 신관을 말합니다. 그래서 헤겔은 이렇게 말한다.
“신이 전 인류 및 전자연의 창조자이고 일반적으로 절대적인 활동 그 자체임이 알려진다. 그런데 이 위대한 원리는 또 하나의 면으로서. 타자를 배척하는 일자(一者)라고 하는 규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 종교는 본래 이 한 민족만이 이 유일한 신을 아는 자인 동시에. 또 이 민족만이 이 유일한 신에서 시인된 것이라고 하는 의미의. 배타적인 계기를 필연적으로 가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바꿔 말하면 유대 민족의 신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만의 신이다.” (305쪽)
이런 선민 사상 때문에 유대인들은 역사적으로 많은 탄압을 받았습니다. 나찌 히틀러의 홀로코스트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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