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톱에 도전한다] 인공지능 개발 윤송이 박사
"판단하고 감성 지닌 진짜 생물같은 디지털생명체 만들것"
美컴퓨터공학協 최우수 논문상…한국인 최연소 박사
신(神)이 생명을 만든다면, 디지털 생명체를 창조해내는 그녀는 곧 ‘디지털 세계의 신’ 아닌가. 기자의 엉뚱한 상상을 아는지 모르는지 26세의 인공지능(AI) 박사 윤송이(맥킨지 매니저)씨는 노트북 화면을 가리키며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얘네들은 가상공간의 늪지대에 사는 치킨하고 너구리예요. 치킨은 사람의 인풋(입력)을 센서로 감지한 뒤 자기 의사와 결합해 행동해요. 하지만 너구리는 오직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만 판단해 움직이지요.”
윤 박사는 자신이 창조한 디지털 동물을 ‘얘’ ‘쟤’로 불렀다. 지능을 갖고 스스로 학습해 행동하는 것이 그녀에겐 진짜 닭이며, 너구리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그녀의 말은 점차 열을 띄었고, 커피숍 통유리 밖의 빌딩숲은 모처럼 뿌린 안개비에 살포시 젖어 갔다.
26년 전 윤 박사가 태어난 날은 함박눈이 내렸다고 한다. 부모님은 ‘눈송이’에서 따와 이름을 지어 주었는데, 이름이 풍기는 청초한 이미지와 달리 그녀의 ‘내공(內功)’은 세계 누구에게도 안 뒤지는 초일류 고수(高手)다. 감성(感性)을 지닌 디지털 생명체 연구에 관한 세계 최첨단을 달리고 있다.
―이 녀석들 IQ(지능지수)는 몇인가요?
“강아지 정도까지 만들 수 있어요. 기대(期待)해서 행동하는 것이 가능하죠. 무슨 일이 일어날지 미리 예상해서 움직이는 거예요. 강아지가 밥 줄 시간이 되면 밥통 앞에 가있는 것과 같은 원리지요.”
―지금까지 몇 ‘마리’나 만들었나요?
“셀 수도 없어요. 요즘 만들고 있는 게 ‘고미’인데, 곰에서 이름을 따왔어요. 휴대전화나 PDA(개인정보단말) 같은 휴대단말에서 ‘사는’ 캐릭터죠. 곧 완성돼요.”
―‘고미’는 무슨 일을 할 수 있나요?
“휴대단말을 사용하는 주인의 감정을 포착해서 반응하지요. 커뮤니케이션의 동반자라고나 할까요. 주인이 기뻐하면 같이 기뻐해주고, 슬퍼하면 같이 슬퍼해줘요.”
그녀 말은 요컨대, 휴대전화 속에 애완견 한 마리를 키운다고 생각하라는 거다. ‘디지털 애완견’은 사람의 말 소리며, 어조(語調)를 통해 주인이 어떤 감정 상태인지를 판단, 학습해가며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윤 박사가 주목받는 것은 인공지능 분야에 생물학적 ‘감성’ 개념을 도입했다는 점이다. 과거엔 인공지능을 높이기 위해 논리연산을 빠르게 하거나 계산 용량을 늘리는 방법을 썼다.
윤 박사는 여기에 생물학적 접근법을 결합시켰다. 모든 생물은 생명 유지의 ‘본능적 감정’에 따라 학습·진화한다는 점에 착안, 전혀 새로운 인공지능 설계법을 제시했고 이것이 디지털 생명체의 지능을 획기적으로 진화시켰다.
“기존의 인공지능은 수학적이고 계산적이죠. 하지만 그래선 진짜 생명체 같지가 않아요. 생명은 계산될 수 없는 감정도 갖고 있잖아요. 감성 요소를 도입해야 비로소 더욱 생물에 가까운 디지털 캐릭터(생명체)를 만들 수 있죠.”
이런 원리를 담은 게 2년 전의 박사 학위 논문이었다. 그 어렵다는 MIT대 미디어랩(디지털 분야의 세계 최고권위 대학원)을 3년 반 만에 초고속 졸업하면서 제출한 논문은 미국 컴퓨터공학협회(ACM)가 매년 전 세계에서 딱 한 명 골라 주는 최우수 학생 논문상을 받았다.
―MIT 시절 벅찼겠군요. 쟁쟁한 두뇌들과 경쟁하느라.
“웬걸요. 재미있었어요. 첨에 들어갔더니 3년차 미국 아이가 자기에게 많이 배우라는 거예요. 근데 그 아이, 아직도 졸업 못했어요. 박사 받는 데 보통 6~8년 걸리거든요. 결국 걔가 저를 ‘센세이(선생의 일본식 발음)’라고 부르게 됐지요.”
―빨리 학위를 따내겠다고 목표를 세웠나요?
“아뇨. 논문 쓰는 게 너무 재미있어 그냥 써버렸어요. 그랬더니 어느 날 졸업이 되더군요.”
―윤 박사는 천재인가요?
“천재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잘 잊어버리고 길눈도 어두워요. 공부가 재미있으니까 열심히 할 뿐이에요. MIT 시절 4개월 걸릴 프로젝트를 3주일에 끝낸 적이 있어요. 팀원 8명이 3주일 동안 매일 20시간씩 연구실에서 지냈지요. 잠은 2시간만 자고. 결국 무사히 마치긴 했는데, 1주일을 입원해야 했어요.”
겸손을 떨지만 그녀는 학업에 관한 한 기록 제조기다. 만 24년2개월 나이로 박사가 돼 한국인으론 국내·해외를 통틀어 최연소 박사 학위 취득 기록을 갖고 있다. 서울 과학고를 2년 만에 속성 졸업했고, KAIST(한국과학기술원)는 수석 졸업했다.
―하루 20시간을 일할 수 있는 에너지원은 무언가요?
“패션(열정)이죠. 세상에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다, 이걸 입증해 보이겠다는.”
―어떨 때 번득이는 영감을 얻나요?
“그냥 열심히 생각해요. 한 가지에 몰두하면 푹 빠져 버리거든요. 열심히 생각해 답을 내면 기발하다, 엉뚱하다 이런 얘기를 듣곤 했지요.”
그녀는 지금껏 억지로 공부한 기억이 없다.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이며 실험 시간이 너무 재미있어 어쩔 줄 몰랐다고 했다.
―귀국해서 학교 대신 컨설팅회사(맥킨지)에 들어간 것도 의외군요.
“저는 앞으로 디지털 문화를 창조하고 선도하는 일을 하려고 해요. 소니 워크맨이 새로운 문화를 만들었듯이, 저도 인류의 생활양식에 영향을 미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사람과 세상에 대해 알아야 되잖아요. 지금은 준비기간인 셈이죠.”
―그러면 언제 ‘거사(擧事)’할 건가요?
“준비가 다 됐다면 언제든지요. 시대를 이끄는 ‘사고의 리더(Thought leader)’가 될 수 있을 때요. 하려면 실제로 영향력을 미쳐야죠. 그저 생각만으로 끝나고 싶진 않아요.”
순간적으로 비춰진 거대한 야심의 편린. 그녀는 새로운 디지털 문화의 창조를 위해 “가능한 많은 사람을 모아 ‘오케스트라’를 만들고 싶지만 아무도 안 온다면 혼자 독주(獨奏)할 용의도 있다”고 말했다.
혀에서 맴돌던 질문이 그예 삐져 나왔다. 디지털 생명체가 진화를 거듭한 끝에 고도의 지능을 갖추고 인간을 지배하면 어떡하나.
―영화 ‘매트릭스’ 보았나요?
“몇 번이나 보았죠. 이론적으로 가능한 얘기이긴 해요. 하지만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디지털 생명체가 아무리 고등 지능이 되더라도 인간과 단선(單線)적으로 경쟁하는 관계는 될 수 없어요. 왜냐하면 그들과 인간은 서로 다른 차원이거든요.”
―나쁜 쪽으로 지능이 진화할 수도 있잖아요.
“참 신기한 얘기인데, ‘얘네’가 악의(惡意)를 갖고 진화한다면, 그 진화는 오래 지탱할 수 없어요. 사람이 만들어온 기계·도구의 역사를 보세요. 인간을 대체하려는 위협적 사명의 것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잖아요. 저는 디지털 생명체의 ‘성선설(性善說)’을 믿어요.”
호접지몽(胡蝶之夢·장자에 나오는 나비꿈의 고사). 그녀의 알쏭달쏭한 말을 들으면서, 우리가 디지털 생명체 얘기를 하고 있는지, 아니면 디지털 생명체가 우리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헷갈리는 듯했다.
인공지능을 갖고 디지털 가상공간 속에서 학습하며 스스로 진화해가는 인공 캐릭터를 말한다. 생물처럼 필요한 정보를 지각해 분석·판단한 뒤 행동하고, 자신의 성격·본질을 스스로 만들어간다. 미리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반응하는 것은 디지털 생명체가 아니다.
윤 박사는 생물학적 감성 개념을 도입, 디지털 생명체를 한층 더 진짜 생명에 가깝게 만들었다. 그녀가 박사 논문에서 제시한 감성형 인공지능 시스템은 아직까지 “세계에서 가장 복잡하고 고급인 시스템”(디지털 분야 권위지 ‘와이어드·WIRED’ 최근호)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윤 박사는 MIT 미디어랩 시절이던 98년 ‘SWAMPED(늪지)’라는 캐릭터 제작에 관여한 이후 수십 종의 디지털 생명체를 만들어왔다. 외계인을 본뜬 ‘VOID STAR’, 강아지형 디지털 동물 ‘시드니’, 셰익스피어에서 따온 ‘햄릿’ 등을 만들어 내며 이 분야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