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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운문 종주는 오래전부터 서울의 전종성과 산행하기로 약속했던 코스였다. 가지산 갈 때에는 전현수도 같이 간다라는 말도 들었다. 한창 100명산 등정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한번에 100명산을 두개씩이나 오른다는 것은 퍽이나 매력이 있게 보인다. 나로서도 일찌기 얘기 들었던 악몽의 아랫재 코스에 한번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아랫재에는 악몽이 없었다. 예전에 이곳에서 혼이 났다는 그들은 영남알프스를 이틀 동안 종주하다가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마지막에 이 아랫재로 떨어졌을 것이다. 그리고는 지친 몸으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운문산을 올랐겠지. ㅋㅋ 우리는 아랫재에서 운문으로 단숨에 올랐다. 가래떡을 씹으며 니죽거리면서..........ㅋㅋ
여러 친구들이 오고싶었겠지만 개인 사정상 또는 산행이 너무 힘들어 보여서 또는 무박이 불편해서 등의 여러가지 이유로 불참하고, 전 trio(전종성, 전현수, 전세인)만이 새벽4시에 경주로 내려왔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그저 쳐다보고 웃는다. 우리는 멀리 떨어져 살지만 산에 가기 위해 자주 만난다. 오늘도 만났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 앞에는 산이 놓여 있다. 이런 것은 요즘의 우리들의 하나의 일상이다. 이 나이가 되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때 열심히 하라.........주의가 맞다.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니, 하고 싶은 일을 지체한다거나 미룰 일이 아니다. 한 때 시들했던 산행이 요즘 다시 재미가 붙었고, 그래서 다시 열심히 다니는 것이다. 몸은 예전 같지는 않지만 부지런히 다닌다. 예전과 달라진 것은 산 말고도 좋은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나와는 조금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 말이다.
자! 11.1일, 새벽 4시 경주고속버스터미널이다. 서울에서 전종성, 전현수, 전세인 세 친구들이 내려왔다. 우리들의 이야기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서울에서 온 세 친구들을 바로 픽업하여 해장국으로 유명한 경주 팔우정로타리 해장국거리로 왔다. 해장국 먹으러 왔다기 보다는 이 시간, 새벽 4시경에 식사할 곳이 여기 밖에 없을 것 같았다. 24시간 오픈하니깐...............
해장국들이 지역마다 산물에 따라 다 다르듯이 경주 해장국도 다른 지역과는 다르다. 경주 팔우정로타리 해장국거리에 늘어선 수십개의 해장국집들의 해장국은 거의 맛이 비슷하다. 주로 메뉴가 3가지인데 해장국, 선지국, 추어탕이다. 그중 경주 해장국은 메밀묵에 김치와 해초인 톳을 넣어 끓인 것으로 큰 맛은 없지만 시원하고 소화가 잘 되어 말 그대로 숙취한 뒤 불편한 속을 달래기에는 제법 괜찮은 해장국 같아 보인다. 서울의 그 유명한 청진동 해장국은 맛은 있을 지 몰라도 속 푸는 데야 그리 적합한 음식은 아니지 않는가?
경주해장국은 보기에는 변변찮게 보이지만 맛은 시원하다. 메밀묵은 아래에 깔려 보이지 않는다. 결국 메밀묵, 톳, 김치, 콩나물......이 들어갔으니 해장하기에는 양질의 음식이다.
선지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선지국으로.............흡혈귀 족속들!
식사를 하고 이제 새벽 5시 경, 산행지로 떠날 준비를 한다. 회귀산행이 아니므로 차는 내 차와 단미의 차, 2대가 간다.
우리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려 서울산에서 내려 언양읍내를 지나 가지산터널을 궤뚫어 바로 경남 밀양 산내면 석골사로 들어가 단미 차를 세워 두고 내차에 모두 타고 석남터널로 올라온다. 석남터널은 터널을 경계로 남쪽은 경남 밀양시 산내면이고 북쪽은 울산시 울주군 상북면이다. 지금 우리가 선 곳은 터널 북편 울산 울주 상북이다. 말하자면 가지산 석남사 위다. 시간이 6시 반 경이라 아직 어둑어둑하다. 하지만 곧 여명이 틀 것이다.
가지산 산행 들머리는 길 건너편에 있다. 석남터널을 우회하여 올라가는 길이다. 산행 출발 시각은 아침 6:45분. 드디어 출발한다. 오늘은 먼 여정이 될 것이다. 8시간에서 10시간이 걸리는 코스인데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힘 좀 써야하는 산행이 될 것이다.
조금 오르다 내려다 보면 석남터널 상가지역이 보이고 석남사에서 올라오는 도로가 구비구비 보인다. 이길로 계속 내려가면 언양이 나온다. 예전에는 이 길이 울산에서 밀양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길이었지만 지금은 관광 이외에는 이 길로 다니지 않는다. 밑에 가지산터널이 뚫렸기 때문이다. 영남알프스는 산의 규모가 꽤 되어 가지산터널은 죽령 터널 다음으로 한국에서 긴 터널이다.
석남터널이 점점 멀어진다.
열심히 오르고 있는 팀. 전세인은 유격조교 모드로 올라온다.
가지산이 중심에 있는 가지산 도립공원은 흔히 영남알프스라 하는 가지산(1240m), 신불산(1208m), 운문산(1195m), 영축산(1081m), 재약산(1189m, )간월산(1083m) 일원과 천성산(812m) 등의 일원을 포함하여 1979년 11월에 도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전국 도립공원 중 그 범위가 가장 넓어서 통도사-석남사지구 및 인접 양산군지구로 나누어진다.
해발 천미터가 넘는 고헌, 가지, 운문, 재약, 간월, 신불, 영축, 문복산 등이 일대 산군을 이루며 솟아 있고 그 고산들 정상부가 넓은 평탄면으로 되어 있어 이곳을 '영남 알프스'라 부른다. 가지산과 운문산은 경상남북도의 경계지역으로 영남알프스 산군 중 가지산이 가장 높다.
가지산에는 곳곳에 바위봉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운문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능선을 따라 종주를 많이 한다. 가을이면 석남고개에서 정상에 이르는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고, 기암괴석과 쌀바위-귀바위-운문령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은 장쾌하기만 하다. 가지산 정상 주변에는 암릉이 많아 나무가 별로 없는 대신 시야가 훤하게 트인다. 가지산에는 바로 앞에 있는 듯한 바위산인 백운산, 호박처럼 생겼다는 연못 호박소가 동쪽으로 있고 산 아래에는 대찰 석남사가 자리잡고 있다.
석남고개로 올라오는 창명(전현수)과 단미. 보기에도 아침 바람이 세어 보인다.
석남고개 넘어 가지산으로 나아간다. 창명은 처음부터 선두에서 내닫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가야할 길은 멀지 저녁에 서울 올라갈 차 시간은 예약되어 있으니 맘이 서둘러 지겠지.
오르막 나무계단 앞에 다다른 일행들. 가을 산행, 가을 모습이다.
기나 긴 나무계단 지역으로 진입한다. 저 나무계단은 상당히 길다. 길이 황폐화되는 것을 막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리고 된비알, 다리에 힘이 팍팍 들어간다.
중봉을 선점한 전세인. 사람 좋은 세인이는 술이 취하면 자기 집으로 가자고 늘 고집하는 순수한 친구다. 부창부수라고 세인의 아내도 손님을 모시고 오라고 종용하는 참한 사람이다.
진도가 제법 나갔나? 이제 정상 가지산은 350m밖에 남지 않았다.
정상 부근에 오니 가스가 찬다. 정상부가 가스로 가려져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상태이다. 산 밑에서 보면 구름으로 가려져 있는 지역에 들어온 것이다.
드디어 정상. 근방에 있어도 잘 오지 않게 되는 가지산에 얼마만에 왔던가? 10여년 전 낙동정맥 종주할 때 운문령에서 배내재까지 가면서 정재수, 정인수 형제와 술에 취한채 여기에 왔었지. 그때는 운문령-쌀바위-가지산-석남고개-능동산-배내재까지 갔었다. 부자인데다 사람까지 좋아 늘 주변사람들에게 퍼 먹이는 정재수 친구는 아직도 나의 옆집에 살고 있다. 요즘은 마라톤에 심취해 있지.
가지-운문산행 5인조. 이 모든 것은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영남알프스 산군에서 가장 높은 가지산은 능선 곳곳에 바위봉과 억새밭이 어우러져 있고 전망이 좋으며 밀양강의 지류인 산내천과 무적천의 발원지이며, 심심계곡, 석남사골, 쇠점골, 학심이골 등의 계곡과 쌍폭, 구연폭포, 구룡소폭포, 호박소 등의 명승지를 가지고 있다.
가지산 정상으로 낙동정맥의 산줄기가 지나간다. 백두대간 태백산에서 갈라져 나온 14개 정맥중 최대 산줄기인 낙동정맥(낙동강 우측 산줄기)은 태백산-백병산-통고산-칠보산-백암산-창수령-맹동산-황장재-주왕산-도덕산-단석산-고헌산을 지나 가지산으로 들어오는데 이 후로 가지산-능동산-간월산-신불산-영축산-통도사 앞-천성산-부산 금정산으로 나아가 부산 몰운대 앞바다에서 그 산줄기의 생명을 끝낸다.(요건 지적소유권 있다. 조사해 보지 않고 쉴 새 없이 저 산줄기를 써 나가니 나도 어지간히 산에 대한 지식이 쌓였는 모양이다.)
산을 타는 사람이라면 기본이 백두대간 종주와 14개 정맥 중 자기 지방을 지나는 정맥 정도는 종주해야한다고 하기에, 나도 40대 초반에 백두대간을 종주하고 우리 지방을 지나는 낙동정맥을 종주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의 욕심을 내지 않았다. 산줄기 탐방에만 미친 놈들도 있지만 그건 좋은 방법이 아니다. 산은 자연주의로 접근해야 한다. 자연에 하나의 목적이 있을 수가 없다.
가지산 정상 바로 아래에 있는 대피소 겸 매점
그리고 잠시 내려가면 헬기장이 나온다. 우리는 지금 가지산에서 아랫재로 가고 있다. 우리는 아랫재로 크게 떨어졌다가 다시 운문산으로 올라갈 것이다.
멀리 오늘 우리가 가야할 운문산이 가스에 가려진 채 정상부를 드러내고 있다.
잘 보이지는 않지만 비경지대가 있는 가지산 학심이골. 학심이 골은 탈출구는 없고 입구 만 있는데 청도 운문사나 천문사 부근에서 들어오면 반드시 다시 돌아 나아가야 한다. 아니면 이 가지산이나 운문산을 넘어야만 동쪽으로 탈출할 수 있다. 때문에 그윽히 깊은 골짜기라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지만 비경지대를 즐기는 사람들이나 약초꾼들이 간혹 찾아온다. 나의 직장 경주고등학교 우리 2학년 팀에 시인이자 국문학박사인 조기현 선생이 이런 지역을 좋아하는데 지난 주에 이 학심이골에서 말굽버섯을 채취했단다. 이 날도 조선생은 나중에 우리가 지나간 운문산 범봉 부근에서 표고버섯을 채취하고 왔단다.
가지산 북서쪽인 경북 청도 운문면이 내려다 보이는 뷰포인트다. 가스가 찼다 걷혔다 할 때마다 감탄 소리가 들린다. ㅋㅋ 내 친구들, 서울에서 이까지 왔으니 좋은 곳에 왔다. 그 매연투성이 서울에 있으면 뭐 하나? 이런 곳에 와서 폐나 깨끗하게 청소하고 가라.
아랫재를 향해서 남동쪽 능선으로 나아가면 능선 왼편으로 큰 골짜기가 보인다.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부분이 제일관광농원이고 그 밑에 유명한 호박소가 있다.이 골짜기를 내려가다 보면 우측에 구룡소폭포와 백운산이 나온다.
산행의 진행은 순조롭다. 모두가 컨디션이 나쁘다고 말했지만 산행은 잘 하고 있다. 사실 나와 단미는 컨디션이 최악이다. 나는 어깨낭염(오십견)이 심한데다 유명산 이후 허리에 이상이 생겼다. 살면서 그런 일은 없었는데 이제 나이가 드는 모양이다. 조금씩 조건들이 약화되는 것을 보니...........하긴 남들보다 몸을 많이 굴렸다. 잘은 모르지만 옆에 있는 전종성이는 몸이 싱싱하게 보인다. 몸은 살아온 인생을 말해준다. 마구잡이로 많이 굴렸느냐? 기름칠해 가며 잘 굴렸느냐? 그것이 관건이다.
좀 더 나아가다 보면 나오는 전망대바위. 사람들이 모여있다.
호박소계곡, 저 아래에 우리가 새벽에 차를 몰고 올라온 도로가 보인다.
키가 큰 창명은 단애 위에 저런 포즈를 취하면 폼이 난다. 하지만 이 사진은 아니다. 촬영한 내 위치가 너무 높아서 좋은 사진은 아니다.
조금 전에 지나 온 가지산 정상
능선 넘어 우측 봉이 가지산 정상이고 좌측 바위 봉이 가지산 쌀바위.
저 앞 능선 끝에 바위산인 백운산이 보이고 멀리 기나긴 능선이 유명산 재약산 능선이다. 지금은 재약산이라면 아무도 모른다. 원래 천황산이라고 했지만 일제시대 천황의 이름을 빌어 명명했다고 하여 다시 옛이름으로 복원시켰다고 한다. 옛이름을 어떻게 알았냐고? 에이! 무식하기는! 조선조 중종 때 실학자 여암 신경준이 쓴 <산경표>에 보면 전국의 모든 산들의 옛이름이 나온다.
<산경표>는 이른 바 산 족보인데 조상을 백두산으로 놓고 전국의 모든 산들은 백두산의 자손들로, 그 형식이 사람들의 족보와 꼭 같이 역어놓은 책이다. 한국의 모든 산은 백두산에서 갈라져 나왔다....이것이다.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산줄기가 백두대간이고 이 대간 산줄기 곳곳에서 갈라져 나간 산줄기가 14개의 정맥이고, 그 정맥에서 갈라져나간 수백개의 산줄기가 기맥, 그리고 기맥에서 지맥으로 갈라져 나가 전국의 산들은 우리 몸의 실핏줄같이 퍼져 있다는 것이다. 여튼 <산경표>에 의하면 천황산은 재약산이다. 천황산 옆에 재약산으로 불리던 봉우리는 수미봉으로 판명되었다. 지금도 일반인들은 천황산이라고 부르지만 우리같이 산악인들은 재약산이라고 부른다. 산림청 선정 100명산 명단에서 저 산은 재약산으로 나온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재약산이다.
백운산을 댕겨서 촬영했다. 저 백운산은 등반하기에 아주 재미가 있는 산이다. 산행로가 암벽인데다 철사다리로 설치되어 오금을 떨며 산행을 하는 묘미가 있다. 얼음골 북편에 암벽으로 우뚝 솟은 백운산은 꼭 서울의 북한산 분위기인데 백운슬랩하면 이 지역에서는 유명한 암벽훈련장이기도 하다. 보통은 그 백운슬랩에서 산행을 하여 백운산에 오른다.
보이는 것이 아까 말한 재약산(1189m)이다. 그리고 정상부의 밝은 색이 벌판인데 소위 고위 평탄지인데 유명한 사자평이다. 억새로 유명한 사자평이 바로 저 곳이다. 저 정상부에 오르면 산 전체가 평탄면으로 사람들이 사는 민가도 있는데 그래서 영남알프스인 것이다. 그 사자평에 예전에는 고사리분교라는 초등학교가 있었다는데 가장 높은 곳에 있는 학교로 유명했었다. 얼마전에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폐쇄되었다.
운문산으로 나아가면서 좌측으로 내려다 보이는 경남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이다. 분지 지형이라 사람들이 따뜻하게 잘 살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저 곳은 냉기가 가득하다.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냉기가 심하다. 그래서 저곳에 얼음골이 있다. 뜨거운 여름일 수록 얼음이 주렁주렁 달리는 얼음골이............어떤 학자는 사자평 그 지층 밑에 겨울 동안에 품은 냉기가 여름에 뿜어져 나온다고 하는데.......재미있는 얘기이다. 전현수가 조사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그래서 저 남명은 사과가 유명하다. 사과는 약간의 찬 기온 속에서 잘 자라는 모양이다. 남명사과는 <얼음골사과>로 이 지역에서는 유명하다. 나는 별 관심이 없다. 사과 알레르기가 있으므로.........ㅋ
아랫재로 나아가다 보면 백운산 갈림길이 나온다. 왼편으로 가면 백운산으로 간다. 우리는 오른쪽길 아랫재로 간다. 아랫재로 엄청나게 떨어졌다가 다시 운문산으로 오를 것이다.
드디어 앞에 나타난 운문산!
떼뜨 와 떼뜨! 사이드 바이 사이드! 나란히 나란히!
아랫재로의 길은 마지막에 험하다. 사람들이 잘 지나가지 않아 조금은 더듬어야 한다. 사람들은 길이 험하니 이 능선을 피하고 좌측으로 깊이 떨어졌다가 다시 아랫재로 올라오는 방법을 택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게 정석이다. 능선 결대로 나아가야 한다.
아랫재는 깊다. 자꾸만 내려간다.
계속 내려가고..................
드디어 아랫재. 이제 가지산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운문산이다.
운문산에 살짝 붙어 휴식하며 가래떡을 나눈다. 아랫재에서 쉬어야 겠지만 천만의 말씀! 힘든 오르막은 안부에서 쉬는 것이 아니다. 안부를 지나면서 한 피치 올라야 한다. 일종의 교두보라고 할까? 턱을 걸어놓고 잠깐 쉬고는 바짝 당겨 정상 부근으로 나아가야 한다. 산을 쉽게 탈 수 있는 방법이다. 조금 더 당겨야 겠지만 그만 멈춘다. 종성이가 뒤에서 애(?)타게 부르기에.................
이제 본격적으로 운문을 친다.
운문산 역시 영남 알프스 군의 산이다. 하지만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서 가장 서쪽에 있어서 사람들의 발길이 덜 하다. 하지만 비경지대가 많아서 그리 가벼운 산이 아니다. 어쩌면 영남알프스 산군 중에서 가장 깊이가 있는 산이다. 특히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북쪽의 운문사 방향은 비경지대가 많이 숨어있다. 천문지골, 학심이골, 심심계곡, 큰골 등의 산행은 그리 쉬운 편은 아니다. 남쪽에서 북편으로 산을 넘어가면 전혀 다른 지역이 되므로 산행이 여의치가 않은 것이다.
북쪽 운문사에는 400년의 수령을 자랑하는 처진 소나무(천연기념물 180호)가 있는데 지금은 친구들한테 보여 줄 수가 없다. 운문산에서 북서쪽으로 억산(億山:944m), 지룡산(池龍山:659m) 등이 있으며, 지질은 편마암과 화강암이 대부분이고, 낙엽송, 주목, 소나무 등의 침엽수림과 참나무, 고로쇠나무, 엄나무 등 활엽수림이 주종을 이룬다.
특히 북쪽 천문지골로 내려가는 계곡은 수림이 울창하게 덮인 심산 계곡을 이룬다. 산정은 북동-남서로 길게 뻗어 있고, 서쪽과 북쪽 사면에서는 산내천(山內川)과 무적천(舞笛川)의 계류가 각각 발원한다. 운문은 웅장한 산세와 울창한 수림 등으로 경관이 뛰어나며, 특히 북쪽 사면의 청도군 내에는 유서깊은 절과 암자들이 조화를 이루어 일대가 1983년 12월 운문산군립공원(16.48㎢)으로 지정되었다. 그러니 가지산도립공원 내에 운문산군립공원이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운문산 정상 바로 밑에 왔다.
운문은 북쪽 사면 아래에 운문사(雲門寺)가 있고, 서쪽 사면 아래에는 고찰인 석골사(石骨寺)가 있다. 운문사는 560년(신라 진흥왕 21)에 신승(神僧)이 창건하고 608년(진평왕 30) 원광법사가 중창했으며, 경내에는 운문사금당앞석등(보물 제193호)·운문사동호(보물 제208호)·운문사원응국사비(보물 제316호)·운문사석조여래좌상(보물 제317호)·운문사사천왕석주(보물 제318호)·운문사3층석탑(보물 제678호) 등과 대웅보전(보물 제835호)·미륵전·만세루가 있고, 약 200년 정도 된 운문사의 처진소나무(천연기념물 제180호)가 있다. 석골사는 신라 때 창건한 것이나 현존하는 건물은 6·25전쟁 이후에 지은 것이다. 맑은 물이 끊이지 않고 석골폭포와 용바위·치마바위 등 암벽을 배경으로 한 경관이 빼어나다. 정상 가까이에 선녀폭포와 상운암을 비롯한 청신암·내원암·북태암 등의 암자가 있다.
우리는 오늘 운문산 남쪽으로 하산을 하게 되니 석골사로 내려 간다.
운문산 정상 직전의 뷰포인트에서 창명과 전세인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경남 밀양시 산내면 남명리를 당겨서 촬영해 본다.
운문산 정상
지나온 가지산이 멀리서 보인다. 멀리서 보니 가지산에 뾰족하다. 저 뾰족한 덕분에 영남알프스에서 최고 봉우리 자리를 차지했다. 아니면 신불산에게 그 자리를 빼앗겼을텐데...............그 바람에 이 도립공원의 이름이 가지산 도립공원이다. 산세나 풍광으로 보면 가지보다 신불이 한 수 위이다. 다만 높이 덕분에 이름이 가지산도립공원이 아니겠는가? 뭐? 가지산에 유명한 석남사가 있다고? 웃기고 있네. 신불산 저 아래에 엄청난 거대 사찰이 있다. 이름하여 통도사!.......다. 덤비라 해라!
중간에 보이는 평행의 큰 능선이 능동-재약산의 능선이다. 그 뒤에 산이 희미하지만 간월산, 그 뒤가 신불산, 그리고 저 뒤에 가장 멀리서 불룩 튀어 나온 것이 영축산이다. 낙동정맥은 저 영축에서 끝나고 산줄기는 아래로 떨어진다. 어디까지? 완전히 평지까지 떨어진다. 통도사 정문 앞으로 떨어져 고속도로 건너 다시 천성산으로 올라간다. 산줄기가 왜 그렇게 떨어지냐고? 그래야 고속도로 같은 것이 생기지. ㅋㅋㅋ 그렇게 낮아도 산줄기는 산줄기이고 분수령은 분수령이다. 평지 같지만 그곳에서도 비가 오면 물이 양쪽으로 나뉘어 진다. 서쪽 것은 낙동강으로 동쪽 것은 동해 바다로 흘러 나간다.
운문산 정상에 선 긴겨울. 그는 작년 여름 나와 덕유산행을 같이 하고는 지금까지 산행을 같이 하고 있다. 현재 그의 관심은 한국 100명산이다. 지금까지 서울 근교의 산들을 부지런히 다녔는데 언제부터인가 다양한 산의 섭렵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고는 원거리 산행을 시도하고 있다. 이번 산행도 그 일환이다.
운문산이 산림청 100명산에 선정된 이유는 구연동(臼淵洞), 얼음골이라 부르는 동학(洞壑), 해바위(景岩) 등 천태만상의 기암괴석이 계곡과 어우러져 경관이 수려하고 군립공원으로 지정(1983년)된 점 등이 고려되고, 보물 제835호 대웅전, 제678호 삼층석탑, 제193호 석등, 제316호 원응국사비, 제317호 석조여래좌상 등 각종 문화유적이 있는 대찰 운문사가 있는 점 등이 인정되어 선정되었다.
운문산 정상 바로 밑에 위치한 상운암. 저 아래에 있는 큰 사찰 석골사의 부속암자인 상운암은 영남의 보궁(寶宮)으로서 그 터가 명당이라 기도의 효험이 높은 곳이다. 상운암 인근에는 제2의 얼음골이라 불리는 자연동굴이 있는데, 소설이나 드라마에서는 <동의보감>을 쓴 허준이 이곳에서 자신의 스승인 유의태를 해부한 곳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상운암은 그저 조그만 암자지만 해발에 비하여 평온한 자리이다. 우리는 여기서 점심을 푼다. 점심은 내가 경주에서 싸 가지고 왔는데 서울 친구들 입에 맞든 말든 가자미조림, 마른가자미조림, 취나물, 김치, 열무김치, 젓갈 등으로 도시락을 가져왔다. 친구들은 맛있다고 한다. 캬! 그 말을 믿냐? 남이 가져온 밥, 맛있다고 하지, 맛 없다고 하는 놈이 어디있냐? 몰라! 000같은 놈이면 그렇게 말 할지도...............ㅋ
도시락을 다 먹고 커피까지 챙겨 먹고는 상운암을 떠날 준비를 한다.
운문산 주 능선이 보인다. 정상에서 쭉 동북으로 나아가면 딱밭재 지나 우측에 불룩한 것이 범봉이고 팔풍재 지나 뒤에 큰 바위벽이 보이는 산이 억산이다. 운문산을 빡 세게 타려는 사람들은 운문으로 올라 운문-억산-구만산으로 나아간다. 구만산에도 폭포며 계곡이 수려한 곳들이 더러 있다.
상운암계곡으로 내려서는 팀.
한번 쉰다. 시간적 여유가 많기에 많이 쉬어도 된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 이 상운암계곡이 아니겠는가? 가을이 한 타임 지나 단풍이 많이 떨어졌지만 아름다운 계곡은 시기에 관계 없이 아름답다.
아! 가을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가을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전세인은 2일전 직장 체육대회에서 무리했는지 다리에 가벼운 경련이 생겼다. 그래서 천천히 가자고들 한다. 무리한 면도 있지만 사실 우리 나이가 이제는 점점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큰 산 2개씩을 연등하는 것도 우리 나이에는 좋은 방법이 아닌 것이 아닐까?
내려오다 만나는 석탑군. 석탑의 모양들을 보면 1사람이 만든 흔적이 보인다. 머리석으로 쓰인 돌들의 형태가 비슷하기 때문이다. 석탑군은 여기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사방에 깔려 있다.
위로도 이어져 있다. 재료만 있으면 무엇을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술적인 사람들인가? 창의적인 사람들인가? 생산적인 사람들인가?
우리는 더 깊숙히 가을로 내려 간다. 전종성이 배낭에 붙은 쓰레기 봉투가 정겹다.
해발 500m대에는 가을이 그대로 남아 있다.
우리들의 산행은 그 마지막 테마가 <가을>인가?
<가을 노트> 문정희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몸을 떨었다.
못다한 말
못다한 노래
까아만 씨앗으로 가슴에 담고
우리의 사랑이 지고 있으므로
머잖아 한잎 두잎 아픔은 사라지고 기억만 남아
벼 베고 난 빈 들녘 고즈넉한 볏단처럼 놓이리라.
사랑한다는 것은
조용히 물이 드는 것
아무에게도 말 못하고
홀로 찬바람에 흔들리는 것이지.
그리고 이 세상 끝날 때
가장 깊은 살 속에 담아가는 것이지.
그대 떠나간 후 나의 가을은
조금만 건드려도 우수수 옷을 벗었다.
슬프고 앙상한 뼈만 남았다.
가을의 심연으로 깊숙히 내려가는 전 트리오. 그들은 서울에서 철 지난 가을을 찾아 운문으로 왔던가?
가을 숲 속에서의 전종성의 퍼포먼스
나무 숲에 가려졌지만 바위도 나타나고..........
뒤돌아 보는 女心...........누굴 찾을까? 가을을 찾을까?
아름다운 상운암계곡
가을...................겨울이라고 구름 문(雲門)으로 나왔더니 아직도 가을이 남아 있구나!
간만에 나온 나의 사진이라 흉해도 올려 본다. 수영을 하여 8km나 감량하여 날씬한 몸을 만들었는데 최근에 어깨낭염으로 운동을 중단하다 보니 다시 배가 나온다. 하지만 걱정은 없다. 언제든지 뺄 수 있는 뱃살이니까................
친구들은 계절을 지나오고 있다.
Why are you looking at me now? What do you want?
소금강 모양의 골짜기가 나타나자 석골사에 가까와졌음을 본능적으로 느낀다. 예전 석골사를 좀 지나니 매우 아름다운 계곡이 펼쳐졌었거든....................
우리가 내려온 운문산정
드디어 석골사다.
석골사는 운문산 서편 기슭에 자리잡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이다. 운문산 깊은 계곡에 자리잡은 석골사는 신라 말기의 선승(禪僧) 비허(備虛) 스님이 창건했다고 전하며, 옛이름 석굴사(石堀寺)가 언제부턴가 석골사로 와전되어 불리고 있다. 석골사가 자리한 일출봉(日出峰)은 함화산(含花山)이라고도 불리는데, 찬 기류 때문에 꽃을 품기만 하고 피우지 못한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그러나 석골사를 중창한 이가 곧 함화(含花) 스님이고, 정상 부근에 있는 석골사의 부속암자 상운암(上雲庵)이 함화암(含花庵)이라고도 불렸다 하니, 산과 절의 깊은 관계를 짐작케 한다. 석골사가 처음 세워질 당시에는 석굴사였다는 점을 생각할 때 이곳은 오래 전부터 스님들의 수도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절 바로 아래에는 정상에서 흘러내린 계곡이 폭포를 이루어, 절 이름을 따서 석골폭포라 부른다. 10m 정도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시원스럽고 장쾌한데, 오늘은 가을 가뭄으로 물이 거의 없다. 운문의 계곡은 아름답고 오밀조밀하지만 길이가 길지 않아 수량은 들쭉날쭉이다. 석골폭포는 칼로 벤 듯 깎아지른 벼랑이 아니라 층층대처럼 턱이 진 암벽이어서 통통거리며 돌아내리는 폭포수가 맵시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석골사 주차장에 오니, 이크! 우리 차가 보인다. 빨간 차! 오늘 새벽에 여기까지 와서 세워두고 갔었다.
경주 고속터미널 근처에서 쇠주 한잔 때리고 어둠과 함께 이별한다.
Adios! Ami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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