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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실재 40의 추가 40연
기도
이 모든 세상의 지주이고, 영혼이고, 근원이고, 목적이고, 힘인 것,
그리고 이 모든 현현들의 이면에 있는 실재인 그것만이 존재합니다.
진리인 그것이 우리의 가슴 안에 머물기를. [요가 바시슈타 5-8-12.]
본문
1.
현자들과 동행하면 애착이 사라집니다. 애착과 함께 환영도 사라집니다.
환영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안정과 해방을 얻습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현자들과의 동행을 구하십시오.
[바자고빈담, ‘모하무드. 찬가’, 19절.]
2.
설교자들의 설교를 듣거나, 책을 공부하거나, 덕스러운 행위를 하는 방법들로는
지고의 상태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지고의 상태는 현자들과 동행하면서 나 탐구를 함으로서만
지고의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요가 바시슈타, 5-12, v.17.]
3.
현자들과의 동행을 사랑한다면
다른 수련법들이 왜 필요합니까?
기분 좋은 서늘한 남풍이 불어오는데
왜 부채가 필요하겠습니까?
[요가 바시슈타, 2권, 197.]
4.
열은 시원한 달빛이 식혀주고
결핍은 소원을 이루어주는 귀한 나무가 덜어주며
죄는 성스러운 갠지스 강이 씻어줍니다.
열, 결핍, 죄라는 셋은 비할 데 없는 현자의 모습을 봄으로 달아납니다.
[수바쉬타 라트나 반다르가라, 3장, 6절]
5.
물일뿐인 신성한 강들과
돌과 흙으로 빚어서 만든 신상들은 현자만큼 강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수많은 날들이 지나야 사람을 순수하게 만들지만
현자의 눈은 한 번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을 즉시 정화시킵니다.
[바가바탐, 48장, v.31, 10번째 칸토]
6.
제자: 신은 누구입니까?
스승: 마음을 아는 자입니다.
제자: 저의 나, 영은 저의 마음을 압니다.
스승: 그러므로 그대는 신입니다.
경전에서도 아는 자인 오직 하나의 신만이 있다고 선언합니다.
[샹카라차리야의 에카슬로키]
7.
스승: 그대는 어떤 빛으로 봅니까?
제자: 낮에는 햇빛으로, 밤에는 등불로 봅니다.
스승: 어떤 빛으로 이 빛들을 봅니까?
제자: 눈으로 봅니다.
스승: 어떤 빛으로 눈을 봅니까?
제자: 마음입니다.
스승: 어떤 빛으로 마음을 봅니까?
제자: 저의 나입니다.
스승: 그러면 그대는 빛 중의 빛입니다.
제자: 네, 저는 그것입니다.
[샹카라차리야의 에카슬로키 ]
8.
가슴 동굴의 중심에는 ‘나-나’, 즉 아트만으로서 브람만이 빛나고 있습니다.
나를 찾아 깊이 잠수하거나
호흡으로 마음을 통제하여 아트만에 자리 잡으십시오.
[바가반]
9.
가슴의 연꽃 속에는 순수하고 변하지 않는 의식이 나의 형태로 있습니다.
자아가 제거되면,
이 의식은 해방을 줍니다.
[데비칼롯타람, 46절]
10.
몸은 자신의 힘으로 움직일 수 없는 흙 항아리와 같습니다.
그것은 ‘나’라는 의식이 없기 때문에, 신체가 없는 잠 속에서
우리는 매일 우리의 참된 성품에 접촉함으로 신체는 ‘나’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이 ‘나’는 누구입니까? 이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이렇게 묻는 이들의 가슴의 동굴에 ‘나’가 신 아루나찰라의 쉬바로서 빛납니다.
[바가반]
11.
‘누가 태어납니까?’
“나는 어디에서 태어났는가?"라고 묻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주 근원인 브람만에서 태어납니다.
그는 정말이지 영원으로 태어납니다.
그는 성자들의 신입니다. 그는 항상 새롭습니다.
[슈리 바가반의 자얀티를 기리며]
12.
'나는 사악한 존재다'라는 생각을 버리고 나의 끊임없는 희열을 찾으십시오.
어차피 죽어야 할 신체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나를 찾는 것은 악어에 매달려 강을 건너려고 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바가반, 비베카추다마니 v.84]
13.
자선, 고행, 희생, 다르마, 요가와 박티
그리고 천상계, 실재, 평화, 진리, 은총, 침묵,
안정, 죽음이 없는 죽음, 지식, 포기, 해방, 희열이라는 목표
이 모든 것들은 신체가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 데 있습니다.
[바가반]
14.
“행동, 헌신, 결합 또는 지식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은
‘이 행동, 무관심, 분리 또는 무지는 누구의 것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이렇게 질문하면 자아가 사라집니다.
거기에는 이 여덟 가지 질문들은 결코 없었습니다. 그것이 진정한 존재입니다.
[바가반]
15.
그들 자신이 자신의 에너지가 아닌 다른 에너지에 의해 움직인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기적의 힘들을 찾기에 바쁜 바보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장난은 마치 친구들에게
“나를 도와주면 내 앞에 있는 이 적들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자랑한 절름발이의 장난과 같습니다.
[바가반]
16.
마음을 정지still시키는 것이 진정한 해방이고 기적의 힘들은 마음의 행위 없이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 힘에 마음을 둔 사람이
어떻게 마음의 모든 활동을 종식시키는 해방의 희열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바가반]
17.
세상의 짐을 지고 있는 분은 신이지만,
가짜 자아는 그 짐을 지는 척하며 사원 탑을 떠받치는 것으로 묘사된
사원 탑의 이미지처럼 찡그린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여행자가 기차에 탑승한 후 짐을 내려놓지 않고 고통스럽게 머리에 그것을 이고 있다면 누구의 잘못입니까?
[바가반]
18.
흉부 아래, 배 위 두 갈비뼈 사이에는
다양한 색상들을 가진 6가지 장기들이 있는데,
이 중 백합 꽃봉오리처럼 생긴 것이
중앙에서 오른쪽으로 손가락 두 마디 거리에 있는 가슴입니다.
[아쉬탕가 흐르다얌, 말라얄람]
19.
이것의 입구는 닫혀있습니다.
그 구멍 안에는 모든 욕망들로 가득 찬 무거운 어둠이 자리하고 있으며
모든 거대한 신경들이 거기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호흡과 마음, 그리고 지식의 빛의 집입니다.
[아쉬탕가 흐르다얌, 말라얄람]
20.
가슴 동굴의 내부가 집인 주인은 동굴의 주인으로 칭송받습니다.
수행의 힘으로 '나는 그분이다, 나는 동굴의 주인이다'라는 느낌이
내가 자아라는 현재의 관념이 몸 안에 확고하게 자리 잡은 만큼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 동굴의 주인으로 우뚝 서고,
내가 소멸하는 몸이라는 환상은
떠오르는 태양 앞에서 어둠처럼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바가반]
21.
라마가 “우리가 사물의 이미지를 보는 광대한 거울은 무엇입니까?
세상의 모든 존재의 가슴이라고 불리는 것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바시슈타는 “우리가 깊이 생각해볼 때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두 가지 다른 가슴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요가 바시슈타, 5-78, v.32,33절]
22.
‘이들 중 하나는 받아들일 만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거부되어야 합니다.
그것들이 어떻게 다른지 들어보십시오.
신체의 어딘가에 있는 가슴이라는 기관은 거부되어야 합니다.
순수한 자각의 형상을 한 가슴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안에도 있고 바깥에도 있습니다. 그것은 안도 없고 바깥도 없습니다.’
[요가 바시슈타, 5-78, v.34,35.]
23.
그것은 참으로 가장 중요한essential 가슴이며 그 안에 이 모든 세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만물을 보는 거울입니다.
그것은 모든 부의 원천입니다.
따라서 자각은 모든 존재들의 가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슴은 돌처럼 불활성인 부패하기 쉬운 신체의 일부가 아닙니다.
[바시슈타 요가, 5-78, 36, 37절]
24.
따라서 모든 것을 자각하는 순수한 가슴에
자아를 합치는 수행을 통해
호흡뿐만 아니라 마음의 경향성도 정복됩니다.
[요가 바시슈타, 5-78, v.38]
25.
모든 한계들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쉬바(순수한 의식, 자각)로서
“나-나”를 끊임없이 명상함으로써
그는 모든 집착들을 극복합니다.
[데비칼롯타람, v.47.]
26.
다양한 존재의 상태들을 탐구하면서도
지고한 실재의 상태를 굳건히 붙잡고 오, 영웅이여,
세상에서 당신의 역할을 다하십시오.
당신은 모든 현현들의 가슴(중심)에 있는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그 실재에서 결코 벗어나지 말고, 오, 영웅이여,
마치 세상에 사랑에 빠진 듯이, 세상에서 노십시오. 오 영웅이여.
[요가 바시슈타, 5-18, v.2-23.]
27.
열정과 기쁨을 가진 듯
흥분과 혐오감을 가진 듯
일을 주도하는 듯, 인내하는 듯, 오, 영웅이여!
애착이 없이 이 세상에서 유희하십시오.
애착이 없는 평온한equanimity 마음으로
그대가 맡은 역할에 따라 겉으로 행동하십시오.
오, 영웅이여! 세상에서 그대가 즐기듯이 유희하십시오.
[요가 바시슈타, 5-18, v.24-26]
28
아트만에 대한 지식으로 진리에 자리 잡은 사람, 다섯 감각들을 정복한 사람은
그를 지식의 불, 지식의 천둥을 휘두르는 자,
시간의 정복자
죽음을 물리친 영웅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요가 바시슈타, 확인되지 않음]
29.
대지 위에 봄이 오면
나무들이 잎을 내어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빛나듯이
진리를 본 사람은
점점 더해가는 빛, 지성, 힘으로 빛날 것입니다.
[요가 바시슈타, 5-76, v.20]
30.
생각들이 멀리 있는 동안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애착에서 벗어난 마음은 행위를 하는 동안에도 활동하지 않습니다.
애착하는 마음은 비록 가만히 있어도 행위를 합니다.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잠자는 듯하지만 꿈에서 그는 산을 오르다가 떨어지기도 합니다.
[요가 바시슈타, 5-56, v.13, 14]
31.
잠자는 승객은
소가 끄는 수레가 출발하고, 가고, 멈추어도
그것들을 알지 못합니다.
이처럼 신체라는 수레에서 잠자고 있는 현자는
행위, 명상, 잠과 같은 것들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바가반]
32.
(열심히) 찾는 사람은
깨어있음, 꿈과 잠을 넘어서는 상태를 발견합니다.
그 상태를 깨어있는 잠 혹은 투리야라고 합니다.
이 투리야 상태만이 실재이고
세 상태들은 환영들에 불과합니다.
이 ‘네 번째’를 초월의 상태라 합니다.
[바가반]
33.
갸니는 과거에 축적한 카르마와 미래에 펼쳐질 카르마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갸니가 현생에 펼쳐지는 카르마를 가진다는 말은
무지한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형식적인 답변일 뿐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들은 모두 과부가 됩니다.
이와 마찬지로 행위자가 사라지면, 세 가지 카르마들 모두는 사라집니다.
[바가반]
34.
학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내, 자녀, 부양가족으로 구성된 단 하나의 가족만 있습니다.
그러나 학식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요가에 장애물들이 되는 많은 책들, 이론들, 의견들의 가족이 있습니다.
[수바쉬타 라트나 반다가라, 프라카라나 6장, 샨타 라사 니르데샤, 13절]
35.
‘우리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라는 탐구를 통해,
운명의 편지들을 지워버리려고 하지 않는
배운 이들에게 문자들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축음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 아루나찰라의 신이시여!
그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단어들을 배우고 반복합니다.
[바가반]
36.
학식이 없는 사람은 학식이 있지만 아직 마음이 복종되지 않은 사람보다
더 쉽게 구원받습니다.
학식이 없는 사람은 교만이라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자유롭고,
많은 소용돌이치는 생각들과 말들의 문제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미친 듯이 부를 추구하는 것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질병들에서 자유롭습니다.
[바가반]
37.
어떤 사람이 세상을 짚더미로 여기고
모든 신성한 지식을 그의 손 안에 쥐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사악한 창녀인 아첨에 굴복한다면
그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슈리 사다쉬바 브라멘드라의 사다카 아바스타]
38.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나 안에 머문다면,
자신에게 낯선 존재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누가 자신을 칭찬하든 비난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바가반]
39.
아드바이타를 그대의 가슴 속에 간직하십시오.
결코 행동으로 옮기지 마십시오.
비록 당신이 그것을 세 세계들 모두에 적용하더라도,
오 아들아, 그것은 구루에게 적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샹카라차리야의 탓보파데샤, 87절]
40.
나는 베단타의 마지막 가르침의 본질을 진실로 선언할 것입니다.
즉, 자아가 죽어서 순수한 자각(의식)의 나가 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자각의 나, 그것만이 남습니다.
[산스크리트 시를 바가반이 타밀어로 바꾼 시]
33.
갸니는 과거에 축적한 카르마와 미래에 펼쳐질 카르마로부터 자유롭습니다.
갸니가 현생에 펼쳐지는 카르마를 가진다는 말은
무지한 사람들의 질문에 대한 형식적인 답변일 뿐입니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들은 모두 과부가 됩니다.
이와 마찬지로 행위자가 사라지면, 세 가지 카르마들 모두는 사라집니다.
[바가반]
34.
학식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내, 자녀, 부양가족으로 구성된 단 하나의 가족만 있습니다.
그러나 학식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요가에 장애물들이 되는 많은 책들, 이론들, 의견들의 가족이 있습니다.
[수바쉬타 라트나 반다가라, 프라카라나 6장, 샨타 라사 니르데샤, 13절]
35.
‘우리가 어디에서 태어났는가?’라는 탐구를 통해,
운명의 편지들을 지워버리려고 하지 않는
배운 이들에게 문자들의 용도는 무엇입니까?
축음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오 아루나찰라의 신이시여!
그들은 그 의미를 깨닫지 못한 채 단어들을 배우고 반복합니다.
[바가반]
36.
학식이 없는 사람은 학식이 있지만 아직 마음이 복종되지 않은 사람보다
더 쉽게 구원받습니다.
학식이 없는 사람은 교만이라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자유롭고,
많은 소용돌이치는 생각들과 말들의 문제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미친 듯이 부를 추구하는 것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들은 수많은 질병들에서 자유롭습니다.
[바가반]
37.
어떤 사람이 세상을 짚더미로 여기고
모든 신성한 지식을 그의 손 안에 쥐고 있다 하더라도,
그가 사악한 창녀인 아첨에 굴복한다면
그는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슈리 사다쉬바 브라멘드라의 사다카 아바스타]
38.
자신을 다른 사람과 분리된 존재로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상태에서 벗어나지 않고,
항상 자신의 나 안에 머문다면,
자신에게 낯선 존재가 있겠습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누가 자신을 칭찬하든 비난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바가반]
39.
아드바이타를 그대의 가슴 속에 간직하십시오.
결코 행동으로 옮기지 마십시오.
비록 당신이 그것을 세 세계들 모두에 적용하더라도,
오 아들아, 그것은 구루에게 적용되어서는 안 됩니다.
[샹카라차리야의 탓보파데샤, 87절]
40.
나는 베단타의 마지막 가르침의 본질을 진실로 선언할 것입니다.
즉, 자아가 죽어서 순수한 자각(의식)의 나가 되는 것입니다.
순수한 자각의 나, 그것만이 남습니다.
[산스크리트 시를 바가반이 타밀어로 바꾼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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