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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중원산”에 오릅니다(‘詩山會’ 제136회 산행)
◇ 산 : 중원산(800 m, 양평)
◇ 코스 : ①용문역→ 용문 시외뻐스터미널→ 중원리 상현마을→ 중원폭포→ 중원산(원점회귀)
②용문역→ 용문 시외뻐스터미널→ 신점리→ 용계골→ 중원산(원점회귀)
③주차장→ 중원폭포→ 화전민터→ 정상→ 너덜지대→ 용계계곡→ 조개골→ 용문사주차장
◇ 소요시간 : 오름 2시간 반, 내려옴 1시간 반 (총 4시간)
◇ 일시 : 2010년 06월 06일(일) 10시 <* (참고) 왕십리→ 용문역 : 1시간20분 소요됨 *)
◇ 장소 : 중앙선 ‘용문역’ 출구(08시 이전은 20분 간격, 그 이후엔 30분 배차 간격임)
◇ 준비물 : 살얼음낀 막걸리, 안주, 과일, 카메라(하산 후 뒤풀이 겸 점심)
◇ 연락 : 이재웅(010-3454-7717)
◇ 블로그 : 사진 blog.daum.net/sisan20
산행기 blog.daum.net/yc012175
카페 cafe.daum.net/K-20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 번은
천둥 같은 화산(火山)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高句麗) 같은 정신도
신라(新羅)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意味)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廣場).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休息)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 중략 >
- “휴전선”/ 박봉우 시인(사랑의 포현에서...) -
휴전선을 경계로 하여 남과 북이 서로 마주 본 채 대치해 있다. 그것은 '믿음이 없는 얼굴'을 하고서 서로 '쌀쌀'하게 적대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분단 상황은 어두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분단이 계속되고 있는 한, 언제 전쟁이 '천둥 같은 화산'처럼 다시 터질지 모른다. 이미 한차례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쳐 같은 민족으로서 핏줄마저 끊어진 채, 이제는 휴전이 되어 있다.
'별들이 차지한 하늘', 즉 민족의 핏줄이 하나인데도 불구하고 전쟁이 다시 터질지 몰라 우리의 얼굴은 불안하기만 하다. 이런 불안하고 위험스런 상황이 이대로 계속되어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최근의 천안함 사태도 이와 동일선상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
남과 북이 서로 원수처럼 적대시하고 있는 한, 화해와 통일의 가능성은 점점더 희박해 질 것 같은 우려도 해 본다(이 시는 박봉우 시인의 1956년도 신춘문예 당선작임. '휴전선'이란 구체적인 역사적 존재를 통해 민족 분단의 고통스러움을 노래한 산문적인 서정시이며, 현실에 대한 고통스러운 자각과 그것을 넘어서고자 하는 가열찬 문제 제기가 선명하게 드러나 있다).
시산회 제135회“주왕산”산행기(2010. 05.16, 맑음/ 고갑무)
▣ 참석자: 13명(고갑무, 김용우, 김정남, 김종화, 나창수, 염재홍, 위윤환, 이원무, 이재웅, 임삼환, 정해황, 조문형, 한천옥)
▣ 산행길: 대전사-주왕산(정상)-칼등고개-후리매기삼거리-3폭포-2폭포-1폭포-지하교-대전사
▣ 동반시: “소나무를 만나”/ 박곤걸
▣ 뒷풀이: 토종닭백숙에 소ㆍ맥주 /“대구여관식당”(달기약수터 - 고갑무 산우 제공)
지난번 북한산 산행때 친구들을 처음으로 만난 이후 이번 주왕산 산행기를 쓰려고 하니 여러 상념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동안 장기간의 지방근무와 회사생활에 쫒기다 보니 친구들과 만남이 너무 적조한 것 같았고, 객지생활 반평생에 느는 건 주름이요, 주는 것은 메모리 용량이라 친구를 만나면 반가움보다 이름과 얼굴의 불일치로 인한 머뭇거림과 쭈삣거림으로 친구들에게 더 편하게 다가서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느끼곤 한다.
이번 주왕산 산행은 잠실역 3번출구 가까운 장소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어 시간에 늦지 않도록 나가야지?하는 조바심 때문에 새벽에 잠을 두 번이나 깼다. 그래도 새벽에 일찍 일어난 집사람이 배낭이랑 먹을 것 마실 것을 세세하게 챙겨준 덕분에 오히려 시간여유를 가지고 약속장소로 나갈 수가 있었다. 이럴 때 집사람에게 뭐라고 고맙다고 해야 하는데, 그리쉽게 입이 열리질 않으니 항상 구박받을 짓을 달고 사는 형국이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지난번의 산행으로 낮이 익은 친구들이 반갑게 맞아주는데, 아뿔사! 또 이름과 얼굴이 덜 생각나는 친구들이 있다. 친구들! 미안하네. 내가 더 부지런을 떨어 자네들 까까머리 모습이라도 입력을 시켜놓고 나갔어야 하는데... (지금은 다행히 종화친구가 사진에 이름까지 다 명기해서 카페에 올린 덕에 많은 도움을 받었음) 정남친구가 지난 북한산 산행때 주문받은 스틱을 약속장소까지 가지고 와 나눠준 수고덕분에 이번 산행은 좀 더 수월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남이 고맙네! 자넨 복 받을 끼여...
참가 인원 13명을 태운 버스는 아침 7시5분 주왕산을 향하여 잠실을 출발, 중앙고속도로 진입하여 달리기 시작했다. 휴일인데도 불구하고 다행히 도로는 한가한 편이어서 우리는 정체없이 목적지로 여유롭게 운행을 할 수 있었고, 나는 삼환친구와 뒤편에 앉아 세상 돌아가는 애기를 주고 받았다. 잠시후 이 회장님은 북한산(도봉산 포함)의 봉우리와 계곡, 성문에 대하여 몇 일동안 작업했는지? 암기하기 쉽게 유인물로 준비해 와 자세히 설명해 준다. 시산회 회원이 되려면 이렇게 산에 대하여 구석구석까지 알아야 하는지? 물이 흘러가듯 편하게 살고싶은 내 머리 속을 잠시 혼돈스럽게 만든다. 하지만, 산의 곳곳을 상세히 알고 산행을 하면 좋을 것으로 생각되어 이 기회를 빌려 회장님께 존경심과 아울러 고마움을 전한다. 잠실을 출발한지 1시간쯤 됐을까? 여주휴게소에서 잠시 쉬어가자는 의견이 나와 일단 버스를 휴게소 뒷쪽 그늘에 주차를 하고, 준비한 음식물로 간단히 아침 요기를 하기로 하였다.
이런 막간행사에 나름대로 경력이 붙은 친구들은 빠른 동작으로 자리를 펴고서 곧장 준비한 음식물이 일사분란하게 자리를 잡고, 우리는 주변에 둘러서서 간단한 먹거리로 아침의 허기를 때우고 있었다. 그 때 덩치와 카리스마를 겸비한 이 회장이 시루떡을 꺼내 먹기좋도록 솜씨있게 칼질을 하는데, 그 내공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한 손에 위생비닐장갑을 끼고 한 손으로 보기좋게 떡을 자르는데, 그저 사과나 깍고하는 솜씨는 아닌 것 같다. 저 정도면 상당한 수준급 실력인데... 궁금하긴 하지만 칼들고 작업하는데, 거기다 대고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그런 궁금증은 산행도중 한 친구가 이 회장에게 자네도 집사람과 싸우는가? 하고 물었을 때 쉽게 풀렸다. 이 회장님曰“집사람이 나를 통해 스트레스를 풀수 있다면 모든 것을 기꺼히 감수한다”고... 와~!! 갑자기 이 회장이 엄청 존경스러워 졌다. 그래! 비결은 가장 가깝고 단순한 곳에 있어. 단지, 우리가 그걸 빨리 또는 늦게 파악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
혼자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있는 내 마음을 이 회장이 읽기라도 한 것처럼 갑자기 갑무! 자네가 이번 산행기를 한번 써 보지 그래? 하면서 뜬금없는 제안을 한다. 그래 마땅히 대응할 말도 없고해서‘생각해 보고’라고 대답했더니 대부분 친구들이 마치 사전에 약속이나 한듯이 그려! 저건 쓰겠다는 야그여. 하면서 바로 쓰는 것으로 기정사실화 해 버린다.“참가한지도 얼마 안됐고 하니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은데...”라고 내편을 들어준 친구가 단 한명도 없다. 이거 완전 고립무원이네. 그렇다고 시산회 분위기를 100% 파악한 것도 아닌 상태에서 뭐라고 하기도... 그래서 바로 꼬랑지를 내리고 말았다.
때는 바야흐로 계절의 여왕이라는 5월. 덥지도 춥지도 않는데다, 날씨마저 기막히게 좋아 휴게소는 상춘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상당히 붐비고 있었다. 우리는 대충 주변을 정리하고 바로 목적지를 향해 남쪽으로 기수를 향했다. 배도 부르고, 버스도 원활하게 잘 주행하고 보니 이제야 차창주변의 풍경이 한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항상 그렇듯이 5월의 신록은 정말로 아름답다. 뭐라할까? 완벽한 연초록의 자태. 기존 침엽수의 약간 짙푸름을 배경으로 도드라지게 들어나는 연한 속살의 향연이랄까? 저걸 그림이든, 사진이든 아니면, 글이라도 동원해 한 번 멋지게 표현해 보고 싶은데... 짧은 능력에 괜히 마음만 산란하다.
양호한 도로여건으로 11시 25분에 주왕산 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여주휴게소에 한번, 주유하기 위해 주유소에 또 한 번, 두 번 밖에 쉬질 않았으니 비교적 제 시간에 도착한 듯하다. 헌데 이번엔 날씨가 문제다. 아까 휴게소에서 출발할땐 분명히 봄이었는데, 주왕산엘 도착해보니 완전 여름으로 절기가 바뀌어져 있었다. 거참 이상하네...? 해서 겉옷은 벗어 차안에 두고 산행에 나서기로 했다.
배낭속에 준비한 음식물 등을 각자 분배해서 집어넣고, 하차하자 마자 정남친구는 막걸리 수량부터 확인하느랴 바쁘다. 지난번에 1인1병기준으로 준비했는데, 모자랐다나? 막걸리가 부족하면 절대 안된다고 친구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한다. 나도 얼른 매점에 들려 1병을 구입, 잽싸게 배낭에 챙겨 넣었다.
주왕산 입구에 있는 대전사 경내는 5일 후면 다가올‘부처님 오신날’을 대비하느라 온통 연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절 입구에 있는 겹살구꽃은 석가탄신일을 맞아 사찰을 방문한 신자나 등산객들을 맞이하기 위해 한껏 흐드러진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주왕산 백미는 바로 입구에 떡 버티고 서있는 기암일터...‘기’字는 기이할‘奇’字가 아니고 깃대‘旗’字라고 설명서에 쓰여 있는데, 암만보아도‘깃대’하고는 거리가 있어 보이고, 오히려 홍진에 뭍인 세상을 위에서 관조하며 득도의 고행을 수행하고 있는 묵언 수도승의 모습으로 보인다.
해발 720.6 m로 표기된 주왕산을 본격적으로 등산하기 위해 스틱을 적당한 높이에 맞춰 조정을 하고, 배낭끈도 질끈 조여 무게중심을 잘 잡고, 이런 등산이 전문인 프로 친구들을 따라 묵묵히 뒤를 따라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시작부터 장난이 아니다. 무슨코스가 평지나 내리막길은 하나도 없고 계속해서 이,삼십분을 가파르게 오르기만 한다. 점차 숨소리가 거칠어지고 땀이 비오듯 쏟아지기 시작하나, 초짜라 쉬자는 애기도 못하고 그냥 꿀먹은 벙어리마냥 부지런히 뒤만 따라갈 수 밖에 없다. 한참을 가니 이제 그만 쉬어가자는 애기가 나온다. 그 말이 어찌나 반갑든지... 누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는데, 그건 찐한 산행 한번 해 보고 그 다음에 해도 될성 쉽다.
아무튼, 바늘에 실 가듯이 휴식은 음식물 공급이라 곧바로 시원하게 냉장된 수박도 나오고, 구수한 쑥떡도 나오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하게 흘려가는데... 이 회장님이 나에게 한 마디 던진다. 갑무! 산행기를 쓰려면 이런저런 상황을 기록해야 하는데...? 그는 아까부터 자의반 타의반, 산행기를 맡은 내가 영 미덥지가 않았던 모양이다. 왜냐하면 산행기를 쓰려면 기초가 되는 발생상황을 상황일지 쓰듯이 기록을 해야하는데, 내가 도무지 쓸 생각도 안하고 딴전만 피우고 있으니, 오히려 본인이 더 불안한 생각이 들었나 보다.
사실 나라고 딴전만 피웠겠는가. 나름 기억도 하고 핸폰을 이용, 사진으로도 기록유지를 하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 그 때 옆에 있던 종화친구가 결정적으로 한 마디 한다. 이제 우리나이는 기록을 하지않으면 생각이 잘 안나서 말이야! 그 말을 듣고 정신이 번쩍들어 그때부터 메모지 빌려, 볼펜도 빌려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 산행기 말이 나오기전 상황은 운전기사에게 물어서 다시 적기도 했다.
오후 1시 5분, 드디어 주왕산 정상에 도착했다. 오는 도중에 이것저것 주섬주섬 주워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상당히 시장기가 돌았다. 정상 바로밑 평지에서 깔개를 펴고 그 위에 준비한 족발, 부침개, 유과, 초밥, 김밥, 과일, 김치, 막걸리와 올라오는 도중 사권 영광군 에서 온 등산객들이 제공한 말린 영광굴비까지 그야말로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그런데, 영광굴비는 말 그대로 명불허전이었다. 마치 마파람에 게눈감추듯 금방 없어졌기 때문이다. 나도 잽싸게 한 가닥 입에 넣지 않았더라면 고린자비처럼 쳐다만 보고 입맛만 다실뻔 했다.
이어서 재웅 회장이 오늘 친구들이 많이 모인 자리이고 하니 본인의 시산회 가입을 박수로 환영하자는 제의를 했고, 친구들의 따뜻한 박수소리에 "친구란 좋은 것이여"가 절로 나왔다. 다시 한번 이 자리를 빌어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친구들!! 고마우이... 시산회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산행중에서의 시낭송이다. 오늘의 낭송인은 황공하옵게도 시산회 왕초짜인 내가 그 영광을 맡았다. 나는 동반시(박곤걸 시인의“소나무를 만나")를 나름 감정을 실어 낭낭한 목소리로 낭송을 하였는데, 박수소리로 판단컨데 좀 더 수련이 필요할 듯 하다.
낭송이 끝나자 이 회장의 시 내용에 대해 용기있게 반론을 제기하고, 시 발췌자인 정남친구가 은유와 비유에 대해 즉석에서 설명을 하였다. 학교졸업후 근 40년이 지났고, 각박한 사회생활 속에서 인성과 감정이 메말랐을지도 하련만은 아직도 시평과 시 해석에 대해서 고담준론을 펼치는 시산회 회원들을 보면 말할 수 없는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된다. 계속 정진해 우리 회원들의 수준높은 자작시집을 만나기를 기대해 본다.
입이 즐거우면 만사가 즐거운 법. 먹고 마시며 즐기다 보니 자연스레 40년전의 계림동산의 추억으로 빠져들게 된다. 우리 친구들의 영어수준 하향화에 지대하게 기여를 하신 선생님부터 각 반의 담임선생님 야그까지, 그중에서도 영어점수 30점이면 전교에서 최고 점수였으며, 윤환친구는 자기가 8점(80점 아님)도 받아 보았다는 거의 전설적인 야그까지... 그래도 고대에 갔잖아! 라고 누군가(해황?)가 이야기 한다.
오후 2시15분, 식사주변을 깨끗이 정리하고 하산하기 시작했다. 통상 내 경험에 의하면 하산은 등정시간의 절반정도면 충분한데, 주왕산은 그게 아니었다. 하산길이 내리막이 아니라 오르막이다. 술까지 마셨는데... 이거 또 힘들어지기 시작한다. 한참을 가니까 평지도 나오고 내리막도 나와 조금은 편안한 맘으로 하산을 했다. 조금만 평지가 더 늦게 나왔더라면 사망신고를 낼 뻔했다. 평시 체력단련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한 하루였다. 내려오면서 3폭포, 2폭포와 1폭포까지 모두 구경하면서 사진도 찍었는데, 갈수기여서 인지 폭포라고 하기엔 규모나 수량이 많이 부족한 것 같고, 큰비가 온 이후에 보면 제법 폭포의 면모를 갖추고 있을 것 같다. 주차장까지 내려오니 다리가 제법 뻐근해 등반거리를 계산해 보니 약 12 km정도를 걸은 듯 하다. 어째 다리가 좀 아프더니 산길 12 km면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다.
주차장에서 버스에 도착하니 기사아저씨가 따뜻한 국화차를 한 잔씩 준비해서 제공하고 있었다. 피곤하기도 하고 덥기도 해서 시원한 냉차 였으면 더 좋았을걸? 하고 속으로만 생각하고 일단 차는 맛있게 마셨다. 그리고 바로 청송의 진미중에 하나인 달기약수 토종닭백숙을 먹으려 장소를 이동하였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보니 하얀 사과꽃이 눈길을 끈다. 청송의 사과맛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오죽하면 전국의 차량을 이용한 사과판매상들은 판매지역이 어디인지를 불문하고 모두 청송사과라고 팻말에 적어 놓았겠는가. 의심이 나면 올 가을에 꼭 한번 확인해 보기 바란다. 그리고 보니 청송엔 사과밭이 정말 많다. 벚꽃이 지고 난 이후의 하얀 사과꽃 정말 보기 좋다. 오렌지 향기는 바람에 흩날리고 사과꽃 향기는 코끝을 간지럽히고... 버스안이지만 사과꽃 향기가 코 끝에 아른거리는 듯 하다.
드디어 달기약수 토종닭백숙집에 도착하니 주인 아주머니가 준비한 백숙을 곧바로 가져온다. 백숙을 먹기전에 달기약수를 한 잔씩 먹어보니 마치 옛날고향의 펌프에서 퍼올린 약간 녹내나는 물 맛, 바로 그 맛이 난다. 하루종일 산행하면서 먹기만 한 것 같은데, 친구들이 모두 백숙을 또 맛있게 먹는다. 역시 별칭이‘먹산회’라고 하던데, 틀린 말이 아닌 듯... 나도 개인적으로 포항에 근무할 때, 이곳 백숙을 먹으려 여기에 온 적이 있기 때문에 맛이 더 각별한 것 같다. 친구들중에 혹시 이곳 근처에 올 기회가 있는 산우는 이집(대구여관식당 054-873-2176, 절대 홍보가 아님)에 미리 예약하면 별미백숙을 맛 볼 수 있으리라...
저녁까지 해결했으니 이젠 행복의 원천인 집으로 가는 일만 남았다. 오후 6시15분, 청송 달기약수터를 출발, 중앙고속도로 진입해 원주, 호법을 거쳐 잠실역에 도착하니 오후 10시30분. 오는 도중에 축구대표팀 시합결과가 궁금해 치악휴게소에서 잠시 쉬는 것을 제외하고 곧장 왔으니 휴일 귀경시간 치고는 빨리 도착한 셈이다. 잠실역 앞에 도착후 산우들은 모두 손을 합하여 시산회 파이팅을 외치고, 다음 산행을 기약하며 해산하였다. 친구들! 오늘하루 모두가 즐거웠고 수고했네. 항상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다시 뵙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2010년 5월 17일 고갑무 씀.
“소나무를 만나”/ 박곤걸 < 시집「하늘 말귀에 눈을 열고」 중에서 >
바람을 다스리지 못하겠거든
산으로 가서 소나무를 만나
말 대신 눈으로 귀를 열어라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을
절제하고, 절단하고
바람이 부는 날
하늘에다 온몸으로 수화하는
나무의 설법에 큰절하고
잘 늙은 소나무가 손짓해 주는
그 곁에 가서 뿌리를 내려라
어느덧 산을 닮아
푸른 자태가 제격이면
바람도 솔잎에 찔려 피를 흘린다
[시평] : 인간의 마음이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면 완고해지고 삭막해지며,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잃으면 자연 속에 살아있는 것들 또한 인간에 대한 존경심을 잃게 되며 결국은 인간으로부터 등을 돌린다고 믿는다. 대지는 모든 존재의 어머니며, 그들 삶의 근거이자 나서 돌아가야 하는 곳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그래서 산에서 만난 늙은 소나무 한 그루가 예사롭지 않은 것도 그 소나무의 두터운 껍질과 빳빳한 솔잎 하나에도 각기 다른 설법이 담겨있음을 믿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가 아닌가 싶다. 어디 늙고 구불텅한 소나무 뿐이겠는가. 돌짬 속에 핀 풀꽃 한송이에도, 쓰러진 촌집 뒷간의 토담을 타고 오르는 호박넝쿨에서도 귀한 말씀이 깃들어 있는 것.
바다를 메꾸어 땅을 늘리는 일이나 강의 물길을 다스려 사람을 이롭게 하겠다는 궁리도 충분히 그런 자연의 설법을 듣고 난 후에 삽을 들어도 들었으면 좋겠다. 당연한 얘기지만 사람도 명백한 자연의 일부다. 사람이 자연의 설법에 귀 기울일 때의 모습이 모름지기 저렇거늘 현실의 자세는 니내없이 아직 한참은 더 낮추어야 할 것 같다< 시평은 평론가에 따라 다를 수 있음>.
(上): 이재웅, 위윤환, 임삼환, 염재홍, 조문형, 고갑무, 정해황,
한천옥, 이원무, 나창수 (下): 김정남, 김용우, 김종화
- < '周王山' 정상(720.6 m)에서... > -
이경식 문화부장관님께서 이번 산행에 참석하질 않자 이 회장님께서는 오늘 산행기 작성 기자 선정때문에 고심이 많은 듯 하다. 이 친구 저 친구 눈치를 보더니만, 시산회에 가입한지 얼마 되지 않는 고갑무 산우에게 그 소임을 맡겼는데, 기대 이상으로 훌륭한 글 솜씨를 남겼다. 다만, 일부의 빠진 부분과 체제만 보완하여 카페(K-20마을)에 올렸다.
다음 산행지는 주왕산 산행때 양평의‘중원산’으로 결정하였다. 중원산은 양평군 용문면과 단월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주능선의 왼쪽엔 용계계곡, 오른쪽엔 중원폭포와 중원계곡을 끼고 있으며, 계곡에는 기암과 울창한 숲 사이로 맑은 물이 흐른다. 산행은 서쪽 용계골과 동쪽 중원계곡을 거쳐 오르는 코스가 대표적인데, 교통이 편리한 용계골을 많이 이용한다고 한다(하지만, 다른 코스로 가 보는 것도 괜찬을 듯). 헬기장이 있는 정상에 서면 지난 우리 시산회 제73회(2007.12.02)때에 오른“용문산”의 웅장한 산줄기가 시야에 가득하고, 시산회 제93회(2008.08.17)때에 오른“도일봉”이 손에 잡힐 듯 건너다 보인다<산행코스는 당일 현지에서 협의하여 결정함>.
김정남 왕회장님으로부터 지난 수요일(5.19일, K-20마을 카페에서)과 오늘 아침에 앞으로 산우들이 돌아가면서 시 선정을 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과 함께 중원산 산행 동반시의 선정을 나에게 일임 하였다. 6월은 현충일, 6.10민중항쟁기념일 등 호국영령을 기리는 달이고, 용문산 일대가 6ㆍ25전쟁 당시 격전지로 현충일날 산행을 하는만큼, 이와 관련되는 시 선정에 대한 각별한 당부가 있었기에 개인적으로는 시에 대한 부족한 면과 바쁜 일이 있었지만, 잠시 시간을 내어(3일동안 인터넷을 뒤졌음) 프롤로그의 시와 동반시를 선정하였다.
각설하고 시평이다. 동반시는 구상의「초토의 시」라는 연작시 15편 중의 하나로서, 6ㆍ25라는 동족상잔(同族相殘)의 비극적 전쟁으로 생긴 `적군 묘지'에서 동포애의 연민과 비애를 노래한 시이다. 광복 이후의 우리 현대사에서 최대의 민족적 비극이었던 6ㆍ25는 많은 전쟁 문학 및 전후(戰後) 문학을 산출했다. 그런데, 이들을 살펴보면 전쟁 체험을 그리는 시인, 작가들의 시각이 적대적 의식이나 증오보다는 동포애 또는 인간애로부터 우러나오는 관용과 연민을 내포한 것이 많다. 이것은 6ㆍ25가 동족 사이의 전쟁이었던 데 기인하는 특징이다.
본 작품도 이러한 심정적 공감대 위에 서 있다. 치열한 전투 상황 속에서는 서로의 목숨을 겨냥하여 방아쇠를 당기던 적이었지만, 그로부터 한 걸음 물러선 자리에서 본다면 분단과 갈등 속에 찢겨진 동족으로서의 연민이 절실하게 솟아오르는 것이다. 이러한 연민, 비애는 특히 제4연에서 뚜렷하게 부각된다. 땅 속에 묻힌 적군 병사들과 마찬가지로 북쪽 땅이 고향인 시인은 삼십리 저편에 가로막혀 있는 고향 땅을 바라보면서 민족 분단의 고통을 다시금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분단은 민족을 나누어 놓았을 뿐 아니라, 증오와 죽음을 휘몰아 왔기 때문이다(시평: 김흥규 시인).
< '초토의 시'는 향토적인 서정성에 바탕을 두고 나름대로의 생명의지를 휴머니즘의 토대 위에서 그려내고 있다. 전체 15편의 연작시 형태로 창작되었으며, 시대적 현실, 예를 들면 '판잣집', 검둥이 애새끼' '창녀' '무덤'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부활' '구원' '속죄의식' '밝음' '조국통일'과 같은 긍정적인 세계를 지향하는 작자의 의식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특히 '휴전 협상 때'라는 부제가 붙은‘초토의 시 15’에서는 '조국아, 심청니마냥 불쌍하기만 한 너로구나/ 시인이 너의 이름을 부르량이면/ 목이 멘다'라고 하며 불쌍한 조국을 탄원하고 있다. 휴전 협상은 또 다른 분단을 의미하므로 작자는 초역사적 양심의 목소리, 자기 희생을 통하여 조국의 진정한 해방을 기원하고 있다.>
작자인「구상」은 1919년 함경남도 원산 출생으로, 시집 '응향'사건으로 인하여 '북조선 예술 총동맹'으로부터 반동 시인으로 찍혀 곧바로 월남, 한국전쟁 때 종군 작가로 활동했다. 그의 시는 카톨릭의 종교 의식을 바탕으로 삼아 인간 존재와 우주의 의미를 탐구하는 구도적 경향이 짙다. 시집으로는 <시집 구상>, <초토의 시> 등이 있다.
“초토(焦土)의 시(詩) 8”/ 구상
- 적군 묘지에서 -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웠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 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욱 신비로운 것이로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30리면
가로막히고
무인공산(無人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어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으로 흘러 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 시를 사랑하는 산 사람들의 모임“詩山會”김종화 배 -
<참고자료> :
1. 산행코스
ㅇ 중원산(800 m)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1,157 m)과 맥락을 같이하는 산이다. 그래서 중원산도 용문산 만큼이나 수도권에서는 인기가 높다. 대개 대중교통이 편리한 신점리에서 용계곡을 경유하여 용계폭포 위 삼거리에서 주능선으로 붙어 정상을 오른 후 남서릉을 경유하여 다시 신점리로 내려오는 코스를 이용하고 있다. 신점리 코스가 인기있는 이유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있는 용문사 덕분이다.
또한, 산행은 서쪽 용계골과 동쪽 중원계곡을 거쳐 오르는 코스가 대표적인데 교통이 편리한 용계골을 많이 이용한다. 신점리 반대 방향인 중원리에서 중원계곡을 경유하여 싸리재 부근 사거리나 사거리 못미처 15 m 폭포 아래 삼거리에서 주능선(북릉)으로 붙어 정상에 이르는 코스도 인기 있다. 이 경우 정상에서 다시 북릉을 타고 사거리 안부로 내려선 다음 중원계곡으로 내려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곡을 경유하지 않고 중원리에서 정상까지 직등하는 코스도 있다. 중원2리 버스종점에서 북서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능선(남동릉) 코스로, 옛날 중원2리에서 신점리로 넘나들던 길을 이용하게 된다. 서쪽 계곡 안으로 오른쪽으로 능선을 타고 오르게 되는데, 이 남동릉 코스는 주민들이 산나물을 채취하러 다니던 능선이다.
중원2리 버스종점인 마을회관에서 서쪽 콘크리트 포장길을 따라 약 100 m 거리인 축사 앞에 이르면 포장길은 끝나고 수렛길로 이어진다. 수렛길로 5분 거리에 이르면 삼거리가 나타난다.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기도원으로 가게 되고, 남동릉은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ㅇ 중원산은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신점리와 중원리의 사이에 위치한 산으로 높이는 799.8 m 이며, 광주산맥과 차령산맥의 중간에 놓여있는 독립된 산이다. 이 산은 주변에 있는 용문산, 백운봉, 도일봉의 산세와 더불어 웅장한 절경을 이뤄 '경기의 금강산'이라 불리기도 한다.
용문산 동쪽 조계와 용계를 사이에 두고 있는 중원산은 푸른 소나무와 거친 암봉이 묘하게도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용문산은 특히 정상 서쪽 중원 폭포계곡의 머루, 다래밭이 유명한데, 봄이면 수백 가지 향취 좋은 산나물이 지천으로 나고, 철쭉과 금랑화 등이 만발해 그야말로 장관을 이룬다.
또한, 가을이면 약초, 먹다래, 야생과일인 개복숭아 등이 농가의 소득을 짭짤하게 올려준다. 뿐만 아니라 땅이 비옥하여 벼농사, 고추, 배추, 무공해 원예작물도 많이 재배되며 품질 좋은 특산물로 큰 인기다.
2. 박봉우 시인
호는 추풍령(秋風嶺). 1934년 전라남도 광주(光州) 출생. 광주고등학교(3회)를 거쳐 1959년 전남대학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휴전선〉이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하였다.
그의 시는 분단 조국의 현실을 날카로이 응시하고 고발하는 시〈휴전선〉으로부터 시작된다.
4·19혁명 후에는〈진달래도 피면 무엇하리〉라는 시처럼 타락한 현실에 대한 허무감과 비판의식을 드러내는 데 관심을 두었다. 이러한 현실인식은 시〈나비와 철조망>,〈젊은 火山〉 등을 통해서 분단의 현실을 노래하기도 하며,〈서울 下野式〉에서는 독재정권에 대한 분노와 저항을 드러내기도 한다.
특히, 시〈백두산〉에서는 "무궁화도/진달래도/백의(白衣)에 물들게 하라/서럽고 서러운/분단의 역사/우리 모두를/백두산에 올라가게 하라"와 같이 분단 극복의지로서 통일의 염원을 노래하기도 한다. 한마디로 그는 분단 비극의 시인 또는 통일지향의 시인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고통스러운 현실 속에서 시로서 저항하다가 불행하게 사라져간 비극의 시인, 불운의 시인으로서 그는 시사에 기록될 수 있다. 전라남도문화상·현대문학 신인상(1962)을 수상하였다.
시집으로는 ≪휴전선≫(정음사, 1957)·≪4월(四月)의 화요일(火曜日)≫(성문각, 1962)·≪황지(荒地)의 풀잎≫(창작과 비평사, 1976)·≪서울하야식≫(전예원, 1985), 그리고 ≪딸의 손을 잡고≫(思社硏, 1987) 등이 있다. 산문집으로 ≪시인(詩人)의 사랑≫(1988)이 있고, 1990년 그가 죽은 뒤에 ≪박봉우집중연구≫(시와 시학, 1993. 겨울호.)로 문학과 생애가 집중 조명되었다/ - 백과사전 속 시인 박봉우 에서...-
첫댓글 프롤로그시로 김종화 전임 회장님은 光高 3회 선배이신 故 박봉우 선배님의 <휴전선>을 선택했습니다. 이시는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시로서 당시에 시문단의 주목을 받았으며 천재시인의 호칭을 들을 정도로 훌륭한 시로 문단에서는 그를 '휴전선의 시인'으로 불리우고 있습니다.
앞으로 동반시도 돌아가면서 선정하면 좋겠다는 개인의 생각입니다.
'산과 시' 기념집도 50회를 단위로 발간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지난 번에 보니 편집을 책임진 이경식 문장관을 위시하여 김종화,
나까지 3인은 조금 힘들었습니다. 책의 부피를 줄이고 사진을 넣지 않으면
저렴하게 발간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