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 혹은 기인, 가장 젊은 노인, 이토록 멋진 영혼의 기록
우리시대의 진정한 자유인 한대수가 쓴 최후(?)의 에세이집
떠도는 음유시인이자 방랑하는 배가본드 한대수의 삶과 세상에 대한 거침없는 생각
한국 현대음악사에서 음악에 철학, 사상, 이념을 부여한 최초의 싱어송라이터
한참 동안 잊혔었고 먼지 가득한 황학동 중고 LP매장에서 일부 마니아들이나 찾던 그가 최근 들어 다시
세인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무엇 때문일까?
한대수는 엄밀하게 말해서 히트곡이 없는 음악가다. 작사, 작곡자의 자의식이 느껴지는 김민기의 '바람과 나'나 양희은이 소탈하게 불렀던 '행복의 나라로'는 어쩌면 한대수가 불렀다면 히트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한대수가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그가 정신을 노래로
표현하는 싱어송라이터와 포크뮤지션의 원형을 국내에 제시했기 때문이다.
첨단의 시대인 오늘날 우리가 감탄할 만한 근원적인 창조성은 사라지고, 우리는 원형질 그대로 가공되지
않은 자유로운 인간을, 그 인간의 목소리를 그리워하게 되었다. 거침없는 그의 삶과 격정적인 그의 음악은
원초적인 자연이 사라져가고 인공이 그 자연을 대체하고 있는 이 시기에 다시금 야성의 귀환을, 다시금
원초적 자유를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것이다.
한대수는 환갑의 나이로, 30여 년이 넘는 동안 13장의 음반을 발표한 음악계의 원로이지만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아우라라고 이를 만한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어왔다. 김용옥이 한대수에 관해
쓴 글에서 그의 인생을 집약적으로 잘 정리하여 보여주는 것처럼 그의 삶은 실로 파란만장했다. 평범하지
않은 집안에서 외롭게 자랐고 한참 민감하던 청소년기 또한 국내와 국외를 오가며 숱한 문화적 충격과 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두 번에 걸친 혼인을 통하여 인생에서 쓴 맛과 단 맛을 고루 맛보기도 하였다.
그는 자서전과 시집, 그리고 그의 직업이기도 했던 사진작업을 정리한 사진집으로 자신의 세계를 얼핏
보여주기도 했다.
활기에 넘치는 또는 한없이 여린...
그는 여린 심성의 소유자다. 그래서 겉으로 에너제틱하고 항상 유쾌해 보이지만 속에는 한없이 여리고 소심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그의 '여린 마음'의 이면에는 언제나 꿈틀거리는 자유에 대한 의지가
넘쳤고 예술에 대한 불타는 욕망으로 들끓어 올랐다. 그의 음악과 사진은 그러한 그의 예술적 욕구를 발산할
수 있는 귀한 도구였다. 그리고 항상 모든 일들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깊은 통찰을 보여온 그의 감수성은
그가 끝없이 꿈꿔왔던 예술에 중대한 모티프가 되었다. 그는 이 책 『올드보이 한대수』를 통해 그러한
자신의 삶을 지배하는 많은 요소들에 대하여 보다 더 솔직하고 l거리낌 없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는다.
책의 서문에서 한대수는 독자들에게 '관념의 문'을 열어보자고 제안한다.
그가 말하는 '관념의 문'이란 무엇일까? 그가 본문에서도 구체적인 예를 들어가며 잘 다루고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9.11 이후 현격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미국과 아랍과의 갈등 문제이다. 그는 역사의 질곡을 살피지 않고
단편적인 사건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아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즉 닫힌 '관념'(고정관념)으로 사물을
이해하고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오류인지 지적하는 것이다. 그가 짚어내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부시의
잘못이 아니라, 부시의 잘못을 바라보기 위해 갖추어야 하는 '관념'의 부재이다. 보다 열린 마음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눈. 그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제대로 된 자유를 위한 선결조건이 아닐까.
이에 대해 「나는 한대수를 사랑한다」 제목의 발문에서 김용옥은 한대수의 자유는 적어도 이념적인 자유에
국한되지 않으며 어쩌면 그가 비록 서슬 퍼런 유신의 심장에서 포크무브먼트라는 아주 낯선 사회운동을 통해
혁명을 꿈꾸지 않았다 해도 그는 더 크고 넓은 보편적인 자유에 대한 꿈을 지니고 살아온 것이 분명하다고
일갈한다. 오늘의 시대가 그것을 소시민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이념의 칼날이 무뎌진 지금 그 비판의
가치는 얼마나 설득력이 있겠는가? 자유에 대한 의지는 다른 각도에서 그가 선호하는 음악에서 명료하게
볼 수 있다. 그는 음악적 형식에 치우치기보다는 순간순간의 표출하는 정직한 연주자의 감성을 존중한다.
그리고 또 그것에 감동한다. 이 책에서 선정한 음반들은 한 결처럼 아티스트의 감성을 스스럼없이 고백하는
앨범들이다.
이 책은 한대수의 자전적 에세이면서 그의 음악과 사유를 아우르는 경쾌하되 가볍지 않은 칼럼집이고,
동시에 방랑하는 기행문이다. 카오스 상태인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의 현란함과 시골 역사 같은 느낌이
나는 몽골의 비행장과 형편없는 울란바토르의 교통질서에 대한 순박한 애정들이 새로움을 두려워하지 않는
호기심투성이의 여행기나 신천지라는 그의 표현이 딱 들어맞는 중국기행이 특유의 거침없는 직설화법에
담겨 씌어졌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오랜 기간의 뉴욕생활에서 느낀 첨예한 미국사의 단면을 그는 성숙하게
진단하고 있다. 오늘날의 아랍과 이스라엘의 문제는 무엇이며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 문제들이 발생했는지
역사적 사실들을 인용하며 설명한다. 우리는 이 부분에서 한대수가 가진 결코 단순하지 않은 지적 편력을
읽을 수 있다.
우리는 이 책으로 이전에는 떠올리지 못했던 한대수적인(스케일 크고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스펙트럼을 통해
인간 한대수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그가 말하고 싶었던 글만을 모았다. 이 책 자체가 다양한 장르와
개성적인 글들을 모은 것은 마치 한대수라는 인간의 면모를 책의 편집에 담아내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그는 거침없는 자유주의자이고 난데없는 카우보이지만 그는 보다 자유로운 모든 것에 대해 겸손함을
버리지 않는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유로움과 주변 사람을 배려하는 겸손함이야말로 그가 '문을 열고'
세상으로 성큼성큼 걸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우리와 다름없는 인간이지만 보다 뛰어난 자기초극을 통하여 뚜벅뚜벅 우리를 향해
친근하게 다가오는 대자유인 한대수를 흠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책의 구성
음악과 사진과 말과 사랑
ONE 음악과 예술
사업가들은 음악 이야기를 하고, 음악가들은 돈 이야기만 한다 -오스카 와일드
60년대 한대수의 등장은 마른 낮의 낙뢰였다. 입 다문 시대와 변주 없는 음악의 빗장을 걷어치우고, 구태를
부숴버린 살아있는 록의 전설. 뮤지션 한대수는 '진화'를 상징하는 고유명사가 됐다. 유년시절 조부모 밑에서
성장했던 그에게 클래식 음악 애호가였던 조부의 영향은 훗날 '뮤지션 한대수'의 거름이 된다. 집안 곳곳에
흐르는 음악이란 공기는 늘 혼자였던 그의 유일한 위무와 소통의 대상이었다. 미국 유학길에 올라 농밀해진
고독과 소외로 그는 자연 곡을 만들며 숨죽인 내면을 치유해 간다. 1부 음악과 예술은 이처럼 음악이 그에게
온 배경과 자발적으로 음악과 예술에 목숨을 담보 잡힌 예술가들의 이야기다. 또한 한대수와 어린 음악가들이
주고받은 편지글을 실어 체념과 절망이 뒤섞인 삶 속에서 견고한 희망의 끈을 붙들고 30년 쉼 없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창조한 거장의 음악세계를 엿볼 수 있다. 본문 말미에 실은 한대수 선정 최고의 록 앨범
25선은 또 다른 볼거리로 잘 정리된 음악사전을 펼치는 맛을 전한다.
한대수는 말한다. 음악과 예술은 가끔 우리 몸에서 피식 새어나오는 생리적 현상인 방귀라고, 그리하여
자신은 생의 순리를 좇는 음악인의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TWO 나의 해골
정치인들과 기저귀는 자주 갈아줘야 한다-작자미상
염증 걸린 정치?사회는 한대수의 날카로운 비판과 냉소의 표적이 된다. 줄곧 사회와 체제에 대한 저항을
노래한 그의 '창작꺼리'가 바로 동시대 정서이기 때문이다. 2부 나의 해골은 세상에 대한 잡설(雜說)의 장이
다. 이번엔 전쟁, 가난, 사랑, 신용카드, 히피문화, 예술가 친구 등 한데 묶을 수 없어 보이는 것들이 한대수의
시야에 포착됐다. 그는 가려운 부분 시원히 긁듯, 하고 싶은 말을 에두르지 않고 거침없이 쏟아낸다.
이를테면 "전쟁은 야만인의 놀이며, 부시는 린든 B. 존슨에게 한수 배워야 하는 불양호한 인물"이라고. 생각은
사방으로 튀어 그는 21세기 질병인 화폐와 약물 중독은 오직 사랑만이 명약임을 직설하고, 더듬더듬 하나둘
사라진 친우와 예술가들의 예술세계를 추억한다. 툭 불거진 거장의 뱃살만큼 넉넉해진 입담으로 그는 우스갯
소리를 던진다. "하이 아동스(친구들)! 이 할배(한대수 자신)에게 화폐(돈)는 초양호해(아주 좋아)." 음울한
상황에서도 특유의 유머와 익살스러움을 잃지 않는 한대수와 꼭 닮은 글맛을 느낄 수 있다.
THREE 노마드
9개월 동안 울면서 나오려하다가 한평생 악을 쓰고 되돌아가려는 곳, 홍살문
행복의 나라를 찾아 떠나자고 뭇 청춘들을 부추긴 한대수의 영혼은 유목민과 닮았다. 끊임없이 몸뚱이를
움직여 세상을 발견하고 다른 문화를 배우려 하기 때문이다. 3부 노마드는 한대수가 누빈 세상길 이야기다.
제2의 고향인 뉴욕과 부인의 고향 몽고와 러시아, 고대 문명과 현대 문명의 개화지인 중국과 유럽을 떠도는
여행의 도정이 그가 직접 찍은 시원한 사진(그는 사진전문학교를 졸업했으며 한때 전업 사진작가로 활동했다)
과 함께 실려 있다.
그는 진정한 여행을 위해 간단한 계획과 사전지식만을 지닌 채 길을 나선다고 한다. 그리고 그저 알아간다.
여행은 나와 다름을 깨닫는 한편, '우리'는 인류라는 공통인종으로 묶였으며 똑같이 '사랑'과 ' 평화'를 갈망한
다는 것을. 그러니 "자, 행복의 나라로 갑시다"라고.
첫댓글 흥미롭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