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림의 고수들은 깊은 산속에 홀로 앉아 오랜 시간 호흡을 가다듬습니다.
몸 안의 기운을 단전으로 모으고,
그 기운을 경락을 따라 움직이며 내공을 쌓아 나가죠.
내공이 깊어질수록 몸은 강해지고, 감각은 예민해지며, 정신은 흔들리지 않게 됩니다.
반대로 내공이 부족한 사람은 아무리 뛰어난 무공을 익혀도 그 위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해요.
우리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무협지의 내용입니다.
물론 현실에는 무협 소설에서 말하는 내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호흡을 오래 한다고 손바닥에서 장풍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몸 안에 그 어떠한 초자연적인 에너지가 축적되는 것도 아니에요.
하지만, 이 개념이 완전히 허황되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내공은 인간이 호흡과 수련을 통해 실제로 경험하는 변화를
상징적이고 극적으로 표현한 개념이 아닐까요?
내공은 왜 호흡으로 쌓을까?
내공 수련에는 하나의 중요한 공간이 존재합니다.
배꼽 아래에 있다고 여겨지는 '단전'이죠.
도가 수련에서는 호흡을 가슴이 아니라 단전까지 내려 보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실제로 공기가 배 속까지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공기는 폐로 들어가요.
그럼에도 복식호흡을 하면
아랫배가 부풀고 가라앉으면서,
호흡의 중심이 가슴에서 배 쪽으로 내려가는 듯한 감각이 생깁니다.
횡격막이 움직이고 복압이 변하면서 몸 안쪽에서 묵직한 움직임이 느껴지기도 하죠.
평소 잡다한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던 의식이 호흡과 복부 감각으로 이동하면,
자신의 몸을 이전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이를 옛사람들은 '기의 중심이 단전에 자리 잡았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어요.
현대적인 언어로 바꾸면,
단전에 기를 모은다는 말은 초자연적인 에너지를 축적한다는 뜻이라기보다
주의를 생각에서 신체 감각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즉, 머리에 몰려 있던 의식을 몸 전체로 내려보내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장면은 허구이지만,
여기에 담긴 현상 자체는 현실에서도 낯설지 않습니다.
스트레스에 취약한 사람은 작은 자극에도 신경계가 빠르게 각성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심장이 뛰고, 머릿속이 복잡해지며, 감정에 압도되는 경험을 하곤 하죠.
이 상태에서는 전전두엽이 충분히 기능하지 못해
판단의 폭이 좁아지고,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지능이 높고 경험이 많아도 이 상태에서는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쓰기 어려워요.
반면 자기조절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자극과 반응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만들어냅니다.
화를 느끼더라도 곧바로 쏟아내지 않고,
불안을 느끼더라도 그 감정에 완전히 끌려가지 않습니다.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호흡을 정돈하며, 필요한 행동을 선택하죠.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내공은 어쩌면 이런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 어떠한 감정이 올라와도 그 감정에 지배당하지 않는 힘.
그 어떠한 위협 속에서도 자신의 중심으로 돌아올 수 있는 능력 말이에요.
옛사람들은 인간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변화를 <기>라는 단일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반면, 현대 과학은 그것을 호흡, 주의, 감정 조절, 자율신경계, 스트레스 회복력과 같은 여러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하죠.
두 설명이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지만,
두 체계가 관찰한 인간의 경험에는 분명 겹치는 부분이 존재해요.
호흡을 가다듬으면 마음이 가라앉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판단이 선명해지며,
판단이 선명해지면 행동도 달라집니다.
아마 옛사람들은 이 미세한 변화를 수십 년의 수련과 초인적인 힘이라는 이야기로 극대화했을 겁니다.
그렇다면 내공은 단순한 판타지가 아닐지도 몰라요.
초자연적인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지만,
오랜 시간 자신의 호흡과 감정과 행동을 다스리며 만들어낸 내면의 힘은 분명히 존재하니까요.
현실의 고수는 장풍을 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누군가가, 다른 무언가가 내 마음을 흔들어 놓더라도,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원래의 내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죠.
결국 내공 수련이란 강한 힘을 몸 안에 쌓는 일이 아니라,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몸에 새기는 일이 아닐까요?
※ 무명자 블로그 : https://blog.naver.com/ahsune
첫댓글 명자님 말씀 듣고 내공을 단련해 보갰습니다!!!!
항상 좋은 글 감사합니다!!
역근경&구양신공&구음신공&북명신공중에서 하나 골라서 수련해보겠습니다.. 무명자님은 무명승이 아니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