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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세계자전거여행 원문보기 글쓴이: 유채
*잘 써서 올리려니까 자꾸 시간만 보내게 되어서...
생생한 느낌이 사라지기 전에 일기장만 좀 고쳐서 일단 올리고! 봅니다.
*이번 여행기의 주제는, "여행은 새옹지마의 연속이다, 그 와중에 무조건 행복해지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입니다.
01/09
그전부터 누적된 문제이지만, 특히 오늘은 하루 종일 페니어와 씨름했다.
내리막에서 끽끽 소리가 나서 앞샥에 문제가 생겼나 했는데... 샥이 그렇게 빨리 망가질 리가 없잖아?
자세히 보니 페니어 뒷부분이 스포크에 계속 부딪히고 있었다! 어이쿠!
페니어를 뒤로 보내면 스포크에 닿거나 소리가 나고, 조금 앞으로 보내면 발에 걸리고...
위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짐을 다시 얇게 싸서 처리하니 괜찮다.
65km를 달린 후 힌흡에서 점심을 먹었다. 정말 피곤해서 떠나기가 싫었다.
그 전 마을 아줌마가 힌흡에 가야 먹을 게 있대서 15km나 배고프게 달려왔고, 힌흡 안에서도 몇 번을 찾아다니다 겨우 발견한 식당!
메뉴는 3가지 요리법으로 3가지 고기를 요리한 것이 쭉 씌어 있었는데,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재미있었다.
부드러운 거북이 수프, 거북이 구이, 거북이 랍(샐러드), 사슴 수프, 사슴 구이, 사슴 랍, 다람쥐 수프, 다람쥐 구이, 다람쥐 랍...
한참 고민하다 입에서 나온 말은 퍼(국수)! 부드러운 거북이 수프 한 번 먹어볼 걸 그땐 왜 그리 고민 끝에 엉뚱한 결정을 내렸는지.
언덕을 올라가다 한 동양인 커플을 만났다.
언뜻 보니 한국인이다.
가방 사이즈가 정말 예술이다.
페니어도 아닌 그냥 얇은 가방에 둘둘 말은 짐.
그런데! 그 속에 텐트, 침낭까지 다 갖췄단다.
자전거도 33만원에 산 중고란다.
중국-동남아-파키스탄-시리아-이란-요르단-터키-불가리아-루마니아-이집트까지 하고 돌아오는 길이란다.
3월 초 한국 도착 예정.
2년 예정으로 떠났는데, 둘이 하도 싸워서 1년 만에 온단다.
1시간 정도 땡볕에 서서 수다를 떨다가 어떤 화두를 품고 달리는가, 등등의 선문답으로까지 발전했다.
그들과 한번 신나게 수다를 떨고 싶어 힌흡으로 13km back 할까 하는데...
시몬 커플과 벨기에 아저씨가 턱! 나타난다.
고민 끝에 그들 앞에서 동전 던지기를 했더니, 앞으로 계속 가라는 신탁이 나온다.
내년 중에 여수까지 한 번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하고, 헤어졌다.
산에서 내려오니 갑자기 열대 평지가 펼쳐진다.
좌우로 논이 있고, 햇볕은 따사롭고, 식당도 많고 풍요로운 분위기다.
베트남 식당에서 얼떨결에 덮밥을 시켜 먹었는데, 싸고 정말 푸짐하고 맛있다.
모든 것이 풍요롭다. 젖과 꿀이 흐르는 신천지에 도착한 기분이다.
Thalat에서 묵을까 하다 계속 왔더니, Na Nam 올라가는 마지막 2km 업힐 직전에 게스트하우스가 하나 있다.
강 바로 앞이라 경치도 죽이고, 가격도 착한 4만 낍.
이미 106km를 하루만에 달려서 내 인생 신기록을 갱신한 데다가, 해도 지려고 하는데 업힐을 갈 순 없다.
방에 짐만 던져놓고 나와 강 사진을 찍으려는데, 강가 테이블에 앉아 있던 현지인 가족 중 한 여인이 크게 외친다.
“안녕하세요!”
한국 드라마를 하도 봐서 날 보고 안녕하세요, 하고 반갑게 외친 거란다.
라스베가스 카지노에서 일하는 태국 여인과 그녀의 라오스인 남편, 그의 라오스인 사촌 2명.
사촌이라는 여인의 기품과 입성이 대단해 보여 호구 조사를 해봤다.
라오스인이 이렇게 때깔이 좋으려면 어느 정도로 좋은 가문인 것일까? 분명 고위 공무원의 자손일 텐데...
그녀는 미국에서 자랐고, 라오스에서 4년 반 일하다
호주 정부 장학금으로 호스피탤러티, 호텔 매니지먼트를 공부하고 왔다.
그러나 아직 실업자인 31세의 올드 미스.
가족 얘기를 하면서 자꾸 파들어가다보니, 그녀의 비밀이 밝혀졌다!
그녀는 전 대통령인 폼삭싯 대통령의 손녀이며,
그녀의 사촌 남자는 캄타이 시판돈 대통령의 손자란다!
와우! 이런 로열 패밀리를 만나 저녁을 얻어먹다니!
정말정말 영광이라고 거듭 외치며, 라오스의 혁명과 정치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런데 이들은 가족의 역사, 라오스의 역사에 대해 잘 모른단다.
어릴 때부터 외국에서 자랐으니까.
누군가가 정권을 잡은 고관대자들은 미워해도
그들의 자손들은 미워할 수 없댔는데,
어릴 때부터 비싼 교육과 외국 체험으로 다져진 국제 매너 때문이리라.
라오스 또한 그런 것 같다.
그들은 특별 주문한 다양한 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내게도 자꾸 권한다.
정말 맛있다! 덕분에 저녁은 내 돈 안 내고 잘 먹게 됐다.
그때 도착한 시몬 커플. 정말 신기했을 거다.
저 한국 여자애는 어찌 저리 항상 현지인들 틈에 앉아 잘도 얻어먹으며 놀고 있을까, 싶었을 거다.
폼삭싯 양은 한국에 가보고 싶다는데, 이유를 알만하다.
오늘만 해도 레스토랑에서 틀어둔 TV에서 빅뱅을 비롯한 한국 연예인들이 계속 나왔다.
한국에선 TV를 전혀 보지도, 팝음악을 듣지도 않고, 빅뱅 멤버가 누군지도 몰랐는데,
왠지 마구마구 감사하다.
빅뱅, 소녀시대, 모든 연예게 종사자들, 카메라맨들,
TV프로그램을 태국에 판매한 제작사 관계자들, 모두 복 받으소서!
나라는 인간이 잘 한 것도, 뭘 준 것도, 줄 것도 없는데
이 분들 덕분에 이렇게 환대받으며 여행하고 있지 않는가.
01/10 일
하루종일 더위, 쓰린 안장과 싸우며 또 100km 이상을 달렸다.
험악한 북부 라오스를 벗어나 남쪽으로 오니, 살짝 재미없고 덥다는 단점이 있다.
어딜 가도 쉽진 않다.
아침에 언덕을 하나 넘어 내려온 뒤 평지를 달렸다.
한참을 가면서 이제 점심을 먹어야지, 왜 아까 좋은 식당들을 그냥 지나쳤지, 아이구, 이젠 안 놓쳐야지, 혼자 궁시렁궁시렁...
그때 시골길 바로 옆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파티를 하는 것을 보았다.
멈춰 서서 10초 정도 훑어보고 있자, 한 3명 정도가 들어오라고 반갑게 손짓을 한다.
몇 분 후 결혼 파티가 시작된다.
사회자가 말을 하고, 음식을 든 아줌마가 왔다갔다 한다.
잠시 후 사람들이 한 명씩 나와서 라이브밴드에 맞춰 노래를 하고, 몰려나가 춤을 춘다.
다들 주위 탁자로 가서 음식을 덜어온다. 음식 종류는 그다지 많지 않지만.
단, 비어라오만은 원없이 나온다.
주위 아줌마, 아저씨들이 내 안경+선글라스를 돌림빵하며 써보더니 머리를 훼훼 젓는다.
마을 사람들이 점점 더 몰려들면서 입구에 있는 하트 모양의 박스에 분홍 봉투를 집어넣는다.
나도 부조금을 내야겠다, 생각하는데 신랑신부가 블랙라벨을 한 병 들고, 금 쟁반에 잔 2개를 얹은 뒤 돌아다닌다.
각자 술 한 잔씩 따라드리고 현금을 받는다.
나도 잽싸게 지갑을 가져와 열었는데, 5만낍이 보이길래 에잇, 하면서 5만낍을 꺼내서 주고, 그들이 준 술 두 잔도 냉큼 마셨다.
사람들이 굉장히 좋아하면서 음식을 더 챙겨준다.
어제 만난 한국인 커플이 내게 준 신랑신부 한국 기념품이 기억났다.
한국인에게 왜 이런 걸 주냐고, 아꼈다가 다음에 쓰라니까 너무 많이 남았다면서 기어이 한 개 챙겨주시더니...
아침에 시몬 커플 줄까, 하다가 언젠가 쓸 일이 있을 거야, 하고 아껴놨는데, 오늘을 위한 것이었구나.
사진을 찍은 뒤, 그 커플에게 줬다.
전해주는 아저씨가 더 좋아하며 마구마구 의미를 부여해서 설명한다.
금칠이 되어 있고 라오스 물건과 달리 아주 곱고 섬세해서, 한글이 씌어 있어서 그럴 듯.
여기도 잔 돌리는 풍습이 있나? 앞 아저씨가 자꾸 자기가 마시던 잔에 비어라오를 따라 준다. 얼른 마시고 달라며.
잘 마시니 되게 좋아한다.
사람들은 발을 살짝 왔다갔다 하며 주로 손목을 돌리는 손춤을 추는데, 너무 정적이다.
사람들이 같이 추자고 잡아 끄는데, 싸이클 팬츠에 반바지를 겹쳐 입은 이상한 차림새로 마구 흔들 순 없어 사양했다.
화장실에 가려고 부엌을 지나가는데, 아줌마 한 명이 "까올리(한국인)?" 하고 확인한다.
맞다니까 갑자기 “아이 러브 유”하면서 껴안는다.
옆에 있던 아줌마 2명이 돌림빵을 하며 또 덥썩 껴안고, 입구에서 부조금을 받던 청년도 아주 동경의 눈으로 바라본다.
대체 이 대사가 어느 드라마에서 나온 걸까?
전에도 치앙라이에서 몽족 마을에 갔을 때 아이들이 쫓아오며 “아이 러브 유”하며 난리를 치지 않았던가.
취해서 좀 어지러웠던 기운을 가라앉히고 1시 반쯤 출발. 1시간 반을 놀았나 보다.
3시쯤 에너지 드링크라도 마셔야겠다 싶어 멈췄더니, 라오스에서 보기 드물게 매끈한 영어로 한 청년이 말을 건다.
비엔티안의 은행원-Bank of Lao PDR(한국은행과 같은 건가?)인데, 결혼할까 말까 고민하는 처녀 집에 일요일을 맞아 방문한 거다.
예전엔 저 앞에 있는 다리에서 일했는데(입장료 걷는 일, 설마? 관리직이었겠지...) 그때 예쁜 처녀가 지나가서 말을 걸었고...
여차저차하게 된 거란다.
근데 완전 편하게 반바지 입고, 비어라오 셔츠 입고 놀고 있다.
college에서 영어 전공했다는데 나보다 영어를 더 못하는 것 같다.
아니, 세상을 보는 시각이 좁아서 그런 건가?
샤머니즘이란 말도 모르고, 소수민족은 개념에 없으며, 모든 라오스인들은 불교도라고 잘라 말한다.
어쨌건 나름 지성적인 현지인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최대한 이용하자!
이것저것 궁금한 걸 물어보다가 라오스 지폐에 나온 그 뚱뚱한 아저씨(인민혁명의 영웅이자 전 대통령)를
모든 라오스 사람이 좋아하냐니까, 갑자기 10초간 표정이 이상해진다.
좌우를 살피더니, 묘한 표정으로 당연히 다 그를 좋아한단다.
라오스 사람들은 다 사바이디 하고 웃으며 손을 흔들어 주는데 태국인들은 왜 수줍어하며 말을 안 거냐니까,
다들 정치 때문에 심각해서 그렇단다.
자기가 볼 때 태국은 정치, 경제, 모든 것이 심각하단다.
라오스는 그럼 별 문제 없냐니까, 없단다.
흠,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이 나라 언론이 발달하지 않아서 모르는 것일까(다들 태국 뉴스만 보니까), 위험해서 숨기는 것일까, 무식해서 모르는 걸까.
너무 늦기 전에 다시 출발했다.
잠시 후 멋진 자전거를 타고 다가오는 두 아저씨를 보고 얼른 손을 흔들어 세웠다.
헬멧, 울긋불긋 싸이클복과 고급 자전거, 페니어를 보고 외국인 여행자라고 생각했다.
태국인인가 했더니, 놀랍게도 라오인이다.
미쯔비시 회사원과, 대형 커피샵 사장님이란다. 일요일이라 하루 trip 하는 거란다.
라오스도 수도에는 이런 사람들이 사는구나.
2시간을 달렸나, 도로에 깔린 아스팔트 질이 점점 더 좋아지면서 내 평균 주행속도도 20km 이상으로 높아진다.
비엔티안 12km 앞 표지석부터는 심지어 중앙분리대와 차선이 생긴다.
잠시 후 왕복 6차선 도로에, 신호등까지 생긴다.
하루종일 점점 더 차들이 늘어나서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제 더 쇼킹하다.
비엔티안 시내에서 몇 번이나 멈춰 지도를 봤다.
란쌍 대로로 들어선 게 맞는지, 도로의 이상한 곡선에 놀랐다가, 타이 대사관을 발견하고 확인했다.
그리고 대통령궁 앞까지 왔는데 , 오른쪽으로는 일방통행이라 돌아가야 한다!
이래저래 돌아가 믹속 게스트하우스에 갔더니, full.
그곳 주인이 소개해준 싸다는 싸바이디 게스트하우스 갔더니 또 full.
여기저기 몇 번이나 돌면서 봤는데 다 full. 20군데는 봤나? 1시간 정도 헤맸나?
충격적이다. 비싼 데라도 가야 하나?
결국 약간 옆으로 비껴난, 중국인이 운영하는 듯한 Siri GH 갔더니 6만 낍짜리 트윈룸이 있다.
방에서 약 냄새가 심하게 나지만 그거라도 감사!
공동 화장실에서 샤워하고 방에 와서 아직 옷도 안 입고 너무 피곤해서 푹 퍼져 앉아 론리플래닛의 식당 추천을 본다.
누가 노크해서 나가보니, 숙박부에서 한국 이름을 보고 반가워서 왔다는 한국 여자다.
같이 나가서 밥 먹기로 했는데, 웬일로 내가 지도를 잘못 보질 않나, 멍하다.
감기 기운도 심하고,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가 너무 큰 날이어서 그런 것 같다.
Vieng Sawan, 진짜 라오 음식이라고 론리에서 추천하는 데 가서 수끼 먹었고,
2차로는 True Coffee 가서 남원의 문제 학교 국어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기만 했다.
밤 11시에 더워서 잠이 안 와서 문 열었다가 옆방 홍콩 여자애랑 10분 정도 대화를 나눴다.
발리 렘봉안 다이빙 티셔츠 입고 있는 마르고 탄 여자앤데, 이상하게 생겨서 말하는 것도 너무 이상하다.
얘는 라오스가 너무 싫단다.
겨우 훼이싸이-루앙프라방-방비엥-비엔티안을 여행해놓구선,
비엔티안 사람들이 너무 딱딱, 시무룩한 얼굴이어서 싫다며 계속 얼굴을 늘어뜨린다.
그리고 한국 사람들은 다들 중국어를 말할 수 있어서 좋다며, 나보고도 만다린을 하냔다.
"뭐? 누가 중국어를 했길래? 주변에서 중국어를 잘하는 사람은 소수인데, 너 누굴 만났니?"
얘는 2년 전에 명동에서 3일 머무른 게 전부다. 그때 다들 중국어를 잘해서 너무 기뻤단다.
이런... 거기야 비즈니스 하는 사람들 뽑아서 중국인들이 돈 쓰도록 하는 곳인데 당연히 중국어를 잘들 하지.
그거 갖고 일반화한 건 너무 심하다, 심해!
나같음 다른 나라 가서 그들이 내 모국어로 판매에 열 올리면 그곳은 너무 투어리스틱해서 안 가거나, 안 믿겠다.
그런데 그걸 갖고 한국을 거의 중국의 속국 취급하다니... 이런 얼빠진 애가 있긴 있구나.
얘는 한 술 더 떠서, 여기는 너무 못 살면서 물가가 말도 안 되게 비싸서 싫단다.
그래서 인프라가 부족한 나라는 물가가 더 비쌀 수도 있다고 말해줬다.
그리고 결국은, 너 여기 너무 짧게 머물렀다는 말까지 해버리고 말았다!
참 다양한 사람들을 만난 하루다.
01/11 월
하루종일 짜증을 많이 낸 날이다.
모자, 선글라스, 토시 등을 제대로 안 하고 달리다 보니 뜨거운 태양이 힘들었고,
일방통행 길은 너무 헤깔리고, 짧은 거리를 자꾸 돌아다니며 자전거를 세우고 열쇠로 묶으라 신경을 썼으니...
차라리 편하게 걸어다닐 것을!
아침 먹고 들어오는 길에 믹속 GH 가봤더니 싱글룸이 있다.
정말 베이직한 방인데 35000낍의 매력에 반해 일단 돈을 내고 왔다.
짐 싸서 믹속에 갖다넣고, 라오 내셔널 뮤지엄 도착.
힌무앙 고고학 공원과 항아리평원에 대한 정보가 의외로 재밌었다.
2000년 된 대형 청동북에 새겨진 정교한 무늬. 시골을 뒤지면서 유적 발굴하는 국제 팀.
지금까진 스웨덴 웁살라 대학과 했다는데, 앞으로는 한국 대학 팀과 해도 되지 않을까.
1시간밖에 못 봤는데,
12시 10분 전부터 직원이 이제 문 닫는다, 나가라며 경고를 주며 돌아다닌다. 이미 직원들 몇 명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비엔티안의 모든 유적지가 8-12시, 1시-3시 오픈인 것은 공무원들이 점심을 먹기 때문이다.
들어갈 때부터 국립 박물관 앞에 아줌마들이 쪼그리고 앉아서 반찬거리를 팔고,
그 속에서 흥정하던 직원이 쑥 일어나더니 내게 티켓을 팔아서 충격 먹었다.
(다음 날 발견한 것은, 경찰도 길거리 검문소 안에서 밥을 먹고 있고, 왓 시사켓 직원들도 자리에서 아침부터 먹고 시작하는 것.
다들 밥 먹느라 근무시간을 함부로 보낸다.)
2층에는 소수민족에 관한 게 있는데. 남부 지역에 있다는 ALAK 이라는 용맹스런 부족 사진 한 장에 마음이 땡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왠지 우울할 땐 밥을 잘 먹어야 한다.
가이드북 추천과 동물적 육감을 섞어가며 마구 돌아댕겼다.
결국 사바이디 듀 레스토랑이라고, 프랑스 식당이 많은 대로변의 인테리어가 멋진, 론리에서 소개한 곳으로 갔다.
라오 디스커버리라는 세트 메뉴를 통해 뭔가 새로운 정통적인 맛을 알게 되지 않을까 하는 환상에 사로잡혀서.
근데 너무 짜증났다!
대로변에서 먹으니 햇살이 점점 강해지지, 파리가 너무 덤벼들어 계속 팔을 휘둘러야 하지,
너무 spicy해서 편하게 먹을 수도 없고 밥은 이미 다 먹었지...
결국 쏨땀은 많이 남아서 백에 싸왔다.
저녁은 강가에서 먹었다.
01/12 화
자면서 내가 왜 이리 팔을 집중적으로 긁나 하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새벽 5시 좀 넘어 일어나보니 침대에 이와 벼룩이 아주 큰 것들이 여러 마리 기어다니고 있다! 맙소사!
온몸이 물린 사진을 찍었는데, 너무 엽기적이고 살짝 민망할 수도 있을 것 같아 감히 올리진 못하겠다.
우울한 마음을 예술로 정화시켜 보려고 왓시사켓으로 향했다.
문 여는 시각은 8시라는데, 8시 7분에 청소하는 아저씨가 열어준다.
입장권도 안 주고 돈만 포켓에 넣는다.
티켓 달라니까 사람이 안 왔다며 빈 자리를 가리킨다.
대웅전 문도 아직 안 열었기에, 회랑을 먼저 둘러본다.
정말 놀라웠다!
벽에 난 구멍들에는 작은 부처들이 한 쌍씩 가득 들어있고, 바닥에 앉아 있는 큰 부처들도 멋졌다.
근데 얼마나 관리를 못하는지...
작은 부처는 누가 마음 먹고 아침 일찍 사람 없는 시간에 와서 청소하느라 바쁠 때 여러 개 주머니에 넣어가도 모르겠다.
큰 부처와 나무 기둥에도 금이 많이 갔고, 조각이 갈라져 떨어지고 있다.
더 한심한 것은 관리인의 국물 데우는 레인지과 냉장고, 퓨즈 등등이 그 회랑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진도 못 찍게 하는 대웅전 안에서 비질하는 아저씨는 시종일관 담배를 물고 있다.
모든 것이 다 나무인데 불 나면 대체 어쩌려고 저러나.
그림이 날로 색이 바래져서 외국에서 원조 받아서 복구하면서...쯧쯧.
한참 후 대웅전 문을 열기에 들어갔더니, 먼지가 수북하다.
그제서야 남녀 둘이서 빗자루를 들고 쓴다. 먼지가 잔뜩 날려 구석으로 피한다.
어쨌든, 이틀간 우울했던 기분이 이곳에 쌓인 세월과 예술미에 서서히 정화됨을 느낀다.
GH 와서 주인 남자에게 상처를 보여주며 니가 뭘 해줄 거냐, 했더니 5분만 있으면 가라앉는단다.
미친 놈, 몇 시간 째 피나게 긁고 있는데.
방에서 짐을 싸는데, 앞방에서 직원 여자애가 벌레약을 마구 뿌리고 있다. 매트리스를 뒤집어가며.
내가 이 방 처음 들어왔을 때 난 그 약 냄새다,
어쩐지!!! 지나가던 프랑스애한테 벌레 안 물렸냐니까, 자기는 안 물렸다고, 옆집은 더 하단다.
아까 버스 티켓 알아볼 때 옆집 주인 아줌마가 내 팔뚝을 보자 마자 “너 믹속에 머물지? 거기 그런 애들 많이 봤어”라더니...
똑같다, 똑같아!
이제는 결론을 내릴 시간!
고민하다가 빡세 Pakse행 티켓을 샀다.
멋진 동굴 Lak Sao를 버린 것이다.
여기저기 가고픈 과한 욕심에서 허우적대다가,
싸이클 여행에선 싸이클을 우선으로 하자, 베트남 해안도로에 집중하면 몸도 맘도 편하겠다 싶어 내린 결론이다.
락사오는 다음에 교통이 더 좋아진 후 가도 되는 거고...
사실 비엔티안에서 우울한 이유 중 큰 부분은 관광에 집중 않고 자꾸 앞으로의 루트와 자전거 경로를 생각했기 때문 아닌가!
파탓루앙에서 프랑스인 커플을 만났다.
뒤로 눕는 자전거로 1년간 세계 일주한단다.
이미 유럽-남미를 거쳐 아시아로 왔다고. 내년에 결혼할까 한단다.
저녁에 예약한 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니, 썽태우가 한 대 왔다.
발받이에 자전거를 겨우 실었다.
그런데 어느 지점에 가더니, 다들 내리고 저기 거의 꽉 차 있는 썽태우로 갈아타란다.
사람만 해도 이미 꽉 차서, 가방은 모두 다 발받이.에 쌓아올린다.
그리고 그 가방들 위에 내 자전거를 얹었다. 나와 다른 서양 여자애가 혹시나 싶어 자전거를 잡았다.
나중에 픽업 미스가 나서 시내에서 조인한 중국 남자애는 아예 썽태우에 매달려 터미날까지 갔다.
그런데 기사 녀석은 자전거 실을 때나 받을 때나 이리저리 뜯어보고 벨도 울려보고 하나도 급한 게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것이 맘에 든다.
버스는 벌써 짐칸이 꽉 찼는데, 실어야 할 짐은 아직도 많다.
자전거 어쩔 거냐는 내 거듭된 질문에 기사와 조수가 한참을 고민하더니, 버스 뒤 환기통 있는 곳에 자전거를 묶는단다.
얼굴이 환해져서 자신의 아이디어에 만족한 표정을 짓더니, 갑자기 바닥을 훑어본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수박 들고 갈 때 쓰는 비닐 끈과 박스 묶을 때 쓰는 짧은 노란 나일론 끈을 서너 개 줍는다.
그걸로 짐받이와 핸들을 환기통 틈새로 묶는다.
저렇게 대충 묶어서 되는 걸까? 길이 엄청 험할 텐데 14kg의 무게와 그 요동을 잘 받아낼 수 있을까?
내가 고개를 흔들었지만, 아저씨가 툭툭 쳐보더니 문제 없단다.
내 가방은? 버스 안에 싣겠단다.
남은 짐들은 다 화장실 앞에 부려졌다.
내 번호표 47번으로 갔더니, 맙소사... 젤 뒤쪽인데 5명이 눕는 거다.
완전히 칼잠을 자야 한다는 소리.
중간에 영국인으로 보이는 남자애, 좌 여자 둘, 우 여자 둘. 나는 그 남자애 왼쪽.
버스가 출발하고 한참을 심난해서 앉아 있었다.
고개를 뒤로 하고 자전거 잘 있나 봤더니, 떨어질 기미는 안 보인다.
일단 좀 자고, 휴게실에서 1시 반에 봤더니 의외로 아무 결함 없이 잘 매달려있다.
혹시나, 해서 아까 후회했던 작업-번호 자물쇠로 여러 번 동여맨 뒤 잠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