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무후(天上武后)1-통권160
백호나한이 천하가 좁다 하고 폭풍처럼 몰아치자, 하늘이 놀라고 땅이 흔들렸다. 용전대전이 시작된 지 한 달. 병주의 토제가는 7만 대군을 그에게 모조리 들어 바쳤으며 임주의 학가는 한순간 몰락했다. 또한 학가와 연계하여 호시탐탐 임주를 넘보던 후선은 백호나한의 진노성에 화들짝 올라 군사를 거두었고, 흑막의 웅랑교는 다시 한 번 백호나한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백왕 호사천은 일찌감치 중경으로 가서 호황가를 단속한 뒤 단숨에 호황으로서의 입지를 굳혔고, 서제는 아차 하는 사이에 병주로부터 넘어온 11만 대군에게 퇴로를 차단당한 채 신주관에서 8만으로 줄어든 군사들과 함께 굶주리다 백호나한에게 무조건 항복하라는 종용을 받고 이내 항복하기에 이르렀다.
5월 초하루 상경 황진성. 용호왕부의 편액을 걸고 있는 상경 용황궁은 다시 그 궁명(宮名)이 용호궁(龍虎宮)으로 바뀐 대궐의 정전 앞뜰에 금관조복(金冠朝服)을 챙겨 입고, 신분과 직급에 따라 얄팍하고 길쭉한 상아로 만든 상아홀(象牙笏)이나 나무로 만든 목홀(木笏)을 두 손으로 모아 쥔 만조백관이 각자 직급과 품계에 맞춰 도열해 있었다. 따스한 봄 햇살이 비추는 용호궁 정전 앞뜰의 풍경은 많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고요하기 이를 데 없었다. 정전 북쪽 하늘에는 1000개의 깃발이 꽂힌 채 있는 허공에 떠 있는 산, 금강이 그 웅자를 과시하듯 떠 있고, 1800 백호영의 고수들이 뜰의 담벼락을 끼고 도열해 사위를 위압하는 기세를 내뿜었다.
오시(五時)가 가까워질 무렵, 중후한 느낌의 주악(奏樂)이 고요하던 뜰을 울리며 황룡문(黃龍門)이 열렸다. 반투명한 자수정 구슬을 꿴 21줄 면류관(冕旒冠)을 쓰고 눈처럼 깨끗한 하얀 궁장에 선명한 보랏빛으로 앞섶과 풍성한 소매에 테를 두른 백단(白緞) 대례복(大禮服)을 입은 천상무후(天上武后)와 칠흑처럼 검은 바탕에 앞섶과 소매에 금실로 장식한 하얀 테를 두른 흑단(黑緞) 차림의 황천상국(皇天相國)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뜰로 들어섰다. 장중한 주악이 흐르고 그 주악에 맞춰 우윳빛 투명한 상아홀을 가슴께 모아 쥐고 천천히 행진하는 무후(武后)와 상국(相國)의 뒤를 일산(日傘) 받쳐든 내관과 궁녀들이 따랐다. 만조백관은 무후와 상국이 일보, 일보 발을 내디디며 자신들 앞을 지날 때에 맞춰 두 손으로 모아든 홀을 들며 고개를 숙여 보였다. 정전으로 오르는 계단 가장 앞줄에 있는 남녀노소(男女老少)의 다양한 수인 천하의 주인들인 일황십제(一皇十帝)는 각자 자신의 가문을 상징하는 문양으로 장식한 구장복(九章服)을 차려입고 정전으로 오르는 상국과 무후를 바라보았다.
“평천하 만세 무궁(平天下萬世無窮)!”
―평천하 만세 무궁!
천상무후와 황천상국이 단에 올라 몸을 돌려 세우며 앞뜰에 눈을 주자, 명목상 천하 백관의 우두머리인 태공(太公)이 선창하고 만조백관이 이를 연호했다. ‘평천하 만세 무궁’은 십이진가가 인정한, 천자에게만 허용된 연호(連呼)였다.
라혼이 힘으로 밀어붙인 오늘의 의식은 다소 졸속한 면이 없지 않으나 법과 절차에 맞춰 진행되었다. 수인 천하에서 천자로 인정받으려면 십이진가 당주들인 진골십가 십제의 동의를 얻어내야만 했다. 이를 위해 라혼은 서제 서포틈의 항복을 받아낸 후 그를 폐위하고 다시금 금강을 움직여 갑주의 주도 흑자성에 가서 서포틈의 가문이자 서제가의 종가에 해당하는 흑서가(黑鼠家)와 대립각을 이루는 백서가(白鼠家)의 인물을 서제에 앉히는 것으로 마무리했고, 병주 토제가 또한 그와 비슷하게 처리했다. 임주의 계제는 이미 라혼의 사람이었고, 을주 마제가와 정주 사제가는 비교적 우호적인 세력이어서 그들 스스로 백호인 설화를 천상무후로 인정했다. 그리고 나머지 가문은 끝까지 결정을 보류하다가 라혼이 행사하는 군사적 압력과 그가 미끼처럼 내놓은 제안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라혼인 그들에게 던져준 것은 다름 아닌 목우유마를 살 수 있는 권리였다. 한창 경쟁적으로 재무장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목우유마로 만든 갑차(鉀車)라는 신병기는 참으로 탐나는 물건이었다. 그러한 것을 우호적인 세력에게만 판다 하니 중원십일주의 주인들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지는 이때에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조건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다 목우유마를 파는 유일한 상단인 토금전장은 그와 더불어 앞으로도 계속 수조권을 갖기를 원했고 십제들은 그것역시 허락해야 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백호나한이 무후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적으로 간주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여(余) 라혼은 용황 폐하를 대신하는 자로서 용황의 이름으로 천상무후를 새로운 천자로 인정할 것이다. 고로, 천하에 무후를 부정하는 자는 본 용호왕의 이름으로 쳐부술 것이며, 언제나 무후와 함께하며 무후를 지키는 보검이 될 것을 하늘에 두고 맹세한다. 또한 천상무후는 400년 사직을 이어온 십이표기의 수장을 넘어 천하 만백성의 어머니이니 오는 원단에 이를 천지신명(天地神明)께 고할 것이다.”
웅혼한 공력이 섞인 외침이 용호궁 정전 앞뜰에 울려퍼졌다. 라혼의 이러한 선언은 이미 예고된 것으로, 따로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후선과 웅랑교를 두고 한 것이었다. 라혼은 이미 후선 황실에 동인성, 앙신성, 후려에 제(帝) 3인을 인정하며 원단(元旦)에 입조(入朝)를 종용하는 친서를 보냈다. 물론 라혼은 자신에게 100년 충성을 약속한 오신룡 중 앙(殃)과 우(于)가 장악하고 있는 웅랑교에도 공식적으로 흑막, 의백성에 두 명의 제(帝)를 인정하며 입조하라는 친서를 보냈음은 물론이었다.
라혼의 이러한 일련의 조치는 조정(朝廷) 천원 회의에 확실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자가 열둘에서 다섯이 늘어 열일곱이 되는 일이므로 십제들이 좋아할 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이미 천상무후를 인정한 마당인지라 기세에 밀리고, 또 무후가 된 천상천화 외가라는 입장이 고려되었다.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 웅랑교가 웅제(熊帝)와 낭제(狼帝) 둘로 나누어 서로 견제케 하고 후선을 셋으로 나눈다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주장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그리고 사실상 힘 있는 실세가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니 그가 검을 뽑아들고 무력을 동원하라 명하면 따라야 하는 입장인지라 되도록이면 대규모 원정을 피하는 것이 나은 십제들의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형세가 달갑지 않을 뿐이었다. 그리고 진골십가라 불리던 십제들은 오는 원단엔 명목상의 천자가 아닌 진정한 천자, 진명천자(眞命天子)가 나올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땐 자신들도 허리를 굽혀 굴신(屈身)하는 관리들처럼 천자인 천상무후에게 고개를 숙여야 함을 알았다. 그러나 오늘까지는 무후가 십이표기를 대표하는 수장에 불과하므로 비록 단 아래 있을망정 고개를 숙이는 참담함은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허리를 펴고 고개를 들고 있는 십제들의 눈에 자신들의 머리를 짓누르는 위압감이 들게 하는, 하늘에 떠 있는 금강의 모습이 들어왔다.
‘백만대군을 사흘이면 어디로든 옮길 수 있고, 높은 성벽도, 험한 지형도, 난공불락의 요새로도 막을 수 없는 저것이 백호나한의 손에 있는 이상 그를 거역할 수는 없겠지….’
서제가의 새로운 서제 서오승(鼠悟昇)의 생각은 다른 십제들, 아니 용호궁 정전 앞뜰에 모인 모든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