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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미 시집[떠밀린 상상이 그물 되는 아침] (청어詩人選 198 / 도서출판 청어. 2019.08.29)|소중한 作品集 소개
▲시집 [☆떠밀린 상상이 그물 되는 아침☆]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 ============ [◎떠밀린 상상이 그물 되는 아침◎] 오영미 시집 / 청어詩人選 198 / 도서출판 청어(2019.08.29) / 값 10,000원 ================= =================
너의 주소는 부재중
배 속의 아이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가 숨을 깊게 내뱉다가 발차기로 엄마의 배를 뭉클하게 하였다
사내아이라서 꼼지락거리는 횟수보다 울컥거리게 움직이는 폭이 커서 때때로 탯줄까지 꼬이게 하는 비범한 재주를 갖고 있었다
너의 태초는 어머니 뱃속 아니 아버지의 정자 아니 아니 할머니의 뱃속 아아 아이 아니지 할아버지의 할머니의 할아버지의 정자
너는 주소를 가졌으니 지금은 부재중 출생신고를 하고 이름을 짓고 불러주었지만 고갯짓하기 전 엎드려 꽃잎 떨구었다
나는 해마다 편지를 부치고 소포를 보내고 너 있는 그곳 그리워하지만, 반송 없는 답장은 사는 날까지 나를 슬프게 하였다
물꽃
장맛비 내리는 날 나는 보았네 아스팔트 위 처절하게 떠내려가는 물꽃들 여름 날 풀물 든 밭 개망초 피듯 하얗게 튀어 오르는 물꽃 거친 바닥일수록 강렬하게 부딪치는 징소리 익사한 고기떼처럼 떠밀려 가는 풍장 때때로 자동차 바퀴에 물려 물보라를 일으켰네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찢김이었네 콸콸 쏟아지는 빗줄기가 추락하듯 콱콱 자결하며 떠나는 꽃들이었네 총총히 떼 지어 피난 가는 송사리 떼 같았네 장맛비 그치니 그 꽃 사라져 볼 수가 없네
풀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여름 장마가 끝날 무렵 깨지는 햇빛 작렬함으로 귀를 찢어 놓는 소음 아랑곳하지 않는 풀 바짝 엎드려 땅따먹기 하듯 쭉쭉 뻗는 우주선 같다 한 뿌리 캐면 바닥이 훤해지는 기쁨 때문에 종일토록 쪼그려 앉아 호미질이다 산처럼 쌓이는 건초더미 사방 천지 무명 용사의 무덤이다 나는 그것이 좋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허리를 펴지 않는다 매미 울음소리 그칠 즈음이면 코스모스 피고 중추가절 추석이 올 것이다 건기가 시작 될 것이고 풀의 동면으로 나의 구부러진 허리가 좀 펴질 것이다
꽃
바다에서 꽃은 사치일까
너도 꽃 나도 꽃
하도 꽃 꽃 하니까
꼭 좇 좇 돛같이 보인다
기분이 우울할 때 그렇다
그가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염색하던 머리를 반백으로 기르는 동안 고민 안 했다면 거짓말 불혹이 지나며 흰 유전자의 우월성이 이름 없는 묘지 위 삘기 자라듯 한 해가 다르게 백발이 늘었다 어울리지 않는 긴 머리 질끈 동여맨 걸 그가 좋아했다는 이유만으로 더 늙으면 그것도 못 할 것 같아 열심히 묶고 다녔었다 자르자 자르자 단발로 자르고 청바지를 입자 체크 남방을 어깨에 걸치니 회색 머리가 편안해졌다 눈 딱 감고 마음을 정하니 이렇게 좋은 걸 모든 건 맘먹기 달렸다는 말, 믿는다 까만 염색의 머리였던 사진을 본다 촌스러워서 웃는다
아무 일 없이 그냥
아주 잠깐만 철썩이는 파도에 창문이 들썩여도 나를 내버려 두면 안 되겠니 피고 지는 일이 강요와 게으름 따위로 척도를 가늠하지 못하도록 검은 달이 자전하면서 하얀 별은 공전을 꿈꾸지 환한 한나절 말고 흐린 반나절만 아무 일 없이 그냥 앙큼한 가시에 찔려 창문 들썩이는 바닷가 어디쯤 빈방에서 반나절만 무통의 꽃으로 피었으면 좋겠어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졌으면 좋겠어
너를 기다린다
봄이 온다
여름이 왔다
가을이 간다
겨울이 갔다
주검
여리던 잎 푸르러 무성한 숲 이루더니
비바람 천둥 번개에도 끄떡없더니
시나브로 꽃 피워 열매 맺더니
가진 것, 색 바랜 잎마저 다 날려버리고
지난 세월 빈 둥지 하늘 한숨 끝이 없네
주검 앞 옷을 벗겨보니 온몸 까맣게 타 있었네
꿈에 본 빛나는 것들
그 남자와 잔 것 같다 밤새 이불 위에서 이불 밑에서 불안에 떨며 우왕좌왕 들어가는 길에 주운 두툼한 금목걸이와 예물 시계 한 쌍 들어와서도 그것들을 숨기느라 이불 속 여기저기 후벼대고 있는데 반 토막 난 남근 두 개가 이불 위에 나뒹굴어 있다 그 남자의 성기는 분명 반 토막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이불 위 그것들 하나는 리모델링한 작품이고 나머지는 자연산이었다 그 남자는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원하는 곳에 갖다 대면 찰칵하고 달라붙었다 처음이에요 정말 놀라워요 이런 게 있었다니 신기해요 이건 놀랄 일이 아닙니다 요즘은 다 이래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나는 금덩어리만 빛나는 줄 알았지 그것이 진화되는 빛의 속도는 잊고 살았다
누구나 다 그럴 수 있다
어머니가 낳아주신 내 얼굴에 두 가지 모습이 있습니다 콤플렉스와 사이코패스입니다 말로 통하지 않으면 주먹을 날렸습니다 가난을 물려주셨지만 극복해내고 싶었습니다 알아주지 않는 사람 앞에서 무릎도 꿇었습니다 맨발로 산길을 오르내리며 작정했습니다 만인의 앞에서 이름 석 자 날리는 위인이 되자 내 밥그릇만 챙길 줄 알았던 지난 세월 지독한 추위와 배고픔을 먹고 자란 트라우마입니다 나는 정신이 가난한 사람 나에게도 엄마의 따스한 젖가슴이 필요합니다 나는 네가 될 수 없는 우리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앞 나의 이야기입니다
돌아오는 길
하늘이 날아가네 새가 날아가네 구름이 날아가네 고즈넉한 어느 저녁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었습니다 거대한 소망은 규칙적이지 않고 흔들리기 쉽습니다만, 우리의 꿈은 작은 숲속처럼 아늑하고 포근했습니다
세 개의 알이 있습니다 새는 알을 놓아두고 날아가는 걸까요 새가 알을 지키고 있는 걸까요 뾰족한 말의 상처로 범벅이 되는 세상 하늘은 언제나 맑고 상큼했습니다만, 어두운 건 사람이 만들어 놓은 문자입니다
당신은 높은 이상의 벽을 허물 수도 있겠습니다만, 우리가 이깟 작은 흔들림에 무너질 수 있다고 보십니까 말랑말랑 폭신폭신 너무너무너무 아름다운 뾰족한 하루를 삼킨 사나이들의 울음 날아간 새는
밥 생각은 없는데 팔베개
육지에 있다가 문득 그리워 바다로 간다 거기 가면 있을 것 같다 그것이 뭐든 내가 찾는 간절한 것 멍든 나를 안아줄 것이다 헛웃음에 팔려 몸서리치는 나 종일토록 울리지 않는 전화 벨소리 기다리지 않지만 기다려지는 여느 새소리처럼 섬은 거기서 기다려 줄 것이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섬으로 간다 먹는 것과 자는 것과 입는 것 그것이 무엇이든 내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 걱정없이 자유롭게 날개를 편다 그리운 섬에 있으면 밥 생각은 없는데 팔베개는 생각난다
왜 하필
그렇다면 나는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하나 막상 그렇다면 말이다 허름한 지붕에 막힌 곳 없는 공중 집 으리하지도 않은 허한 그곳에서 왜 하필 오르가슴인가 어쩌면 행복 말인데 그리 풍족하지 않아도 만족하는 것 넉넉지 않지만 편안한 것 그것들이 오지의 배꼽을 만들어내고 있다 세상 급할 것 없고 화낼 일이 없다 나는 배가 고프지 않다
그 날
바타드에서 숙소까지 두 시간을 걸었지 이곳저곳에서 도로공사가 한창이었어 고도가 천백 미터나 됐고 바타드 초등학교가 거기 있었어 공연하기로 했지만 칠흑의 밤비에 엄두도 못 냈어 경사진 언덕을 오르내리는 구름 바람도 쉬지 못하게 숨이 조여왔지 개들이 꼬리를 흔들었어 고양이는 사람 손을 많이 탔는지 도망치지 않았어 전통 가옥에서 머물렀어 여덟 개의 침대가 꽉 채워져 있었어 촛불만 하늘거리는 방 비가 오면 샐까 봐 걱정되던 밤 우리들의 별이 잠들었던 하늘 하늘이 나를 허락하고 고요히 눈을 떴던 그 날
오지마을 흑돼지
사가다 도로 위 흑돼지 새끼돼지가 엄마 돼지를 졸졸 따라다닌다 윤기가 나는 검은 털의 돼지들 주둥이는 강아지인데 콧구멍은 돼지다 아장아장 뒤뚱뒤뚱 돼지우리가 없는 산속 오지마을 그곳에서 자라는 돼지들은 자유롭다 활동 범위가 넓어서인지 날씬하고 빠르다 돼지 같다는 말은 의미 없다 세상의 자연을 꿀꿀 빨아 커가는 돼지 새끼들 고놈들 데려다 키우고 싶다 애완용 돼지가 유행하는 날이 온다면 이놈들이 원조가 되고도 남겠다 애완용 토종 흑돼지 유전자를 개발하는 상상
사가다 동굴
엄청 깜깜합니다 호롱불 밝히는 가이드가 손을 내밉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잡습니다 불빛 따라 미끄러지는 동굴 좁은 구멍 낭떠러지 비탈이 있습니다 좁은 문을 통과한 넓고 아름다운 동굴 자연 그대로 살아있는 작품을 손에 쥡니다 내 마음은 보물창고로 바뀌었습니다 박쥐가 천정에 새까많게 매달려 있고 동굴 속 폭포 소리가 두려움을 씻어줍니다 죽음 아니면 천당 가는 마지막 보물창고입니다
맨발이어야 합니다 바위에 걸터앉아 양말을 벗습니다 신발 속 울림은 탄성의 메아리로 여행자들을 유혹합니다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습니다 돌부리에 치어 발끝이 아려 와도 웃음으로 행잉 코핀을 날려버립니다 미스터리의 헛디디는 발 기묘하고 거대한 바위의 위엄 박쥐의 똥이 백설기 같습니다 가이드의 램프가 흔들리면 같이 흔들립니다 램프가 꺼지면 다시 깜깜해집니다
동굴 속 박쥐 똥을 밟았거나 거꾸로 매달려 생을 살아가는 저 믿음이거나
넘어지면 손 내미는 무조건이거나 *행잉 코핀: 절벽에 매달려 있는 관
여름에 얼어 죽다
사가다 산 정상 게스트하우스 자작나무의 흰 얼룩이 구름에 덮여 솜 나무인 줄 알았어
한국은 1월 한겨울 필리핀은 여름인 줄 알았지 다랭이 논에 모내기 한창였거든
시도 없이 바뀌는 날씨 가랑비 내리노라면 해가 중천이었어 축축한 습기에 음산한 산속
좁은 매트리스 침대에서 둘이 잤어 다운파커 입은 그녀을 옆에 두고 참으려 했어, 처음이라 떨리는 체온으로 나도 모르게 껴안았지 추워서
첫날 밤 얼어 죽지 않으려고 그랬어, 그건 진짜야 우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됐어 아침에 얼굴을 봤는데 그래도 추웠대
예전에 할머니가 그랬어 여름에 얼어 죽은 처녀 귀신이 있었다고 나는 처녀가 아니어서 천만다행
한 마리 학이 거기 살았네
오똑한 콧날에 까만 눈동자의 아로나
신비로운 미소에 자꾸만 눈이 갔던 소녀
단발머리가 찰랑거릴 때맏
하얀 이 사이로 재스민 바람이 스며들었네
이국의 소녀가 떠나는 나를 보내지 않았네
아로나는 날개를 접을 수 없었네
한 마리 검은 학
이별 후 더 큰 날개 달고 높은 하늘 날았다지 *아로나: 여행지에서 우리를 안내해 준 현지인
그 길
따뜻한 밥상 차려 놓고 처마 끝 하늘 올려다볼 때 가끔 그 길 생각날 것이다
어둠 속 빗소리에 천둥 먹구름 무섭다 느껴지면 문득 그 길이 그리워질 것이다
지독한 생각의 그리움들 설친 꿈 몽롱해져 서글퍼지면 그 길도 애간장 녹을 것이다
아낙
라이스 테라스를 가려면 동네를 지나야 한다 동네는 모두 경사진 내리막길 우물에서 설거지하는 아낙을 보았다 젖병이 여러 개인 것을 보니 어린 아기가 많은가보다 높은 지대에서 내려오는 물 안개를 먹고 내려오는 은은한 물이다 아기는 자연의 흐르는 물소리 마시며 자라겠지 어린 엄마의 젖을 물고 쑥쑥 커가겠지 나무로 만든 집은 태양을 흠뻑 빨아들이고 있다 네 마리의 강아지들이 펄쩍거리며 놀고 있다 서로를 핥아주며 귓속말로 속삭이기도 한다 눈부신 햇살 행복하다고 우리 마을에 이방인이 또 왔노라고 그집 시어머니는 흙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아기들은 방 안에서 쌔근쌔근 아낙은 이 동네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까 .♣. ================= ■ 시인의 말
떠밀린 상상이 그물 되는 아침 길 위에 밥상을 차린다 아무도 가지 않았을 길 검은 안개가 할퀴어 놓은 길 어둠이 숲을 가둔 끝없는 길 빗소리에 불안이 깊던 험한 길 빛을 벗긴 어둠이 비탈길을 빛나게 하는 칠흑 속 하얀 길 아무도 가지 않았을 것 같은 아무도 가지 않았을 것만 같은 그 밤을 홀렸던 길 그너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은 없다 길 위에서 밥을 먹는다
2019. 가을
오영미 .♣. =============== == = == =============== 오영미 詩集 [※떠밀린 상상이 그물 되는 아침※]
[ 에필로그epilogue ] 시작노트, 나의 시 창작 세계학 오영미
처음 문단에 들어설 때의 ‘당선 소감’이 떠올랐다. 우물 안 개구리마냥 혼자 마음 문 닫고 보낸 세월. 갈급한 가슴 스스로 열고 세상 보며 흥얼대던 콧노래. 그러나 그 콧노래가 넓은 세상을 만날 수 있어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창피한 졸작을 평소 애독해 오던 월간 『문예사조』가 내 손을 잡아주고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이때만 해도 빗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나고 낙엽 구르는 모습만 보아도 감성이 저절로 피어 마음 닿는 대로 글을 썼다. 단어 선택도 내 안에 있는 그릇이 전부처럼 써놓고 나면 그것이 최고인 듯 착각을 하며 지냈었다.
돌이켜 보면 수줍게 내놓은 질그릇을 어루만져주며 다독여 준 부끄러움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 모습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용기를 주고, 희망을 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지금도 간절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1966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공주여자상업고등학교(현 공주정보고등학교)라는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했으나 순수하고 벅찬 감성들을 잠재우기엔 마른 풀잎처럼 끊임없는 갈망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 꿈을 이루고자 OCU(열린사이버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공부하며, 정끝별 교수와 방민호 교수의 가르침을 받았다. 알듯 말 듯한 꿈틀거림은 계속되었으나 생활과 병행한 학습이었기에 생활에서 나의 시를 발견하고자 했다. 열심히 생활하며 습작을 계속하였고, 그간 시집 두 권을 출간했다.
첫 번째 시집은 『서산에 해 뜨고 달뜨면』(2008.도서출판 가야)으로, 그야말로 내가 사는 지역에 대한 애정과 자연, 그리고 시에 대한 주관적 감성이 두드러져 있다. 지역적인 특색과 여행을 다니며 느낀 감정들을 시적으로 표현하여 한 권의 시집으로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온전히 가정과 사회, 그리고 삶의 터전인 서산에 대한 애향, 또는 육아의 시기적 초점에 맞추어 의도적으로 펴낸 경향이 다분하다. 언뜻 보면 평범하면서도 흔한 얘기처럼 엮어진 이야기를 ‘시’라고 표현하면서 스스로에 위안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독자들에겐 ‘시시’할지 모르나 나에겐 남모를 향수가 깃들어 있어 뜻 깊은 시집이다.
두 번째 시집은 『모르는 사람처럼』(2012. 글나무)인데, 첫 번째 시집에 비해 많이 비틀어보고, 꼬집어 봤지만, 왠지 맘에 안 드는 구석들이 많았다. 다행히 서산지역 출신인 이생진 시인과 박만진 시인과의 인연으로 ‘시’에 대해 깊이 파고들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한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문인들과의 교류도 활발하게 하였고, 나아가 충남지역 문인들과의 소통을 시작한 작은 출발이라 하겠다. 문체나 어조, 소재에서도 일상이나 자연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을 통한 느낌과 나의 이상을 실현하고 싶은 몸부림이 스미게 하려 노력했다. 이 역시 자녀의 성장기에 맞춰 ‘기념’같은 의식을 치르고 싶어 출간한 시집에 불과했다.
지금은 다르다. 과연 ‘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바탕을 긁어내고 싶었다. 제대로 ‘시’와 만나서 연애를 하고 싶었다. 나의 질긴 여정에 ‘시’를 묻고 싶어서 대학원에 진학하여 문예창작학 석사를 수료하고 논문 준비 중이다. ‘시’답지 않은 ‘시’를 쓰느니, ‘시시’한 ‘시’를 쓰고 싶지 않아 자존감을 높이고자 선택한 길이다. 그래서 2015년 가을호에 계간 『시와 정신』으로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재등단을 하였다. 그동안 나름 이뤄놓은 시간을 버리는 일이란 생각보다 쉽지 않아서 간혹 불안하거나 조바심도 일었다.
다행히 훌륭하신 김완하 교수님과 조해옥 교수님, 길상호 시인 등을 만나 ‘시’같은 ‘시 창작’을 연구하는데 그 기쁨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 대학원에서 배우고 익히며 연구한 것들을 열악한 환경의 지역에 큰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며, 더 큰 가슴으로 내려앉을 수 있는 시인. 독자들로 하여 나의 시가 아픔과 고통을 치유할 수 있고, 나아가 궁핍과 억압의 해방이 될 수 있도록 치열하게 써 내려가는 시인이 되어 나만의 색깔과 나만의 노련함으로 누군가가 늘 그립게 만들 것이다.
나는 시를 쓸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일부러 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생활하며, 여행하며, 일하며, 휴식을 취하다가 문득 탁!하고 느낌이 오면 그것을 메모하는 습관을 갖는다. 언제나 펜과 작은 수첩은 나의 연인인 셈이다. 잠을 자다 깨서 메모한 적도 있고, 꿈을 꾸다 일어났을 때 생생한 언어와 모양을 비몽사몽간에 적어 놓을 때도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을 보면서, 싸움하는 부부를 보면서, 공사장에서 페인트공의 붓놀림에서, 목조주택을 짓는 목공의 섬세함에서, 때때로 홀로 고독을 즐기면서 나의 시어들은 춤을 추게 된다.
이를 바탕으로 세 번째 시집 『올리브 휘파람이 확』(2017. 도서출판 달샘)과 네 번째 시집『벼랑 끝으로 부메랑』(2018. 도서출판 지혜)은 대학원에서 문예창작학을 전공한 만학도의 성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시심은 마치 신들린 것처럼 매일 쓰지 않으면 뇌가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다. 『올리브 휘파람이 확』에서 권 온 문학평론가는 “오영미의 시를 읽는 독자라면 누구나 그녀가 시인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자연스럽게 찾을 수 있다. 오영미는 자신이 처한 결핍의 상황을 시라는 언어의 특별한 작용으로 극복해내는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또 천영숙 교수는 “오영미의 시는 쉬운 듯 쉽지 않은, 그러나 평이함을 비범한 어법으로 시를 이끌어 간다. 귀 없고 눈 없는 문자를 끌어다 파동과 울림을 살려 낸다”고 했다. 『벼랑 끝으로 부메랑』에서 오홍진 문학평론가는 “오영미 시인은 죽음을 넘어 삶을 여는 시의 여정으로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 서 있다. 환상은 현실 너머를 지향한다. 현실에서는 보기 힘든 것을 시인은 환상 속에서 본다”고 말한다. 철학예술가이자『애지』의 주간이신 반경환은 “오영미 시인은 대화체의 진술발화이며 대화체의 실천발화라고 할 수 있다. 오영미 시인의 ‘벼랑 끝 시학’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이며, 더 물러설 곳이 없는 ‘악순환의 아찔한 부메랑’이다.”라고 했다. 중요한 것은 누가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상관없다. 내가 시를 발표했을 때 독자가 느끼는 수위는 조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언제나 환상을 갖고 있다. 현실에서 이루지 못하는, 못했던, 못할 것 같은 일들을 시 속에서 이뤄낸다. 수없이 부수고 깨쳐서 나만의 보석을 찾는 것이다. 시 속에서 나를 발견할 것이다.
스스로 말하기 부끄럽게도 나의 시 창작에 있어 절정의 시기가 바로 지금이 아닌가 싶다. 올해 3월에 다섯 번재 시집『상처에 사과를 했다』는 대학원 스승이신 조해옥 교수님께서 해설을 맡아 주셨고, 한국시인 문단의 원로이신 허영자 시인과 현재 한국시인협회 회장이신 윤석산 시인께서 표 사 글을 흔쾌히 수락하시고 격려를 해 주신 소중한 시집이다. 이 시집 해설에서 노해옥 교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 깨닫게 되는 ‘자기 구원의 시’며 ‘연민과 안타까움의 감각적 표현’이 살아있으며, 추상의 감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있어 시인의 탁월함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화자인 내가 상처에 사과하였다는 것은 그 상처의 이유를 밖에서 찾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것은 그에게 받은 상처와 책임을 떠넘기는 말에 더는 흔들리지 않겠다는 것이며,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은 상처 입은 나를 내가 치유하는 데서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듯이 나는 그동안 살아온 흔적들을 뒤돌아보며 좀 느슨하고 느릿한 여유를 갖고 싶었다. 나 스스로에 사과하고 사과를 받고 싶었다. 아울러 나의 주변을 더듬으며 참살이 삶은 무엇인지 묻고 되물어 편안한 관계를 갖기로 했다.
나는 매일 시를 생각한다. 시가 저절로 나를 건드려주고, 나는 민감하게 반응하여 응답한다. 목적과 목표가 있으면 미루지 않고 미리 시를 쓴다. 시작 노트는 나에게 안정과 믿음을 준다. 곡간에 곡식이 가득 차 있을 때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듯이, 나는 시작 노트에 시가 꽉 차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하루 일상이 새롭고 궁금하게 길들여 있는 내가 기쁘게 또는 치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시’다. 시가 내곁에 있는 한 나는 외롭지 않다. 어쩌다 길을 잃고 방황하는 날이 와 헤매는 동안에도 슬퍼하지 않기 위해 나는 매일 시를 짓고, 시를 하고, 시를 쓴다.
『상처에 사과를 했다』를 발표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은데 여섯 번째 시집을 위한 원고를 출판사에 넘기기 깜짝 놀란다. 나는 항상 준비하는 시인이고 싶다. 무슨 시를 그렇게 쉽게 많이 쓰느냐는 반응 같아 서운했다. 그런 게 아니고 세상의 시를 모두 쓸어 담는 거 같아 부러워서 그러는 거라 해서 위안이 되었다. 시를 열심히 쓰고 시집을 내는 것은 좋은데 너무 빠른 듯하다는 김완하 교수님의 염려와 우려는 사랑이다. 이번에 발표하는 시집『떠밀린 상상이 그물이 되는 아침』은 올해 초 필리핀 북부 오지마을을 방문하여 우리의 문화를 알리는 교류 여행에 동참하며 보고 느낀 것을 토대로 준비했다. 본톡, 사가다. 바타드, 바나웨, 아위촌 등 필리핀에서도 워낙 오지여서 일반 여행객은 찾지 않는 숨은 보석 같은 곳이다. 이런 지역이어서 선택하는데 망설임 없이 따라나선 여행이다. 내가 사는 충남 서산 외에도 홍성, 예산, 천안 등 각 지역에서 문화예술활동을 하는 예술인으로 구성되어있는 상황에서 나의 위치는 참으로 작게 느껴졌다. 여행을 하면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시로 승화시켜 시집으로 보답하겠노라 공약을 했기에 약속을 지키는 것이다.
이번 여섯 번째 시집『떠밀린 상상이 그물 되는 아침』을 통해 내가 지금 처해 있는 환경이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모습인지 시로 승화시키고 있다. 열악하지만 행복한 웃음이 끊이지 않는 모습에서 풍요의 빈곤 속에 허덕이는 나를 보았다. 완벽과 조급증에 길들여진 내 모습이 얼마나 타인에게 불편하고 상처였을까를 생각하니 자신이 무척 초라하게 느껴졌다. 입을 것과 먹을 것과 잠자리가 녹록지 않을 텐데 그들은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다. 나는 부족한 것이 없음에도 늘 불평과 불만이 가득한 돼지였다는 것을 깨닫는 기회였다. 넘쳐서 화가 되는 것보다 부족한 듯 약이 되는 삶을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는 지혜를 배우고 돌아왔다. ‘길’이라는 다양한 수식어를 생각한다. 꿈, 희망, 좌절, 분노, 이별, 생사고락 모든 것이 길 위에 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밥’이 단순히 먹는 밥이라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만남, 영혼, 사랑, 기쁨, 삶, 의식주 모두의 기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의 인생이 거기 있다. 길 위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을 사랑하고 싶다. 많은 응원을 바란다.
끝으로 나에게 있어 시는 삶이며 사랑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만학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도전한 석사과정은 낯설다가도 설렘으로 머무는 이유가 많아지므로 행복한 순간의 연속이다. 젊은 친구들의 생각이나 순발력을 따라잡기에 역부족이겠으나, 그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삶의 연륜과 경험이 나의 창작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시 창작에 있어 ‘삶’을 배제하고 과연 무엇을 가져올 수 있을까를 생각한다. 톡톡 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놓치고 싶지 않은 욕심을 부려보기도 하지만 매번 미치지 못하여 숨이 막힐 때가 종종 있다. 그보다는 나에게 맞는 주제와 시어를 찾아 ‘나만의 시’가 될 수 있도록 색칠을 하고 싶다. 또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활동하며 ‘함께’어우러지며 공유하고 소통을 하고 싶다. 내가 공부를 지속적으로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만의 색깔로 끊임없는 창작의 길을 묵묵히 걸어갈 것이다.★. .♣. ================= ◆ 표4의 글 ◆
더 넓은 세상과 소통하며, 더 큰 가슴으로 내려앉을 수 있는 시인. 독자들로 하여 나의 시가 아픔과 고통을 치유할 수 있고, 나아가 궁핍과 억압의 해방이 될 수 있도록 치열하게 써 내려가는 시인이 되어 나만의 색깔과 나만의 노련함으로 누군가가 늘 그립게 만들 것이다.
나는 시를 쓸 때 가장 중요시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일부러 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상에서 생활하며, 여행하며, 일하며, 휴식을 취하다가 문득 탁!하고 느낌이 오면 그것을 메모하는 습관을 갖는다.
언제나 펜과 작은 수첩은 나의 연인인 셈이다. 잠을 자다 깨서 메모한 적도 있고, 꿈을 꾸다 일어났을 때 생생한 언어와 모양을 비몽사몽간에 적어 놓을 때도 있다. 술에 취한 사람을 보면서, 싸움하는 부부를 보면서, 공사장에서 페인트공의 붓놀림에서, 목조주택을 짓는 목공의 섬세함에서, 때때로 홀로 고독을 즐기면서 나의 시어들은 춤을 추게 된다. ― 에필로그(epilogue) 중에서 .♣. ================= ▶오영미 시인∥ •오영미 시인은 충남 고웆애ㅔ서 태어나 공주에서 성장하였고 충남 서산에 살고 있으며 보령 오천면원산도 섬을 오고 가며 시창작을 하고 있다. 계간지 『시와정신』시 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하고, 한남대 대학원에서 문에창작학 시를 전공하였다. •한국문인협회 서산지부장을 역임하였으며, 한국시인협회, 충남문인협회, 충남시인협회, 한남문인회, 시와정신회, 소금꽃동인 활동을 하고 있다. •시집으로 『상처에 시과를 했다』『벼랑끝으로 부메랑』『올리브휘파람이 확』『모르는 사람처럼』『서산에 해 뜨고 달 뜨면』이 있고, •에세이집으로 『그리운 날은 서해로 간다 1,2』가 있다. •충남문학상 작품상, 충남문화재단 문예창작기금 수혜 .♣. ================= =================
The Thorn Birds Theme - Henry Mancini / 가시나무새(TV) The Thorn Birds(1983) 제작 1983년 (Mini), 미국 // 감독: Daryl Duke // 음악 : 헨리 맨시니 (Henry Mancini) #출처: 관악산의 추억( http://cafe.daum.net/e8853/MVDb/631)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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