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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智異 千年 朱木의 沈默’을 들으러...
-노고단*천왕봉*칠선계곡까지~ 지리산 종주기-
1. 또다시 도지는 열병
마치 무슨 업보처럼...
황금 연휴만 다가오면 나는 몸살을 앓는다.
이 금싸라기 같은 여백을 어찌 채워야 할지?.....
어떻게 다듬어야 이 황금덩어리를 가장 값진 명품으로 만들 수 있는지?...
그렇게 연휴만 앞두면, 늘 설레임과 열병에다 고열로 끙끙거리게 되나 보다.
10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간 이어지는 금쪽 같은 연휴를 앞두고 어디로 산길을 잡을지 고민에 빠진다.
카페 정산도 있고, 청계천에서 중랑천으로 이어지는 맛깔 나는 SG-242 워킹도 있지만...
그거야 늘 되풀이 되는 월례행사라, 이 황금연휴만큼은 좀더 온전하게 누리고 싶다.
그래.. 그게 있었군!
칠선계곡(七仙溪谷).....
지리산 종주 후 칠선계곡(七仙溪谷) 10km 남짓 하산 길...
근 10년 가까운 입산 통제구역(1999년부터 자연 휴식년제에 들어감)이 오랜 침묵을 깨고
지난 5월부터 처음으로 제한적, 한시적으로 탐방예약 가이드제로 개방되고 있는데,
인터넷으로 보름 전에 신청하여 하루에 40명씩 월.화.목.금. 4일간 안내원 통제와 인솔하에
주 2회 칠선계곡 오르막 내리막 왕복산행을 하는 코스이다.
인터넷 신청은 평일이니 나에겐 해당도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연중 4개월(5~6월, 9~10월)에 한해 개방되고 당첨되기도 하늘의 별 따기이니,
요행을 바랄 체질도 못 된다.
30기 산악회 박부회장님께서 얼마 전 발급해준 ‘명예 산림보호 지도원 증’이 있으니
그걸 앞세워 무작정 결행하기로 결심을 하고 만다.
기왕이면 제일고 30기 산악회의 내공 있는 정예요원 동기들과 함께 발을 맞추자!
그렇게 번개를 잡기로 작정한 후, 연휴를 여러 날 앞두고 입질을 시작해 보는데...
그러나 누구도 반응하지 않는다.
무슨 선약, 무슨 결혼식, 무슨 스케줄, 또 무슨 놈의 체력 운운들...
평소에 강행군 산행안내로 악명(?)을 드높인 참담한 대가가 여실히 드러나고 마는데...
아, 이넘의 식어버린 인기(언제는 있었던가?)에 차오르는 야속함을 주체하지 못한 채,
‘그래, 좋다! 혼자서라도 넘고 말 거야~ ’
어금니 꽉~ 깨물면서 독하게 마음 먹는다.
누구 말처럼 시련은 스스로를 더욱 강하게 단련시킨다나, 어쩐다나?
그런데 간절한 프러포즈는 엉뚱한 데서 왔다.
오래 전 삼각산 산행에서 우연히 만나 하루 산행을 좀 빡세게 안내해준 적이 있는
백마누이가 나를 ‘사부’라고 호칭하며 따르는데, 마침 칠선계곡 산행을 위해서 백방으로
탐문하던 중에 우연히 소식을 접하고는 함께 데려가(?) 달라고 부쩍 보채기 시작한다.
늘 같이 산행하는 수지누이와 동행하겠다고 한다.
수지누이도 삼각산 산행에서 한번 만난 적이 있고, 40년 가까운 산행 경력의 빡쎈 내공을
지니고 있지만, 백마누이는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초보를 막 벗어난 수준임을 아는데...
그러나 본인이 하고자 하는 의욕만큼 더 위대한 내공이 어디 있으랴!
당장 그날부터 삼각산 일일 산행 강행군을 통신 지휘로 remote control(원격조정)을 시작한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뜻밖의 원군이 나타났으니,
백사모(백두대간을 사랑하는 모임)의 이대장이 사모와 함께 동행하여 참가하겠다고 한다.
백사모 정산을 하면서 우연히 지나가는 말처럼 칠선계곡 지리산 종주를 할거라고 했더니,
내공 강한 대장 사모 고여사님께서 바짝 관심을 보이고 끝내 이대장까지 함께 산길을 밟기로 하였으니,
내공강한 이대장과 함께라면 지구 끝까지라도 함께 갈 수 있지 않은가?
나로선 더 없는 행운이었다.
칠선계곡은 장기간 특별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사람의 발길을 허락하지도 않았지만,
길이 험준하고 위험하기로도 예전부터 악명이 높았던 곳인데,
암벽 선등 전문인 이대장이 길을 인도한다면 절반은 성공한 거나 다름이 없지 않은가?
그저 한시름을 놓는다.
출발 이틀 전, 준비물에 대한 상의도 할 겸 시간을 내어 백마누이와 저녁을 함께 나누었다.
누이는 종주를 잘 부탁한다면서 비싼 등산 스타킹에다 고급 등산 장갑까지 선물로 주는데,
아무 것도 아닌 일에 괜히 겸연쩍다.
잘 안내하지 않으면 재미없다는 협박 섞인 뇌물(?)은 아닌가? ~아우 뜨거~~ 훅~~~
그러나 대장님을 위해서 순수한 마음을 담았다고 우기니 고맙다며 받을 수 밖에...
처음 해보는 종주라 많이 긴장하는 눈치다.
여차하면 샛길로 탈출하겠다는데,
지리산이 어디 중간 탈출로라고 호락호락한 데가 있을까...?
죽자 사자 선두를 따라 붙어야만 해낼 수 있다고 쇠뇌교육, 또 엄하게 협빡한다. ㅎㅎ...
2. 첫째 날
드디어 출정.
2008년 10월 3일 개천절 아침 9시,
용산역 7번 출구 새마을 승강장.
애초엔 10월 2일 밤 기차로 출발, 새벽부터 산행을 시작하려고 했으나 인원 변동이 계속 생기는 바람에
예매가 늦어져 전일 출발은 기차표가 매진, 겨우 3일 표로 예매를 하였는데,
따라서 산행은 일정 추진이 엄청 빠듯해진 셈이다.
1일차에 벽소령 대피소까지는 도착해야만 다음 산행이 비교적 순조로운데,
오후 1시 22분 구례구역 도착이면 오후 2시 반은 돼야 산행 시작이 가능하니,
뱀사골 산장쯤 가면 해가 떨어질 것이다.
다음날 장터목까지의 산행이 장거리이니 초보자를 감안하면 상당히 힘든 산길이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것은 스스로 부딪치면서 해결할 수 밖에....
출정 날 당일은 늘 정신 없이 바쁘다.
어제 중전과 같이 참석한 모임에서 늦게까지 한잔을 나누고 대충 시장만 보아 놓은 채,
그냥 잠자리에 들고 말았는데, 새벽 4시부터 일어나 설쳐대도 꾸려야 할 짐은 끝이 없다.
허긴 3일간 입고, 덮고, 먹고, 마셔야 할 짐들이니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할 수 없는데,
더 이상 집어 넣을 공간이 없어 과일 몇 개는 빼 놓았는데도 자연 45리터의 배낭은 한 짐이 빵빵하다.
배낭 메고 제자리에서 일어서기도 버겁다.
하지만, 어차피 장거리 산행은 고행의 길이다.
일도(一到) 정진(精進)하는 수도승의 심정으로 배낭을 둘러 메는데,
시간여유가 너무 없어 그냥 택시를 줏어 탄다.
미리미리 짐을 챙기지 못하는 천성이 이렇게 과분한 2만 냥의 지출을 부른다.
헌데 서두르면 꼭 낭패를 보는 것이, 인터넷으로 예매한 국민카드를 미처 챙기지 못했다.
시간이 없어 택시를 다시 돌릴 수도 없고 현장에 가서 해결하기로 하는데....
창구에서 가장 인상 좋아 보이는 언니를 찜(!)하고 사정 얘기를 했더니,
철도 회원 특전이라며 자기 일처럼 돌봐준다.
그렇게 시작부터 야기된 큰 걱정 하나를 천사님 덕분에 아슬아슬하게 또 위기를 넘긴다.
어디에든 천사는 계시나니, 용산역 종합안내소 김남희 엔젤님~ 거듭 감사요~!
내공 강한 고여사가 환한 미소와 함께 등장하고, 또 뒤늦게 커다란 배낭 메고 나타난 백마누이,
모두들 한 짐이 빵빵~
배낭 무게만큼이나 각자의 기대도 빵빵하리라.
수지누이는 수원역에서 중간에 합류키로 한다는데, 부실한 아침에 백마누이가 아침식사를
사주겠다고 졸라서 커피도 마실 겸 식당칸으로 이동한다.
함박스테이크 도시락이 생각보다 충실하여 그런대로 입맛을 돋운다.
누이가 가져온 복분자 한 병을 그만 도시락과 함께 모두 건배해 버린다.
수원역에서 합류한 수지누이와 또다시 건배한 후, 만일을 위해서 미리 한잠 때리기로 하고
자리로 돌아와 억지로 잠을 청한다.
김해에서 출발하는 이대장은 화엄계곡으로 올라 성삼재에서 시작하는 우리와 합류하겠다고 한다.
상당한 강행군일텐데...
그러나 내공 강한 이대장이니 염려는 놓아도 되리라.
칠선계곡 지리종주를 뒤늦게 안 백사모의 우대장이 저녁 기차로 내려와 다음날 아침
우리 일행과 합류하겠다는 문자를 보내온다.
뒤늦게, 왜 이렇게 갑자기 인기가 샘솟듯 치솟는가?
그렇게 졸라도 다들 모른 척 하더니만...?
그러나 모처럼 코스와 기회가 좋으니,
산에 죽고 못사는 우리 같은 산꾼들이야 모두들 어렵게 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가 않음을 안다.
황금 들녘으로 가을 정취가 물씬한 호남의 곡창지대를 지나고(금년은 하늘의 보살핌으로
가을 태풍마저 없어서 근래 보기 드문 대풍이다!) 4시간 반을 달려 구례구역에 닿는다.
급한 생리현상부터 먼저 해결하고, 마침 역전에서 대기하고 있던 밴에 오른다.
거금 3만냥 투자.
헌데 성삼재 오르는 고개 길을 가로 막은 채, 천은사 문화재 관람료 1600냥씩 압수(?)다.
‘쯩’을 제시하며 잠시 발광을 떨어보지만, 산림청장에게 가보라며 씨알도 먹히지 않는다.
꼭 날강도(?)들에게 갈취 당하는 기분이다.
위치도 모를 뿐더러 들르지도 않는 사찰에서 문화재 관람료 징수가 웬말이며,
통행료라면 자기들이 도로를 닦은 것도 아닌데.. 하는 원망으로 초장부터 기분이 조금 잡친다.
국립공원 입장료가 없어져 다행이라 여기며 반겼더니만, 사찰의 횡포는 부쩍 더 심해진 것 같으니,
대자대비(?)한 불심(佛心)이 조금은 야속하기도 하다.
그러나 안 좋은 기억은 빨리 잊어 버려야지~~...
절치부심(切齒腐心)의 대사(大事)를 눈앞에 두고 있거늘...
소탐대실(小貪大失), 쓸데없이 격한 마음으로 거사를 앞두고 집중해야 하는 기(氣)에
상처를 입을 순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스스로를 달랜다.
2008년 10월 3일 오후 2시 반, 성삼재.
드디어 대장정의 출발이다.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는 2.5km의 포장도로, 길은 좋지만 만만찮은 오르막이다.
이봉규 대장은 화엄계곡에서 오르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도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다.
모두다 배낭이 한 짐들이니 누구 하나 만만치가 않은데, 백마누이가 조금은 걱정스럽다.
우리야 수없이 장거리 야간 산행에 단련된 몸들이 아닌가?
게다가 산행 중에 먹을 점심 도시락을 싸온 누이는 내 몫까지 피크닉 가방에 넣어 왔으니,
손에 들고 오르는 것이 여간 고역이 아니다.
산행 중에는 가급적 스틱 외에는 손에 드는 것이 금물인데,
이런 종주 산행에선 더욱 그렇다.
빨리 먹고 버리면 된다고 하지만, 이런 산중에다 함부로 버리는 것도 절대 안될 말이다.
화엄계곡에서 오르는 길과 만나는 3거리 코재를 지나고,
노고단 대피소(해발 1,500m)까지 지름길을 택하여 약 40분 가량을 헥헥거리며 올라 치는데,
누이들은 지리산 종주가 초행이라 더욱 긴장이 되었을 법하다.
지리 10경 중 노고단의 운해는 백미로 꼽히는데, 오늘은 날이 맑아서 아쉽게도 구름이 없다.
노고단 대피소를 배경으로 간단한 기념 촬영을 마치고 준비해온 도시락은 노고단 고개에서
먹기로 하고 다시 올라 친다.
짧은 거리(500m)인데도 상당한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깔딱이다.
마침 노고단 고개에서 노고단 정상(해발 1,507m)에 오르는 길은 오후 3시 반까지 개방 중이다.
오랜 기간 휴식년제로 묶여있던 곳인데, 이렇게 한시적이나마 오늘은 개방까지 한단다.
모처럼 좋은 기회이니 다녀 오라고 했으나,
누이들은 장도(長途)에 조금이라도 에너지를 아끼려는 생각이었던지 완강(?)하게 사양이다.
20년 전(’89년) 여름에 혼자서 무작정,
미처 지리산 산행 지도도 준비하지 못한 채 처음으로 지리산 종주에 도전했을 때,
천왕봉을 넘고 저 곳 노고단 정상에 이르러, 지금은 열반하신 ‘성철’ 종정스님을 뵈었었다.
큰스님께서는 많이 불편하신 거동 때문에 젊은 학승(學僧)들의 부축을 받으셨는데,
얼굴만은 화색(和色)으로 감도는 동안(童顔)이었었다.
그때, 법문이라도 청하여 들을 것을.. 하고 나중에야 아쉬워하기도 했었는데...
무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던 스님의 그윽하면서도 맑은 눈 빛을 잊을 수가 없다.
그때 종정 스님께서는 수행한 학승들에게 내가 넘어온 천왕봉을 가리키면서
“25년 전에 내가 저기 저 천왕봉에 올랐었어!”
하시는 큰스님의 옥음(玉音)을 들었었다.
너무도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나도 그만 덩달아 합장한 채,
부축을 받으며 코란도에 올라 노고단을 떠나시는 종정 큰스님을 배웅했으니,
벌써 20년 전의 일이다.
그 몇 년 후(’93년 무렵이었지? 아마...), 스님께서는 그만 사바세계를 열반하시고 말았으니,
생불(生佛)이라 불리시며 존경을 받으시던 종정 큰스님의 법성(法聲)을,
그때 직접 들은 것만으로도 큰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인가?
그 후, 이번까지 5번째 지리산 종주를 하고 있지만, 지리산에만 들어서면 종정스님과의
그 귀한 조우(遭遇)의 인연이 뇌리에 강하게 각인되어 새삼 기억을 되살려 주곤 한다.
무념행 보살은, 이런 조우도 전생의 대단한 업이 맺어준 귀한 인연이라고 축복해 주었는데...
노고단 정상 돌탑을 치어다 보며 아련한 옛 추억에 잠시 젖어 본다.
열반하신 큰스님께서, 노고단 정상에서부터 성큼성큼 계단을 걸어서 내려 오실 것만 같다.
짐을 덜어야지..
열심히 우걱우걱 구겨 넣는다.
어차피 저녁 끼니까지는 이것으로 버텨야 한다.
그때 화엄계곡을 오른 이봉규 대장이 나타나고 우리는 모두 박수로써 환영한다.
단내 나는 구간을 무거운 배낭 둘러메고 오른 대단한 내공이다.
지리 구간 중 가장 악명 높은 화엄계곡 돌 계단 오르막 길. 걸어본 사람들은 안다.
우린 같이 남은 도시락을 마저 비우고 오가피주로 건배하며 3일간의 무사종주를 기원한다.
이제 본격적인 고행의 출발이다.
지금까지는 워밍업이었지만, 이제부터는 저 멀리 까마득하게 보이는 천왕봉까지
두 다리로 한발한발 밟으며 올라야 하는 것이다.
늘 새벽 길에 랜턴 걸고 넘던 임걸령 가는 길.
오늘은 모처럼 환한 대낮에 걷는다.
임걸령까지는 비교적 평탄한 길이다.
옛날 삼국시대, 신라의 화랑들이 말을 타고 활을 쏘면서 달렸다는 길이다.
길가에 핀 들국화(구절초)의 연자주 빛이 곱고, 잠시 주저앉아 꽃잎을 어루며 그 동안
지리의 안부와 가을의 정취를 물으며 대화를 나누고 싶은 추심(秋心) 또한 간절하나,
종주에 바쁜 마음이 그런 망중한을 허락하지 않는다.
멧돼지가 원추리와 나무 뿌리를 캐먹어서 붙은 이름이라는 돼지평전(해발 1,424m)과
지리 10경 중 하나인 직전단풍(稷田丹楓)으로 유명한 피아골계곡과 연곡사 하산 갈림길인,
피아골 3거리를 지나 도착한 임걸령의 샘물은 여전히 넉넉하다.
다리 쉼도 할 겸, 시원하게 목을 축인다.
이 높은 능선에서 이처럼 샘물이 콸콸 솟다니, 지리가 명산임을 웅변으로 증명하고 있다!
기념 촬영을 끝내고 다시 출발, 임걸령(해발 1,432m) 뒷산 깔닥 고개를 올라 치고
노루목 3거리에서 다시 숨을 돌린다.
노루가 목을 쳐들고 있는 형상이어서 이름 지어졌다는 노루목.
노고단 고개에서 이곳까지는 4km 거리이다.
여기서부터 반야봉(해발 1,732m)까지는 1km 거리를 왕복하는 갈림길인데,
왕복 1시간 반쯤은 다녀와야 하는 길이니, 갈 길이 바쁜 우리는 아예 생략하기로 한다.
지리 10경 중 하나인 낙조로 유명한 반야봉(1,732m)은 지리 주능선상에선 약간 비껴 있으나,
지리산군 중에서 천왕봉(1,915m), 중봉(1,815m), 제석봉(1,806m), 하봉(1,781m)에 이어 5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천왕봉 노고단과 더불어 지리산 3대 주봉으로 불린다.
3년 전에는 반야봉도 들르고 천왕봉과 중봉 써리봉을 넘어 치밭목 산장을 거쳐 대원사 계곡으로 빠져
유평리로 하산했었다.
그 해 가을엔 파트너를 바꾸어 가면서 두 번씩이나 지리 종주를 했었다.
1km 거리에 있는 삼도봉(해발 1,550m)으로 가는 능선 길에 3년 전 종주할 때에는 없던 묘지가 하나 들어서 있다.
누군가 이곳까지 상여를 운반한 모양인데, 기가 센 백두대간 능선 상의 묘소는
여간 기가 세지 않고선 감당하기 어려울 텐데.. 하고 조금은 염려도 해본다.
드디어 삼도봉(일명 날라리봉)에 이르러 각도의 방향을 가리키는 삼각 표지판을 중심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의 산세를 조망한다.
서서히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산세의 푸른 기운이 강렬한 정기를 내뿜는 것만 같다.
이것이 바로 백두산에서부터 뻗어내려 이곳까지 산줄기로 이어진 백두대간의 구비구비 서린 기운이려니....
두분 누이들은 저녁 먹을 밥까지 준비해 왔는데, 덕분에 저녁식사는 찌개만 끓여서 먹어도 될 듯싶다.
다시 화개재까지 뚝 떨어지는 내리막 급경사를 내리친다.
가파른 내리막이 한동안 이어지고 드디어 화개재(해발 1,360m)에 도착하니 어두울 무렵인 저녁 6시 반이다.
성삼재에서부터 이곳 화개재까지 8.8km 거리를 그럭저럭 4시간 산행을 한 셈이다.
뱀사골 산장은 예약을 하지 않았으니 이 고개에서 비박을 하기로 한다.
벌써 먼저 도착한 산꾼들은 명당을 선점하고 끼니와 술판을 준비하여 즐기고 있는데,
우리는 이대장이 준비해온 비닐을, 맨땅에다 꽂은 스틱에다 걸어 텐트처럼 만든다.
바닥에도 비닐을 깔고 방습 매트를 편 후, 그 위에다 침낭을 펴서 잠자리를 준비한다.
하룻밤을 기거할 산중 특급호텔이 얼렁뚱땅 급조된다.
산꾼들은 모두다 재주꾼들이다.
특히 바깥 일을 많이 해본 마당발 이대장 덕분에 매사가 서투른 내 체면이 조금은 묻어 넘어가는 듯싶다.
늠름하고 믿음직한 우리 이대장님!
저녁 메뉴는 수지누이가 준비해온 명품 된장 찌개와 솜씨 좋은 고여사가 준비한 돼지 양념 불백이다.
랜턴을 켜고 500m 거리의 뱀사골 대피소까지 내려가 쌀을 씻고 식수를 받는다.
내일 아침에 지을 밥을 미리 씻어서 불려 놓아야 한단다.
대피소 샘터까지는 배낭 메고 내려 갔다 올라오면 진이 빠지는 지독한 급경사 길이다.
지금은 551개의 나무계단을 놓아 그나마 밟고 오르기 쉽도록 만들어 놓았다.
별이 총총한 화개재는 산꾼들이 밝히는 랜턴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룬다.
그 옛날 뱀사골 산내면에 사는 장돌뱅이들이 산나물과 시장거리를 등짐지고 이 화개재를 넘어,
불무장등을 거쳐 하동 화개장에 가서 소금이나 해산물과 물물교환하며 넘나들었다는 유서 깊은 고개인데,
오늘은 우리들이 선조님들께서 닦아 놓은 너른 고개에서 음풍농월하며 하루를 의탁한다.
이 또한 선조님 덕분에 누리는 호사이려니...
수지누이의 된장찌개는 정말 명품이다.
구수한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입에는 군침이 돈다.
찬밥을 말아 먹으니 고단했던 하루 산행의 노고가 거뜬하다.
언제 또 맛볼 수 있느냐고 했더니, 언제 한번 날 잡아 삼각산에서 한 상 차리자고 한다.
밥만 먹고 사는가?
힘들게 이곳까지 수송한, 내 배낭 구석 깊은 곳에 숨어 있던 1.8리터짜리 대짜 두꺼비까지 색출하여
우리는 앞으로 남은 구간의 무사한 종주를 기원하며 건배를 외친다.
고여사의 양념 불백이야 안주로선 으뜸이고, 특히나 자랑하는 3년 곰삭인 김치는
백두대간을 같이 하던 시절부터 명품으로 늘~ 인기 1순위 품목이었다.
각자 준비한 반찬이 배낭에서 바리바리 쏟아지는데, 요리 품평회장이다.
세 여인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듬뿍 배인 명품들이 즐비하니, 3일 동안 반찬 걱정은 뚝이다.
곡차에다 푸짐한 안주에다 원 없이 건배를 외치며 취기에 젖어보는데.....
갑자기 우리의 명물낭자(백마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배낭 속을 뒤져 비닐에다
실로 꽁꽁 동여맨 웅담을 꺼내어 한 조각씩 나누어준다.
내일 아침 취기를 없애는 데는 웅담만한 것이 없단다.
알싸한 맛이 몹시 쓰지만, 오리지날 웅담이라고 하니 찡그린 얼굴도 만족스러워 보인다.
산행 경력 수십 년에도 산중에서 이렇게 웅담을 먹어보기는 난생처음이니,
지리 종주와 명물낭자가 아니라면 언감생심 어디서 이런 진품을 맛볼 수 있으랴!
앞으로 백마누이는 호칭마저도 웅담누이(!)로 바꿔 불러야 하지 않을까?
역학공부 사주팔자 짚기는 기본이고 도사님으로부터 전수 받은 기맥상통에 운기조식까지...
기만 쎈줄 알았더니 재주도 많고, 양의 동서와 때의 고금에 두루 박식한 우리누이~!
기분에야 꼬박 밤을 새우고도 싶지만 내일 산행을 위해서 그만 잠자리에 들기로 하는데,
바로 옆에 자리잡은 젊은 산꾼 일행들이 환하게 불을 밝힌 채 고성을 멈출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나처럼 감각이 무딘 사람이야 별일이 없지만, 예민한 웅담누이는 더 이상 참지 못하겠는지
벌떡 일어나더니 옆 자리 이웃도 좀 생각하라고 점잖게 타이른다.
그러자 약발이 약간 먹혔는지 조금 자지러지는 것 같던 젊은 동지들의 흥분과 열기는
찰나의 순간이 지나는 듯싶자 또다시 열광의 도가니로 재발(?)되고 만다.
쌍쌍이 이곳까지 오른 젊은 혈기가 모처럼 대자연의 너른 품에 안기니,
총총한 밤하늘의 별빛을 바라보며 청춘의 끓는 열기로 가슴 벅차는 그 기분을 조금은 알 것도 같은데...
저 화염처럼 불타오르는 청춘(!)을 어찌 탓하랴!
그러나 예민한 두분 누이는 환하게 밝힌 불빛 때문에 쉽게 잠들지 못하는 것 같다.
누군들 이곳에서 마냥 밤을 밝히고 싶지 않으랴?
그러나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내일의 강행군이 기다리고 있으니,
오늘밤 하루는 경건하게 근신해야 함을 안다.
그렇게 청정한 지리(智異)의 넓은 품 속에서 맞이한 우리의 첫날 밤,
만리장성은 침낭 속에서 고요히 깊어만 간다.
서울에선 쉽게 볼 수 없는 밤하늘을 수놓은 총총한 별자리를 자장가 삼아.....
저 별은 8분 음표~ 저 별은 4분 음표~~ 또 저 별은 도돌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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