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래 선생님을 떠나 보내며
- 동료시민에 대한 조사 -
공해 문제에 대한 선구적인 시민활동가이자 교통정책의 토대를 일군 조중래 선생님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공공교통네트워크는 선생님의 죽음을 깊이 애도합니다. 우리 단체와 선생님의 인연은 2021년 가을 4차례의 세미나를 통해서 시작되었습니다.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생님과의 만남은 강렬했습니다. 정부에서 추진하던 GTX 계획이 불확실한 수요예측 위에 놓여 있다는 것과 수도권 중심주의라는 잘못된 국토발전의 방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시종일관 설득력 있게 보여주셨고 이 부분에 대해 공공교통네트워크와 같은 시민단체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이 만남을 통해서 용인경전철, 의정부경전철, 지하철9호선 등 민자사업에 대한 활동으로 얻어진 경험적인 사실인 ‘검증되지 않는 수요예측’이라는 것이 분명한 사실이며 이 위에 세워진 교통정책의 경제적 타당성이 얼마나 허약한가를 재차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단 한 번도 아카데믹의 전문가들이 인정하지 않았던 그 문제가 학술적으로도 재검증이 불가능한 자의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왜곡될 수 있음을 알려주셨습니다. 그것은 방법론의 문제 이전에 학자의 윤리에 대한 문제이며 시민들의 알권리에 대한 문제이면서 궁극적으로 ‘누가 결정할 것인가’를 둘러싼 민주주의의 문제라는 점을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조중래 선생님과의 만남이 이어지기를 원했고 2022년 시민교통강좌 사업을 기획하고 제안했습니다. 지난 1월의 일입니다. 그리고 어렵게 연락이 이어진 2월, 오래전에 앓았던 병이 재발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6개월의 기간 동안 지역에서 공항이나 도로, 교량 등 새로운 교통시설의 필요성을 둘러싸고 갈등 중인 시민들을 대상으로 진행하고자 했던 시민교통강좌를 진행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에게 남은 시간은 고작 2개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서둘러 선생님의 강좌를 구술 방식으로 정리하자는 제안을 하였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쾌히 승낙해주셨습니다. 4월 초까지 4차례의 구술 작업이 진행되었습니다. 특히 상황이 갑자기 안좋아 졌던 3월 말 “다른 것은 몰라도 구술 작업은 마치고 가야 겠다”며 연락을 주셨고 2시간에 가까운 구술 작업을 이틀에 걸쳐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선생님은 구술 과정에서 개인의 삶보다 한국의 교통정책이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오류와 더불어 지나치게 행정 의존적인 아카데믹의 경향성을 비판하는데 시간을 쓰셨습니다. 특히 그 과정에서 완벽한 모델링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시민들이 합리적으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시할 수 있을 뿐이라라는 관점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수요예측이 되었든 경제적 분석이 되었든 사후에 재검증이 가능할 수 있도록 연구진이 활용하고 조정한 실제 데이터를 공개하도록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과제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선생님이 살아 계실 때 그 내용을 제대로 엮어 책을 내지 못한 것이 죄스럽습니다.
조중래 선생님은 1990년대 중반 최초로 서울시의 가구통행실태조사를 실시함으로서 현재 가장 대표적인 교통실태조사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 2000년대 초 자동차의 배출가스를 실증적으로 측정하기 위한 모델링을 시도했으며 마지막까지 해외의 교통수요 모델링 소프트웨어를 뛰어 넘는 도구를 개발하고 확산시키는데 애를 쓰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한국의 공해문제를 사회문제로 인식하도록 노력한 환경운동의 선구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우리는 짧은 만남을 통해서 조중래라는 한 인간이 우리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운동을 뒤에서 지지해주는 역사적 배경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만 그 만남이 오래 지속되지 못했음을 애닳아 할 뿐입니다. 몇 차례의 만남 속에 대학 교수직을 은퇴한 노학자가 공공교통네크워크라는 단체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여쭤볼 수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시민운동이 더욱더 전문적인 역량을 갖춰 행정관료들의 입맛에 맞춰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은 채 시행되는 교통정책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더욱더 전문적인 내용들을 배워야 하고 각종 보고서나 전문가들의 발표자료에 나열된 숫자의 뒷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고, 그 점을 우리들과 해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은 끝내 떠나셨지만, 우리는 이제까지와 마찬가지로 교통정책의 민주적 통제와 공공교통의 강화를 통한 교통기본권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시민들과 함께 교통정책이 일부 전문가 집단과 행정관료들에 의해 좌우되는 블랙박스에서 벗어나 분명한 책임과 검증을 전제로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다루어질 수 있도록 운동할 것입니다. 이것이 생의 마지막을 동료 시민으로 짧게 함께 할 수 있었던 우리의 약속입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바랍니다. 공공교통네트워크의 많은 동료들, 시민들께서도 선생님이 가시는 길에 함께 추모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깊은 슬픔을 담아, 조중래 선생님의 발인에 부쳐 이야기를 전합니다.
2022년 5월 24일
공 공 교 통 네 트 워 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