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은 모르는 10대들만의 언어가 있다. 비속어나 은어, 정체불명의 언어를 많이 알면 또래들 사이에서 인정을 받는다. 일부 TV 프로그램에선 막말을 하는 출연자가 인기다. 언어 세계가 심각하게 혼탁해지면서 바르고 고운 우리말을 지키자는 목소리가 높다. 이틀 후면 한글날. KBS 한국어팀 아나운서들을 만나 우리말 잘하는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한국어를 잘하려면 가정에서의 교육이 중요하다. 시험을 위한 공부보다는 생활 속에서 바르고 고운 말을 많이 듣는 것이 좋다. [황정옥 기자]
“걔 넘 얼굴이 안습이라고 애들한테 열라 다굴 당했대. 낼 봐. GG.”
김정수(서울 염동초 5·사진)군이 친구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외계어 같은 말을 늘어놓는다. 엄마 김소희(서울 강서구)씨는 대화 내용이 궁금하다. 친구 중 하나가 얼굴이 못생겼다며 다른 아이들에게 맞았다는 내용이란다. GG(Good Game)는 인터넷게임을 끝낸다는 의미인데 친구들과 헤어질 때 사용한다고 한다. 친구들 사이에서 이런 말을 모르면 따돌림을 당한다는 얘기에 김씨는 기가 막힌다.
다큐멘터리 시사·교양 프로그램 보기
“귀명창이 명창 된다.”
김씨처럼 10대 자녀들의 언어 사용을 걱정하는 부모들에게 아나운서들이 가장 추천하는 방법이다. ‘귀’로 바르고 고운 말을 많이 들어야 ‘입’으로 한국어를 잘 말하게 된다는 의미. 이상협 아나운서는 “한국어는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몸으로 체득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가정에서의 올바른 한국어 교육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부모들이 모두 표준 발음을 유창하게 구사하기란 사실 불가능하다. 그럼 대안은 없을까. “제가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하루 종일 라디오 뉴스를 틀어 놓으셨대요. 그 덕에 한국어 발음이 다른 사람들보다 정확한 거 같아요.” 윤영미 아나운서의 경험담이다. 김성수 KBS 한국어팀장은 “아나운서들이 진행하는 다큐멘터리나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선별해 볼 것”을 강조했다. 지식이나 정보는 물론이고 아나운서들의 표준 발음을 듣는 것만으로도 공부가 된다.
귀로 표준 발음을 충분히 들었다면 입으로 말할 차례다. 9시 뉴스를 진행하는 조수빈 아나운서는 어려서부터 ‘앵커 따라 하기’를 즐겼다. 스스로 앵커가 돼 직접 멘트를 만들고 또박또박 말해보는 것. “사전에서 표준말을 찾고, 새로운 표현을 만들다 보면 저절로 한국어 공부가 돼요.”
신문과 국어사전은 단짝 친구
유애리·박경희·윤영미·김성수 아나운서(왼쪽부터).
조 아나운서는 KBS 한국어능력시험에서 835점(990점 만점)을 받았다. 아나운서들 중에서도 상위권이다. “한국어 잘하는 방법이요? 저는 가리지 않고 읽는 편이에요.” 매일 가방에 신문 4부를 가지고 다니며 읽는다. 새로운 말이 나오면 반드시 사전에서 확인한다. 신문과 국어사전이 그의 단짝친구다.
박경희 아나운서실장은 “정확한 발음, 즉 조음(발음 기관의 움직임), 장·단음, 높낮이 등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실 전문가들도 정확한 발음을 구사하기가 쉽지 않다. 박 실장은 “영어교육을 위해 영어를 생활화하듯 자녀가 어려서부터 부모가 표준한국어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형태는 다르나 의미가 같은 단어, 형태는 같지만 의미가 다른 단어로 놀이를 하는 것도 좋다.
조 아나운서는 지금도 “표준어가 어렵다”고 말했다. 뉴스 스튜디오에 사전 두 권을 가져다 놓고 방송 중에도 표준말 공부를 계속한다. 유애리 아나운서는 “서로의 방송을 모니터해 틀린 발음이 없었는지 휴대전화 문자로 실시간 평가를 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어 상담전화(02-781-3838)를 통해 아나운서들이 직접 24시간 상담을 하다 보면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부가 된다. 우리나라에서 한국어를 가장 잘 한다지만 아나운서들의 공부는 마침표가 없다.
첫댓글 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