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살의 '앨빈 스트레이트'는 언어 장애가 있는 딸 '로즈'와 단 둘이 아이오와 시 골에서 살고 있다. 어느 날 빈집에 혼자 있던 '앨빈'은 갑자기 마루에 쓰러지게 되 고 이웃들이 몰려와 병원으로 데려가려 하지만 끝까지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다음 날 의사를 찾아간 '앨빈'은 보행기를 착용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지만 혼자 이겨낼 수 있다고 고집을 부린다.
갈수록 노쇠해지는 몸이지만 정신력 으로 버티던 '앨빈'에게 형이 중풍으로 쓰러졌다는 전화가 온다. 그동안 형과의 오 해로 연락을 끊고 지냈던 '앨빈'은 위독한 형을 만나기 위해 떠나기로 한다.
그러나 심각한 노안에 허리가 좋지 않은 '앨빈'은 운전을 할 수가 없고 결국 자신만의 방법으로 형에게 가야된다.'앨'은 30년이 넘은'존 디어' 잔디깍이를 개조해 집채가 있는 트랙터을 만든다. 그는 이 낡고 이상한 트랙터에 소시지와 장작을 가득 싣고 시속 5마일로 6주간의 여행을 시작한다. 남은 시간이 가기 전에 형과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앨빈'은 힘든 몸을 이끌고 형이 있는 곳으로 열심히 달린다.
'앨빈'은 여행도중 만난 사람들과 인 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형과의 오랜 불화를 사죄하듯 느리고 고통스러운 트랙 터 여행은 계속되고 유일한 가족인 형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간다
올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를 살피다 보면, 낯선 이름 하나를 발견할 수 있다. 케빈 스페이시, 덴젤 워싱턴, 숀 펜, 러셀 크로 등 연기파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배우들과 함께 눈에 들어오는 할아버지, 리처드 판스워스. 이름은 좀 생소하지만 얼굴은 많이 본 듯한 이 노배우는, 최근 여든의 나이에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아카데미 사상 최고령 후보라는 기록을 세웠다.
판스워스를 아카데미 후보에 올려놓은 작품은 데이비드 린치의 99년작 <스트레이트 스토리>. 형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듣고 낡은 트랙터 하나로 아이오와에서 위스콘신까지 횡단하는 머나먼 여정에 나서는 초로의 노인 앨빈 스트레이트가 그의 분신이다. 다툼 끝에 10년 이상 소식을 끊었던 형을 찾아가면서, 오랜 불화를 사죄하듯 느리고 고통스러운 트랙터 여행을 고집하는 노인의 지난한 여정은 실화에 바탕한다. 린치는 처음부터 판스워스를 주인공으로 내정했다고. 하지만 오랜 스턴트 생활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둔부 수술을 앞두고 있던 판스워스는, 지팡이를 짚고 간신히 움직이는 자신이 앨빈 스트레이트가 될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았다. 거절하려던 그에게 앨빈 역시 지팡이 두개를 짚고 다니는 노인이란 얘기가 들려왔고, 결국 그는 수술을 미루고 촬영에 나섰다. 수술도 미룬 채 하루 몇 시간씩 트랙터를 몰아야 했던 판스워스는 “촬영 내내 고통스러워했지만 절대 불평하지 않았다”는 게 린치의 말이다.
나이 여든, 언제 죽음의 방문을 받을지 모를 황혼기도 무르익은 판스워스는 글자 그대로 ‘백전노장’이다. 1937년 샘 우드의 <어 데이 앳 레이시즈>의 기수, 아치 메이요의 <마르코 폴로의 모험>에서 500여명의 말탄 몽고족 중 하나로 첫 등장한 이래 40여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하지만 70년대 중반까지는 영화 속에서 그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15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말을 돌보며 목장에서 생활한 그의 영화인생은, 말을 다루는 스턴트 연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세실 B. 드밀의 <십계>에서는 잠깐 마차를 몰았고 로이 로저스, 개리 쿠퍼 등 당대 서부 영화 영웅들의 말타는 연기의 상당 부분은 대역인 그의 솜씨였다. 스탠리 큐브릭의 60년작 <스팔타커스>에서는 커크 더글러스를 대신해 칼을 들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자막에 이름도 안 올랐고, 대사가 없거나 한두줄이 고작인 출연작만 15편 이상이었다. 그나마 대사와 연기의 시작이라 할 만한 것은, 조지 시걸, 골디 혼과 공연한 76년작 <공작 부인과 더티워터 폭스>의 마부 역할부터. 난독증에 시달리던 그는 연기를 포기하려 했으나 아내의 격려에 힘입어 대본 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뒤이어 앨런 J. 파큘라의 78년작 <컴즈 어 호스맨>의 연기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오르자, 세인들은 이 58살 신인배우의 등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판스워스가 베테랑 스턴트맨에서 주목할 만한 배우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82년 신사적인 강도 빌 마이너를 연기한 <그레이 폭스>는 그에게 캐나다의 아카데미상인 지니상을 안겨줬고, 칸영화제를 방문할 기회를 줬다. 99년 <스트레이트 스토리>로 칸에 공식초청된 판스워스는 “여기에 다시 올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하지만 영화를 하면, 여기에 와서 붉은 카펫을 밟는 게 궁극적인 일”이라며 감격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레이 폭스> 이후에도 <내츄럴>, TV시리즈 <빨강머리 앤>, <미저리> <겟어웨이> 등 스크린과 TV를 오가며 꾸준한 활동을 보였다. 연기라 해도 육두문자를 쓰기 싫어하는 그에게 거친 말을 내뱉었던 <겟어웨이>의 연기는 아직도 불편한 기억. 어쨋거나 굵직하면서도 나직한 목소리에, 여간해서 얼굴을 찌푸리거나 언성을 높이는 법 없는 느긋하고 선한 이 남부 사나이는, 숨쉬듯 자연스러운 연기로 화면의 일부가 되는 법을 체득하고 있다.
대기만성이라지만, 죽음이 멀지 않은 나이에야 일생일대의 배역을 만난 노장의 감회는 오히려 담담하다. “그렇게 놀랍진 않다. <그레이 폭스>를 했을 때 난 벌써 62살이었다. 지금은 여든살이고,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연기가 편해진다. 난 더이상 잃을 게 없다.” 21년 만에 다시 아카데미 시상식장에 초대된 그는, <컴즈 어 호스맨> 때 마련했던 그의 단벌 턱시도를 입고 갈 것이라고 한다.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았다며, 삶에 미련이 많지 않은 노배우의 초연함이 상에 대한 미련 정도로 흔들릴 것 같지 않다. 그에겐 가축과 말을 돌보며 여가를 보낼 뉴멕시코 링컨의 목장이 있고, 차기작도 한편 예약돼 있다. “올 7월쯤 <컴즈 어 호스맨>의 프로듀서였던 댄 폴슨의 영화를 하나 하기로 했다. 그때쯤이면 수술도 끝났을 테고, 야생마를 모는 노인과 소년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거 하나면 끝나지 않을까.”
EBS 1월5일(토) 밤 11시
이 영화가 처음 등장했을 때, 모두 의아해했을 것이다. 과연, 그 데이비드 린치의 작품이 맞을까? 중산층 가족의 역겨운 이면, 인간의 뒤틀린 욕망 등을 초현실적이고 복합적인 구조로 형상화했던 그가 <스트레이트 스토리>에서는 말 그대로 무척 단호하게 ‘스트레이트’한 방식을 취한다. 이야기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천천히 쭉 뻗어가며, 아름답게 텅 빈 자연과 인물의 침묵하는 표정에 집중하는 카메라는 충격적일 정도로 날카롭게 비판하는 린치 특유의 스타일 대신, 고요하게 삶의 남은 시간을 명상하기를 택한다. 이 영화는 너무도 투명하다.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뉴욕 타임스>에 실렸던 앨빈 스트레이트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70살이 넘은 앨빈 스트레이트는 자신도 몸이 불편하지만, 10년 전에 연락을 끊은 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무리한 여행을 계획한다. 형이 죽기 전에, 지난 10년의 어리석은 미움을 털어버려야겠다는 일념하에, 그는 잔디깎이에 짐수레를 달고 형이 사는 위스콘신주로 6주간의 여정을 시작한다. 시속 5마일로 달리는 노쇠한 잔디깎이에 몸을 싣고 그는 삶의 불행과 행복의 순간을 맛보는 사람들을 스쳐가면서 자신의 시간을 돌아본다. 황량한 길을 따라 천천히, 기약없이 터벅터벅 걸어가는 듯한 노인의 잔디깎이와 다가올 시간을 순순히 받아들이며 얼굴에 또 하나의 주름을 새기는 듯한 노인의 형상을 통해 린치는 어떤 수사도 압도하는 인생의 깊이를 전한다. 그는 이 영화에서 최소한의 양식으로 삶의 최대한을 끌어냈다.
특히 영화의 마지막 두 형제가 마침내 만나, 별다른 말도 없이, 지팡이에 의지한 채 겨우 서서 10년 만에 서로의 눈을 들여다볼 때, 비로소 삶의 자잘하고 하찮은 오해를 넘어서 함께 죽음의 시간을 바라볼 때, 여기에는 어떤 숭고함의 경지가 서려 있다. 앨빈 스트레이트 역을 맡아 홀로 외로운 여정을 감내했던 리처드 판스워스는 이 쓸쓸한 영화에서 완벽했다. 스턴트맨으로 영화계에 데뷔한 이래 57살에 배우로 연기를 시작한 그에게 <스트레이트 스토리>는 첫 주연작이다. 촬영 당시 말기 암과 싸웠던 그는 영화가 완성된 뒤 권총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그의 슬픈 운명이 영화와 겹쳐지며 보는 이의 마음을 아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