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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라곤(시인․전 봉화 부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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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이란 일컬음은 언제 어디서 부르고 들어봐도 즐겁고 마음 흐뭇하다. 사람들은 누구나가 제 고향을 그리워하고 또한 많은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어한다. 노인이 되어도 제 고향을 이야기할 때는 으레 어린 마음인양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우리 인간의 마음가운데 가장 순수하다고 느껴진다.
내 고향은 대게와 은어로 잘 알려진 동해안의 경관이 뛰어나고 인심 좋은 영덕(盈德)이란 곳이다. 나는 어린 시절을 고향에서 보냈다. 내 어린 시절의 꿈이 무르익던 곳. 무지개를 좇다 지쳐 돌아온 기억도 있고 동무들과 어울려 소꿉장난하던 추억도 새로운 곳.
여름이면 오십천 강가에서 마음껏 뒹굴고, 가을이면 삼각지 언덕길을 즐겨 걸었지.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도 어릴 제의 마음이 서려 있는 곳. 아! 그리운 고향, 내 고향 영덕. 지금도 오십천의 맑은 강물이 눈에 선하고 고불봉 위로 스치는 바람소리 귀에 또렷하다.
고향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어린 시절을 자연과 더불어 고향에서 보냈다는 것은 더없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생활이 각박해지고 나이가 한살 두살 더 늘어갈수록 고향이 무시로 생각이나고 고향을 그리워하는 향수가 물밀려오듯 가슴 속을 헤집고 든다.
영덕을 떠나온 사람들의 고향 그리는 마음이 복사꽃보다 더 붉게 피어나는 지난 3월 28일, 초등학교 개교 98년 맞이 총동창회 개최되었다. 전국에서 많은 동문들이 참석했고 특히 서울에서는 버스를 대절하여 참가하는 열의도 보였으니 모교를 사랑하는 마음이 넘쳐난다.
필자 모교인 영덕초등학교는 1911년 4월 1일에 영덕공립보통학교로 개교하여 2011년 개교 100주년을 목전에 두고 있다. 올해 졸업생 80명을 배출함으로써 지금까지 1만5천6백여 명이 모교를 졸업하였는바 전통과 역사에 빛나는 유서 깊은 학교다.
98년의 세월동안 지역의 배움터로 굳건히 명예를 다져왔다. 1966년 12월에 대화재가 일어나 본관이 모두 불타면서 학적부가 모두 멸실된 어려움도 겪었지만 그 후에 현대식 건물과 함께 실내체육관을 새로 지었고 최첨단 시설을 갖춘 어학실 등 부속실이 들어섰다.
농촌지역이 현재 겪고 있는 인구감소현상과 저출산으로 인해 재학생들이 점점 줄어들어 지금은 600여명에 불과하지만 대체로 군청 소재지에 있는 학교가 다 그렇다시피 지역의 중심이자 명문학교로 자리잡으면서 이름을 떨쳐왔고 ‘힘써 배워 나라 빛내자’는 교훈처럼 훌륭한 인재도 많이 배출했던 배움의 요람(搖籃)이었다.
개교 100주년을 뜻있게 맞자는 다짐의 총동창회가 끝난 뒤 구내식당에서 비빔밥으로 식사를 마치고 이어서 학교 운동장에서 ‘추억의 운동회’가 열렸다. 예전에는 회의가 끝나면 동문들이 뿔뿔이 흩어져 동기들이 별도행사를 가졌는데 올해부터는 동문 전체가 즐기는 화합의 장(場)으로 한층 발전시켜 제1회 추억의 운동회를 마련된 것이다.
기수별로 청군, 백군, 황군과 녹군으로 편을 갈라 피구와 줄다리기 등 경기를 했다. 봄날 오후 교정에 잔득 묻어나는 따스한 햇살 속에서 동문 선․후배들이 화합과 인정을 나누는 잔치는 ‘추억의 운동회’라는 이름만큼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들어 준 흥겨움의 마당이었다.
6.25 전쟁둥이가 주축이 된 필자 동기생들은 51기로 43기, 47기, 55기 등 동문들과 함께 백군으로 편성되었다. 필자도 머리에 흰 띠를 매고 팀원들과 몇 경기를 뛰었는데 운이 좋아서 출전한 종목마다 이겼다. 백군팀은 피구와 럭비공 몰고 달리기에서 우승했고 줄다리기에서 2위를 하여 종합우승을 거머쥐어 더욱 기뻤다.
경기시간 사이에 각설이 무대가 펼쳐졌다. 초청된 부산 각설이는 이 분야 최고 실력꾼답게 무려 한 시간 동안 원맨쇼를 진행하여 참석한 동문들에게 넉넉한 웃음을 선사했다. 이어서 팀별 노래자랑도 벌어져 실력을 마음껏 뽐내었고, 또한 많은 분들이 상품을 기부한 덕분에 행운권추첨을 통해 동문들이 선물까지 받아가는 기쁨도 안겨주었다.
따스한 봄날, 고향의 초등학교 교정에서 벌어진 추억의 운동회는 추억 만점의 행복감을 가져다주었다. 얼굴도 잘 모르지만 선배쯤으로 보이면 깍듯이 인사하며 푸짐하게 준비된 술을 한잔 권해 올리고 후배들에게 정을 다지는 마음 씀에 모두가 기분들이 좋았다. 더 많은 동문들이 박수부대인 가족을 동반하여 내년과 100주년 행사 때인 내후년의 행복 예감에 젖어들기를 바랄뿐이다.
누구에게나 옛날에 경험했던 초등학교 운동회는 기억 속에 고운 형상으로 채색되어 있을 것이다. 그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흐뭇한 마음 나눔의 운동회를 다시 맛보는 감회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런지… 아마 고향이 아니거나 초등학교 동문간의 미더움이 아니라면 좀처럼 느끼지 못할 흐뭇한 감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고향! 그리고 초등학교 때의 운동회에 서려있는 갖가지의 추억들. 이것은 영원한 내 마음의 안식처요, 반려자이며 그것들이 가져다주는 의미는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해지는 이때까지도 무지개 색깔처럼 아름답게 배어있거늘. 그 그리움에 멀리서 달려오고 반가운 친구들을 만났고, 또 바닷가를 찾아 우정과 친선을 다지고 회포를 푸는 뒤끝풀이는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분주한 일상의 틈바구니를 잠시 비켜나 친구들과 고향을 찾고서 그리하여 초등학교 선․후배님들과 함께 어울린 지난 토요일 ‘추억의 운동회’는 늘 그리워했던 고향과 40년이 훨씬 넘은 그 때의 손때 질펀한 추억을 다시금 떠오르게 하였으니 한없이 마음 뿌듯하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