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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위에 던져라(전 11:1)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라 대석학인 최치원의 17세손인 최진립(1568-1636, 제1대)으로부터 최준(1884-1970, 제12대)까지의 402년에 이르는 경주 최부잣집에는 육훈(六訓)이라는 가훈이 있습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하지 마라. 재산을 만석 이상 모으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며느리들에겐 시집온 후 3년 동안 무명옷을 입혀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권력과 부요에는 반드시 책임과 의무가 따름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본성은 움켜쥐려 하고, 쌓아두려 하고, 자신만을 위하여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누어 주라”라고 가르칩니다. 오늘 말씀은 바로 그 나눔의 원리를 깊이 있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로마 제국만큼 세계 넓은 지역에 영향을 끼쳤던 나라는 없을 것입니다.
로마인들이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졌는데, 오랫동안 거대 제국을 유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회 지도층의 역할이었습니다.
로마의 귀족들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나면, 귀족들은 솔선수범해서 최전방에 나가 싸웠고,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자신들의 재산을 사회에 흔쾌히 내놓았습니다. 이른바 높은 신분에는 그에 합당한 도덕적 의무가 따른다는 사회적 책임(Noblesse Oblige) 정신이, 로마를 수백 년 동안 지탱시킨 내적 동력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떻습니까? 종종 탈세와 편법 증여, 뇌물과 부정 청탁, 부동산 투기, 음주 운전, 병역 문제 등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사회 저명인사들이 있습니다. 또한, 성 비위와 막말과 갑질 논란으로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가진 자가 더욱 가지려 하고,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짓밟는 시대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혀 다른 길을 제시해 주십니다.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라고 대답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눅 6:3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닙니다. 사랑은 구체적으로 손을 펴는 것입니다.
우리는 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기 위해 새로 태어난 존재들입니다. 주는 자의 창고는 비어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퍼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채우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퍼내면 퍼낼수록 더욱 넘쳐흐릅니다.
사도 요한은 “누가 이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닫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7-18)라고 말했습니다.
사랑은 혀에 거하는 것이 아니라 손에 거해야 합니다. 말로만 사랑하는 것은 굶주린 자에게 음식 그림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주님, 제 손을 당신의 손처럼 사용하게 하소서. 당신의 손이 병자를 만지고, 굶주린 자를 먹이고, 죄인을 품으셨듯이, 제 손도 그렇게 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손에 쥐고 있는 것을 포기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손에 더 큰 것을 채우십니다. 그러나 꽉 쥔 손에는 아무것도 담을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구제와 헌신은 단순히 사회적 책임을 넘어, 나를 위해 생명을 물 위에 던지신 그리스도의 사랑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쌓아두는 것이 안전이라고 말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흩뿌리는 것이 안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보이는 안전을 포기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붙잡는 사람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은 바로 그 역설의 진리를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1절 말씀입니다.
“너는 네 떡을 물 위에 던져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이 말씀은 단순한 나눔의 권면이 아니라 믿음의 실천입니다. “보이지 않아도 주라. 반드시 하나님이 거두게 하신다.”라는 그런 뜻입니다.
물 위에 던지는 것은 인간의 보상 기대를 완전히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에만 맡기는 행위입니다.
믿음은 손을 열게 만들지만 불신은 손을 움켜쥐게 합니다.
믿음은 물 위에 던지라고 하지만, 이성은 떡을 창고에 넣으라고 합니다.
고대 근동의 배경에서 “물 위에 떡을 던진다”라는 것은 계산되지 않는 투자, 보장되지 않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이를 당시 해상 무역을 배경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상인이 배에 곡식을 싣고 먼 바다로 보내는 행위, 그것은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였습니다. 폭풍을 만날 수도 있고, 해적을 만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용기 있게 투자하는 자만이 풍성한 수익을 거두어들일 수 있었습니다. 거친 파도 속에 배를 띄우는 것은 인간의 눈에는 “던져 버리는 것” 같지만, 그것이 막대한 이익으로 돌아오는 유일한 길이었습니다.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들에게 착한 일을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지고,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해지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자기도 윤택하여지리라”(잠 11:24-25)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은 “아끼고 모아야 부자가 된다.”라고 말지만, 성경은 “나누어 줄 때 더욱 풍성해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이고, 낮아지는 것이 높아지는 것이며, 죽는 것이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할 때, 그 결과를 즉시 보지 못해도,, 하나님이 반드시 기억하십니다.
은혜로 행한 선은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예치됩니다. 물 위에 떡을 던지는 것은 낭비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이라는 “하늘 은행”에 예금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안전하게 보관하는 것입니다.
참된 신앙은 계산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성도의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결단입니다.
왜 우리는 주저할까요? 왜 우리는 떡을 물 위에 던지지 못할까요? 손해 볼까 두려워서입니다. 탐심은 믿음의 가장 큰 적입니다. 보상이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인간의 조급함과 다릅니다. 사람을 믿지 못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재물은 하나님의 청지기에게 맡겨진 시험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심는 자요, 어리석은 자는 먹어 치우는 자입니다. 오늘 우리가 던져야 할 떡은 무엇입니까? 단순히 물질만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향한 따뜻한 격려 한마디, 억울한 자를 위한 짧은 기도, 고독한 이의 곁을 지켜주는 시간입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갈 6:9-10)라고 말했습니다.
선을 행하다가 지치는 때가 있습니다. 내가 베풀었는데 돌아오는 것이 없을 때, 심지어 배신당하거나 오해받을 때, 우리는 선행을 멈추고 싶어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낙심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낙심은 우리를 넘어뜨리는 사탄의 전략입니다. 사탄은 우리가 선행의 열매를 보지 못하게 함으로써 포기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입니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게 될 것입니다. 지금 즉시 되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날 후에” 반드시 돌아옵니다.
선을 행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내일은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할 수 있는 선을 오늘 행하여야 합니다.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살기 좋은 세상, 살맛 나는 세상은 작은 일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에게 베푼 작은 친절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땅에 떨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착한 일을 많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씨를 뿌릴 때마다, 하나님은 그것을 보고 계십니다. 땅 속에 묻힌 씨앗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때가 되면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 위에 던지면, 그대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여러 날 후에 도로 찾게 됩니다. 이것은 단순한 물질적 보상이 아닙니다. 평안으로 돌아옵니다. 기쁨으로 돌아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돌아옵니다. 나누어주는 삶은 하나님을 더 깊이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께 드린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찰스 스펄전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나누었습니다. 어느 날, 재정이 거의 바닥났을 때, 누군가가 큰 헌금을 보내왔습니다. 그는 “나는 하나님께 드렸을 뿐인데, 하나님은 나에게 돌려주셨다.”라고 말했습니다.
작은 친절을 시작하십시오. 다정한 인사 한마디, 격려와 위로 한마디, 작은 도움을 조건 없이, 보상 없이, 계산하지 말고 나누어 주십시오. 그리고, 당장 아무런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절대 낙심하지 마십시오. 반드시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작은 씨앗을 큰 수확으로 바꾸십니다. 내가 누군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해 던진 작은 수건 한 장이, 훗날 내가 울 때 하나님의 손수건이 되어 돌아옵니다.
하나님은 즉시 갚아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여러 날 후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인내와 소망의 근육을 키우게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빚진 채로 남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물 위에 던진 작은 조각은, 하늘의 이자가 붙어 거대한 양식으로 돌아옵니다. 물 위에 떡을 던지는 것은 어리석어 보이지만, 하나님은 자비로운 사람들이 한 선행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장부에 기록하시고, 적절한 때에 이자를 더하여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바퀴는 천천히 도는 것 같지만,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수확의 자리에 멈춥니다. 하나님의 때는 우리의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때는 반드시 옵니다. 우리가 할 일은 씨를 뿌리는 것이고, 추수는 하나님이 하십니다. 씨를 뿌리지 않는 자는 결코 추수할 수 없습니다. 던지지 않으면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베푸는 이유는 그것이 도덕적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본회퍼는 “나를 따르라”에서, “제자도의 핵심은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인데, 재물을 물 위에 던지는 행위야말로 자아 숭배에서 벗어나는 가장 실천적인 훈련”이라고 했습니다. 제자의 길은 내 창고를 채우는 길(Saving)이 아니라, 내 생명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길(Sowing)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흘려보냈느냐로 우리를 평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완전히 항복하여 우리 자신을 물 위에 던질 때, 비로소 주님은 우리를 통해 기적을 행하십니다.
새뮤얼 루더포드는 “그리스도는 당신의 손을 빌려 굶주린 자를 먹이시고, 당신의 발을 빌려 고통받는 자에게 달려가시며, 당신의 입을 빌려 위로의 말씀을 전하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십니다.
19세기 미국의 한 가난한 농부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매우 가난했지만, 가을 추수 때마다 감자 한 자루를 항상 이웃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느냐”라고 물으면, 그는 “가장 좋은 씨감자는 반드시 이웃과 나누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바람이 불면 꽃가루가 이웃 밭으로도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이웃의 감자가 좋아야, 내 밭의 감자도 좋아집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나눔의 원리입니다. 내가 이웃을 윤택하게 할 때, 나도 윤택해집니다.
여러분, 세상은 “붙잡아라, 모아라, 지켜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던져라. 나누어라. 맡겨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자신을 던지는 것입니다. 오늘 결단하십시오.
“나는 물 위에 떡을 던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가진 것이 적어도 던지십시오. 두려워도 던지십시오. 보이지 않아도 던지십시오. 하나님은 반드시 돌려주십니다.
“여러 날 후에 도로 찾으리라.”
여러분! 나눔과 베풂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예비해놓으신 복을 풍성하게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우리에게 “떡을 물 위에 던지라”라는 말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우리는 자주 계산하며 살았습니다. 손해를 두려워했고, 결과를 먼저 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믿음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보이지 않아도 주게 하시고, 돌아오지 않아도 사랑하게 하시고,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작은 나눔을 통해, 누군가의 생명이 살아나게 하시고, 이 땅에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가 물 위에 던질 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도 손을 여는 삶, 사랑을 흘려보내는 삶,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