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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혀로이기려는자 | 1-4 1 ①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2 ②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3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4 ③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 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 |
하나님의순결한말씀 | 5-8 5 ④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6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번 단련한 은 같도다
7 ⑤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시리이다
8 ⑥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
12편, 순결한 여호와의 말씀과 안전지대
요절 : 5절,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시도다.
12편도 “다윗의 시”라는 표제가 있습니다. 12편은, “거짓말(2)과, 순결한 여호와의 말씀”(6)이 대조(對照)되어 있는 구조(構造)인데 이를 염두에 두고 해석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첫 절에서, “경건한 자가 끊어진다” 하고, 마지막 절에서 “악인이 처처에 횡행(橫行)하는도다” 한다면, “아첨하는 입술과, 거짓말하는 혀”란 일반인들도 포함됩니다만 특히 지도자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도표를 보시면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를 중심으로 첫째 단원은 거짓말하는 자에 대한 진술인데, ①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진다” 하면서, ② “저희가 이웃에게 거짓을 말함이여”, ③ “저희가 우리의 혀로 이길지라” 한다고 말합니다. 둘째 단원은 “순결한 말씀”에 대한 진술인데,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하면서, ④ 여호와께서 “가련한 자, 궁핍한 자를 안전지대에 두리라” 하면서, ⑤ “여호와께서 저희를 지키사, 보존하시리이다” 합니다. 결론적으로 ⑥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 하고 마칩니다. 이 12편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첫째 단원(1-4) 자신의 혀로 이기려는 자들
둘째 단원(5-8)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
첫째 단원(1-4) 자신의 혀로 이기려는 자들
첫째 단원 안에는 “아첨하는 입술(2, 3), 거짓을 말함(2), 자랑하는 혀”(3) 등 언어(言語)와 관련된 것이 반복적으로 강조되면서, “우리의 혀로 이길 지라”(4)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교훈적인 의미와, 신학적인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①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1) 하고 호소합니다.
㉠ “경건한 자”란,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 1:26) 함과 같이, 특히 말에 진실성(眞實性)이 있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고 있다”는 말은 다윗이 처했던 시대만이 아니라 오늘날이 더욱 그러하다 하겠습니다.
㉡ 그런데 이점에서 유념해야할 점은 본문이 교회 밖에 있는 자들에 대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신정시대(神政時代)였기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곧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를 기록케 하셔서 후대에 성경으로 주어진 것은 불신자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교회를 향해서 하시는 경계로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형제는, 가장 영광스럽고 복된 혀가 될 수도 있고, 가장 저주스러운 화가 될 수도 있는 혀가 누구의 혀인지 아십니까?
㉢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설교자의 혀입니다. 여기에 신학적인 면이 있는 것입니다.
㉮ 이점을 잠언에서는,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잠 10:11) 말씀하고,
㉯ 주님께서는,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눅 11:52) 하십니다.
㉰ 이 두려움을 알았기에 야고보는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받을 줄을 알고 많이 선생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약 3:1-2) 하고 말씀했던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불에 타고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가게 된 원인(原因)과 그 책임(責任)이 누구에게 있는가?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이는 그들이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남하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3-14) 하고 말씀하십니다. 루터는 이 성구를 종교개혁을 부르짖는 95개 조항 말미에 인용을 했던 것입니다.
또 에스겔 선지자로 말씀하시기를, “너희 선지자들은 황무지에 있는 여우같으니라, 너희가 두어 웅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서 죽지 아니할 영혼을 죽인다”(겔 13:4, 19) 하고 책망하십니다. 본문은 이런 맥락에서 받아야만 마땅합니다.
② “저희가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2) 합니다.
㉠ 저희가 이웃에게 ㉮ “거짓을 말함이여” 한다면 이는 12편의 의미문맥으로 볼 때에 비 진리를 말하는 자요, ㉯ “아첨하는 입술”이란, 유혹하는 것이고, ㉰ “두 마음으로 말한다”면 이는 위선자니, 이렇게 하는 것들이 거짓선지자의 특성인 것입니다.
㉡ 그래서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3)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너희도 알거니와 우리가 아무 때에도 아첨의 말이나 탐심의 탈을 쓰지 아니한 것을 하나님이 증거하시느니라”(살전 2:5) 하면서,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 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의도는 “아첨하는 말을 하고, 탐심의 탈을 쓰고, 사람들에게 영합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그러합니다.
③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의 혀로 이길 지라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할 자 누구리요 함이로다”(4) 합니다.
㉠ 참으로 오만하고 방자한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혀로 이길 지라” 하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지도(指導)계급이라야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처럼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은 이런 유혹과 위험에 노출(露出)이 되어 있는 사람들이 설교자(說敎者)들이라는 점 때문입니다.
㉡ 보십시오. “우리 입술은 우리 것이니 우리를 주관(主管)할 자 누구리요” 한다고 말씀하는데, 그 누구의 간섭도 받음이 없이 신성불가침의 영역같이 행해지고 있는 것이 설교(說敎)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의 혀는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만 하겠습니다.
㉢ 계시록 13장에는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 “또 짐승(적그리스도)이 큰 말과 참람 된 말하는 입을 받고,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계 13:5, 6) 하고,
㉯ “또 다른 짐승(거짓선지자)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 더라”(계 13:11) 합니다.
㉰ 주님의, “입에서 이(利)한 검이 나온다”고 말씀하는가 하면,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선지자의 입에서 나온다”(계 19:15, 16:13) 하고 말씀합니다.
현대교회는 복음진리를 보수하기보다는 성장(成長)에 급급하다보니, 누가 더 듣기에 좋은 말, 아첨하는 말, 영합하는 말을 하느냐에 해답이 있고, 승패가 달린 양 경쟁이라도 하는 양상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혀로 이기려는 자들”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실제로 어느 목회자 세미나에서 “축복하는 설교를 하라 그러면 교회가 부흥이 된다” 하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꿩 잡는 것이 매라 하는 식이지요. 이런 의미에서 본문은 지도자들에게 경종이 된다 하겠습니다. 이점이 이어지는 말씀에 더욱 분명히 드러납니다.
둘째 단원(5-8) 하나님의 순결한 말씀
둘째 단원의 중심점은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하다”(6)는데 있습니다. 이는 첫째 단원에서 고발한 “거짓말, 아첨하는 말”과 날카롭게 대립이 되는 구조입니다.
④ “여호와의 말씀에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의 탄식을 인하여 내가 이제 일어나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에 두리라”(5) 하십니다.
㉠ 성경이 말씀하는 “가련한 자, 궁핍한 자”란, 경건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인데, 이처럼 경건한 자들이 누구에게 “눌림을 당하여 탄식하게” 되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점을 미가 선지자는,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그 뼈에서 살을 뜯어 그들의 살을 먹으며 그 가죽을 벗기며 그 뼈를 꺾어 다지기를 냄비와 솥 가운데 담을 고기처럼 하는도다” 하고 원색적으로 책망을 하면서, “내 백성을 유혹하는 선지자는 이에 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 도다”(미 3:5), 즉 저주를 퍼붓는다고 말씀합니다.
㉡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하여 멸망당할 무렵의 시대상이 그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이 로마에 의하여 멸망당할 무렵은 어떠했는가? “예수께서 가르치실 때에 가라사대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과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상좌와 잔치의 상석을 원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 저희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니 그 받는 판결이 더욱 중하리라”(막 12:38-40) 하셨습니다.
㉢ 초대교회 때에 벌써 사도 바울은, “우리는 수다한 사람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混雜)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 2:17) 하고, 수단한 사람들이 “말씀”을 혼잡하게 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그리고 목회서신에서는, “저희의 입을 막을 것이라 이런 자들이 더러운 이를 취하려고 마땅치 아니한 것을 가르쳐 집들을 온통 엎드러치는도다”(딛 1:11) 합니다.
㉣ 교회사를 보면 암흑시대라 하는 중세시대가 또한 교권주의자들에 의하여, “가련한 자의 눌림과 궁핍한 자가 탄식”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다가 종교개혁으로 폭발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때나마 복음(福音)이라는 “안전지대”(安全地帶)에 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 이런 맥락에서 요절로 정한, “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銀) 같도다”(6) 한 말씀이 핵심이라 하겠습니다. 설교자의 입에서 선포되는 말씀이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銀)처럼 순전해야 한다는 말씀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忠實)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1) 하고 호소하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시대상이 아니라, “순결(純潔)한 여호와의 말씀”을 보수(保守)하는 자가 점점 없어진다는 교회(敎會)상이 되는 것입니다.
⑤ 그러나 다윗은 낙심하고 있지 아니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여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世代)로부터 영영토록 보존(保存)하시리이다”(7) 하고,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존”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 바울 사도는 그의 마지막 서신에서, “이를 (복음 전파) 인하여 내가 또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딤후 1:12) 합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의탁한 것”이 무엇인가?
㉡ 존 스토트는 그것을 “복음진리”로 보고 있습니다. 바울이 달려갈 길을 마칠 무렵에는 복음의 빛이 꺼져가는 등불같은 비관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아시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나를 버린 이 일을 네가 아나니(딤후 1:15),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딤후 4:16)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울은 순교를 당하게 되었는데 그러면 복음진리를 보수할 사명을 누구에게 의탁할 수가 있단 말인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하고, 주님께 의뢰하고 의탁한 채 순교를 당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도 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 그러면, “저를 그 원하는 안전지대(安全地帶)에 두리라”(5) 한, 안전지대가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분명해집니다.
㉮ 죄악이 관영하던 홍수심판 당시에 안전지대는 오직 방주 안이었습니다.
㉯ 장자를 멸하던 유월절의 밤에 안전지대는 오직 어린양의 피가 뿌려진 대문 안이었습니다.
㉰ 여기고성이 멸망을 당할 당시에 안전지대는 오직 “붉은 줄”을 맨 집안이었습니다.
㉱ 그렇다면 본문이 말씀하는 안전지대는, “순결한 여호와의 말씀”,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워주신 메시아언약 안 외에는 안전지대란 달리는 없는 것입니다.
㉣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1) 하고 호소하는 문맥에서, “여호와께서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保存)하시리이다”(7) 한다면, 이는 엘리야가 “나만 남았는데” 했을 때에,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하신, “남은 자”를 있게 하시리라는 뜻이 되는 것입니다.
⑥ “여호와여 도우소서” 하고 시작한 12편은, “비루함이 인생 중에 높아지는 때에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도다”(8) 하고 마치고 있습니다. “횡행(橫行)한다”는 말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 한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 이점을 주님은, “불법이 성함으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마 24:12-13) 말씀하십니다. 이점을 본문에서는,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1)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저희를 지키사 이 세대로부터 영영토록 보존하실”(7) 남은 자는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결한 여호와의 말씀과 안전지대”입니다.
적용 : 경건한 자와 충실한 자가 없어지고, 악인이 처처에 횡행하는 이 시대에 형제가 섬기는 교회가,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은 순결한 복음진리를 보수하는 교회가 되어서, 성도들의 안전지대가 되게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묵상
㉠ 다윗 당시와 오늘의 시대상에 대해서,
㉡ 혀로 이기겠다고 말할 수 있는 계층이 누군가에 대해서,
㉢ 순결한 말씀과 안전지대에 대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