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재의 정치풍자 무협판타지 대권무림
법카초식 혜경궁김씨, 못 말리는 건희씨 "지존좌는 내 손안에 있다"
[이정재의 대권무림 3부③]
〈3부 제3편〉내자지전(內者之戰) 승어부(勝於夫); 남편보다 아내 싸움이 지독하다
예로부터 끊기 어려운 것이 미인의 정(情)이라.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이 그 앞에 무너졌던가.
月出斷岸口
달이 물가 절벽 어귀에서 나와
影照別舸背
떠나가는 배의 뒤꼬리를 비추네
且獨與婦飲
홀로 아내와 술 한 잔 나누니
頗勝政客對
정치꾼들 만나기보다 훨씬 좋다네
(*송(宋)나라 매요신(梅堯臣)의 舟中夜與家人飮을 일부 개작)
반푼(半分) 재명공자의 한 수 읊조림이 끝났다.
"천 년 전 송나라 시인이 마치 지금 내 마음을 들여다본 것 같구려."
혜경궁김씨가 살포시 그의 손을 잡았다.
재명공자에게 혜경궁김씨는 원군이자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의 인생에서 오로지 아내만이 전적으로 믿고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에겐 믿을 친구도 의지할 가족도 없다. 비정(非情) 강호가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10년 측근이든 20년 수하든 불리한 일이 터지면 '안면몰수모르쇠' 신공으로 내쳤다.
식구라고 다르랴.
지존 행보에 걸림돌이 되면 사정없이 버렸다.
이용할 땐 철저히 이용했다.
5년 전(무림력 2017년 1월 23일) 19대 무림지존 출사표를 던지던 날을 그는 잊지 못한다.
영하 13도~15도의 강력 한파가 며칠째 몰아치던 엄동설한.
소년공 시절 일했던 동양시계점 정문에서 출사표를 읽어내렸다.
가족 모두를 병풍처럼 뒤에 두른 채였다.
팔순 노모는 거동이 어려워 모포 한장을 둘러 휠체어에 앉혔다.
그럴만했다. 가족 간 욕설 녹취록으로 집안이 망하느냐 흥하느냐의 절체절명의 순간.
가족 모두가, 특히 어머니가 내 편이란 사실을 남들에게 알려야만 했다.
그런 아들의 마음을 절절히 아셨을 것이다.
내 어머니는 묵묵히 체감온도 영하 20도의 한파를 한 시간 넘게 온몸으로 받아내셨다.
기꺼이 아들의 지존좌를 위한 도구가 되어주신 것이다.
그런 어머니 생각에 유세차에 오를 때마다 눈물이 난다.
그러나 혜경궁김씨는 다르다.
내 아내는 도구가 아니다. 아내는 나의 흐트러진 몸과 마음을 바로잡아주는 치료사다.
지난해 민주련 경선 비무 때도 나는 아내의 치유무공 덕을 톡톡히 봤다.
서로 멀리 떨어진 다른 지방에서 거친 싸움을 하고 난 뒤에도 아내는 밤이면 내 거처로 왔다.
칭찬해주고 토닥토닥 해주고 안아줬다.
아내의 치유무공은 백발백중, 나는 다시 힘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런 아내가 있어야 버틸 수 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꼴인가.
법카초식이 모든 걸 망쳤다.
법카초식에 기운을 빨린 혜경궁김씨는 치유무공을 제대로 쓸 수 없었다.
본래 법카초식은 마공 중 마공.
한번 맛을 들이면 집카초식이나 내카드초식을 다시는 쓸 수 없다.
남에게 들키는 날엔 즉시 무림에서 퇴출당할 수도 있다.
"법카초식이 당신을 너무 힘들게 하는구려.
내가 달리 도와줄 방법이 없으니 미안하고 괴롭구려."
혜경궁김씨가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괜찮아요. 당신이 문제지요.
1차 TV토론비무 때 너무 힘들어하더군요.
얼마나 지쳤으면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을까.
지켜보면서 너무 안타까웠어요.
당신 혼자 다 하려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2차 TV토론비무 때는 일정을 싹 비우고 집중했는데,
그래도 아주 힘들었소.
나찰수 윤석열의 기세가 오를 대로 올랐소.
그에게 패하는 날엔 모든 걸 잃게 될까 두렵소."
재명공자는 크게 풀이 죽은듯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혜경궁김씨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
"무림은 절대 녹록하지 않아요.
아무나 지존좌에 앉히지 않아요.
당금 무림의 문제를 뚫어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지존좌로 끌어올려요.
15대 대중검자, 16대 바보공자 노무현이 다 그랬어요.
무공만 강하다고 지존좌를 차지할 수는 없어요.
나찰수처럼 강한 무공만 믿고 뽐내다 속절없이 사라져간 절대고수들이 얼마나 많았나요.
자신의 힘을 믿으세요. 당신의 무공을 믿으세요.
당신이야말로 무림 백성의 꿈과 가치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부자것뺏어나누기, 나라곳간헐어퍼주기 초식이야말로 시대 정신이에요.
강호 백성 누가 나누고 퍼주기를 반대하겠어요?
그 초식을 당신 말고 또 누가 제대로 펼치겠어요.
자신을 믿어요, 흔들리지 말아요.
열흘만 버티면, 열흘이면 천하가 우리 것이에요."
흐릿하던 재명공자의 눈에 빛이 돌아왔다.
나는 결코 질 수 없다. 지면 죽는다. 꼭 이겨야한다.
그래, 나를 위해, 내 아내를 위해.
기다려라 강호여, 기다려라 무림아.
모란이 피는 춘삼월,
내가 왜 불굴의 재명공자로 불리는지 알게 되리라.
# 공작새와 악어
칠주야(七晝夜=일주일)전 무림언론 기자들은 일제히 옥수날심 김건희의 전갈을 받았다.
꼭 참조하라며 비전의 기사 한 꼭지를 첨부했다.
무림신복(神卜) 백재권의 관상평이 실린 기사였다.
무림신복은 나찰수 윤석열을 악어상, 그의 아내 김건희를 공작새상이라고 했다.
재명공자는 살쾡이, 그의 아내 혜경궁김씨는 퓨마라고 했다.
악어는 썩은 것들을 모두 먹어치운다. 악어에게 살쾡이는 한 입 거리일 뿐이다.
게다가 퓨마에 비하면 공작새는 기품이 몇 단계 위다.
김건희가 이런 관상평을 무림 언론에 널리 뿌린 속내는 안 봐도 알 듯했다.
'봐라, 무림신복이 누구를 차기 지존부부라고 하는지.'
그 김건희가 지금 눈을 부릅뜬 채 나찰수 윤석열을 닦달하고 있었다.
"가가(哥哥:오빠)가 직접 해요.
철수의사를 직접 만나서 담판을 지으세요.
철수의사의 무공은 똑바로앞뒤막힘,
이런 자에겐 어떤 변초(變招)를 써도 안 먹혀요.
대놓고 면전에서 나찰수로 대결하세요.
재인군이며 민주련, 적폐수사초식으로 혼낼 사람이 누구냐고,
무림총리든 차기 지존좌든,
달라는대로 다 준다고 해요."
나찰수는 묵묵부답,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나이 오십이 넘어 만난 아내 김건희는 그에겐 그야말로 장중보옥, 손안의 구슬과 같았다.
불면 꺼질라, 쥐면 깨질라.
그런 그녀가 저리 기세등등 얘기할 땐 가만 입 다물고 있는 게 상책이다.
게다가 나찰수 윤석열이야말로 강호의 거친 사내들과 마찬가지,
예쁜 여자 앞에선 얼굴 빨개지고 말 못하는 순둥이가 아니던가.
'내가 알아서 하리다.'
나찰수는 목구멍까지 나온 말을 간신히 삼켰다.
사실 내가 반푼 재명공자 따위에게 이리 고전하는 이유가 뭐겠나.
재명공자와 민주련은 내아내흠집내기 초식을 집중 연마했다.
초기 싸움엔 화력의 8할을 내 아내 공격에 썼을 정도다.
혜경궁김씨의 법카초식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진작 승부가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 아내 옥수날심은 무림인이 아니다.
화상(畵商)이다.
그림을 볼 줄 아는 무인이 진정한 무인이라고 믿는다.
어떤 무인이든 처음 만날 때면
서사국(瑞士國)의 조각가 자코메티를 아느냐고 묻는다.
알면 합격, 모르면 불합격, 잘 알면 최고의 무인이다.
내 아내가 익힌 무공이라고는 상가의 호신술이 전부다.
아무나친한척 초식이 장기다.
그러니 좌파 무림언론과 그리 격의 없이 어울리다 사달이 난 것이다.
사실 아내는 내겐 최고의 책사이기도 하다.
내가 귀제갈 김종인을 모셔오려고 애를 쓰던 시절,
아내 김건희는 귀제갈의 아내 만뇌파파 김미경에게 매일 수통기(手通器)로 연락했다.
만뇌파파 김미경이 누군가.
만 사람의 계략을 한 몸에 지녀 귀제갈마저 절절맨다는 바로 그녀다.
한길공과 국민교수 김병준까지 3김을 영입하려다 귀제갈의 자존심을 건드려 일이 꼬였던 때,
내 아내가 나섰다.
"한길공이며 국민교수 김병준이 어찌 귀제갈 김종인과 비교되겠나.
귀제갈께서 오시면 결국 자리를 내주고 물러갈 사람들 아니겠냐."며 만뇌파파를 설득했다.
만뇌파파 김미경은 "보통이 아니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그때 귀제갈의 합류로 결정적 고비를 넘겼다.
아내의 도움이 아니었다면 파국의 위기를 맞을 수도 있었다.
민주련과 재명공자가 다시 아내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
수위도 높다.
이름바꾸고경력부풀리기 초식이 안 먹히자 주가조작10억꿀꺽 초식을 들고 나왔다.
저들의 공세는 나와 내 아내가 쓰러질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지면 죽는다. 이겨야 산다. 이겨야 나도 살고 아내도 산다.
나찰수는 두 주먹을 힘껏 움켜쥐고 허공을 향해 어퍼컷을 날렸다.
건희가 키운 나찰수,
건희의 힘으로 지존좌에 오르리라.
# 여걸 둘, 사내 둘
겨울밤은 춥고 바람은 사납다.
그 좋던 군세(群勢=지지율)를 까먹고 칼 한자루에 몸을 맡긴 사내,
철수의사 안철수에겐 긴 불면의 밤이다.
"더는 없다. 끝까지 간다."
그의 다짐엔 힘이 실렸다. 아내 무림의녀(武林醫女) 김미경의 응원이 힘이 됐다.
혹자는 내가 아내의 말만 듣는다고 한다.
나찰수 윤석열과의 합력(合力)도 아내의 훈수를 듣고 거부했다고 한다. 천만의 말씀.
나는 무림의 일을 결코 아내와 상의하지 않는다.
서로 무공의 무자도 꺼내지 않는다.
아내를 무림의 일에 끌어들인 것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듯하다.
내 아내는 갸날픈 손에 독한 마음이라는 옥수날심 김건희나
공노비를 마음대로 부리는 혜경궁김씨와는 격이 다르다.
법카초식 따위는 익혀본 적도 없고 경력부풀리고주가조작 무공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다.
아내끼리의 겨룸이었다면 진작 승부가 났을 것이다. 물론 내 아내의 승리다.
무릇 무공을 익힌 사내라면 아내를 전장의 한복판에 밀어 넣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아내는 나를 돕겠다고 나섰다가 역병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그런 아내를 두 번 울릴 수는 없다. 싸움엔 져도 승부엔 질 수 없다.
국민동자 이준석과 나찰수 윤석열은 나를 모욕했다.
합력을 말하는 내게 굴복을 요구했다.
아내는 모욕을 참지 말라고 한다.
내 생각도 그렇다. 철수는 없다.
삼월의 초아흐레, 꽃잎처럼 산화하리라.
같은 시각, 청와궐에도 불면의 밤이 이어졌다.
나찰수 윤석열에게 '분노한다사과하라' 초식을 쓴 게 과연 잘한 일이었을까.
퇴위길 재인군의 심사는 만감이 교차했다.
아내가 워낙 격분한 탓에 밀어붙이기는 했으나, 좋은 수는 아니었다.
내 아내는 전 법무장관 조국을 끔찍이 아꼈다.
그를 법무장관에 앉혀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한 것도 아내였다.
내가 머뭇거리자 비행기에서 먼저 내려 휙 지나가는 바람에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그런 아내인 만큼 조국의 배신자, 나찰수 윤석열을 결코 용납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내의 불안도 점점 커지고 있다.
내 아내 둔파(臀婆) 김정숙은 애초 육중무공을 익혔다.
청와궐의 안주인이 돼서는 만의신공에 탐닉했다.
만 가지 옷을 입듯 화려하게 변신하는 것이었으나, 외피만 변화하는 수준에 그쳤다.
피부와 뼈를 바꾸는 탈태환골의 수준엔 이르지 못했다.
얼마 전 강호 잡배들이 내 아내가 만의신공에 사용한 황금 내역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판관들이 그것을 허락했다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이제 본격 하산길이 시작됐다는 뜻이리라.
아내는 청와궐의 밤을 무척 싫어한다. 요즘은 아예 무서워한다.
청와궐은 원래 사기(邪氣)와 선기(仙氣)가 강한 곳,
땅의 기운과 맞는 사람은 흥하되 맞지 않으면 비명횡사의 액을 맞는다는 요설이 난무했다.
그 사악한 기운을 느껴서일까.
아내가 청와궐 밖에서 잠을 청하는 날이 많아졌다.
재명공자든 나찰수든 누구 하나 믿을 수 없다.
아내와 나는 과연 무사히 청와궐에서 하산할 수 있을까.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