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VO MY LIFE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1971년 1월, 3사관학교에 입교하여 전술학과 교양학을 2년 동안 교육받고, 1972년 12월 임관하여 전방사단에서 봉급 \12,830원씩 받으며, 소대장 근무하다가, 썬그라스를 쓰고, 차량들을 인솔하는 수송장교에 매력을 느껴 1974년 수송장교로 전과 하였다.
수송학교에서 전과 교육을 마치고, 최초의 보직은 군수사 항만사 302항만대대 행정과장 겸 본부중대장 이었으며 주경야독하는 식으로, 주간에 군복무를 수행하고, 야간에는 부산 남포동에 있는 영어학원에서 수강하여 영어회화 실력을 쌓았다.
영어공부를 나름대로 하였기 때문인지, 1975년에는 항만사에서 운영하던 부산 3부두 본선장교(통역장교)보직을 받아서, 탄약을 운반하는 수송선박이 입항하는 부산 3부두, 진해 부두에서 탄약 수송선에 승선하여 미국 탄약 수송선으로 부터 한국군 탄약 적재도표를 받아 선박으로부터 탄약화물을 하화하는 항만사와 미수송선(탄약배)간의 연락관계 업무수행을 하였다.
1976년, 육군종합행정학교 군영반에 입교하게 되었고, 영어회화를 정말 지겨울 정도로 BOQ에서 잠자는 4시간을 제외하고, 눈만 떳다 하면, 영어만 생각하고, 듣고, 말하여야 하는 6개월간의 영어 교육을 받았으며, 미국 육군수송학교에서 짧은 기간동안 항공기 정비장교 교육을 받았다.
국내에 귀국하여 육군수송학교에서 고군반 교육을 받고, 항공기 정비교관, 차량중대장을 마치고, 1980년 6월 소령으로 승진하여 항공학처장 보직을 받아 재직중에는 이러한 일도 있었다. 항공기 정비실습장에 갑작스러운 돌풍이 불어 닥쳐, 실습장 철재지붕이 붕~ 20여 M정도를 날아가서 떨어진 적이 있다. 지금도 놀라운 것은 돌풍 바람으로 철제판(대략 가로40미터, 세로60미터)을 연결하여 만들어진 지붕이 날라 갔고, 당시의 훌륭하신 수송학교장께서 시공사에 지붕의 양쪽 옆을 고정시켜주는 수많은 고정 볼트를 조여 주어야 하는데 볼트를 전혀 끼우지 조차 않고, 연결된 철제판을 올려만 놓은 상태로 강한 돌풍에 의하여 지붕이 날아갔기 때문에 공사를 맡았던 시공사측에 책임을 물어서 해결이 되었다.
수송학교 항공학처장, 20기계화사단 수송보좌관을 마친후, 한미 연합 야전군사령부 수송장교 임무수행을 미국군 소령과 카운터 파트너가 되어 임무수행하며, 영어화화는 미국 육군수송학교에서 공부할 때 보다 향상되었다. 그 당시 훈련기간 동안에는 동시통역도 일부하였고, 한미 연합야전군 사령관 명의의 남북간 철도 연결에 대한 건의문을 한글과 영어로 작성할 때, 한글을 맡아서 작성하여 육군 참모총장께 문서를 발송하였는데 오늘날 남북철도 연결이라는 결실을 본 것 같다.
육군대학 참모과정을 수료후 1군수지원사 비서실장, 육군대학교 군수학 교관으로 육군대학 정규과정 과 참모과정에 군수학 전반에 대한 교육을 하였던 것을 지금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승진을 위하여 육군 수송사 본부대장 직을 수행하였으나 뜻은 이루어 지지 않아서, 군대생활을 마감하게 되었으며, 일반사회인이 되었으므로 군인아파트에서 살던 생활에서 일반 사회인으로 살아야 하는데, 군대생활을 청산하며 받은 퇴직금이라고는 빌라 전세금으로도 부족한 퇴직금을 받았다.
일반 사회인이 되기 위하여 제2의 직장을 생활을 하여야 하는데, 생각처럼 되지 않아서 전역하기 전, 노동부에 영어 이력서를 제출하고, 100일 동안 새벽기도를 하였으며 기도가 끝나는 날, 영문이력서를 본 회사에서 연락이 와서 중동에 있는 바레인 공항 영국 공항장의 지시 받으며 공항 화물과장으로 1년 동안 재직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수송장교가 하여야 하는 군용항공기 C-5A, C-141 및 일반 여객기 등에 무기 및 화물적재, 하화, 대형 창고에 화물 입고, 출고, 정리하는 일들을 120여명의 다국적인들을 지휘, 통제, 관리하며 공항 책임자로 업무를 수행해 볼 수 있었다.
바레인공항 근무 1년 만에, 국내에 휴가를 왔다가 군에서 함께 근무하셨던 분이 군인공제회 이사장이 되셨다는 소식을 전역한 선배 수송장교가 전해줘서 찾아뵙게 되었으며, 그 인연으로 1990년 3월부터 군인공제회에 입사하여 재직하게 되었다.
군인공제회 재직하며 은행권 근무하던 처형으로부터 대출받아, 일반 주택에 전세 들어 갈 수 있었고, 아파트 분양도 한 채 받아서 전세를 내 놓고, 부채도 사라지게 되었으며, 가정은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살게 되었으며, 전세 들어 살던 단독주택이 경매로 넘어 갔을 때에는, 서울 시청옆에 있는 교보문고에 달려가서 경매관련 책자를 직접 구입 연구하여 경매에 참여하여 내가 살던 집을 2회 유찰 끝에 시가보다 1억원 이상 저렴하게 낙찰 받아서 세입자들과의 복잡한 문제들도 원만하게 해결하고, 현재까지 근심걱정 없이 살게 되었다.
이 모든 것들이 오늘의 내가 있도록 이리남초등학교에서 어려운 가운데 근면 성실하게 함께 했던동창생 여러분들이 알게 모르게 지도 편달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4월 11일 모교에서 동창회가 있다며 참석하라는 문자를 받고 “고맙다”는 생각을 하면서 “BRAVO MY LIFE” 라는 제목으로 그동안의 지난세월을 생각나는 대로 몇자 적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