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장수사진 봉사하러 은빛둥지에서 춘천을 갈 때,
같이 못간 아쉬움이 있던 차에 원장님과 몽마르뜨가 관련 글을 올렸다.
자연스레 내가 살았었고 사랑하던 춘천과 중도를 떠올리게 되었다.
나에게 중도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의 장소이다.
춘천에서 교사생활을 할 때 서울에 있는 집으로 가지 않는 주말이면,
과외를 하던 성수여고 학생들과 춘천고 학생들을 데리고 가곤 했던 곳이다.
뱃사공이 젓는 오래된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 중도에 닿으면 황량한 벌판이
눈앞에 넓게 펼쳐진다.
배에서 내리면서 누구랄 것도 없이 감격의 탄성을 자아내곤 하던 곳이다.
갈 때마다 계속되는 탄성은 나뿐 아니라 아이들도 좋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남자아이들은 배에서 뛰어내리며 서로를 잡으러 뛰어 다니곤 한다.
그러다가 축구를 하거나 하모니카를 불기도 한다.
여자아이들은 나와 함께 강가를 거닐거나 앉아서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했던 곳이다. 많은 들꽃들을 구경하던 것도 큰 재미였다.
강가 모래밭에 앉아 주변에 널려있는 들꽃을 꺾어 귓가에 꽂고
아이들이 찍어준 사진은 지금도 좋아하는 사진중에 하나이다.
아이들도 주말이면 내가 서울을 가는가가 관심사였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떠오른다. 정감어리고 평화로운 장면들이.
애정이 서린 중도가 개발된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개발을 그렇게 좋아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외국에 출장을 갈 때나 외국의 친지를 방문할 때면
그들은 그 고장의 가장 자연적이고 목가적인 곳으로 즐겨 안내를 하곤 한다.
물레방아간이 있는 주변, 밀밭이 펼쳐진 너른 평야, 야생의 숲,
와이너리가 몰려있는 너른 평야, 백조와 오리가 노니는 호수 등으로.
한국화에서 진경산수화로 큰 족적을 남긴 겸재 정선은 조선시대의 화가이다.
한국화를 연구하는 분들은 세잔느를 뛰어넘는 화가로 인정한다.
그가 그렸던 수성동계곡이 서울 종로구 옥인동 인왕산 자락에 있다.
종로구에서는 겸재가 그렸던 수성동계곡을 복원하기 위해 노후 된 아파트까지 헐었다.
겸재가 그린 수성동계곡의 풍광으로 재현하기 위해 많은 수고의 과정을 거쳐
지금의 수성동계곡의 모습이 되었다.
몇 년 전 자연을 복원시켜 놓은 것을 목격하고 감탄하였다.
이것은 너무 잘한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겸재 정선이 그린 3백 년 전 산수화를 보고 당시의 풍광을 재현해 놓다니!
그야말로 대단한 일을 해 놓은 것이다.
‘우리나라의 행정부가 이런 수준까지 왔다니, 세상에. . .’ 하며 감탄을 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나라 자연만큼 아름다운 산수를 가진 곳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곤 하는데
왜 자꾸 개발을 하려고만 하는지...
그런데 아직도 개발을 못해서 안달을 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가?
개발을 해야만 현대화가 되는 것이고 개발을 해야만 수익이 나는 것인가?
개발을 해야만 보기에 좋은가?
왜 그렇다고 생각하지?
나는 그것은 아니라고 감히 생각한다.
겸재 정선의 수성동 계곡
현재의 수성동 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