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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악산(雪嶽山)의 금강굴(金剛窟), 권금성(權金城), 울산바위의 유래와 전설들
▒ 금강굴(金剛窟)의 유래 그중에서도 설악산 비선대를 지나 외설악에서도 경치가 으뜸인 금강굴을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계단을 이용해야 갈 수 있다. 금강굴에서 내려다 보이는 천불동계곡이 매우 아름답다. 하고 금강이라는 이름은 원효대사의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해진다. 금강굴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는 물론 삼국유사 그리고 조선 시대 지리지와 고지도 어디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사실 금강굴은 1960년대 말 속초에 사는 최의건이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걱정하며 궁핍한 생활을 면치 못하였다. 세상살이를 한탄하던 중 미륵봉(장군봉) 바위 중턱 돌 가운데가 움푹 들어 간 이상한 점을 발견하였다. 맞으면서 굴에 당도하였다. 해결될 것 같았다. 바로 다음날 속초시청으로 달려가 개발신고를 내고 철계단을 만들고 동굴 이름도 붙이고 원효대사도 좀 팔고 그렇게 해서 금강굴은 탄생하게 되었는데, 한동안 입장료 수입으로 속초와 부산에 땅을 많이 사모아 짭잘한 재미를 봤다는 소문이 전해지고 있다.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금의 국립공원관리법으로 보면 어림반품도 없는 야그이지만..^^
1960년대 발견된 금강굴에까지 원효대사가 수도를 하였다하니 말이 되는가..? (그 어떤 문헌을 조사해 봐도 금강굴이라는 이름과 원효대사의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 권금성(權金城)의 유래 험한 곳으로 피난하였다. 그곳이 지금의 권금성 자리이다. “적병이 오기 전에 성을 쌓아야 할 텐데...” 하지만 성을 쌓는 다는 것이 결코 생각 처럼 쉽지 않았다. 의논 끝에 돌을 날라다가 이곳에 성을 쌓기로 하였다. 하지만 먼 거리에서 돌을 날라다가 성을 쌓는 다면 몇 달이 걸릴 것 같았다. 여기서 받아서 성을 쌓으시오, 그래야만 하루 밤에 성을 다 쌓을 수 있을 것이요.” “좋습니다.” 그래서 권장사가 강으로 내려가 돌을 주어서 던졌다. 그러면 김장사는 그 위에서 돌을 받아가지고 성을 쌓기 시작하였다. ▒ 울산바위의 전설
울산바위는 울산에서 금강산으로 가다가 도중에 이미 금강산 바위 모집은 다 끝났다는 말에 데꿀멍하였다. 그렇다고 설악산까지 왔는데 울산으로 되돌아가면 놀림감이 될 것 같아 할 수 없이 그냥 주저 앉았다는 이야기 (바리에이션에 따라 딱하게 여긴 옥황상제가 여기도 금강산 못지 않게 아름답다며 꼬시자 주저 앉았다고 하는 얘기도 있음) 혹은 여기가 금강산인줄 알고 착각해서 눌러앉았다가 그만 그대로 굳어버렸다는 이야기다. 어느 날 설악산에 울산바위라는 바위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울산 사또가 울산바위 위에 세워진 신흥사의 주지승에게 "우리 바위가 거기 있으니 니네가 우리에게 바위세를 내라."고 하자 어린 동자승이 이 말을 듣고 "우리도 울산바위 때문에 농사도 못하고 불편하다. 댁들이 우리에게 세를 내던가 아니면 다시 가져가라."고 반박한다. 동자승은 풀을 엮어 새끼줄을 만든 후 바위를 묶어서 불에 태워버려 재로 된 새끼줄로 울산바위를 묶은 형상을 만들어 울산 사또에게 보이고 이제 바위를 끌고 가라고 요구한다. 당연히 울산 사또는 데꿀멍했고, 이 일화에서 속초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한다. 冥想音樂 / 靈魂의 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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