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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도서 스크랩 천로역정 64 - John Bunyan
이지명 추천 0 조회 44 13.02.02 03: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천로역정 64 -  John Bunyan  

희망 : 나도 같은 생각입니다. 
         우리 집하고는 겨우 3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었는데, 
          그는 가끔 내게 와서 울곤 했지요. 
         나는 진심으로 그를 불쌍하게 여겼고, 
         희망이 전혀 없는 자로 보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다 "주여, 주여." 하고 울부짖는다고 
         다 희망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지요. 

크리스찬 : 한번은 그가 지금 우리들처럼 
          순례의 길을 떠나겠노라고 내게 말한 적도 있었지요. 
          그런데 갑자기 '자기 구원(Save-self)'이라는 사람과 사귀게 되면서부터 
          그는 전혀 딴 사람이 되고 말았지요. 
희망 : 그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이지, 
         그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도대체 무슨 이유로 
         그렇게  갑자기 달라지는지 생각해 봐야겠습니다. 

크리스찬 : 그것 참 유익한 일이겠군요. 당신부터 이야기해 보시지요. 
희망 : 좋습니다. 내 생각에는 네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그런 사람들은 양심이 각성되었기는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식의 힘이 약해지면 
          그들을 신앙적이게 만들었던 힘마저 사라지게 되지요. 
          그렇게 될 때 그들은 자연히 옛날 습성으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마치 토했던 음식을 도로 삼키는 개와 같다고나 할까요? 
          개는 먹으면 안 될 음식을 먹었을 때 뱃속이 아픈 동안에는 계속 토해 내지만, 
          그것도 제 마음이 시켜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고
          뱃속이 아프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지요. 
          그러다가 아픔이 가시면 그 토사물에 미처 섞여 나오지 않은 
          식탐에 끌려 토해 냈던 것을 다시 말끔히 삼키지 않습니까? 
          과연 '개는 제가 토한 것을 도로 먹는다.'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이와 같이 지옥의 형벌에 대한 공포 때문에 천당을 사모하던 자들은 
          그들의 지옥에 대한 인식이나 형벌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씩 사라지면 
          천당과 구원에 대한 욕망도 식어지는 것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들의 죄의식이나 두려움이 사라지면 
          천당과 행복에 대한 열망도 자연히 없어지고 
          다시 옛날의 습성으로 돌아가고 마는 것입니다.        

          둘째,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은 자신을 압도하는 두려움에 
          노예처럼 굴복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에 대해 갖고 있는 두려움 말입니다.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가미에 걸린다.'라는 성경 말씀도 있지요. 
          그리하여 지옥의 화염소리가 그들의 귓전에서 타오르는 동안에는 
          천당을 열심히 갈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무서움이 조금 사라졌다 하면 그들은 다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즉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잃을지도 모르는 
          모험을 하기 보다는 지혜로워지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또한 최소한 피할 수 없는 그러면서도 불필요한 고난에서는 
         스스로 발을 빼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래서 다시 이 세상 물욕에 빠지게 되고 마는 것입니다. 

           셋째, 그들의 길에는 종교를 수치스런 것으로 생각하는 
           마음이 장애물로 놓여 있습니다. 
           그들은 오만하고 건방지죠. 
           그래서 그들의 눈에는 종교란 것이 저속하고 유치한 것으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과 앞으로 닥칠 하나님의 형벌에 대한 생각이 없어지게 되면 
           그들은 곧장 옛날의 길로 돌아가 버리는 것입니다. 

           넷째, 죄의식이나 공포감에 사로잡히는 것이 그들에겐 죽기보다 싫은 일입니다. 
           그들은 불행이 닥치기 전에는 그 불행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합니다. 
           불행이 처음으로 눈에 띄었을 때 의로운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의 그 불행 속으로 뛰어들기만  해도 안전하게 될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조금 전에도 말했듯이 
           죄나 두려움에 대해서는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하므로 
           일단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기만 하면 
           기꺼이 마음을 굳히고는 더 나아가 마음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 만한 
           일만을 골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크리스찬 : 정말로 당신 말이 맞소. 
           근본적인 문제는 그들의 마음과 뜻이 별로 변하지 않는 데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그들은 고작 재판장 앞에 선 흉악범 같은 신세일 뿐입니다. 
           그는 부들부들 떨며 진심으로 뉘우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범죄를 꺼리는 마음이 아니라 
           교수형에 대한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예컨대 그 사람에게 자유를 준다면 그는 다시 도둑이 될 것입니다. 
           그는 여전히 악한인 것이죠. 
           만일에 그의 마음이 변한다면 그는 아마도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희망 : 그들이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내가 이야기했으니, 
         이제는 어떻게 세상으로 돌아가는지 그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크리스찬 : 그러지요. 
           첫째, 그들은 하나님과 죽음과 장차 닥쳐올 
           최후의 심판에 대한 생각들을 모두 버립니다. 

           둘째, 그 다음으로는 은밀한 개인적 기도, 정욕의 억제, 근신, 
           죄에 대한 뉘우침 같은 개인적인 의무들을 차츰차츰 등한시하고 버립니다. 

           셋째, 활발하고 열렬한 기독교인들과의 교제를 꺼립니다. 

           넷째, 그런 다음에는 설교를 듣고 성경책을 읽고 
           집회에 참석하는 것 등의 공적인 의무에 냉담해집니다. 

           다섯째, 전에 말한 대로 신자들의 흠을 열심히 지적해 내고, 
           약점을 비웃고 그것으로 자기가 종교를 버리는 구실로 삼지요. 

           여섯째, 세속적이고 방종하며 음탕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그들과 결탁하기 시작합니다. 

           일곱째, 은밀하게 음담패설을 즐기고 혹시라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정직하다고 평을 받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면 그들은 기뻐하면서 
           정직한 사람들의 본을 받는다는 명목으로 더욱 노골적으로 그런 것을 합니다. 

           여덟째, 그런 다음에는 사소한 범죄를 공공연하게 저지르게 됩니다. 

           아홉째, 그러고 나면 더욱 대담해져서 그들은 마침내 본색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은총의 기적이 그것을 막아주지 않는 한 
           그들은 고난의 구렁텅이에 다시 빠지게 되고 
           마침내 스스로 속이는 가운데 영원히 멸망하고 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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