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한 꿈을 꿨다. 꿈을 깨도 너무 생생해
현실처럼 느껴진다.
[ 인도식 천막이 처진
큰 야외 무대에 공연이 열렸다.
나는 남루한 수행자이다. 공연을 보러
안으로 들어 갈려고 하니 입구에서
경비가 잡는다. 그때 중년의 한 아름다운
무용수가 나와서 ‘이 분이 들어오면
언제든지 들여보내라’.라고 하며
나의 팔을 조심스럽게 잡고 활짝 웃으며
안으로 들어가자고 한다. 나는 직감적으로
그가 수파르나 임을 알아본다.
안도감이 든다. ]
그리고 꿈을 깼다.
이불 속에 그대로 누워있는 가슴속으로
아련한 그리움들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뭘까. 이렇게 가슴을 져미는 느낌은.
어제 저녁 수파르나 집에 갔을 때
수파르나가 내 앞에서 손과 발에
인도식 장신구를 달고서 인도식 춤을 췄었다.
관절들을 절도 있으면서도 부드럽게 춤추는
앙증맞은 모습 때문에 그런 꿈을 꿨을까?
수학선생이 되고싶다고 하던데…
웬 무희. 전생인가.
기쁘다. 아침에 고팔에게서 수파르나의
편지를 전해 받았다. 귀여운 녀석.
꼭 딸 같은 느낌이 든다. 인도 여자
애들은 보통 접근을 꺼린다. 대화는
좋아하지만. 그러나 수파르나는 내게
안기고 스스럼없이 대한다. 나도 어색함
같은 게 없다. 참 신기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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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파르’에 있는 라마크리슈나
미션에 왔다. 한시간 반이나 매연과 싸우면서
지금 휴게실에 와있다. 미홍씨는 김치
가져다 놓고 내게 준다면서 물 가지러
방에 잠시 올라갔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사실만으로 너무 기쁘고 반갑다.
책하고 명상 깔개 주니까 기뻐한다.
그가 기뻐하니 나도 기쁘다.
같이 식당에 가서 밥을 먹었다.
중국음식 비슷한 것 하고 스프, 밥,
미홍씨가 담근 김치랑 먹으니 정말
진수성찬이었다. 미홍씨 김치 담그는 솜씨가
일품이어서 오랜만에 포식을 했다.
고소와 무우를 섞어 담갔는데 그 맛이
정말 좋았다. 지리산 쌍계사에서 처음 먹어
본 고소의 맛이 생각났다. 고소가 한국에는
귀한데 이곳은 많다고 한다. 매콤한게
정말 최고의 맛이었다. 작은 병 속에
정성들여 넣어서 두통이나 주었다.
신께서 객지에 있는 이 순간까지도
보살펴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 정말
즐겁고 기쁘게 식사를 했다. 그녀의
얼굴만 보면 웃음이 난다. 장난 꾸러기
같이 생겼고 한국인이라는 것이
너무 정겹다. 다들 자기에게
“필리핀에서 오셨어요”한다고 한다.
많이 웃었다.
성찬을 끝내고, 정글처럼 나무가
우거진 호숫가를 산책하며 정신과,
영적인 문제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다.
그녀는 위빠사나를 한다고 한다.
포괄적으로 의식이 많이 깨어 있고
열려있다. 그리고 인도의 모습처럼
편안하다. 그런 편안함이 나의 타지에서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 같다.
한국인으로서 나처럼 수행에 미쳐 있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한다. 내가 한국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한다. 나는 미홍씨
같이 열린 한국여자가 있어 기쁘다고 했다.
같이 시뻘건 녹으로 된 흑백 버스를
타고, 흑백 거리를 지나 흑백 책방
앞에서 내렸다. 버스 속에서 미홍씨가
말없이 인도인들 틈에 기대어 선
모습을 지켜보니 깊은 우수가 베여
나온다.
내가 중학교를 막 졸업했을 때
‘전혜린’이란 염세적인 철학자에게
빠져서 그녀의 책을 거의 외우고 다닌
적이 있었다. 그 책을 읽을 때마다
느껴지던 끈적끈적한 염세적인 그 느낌이
이국 거리의 차장에 기대어선 미홍씨에게서
그대로 전해 왔다.
“미홍씨에게서 전혜린 처럼 우수와
슬픈 느낌이 흘러 넘치는 데요.”했더니
씽긋 웃으며 어떻게 아냐고 한다.
자기도 한 때 전혜린을 무지 좋아했다고
한다. “와. 우린 동지군요!”
같이 책방에 가서 구경도 하고
수파르나 에게 줄 공책을 샀다.
미홍씨는 액자하고 볼펜을 샀는데
품질이 너무 좋지않은 것 같다.
책방 직원도 불친절 하다. 대충대충
골라서 사고 돈치르는 내게
‘경상도 사람 답 네요’ 해서 웃었다.
미홍씨에게 만년필을 사주고 싶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못 사 줬다.
너무 아쉽다.
버스 타는 데까지 물어서 바래다 주는
그녀의 정성이 고맙다. 저번에 아쉬람에서
봤던 이스라엘 남자를 사랑하는데
결혼 할지도 모르겠다고 한다.
결혼해서 애기를 기르고 싶다고
하며 내게 기도해 달란다. 그러마 했다.
외로운 유학생활에 돈이 부족할 것
같아 할일 없는 여행자가 얼마간
줄려고 주머니 속에서 줄까 말까
하고 만지작 거리다가 돌아서는
순간에 그만뒀다. 자존심 상해 할까 봐-.
안녕. 사랑스런 한국인이여.
저녁 명상시간 맞추려고 아쉬람
까지 택시를 탔다. 미홍씨가 요금을
흥정하지말고 일단 타고 미터기를
꺽으라고 해야 바가지를 안 쓴다고 해서
택시를 타고 미터기를 가리키며 "꺽어!”
라고 했다.
기사가 얼마나 인도에 있었냐 묻길래
한 일년정도 있었는데 수십번 왔다 갔다
해서 인도는 내 손바닥 안이라고 했다.
‘짜식 이쯤 했으면 바가지 못씌우 겠지.’
그러나 내릴 때 미터기의 두 배를
기어코 빼끼고 말았다.
세상에! 법이 바꼈다나 어쨌다나
외국인은 미터기의 두 배를 내야
한다고 때를써댄다. 관광청에서 받은
공문이라고 벵갈어로 쓰인 무슨
서류까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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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 끝나고 따뜻한 미홍씨를 위해
기도했다. 그녀의 인생에 신의 축복과
풍요와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그리고
시집도 잘 가서 아들 한 타스는 낳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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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5일 요가난다님 생일날 쓸 만국기
다는 것을 한시간 반 정도 도와줬다.
아쉬람 입구에서 줄줄이 단 국기들이
꼭 운동회 하는 것 같다.
수파르나가 아쉬람에 놀러 왔다.
자기 여자 친구들 두 명을 달고.
연못가에 한가히 앉았다. 자기 친구에게
당당히 나를 보고 “나의 친구야”하고
소개하는 게 귀엽다.
그때 무법자 아쉬람의 들개 세바르나트 꼬르(10살)
녀석이 냄새를 맞고 오길래 내가
“이 녀석도 나의 친구야” 하니 모두들
재밋다고 웃는다. 뭐. 애들 데리고
철학에 대해 이야기 하기도 그렇고
해서 어릴 때 지리산에 살 때 뱀 잡아
먹은 이야기랑 개구리 잡아 먹은
이야기를 해줬다.
다들 입을 다물지 못하고 존경
스러운 눈길로 경이롭게 쳐다본다.
짜식들. 존경스러울 꺼다.
애들이랑 노니까 제일 재밋다.
내 말이 잘먹히니깐. 뭐.
“You are my eternal spiritual fri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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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고, 라마크리슈나 제자
스와미 와 산책하다가 낮에 미홍씨가
말한 라마크리슈나 국제 센터의 약간의
파벌 있다는 것에 대해 물어봤다.
자기가 있는 남아프리카는 벨루마트
(라마크리슈나 국제 본부=비베카난다
아쉬람)에서 따로 분리되어있다고 한다.
하는 일은 같은데 서로 맞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파라마한사지
제자들도 그런 사람이 많다고 한다.
처음에는 놀랐다. 처음 듣는 이야기 였기
때문이다. 기존의 인도의 스와미 교단에서
미국 S.R.F본부는 독립되어 있기에
거기에서 파생되는 문제와,
요가난다지의 고참 제자들을 제치고
젊은 다야마타를 구루께서 회장으로
임명하는 데 반발한 일부 제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아. 그런일이…
스와미께서 머무는 곳에 함께 가자고
해서 골목길을 돌아 돌아 따라갔다.
4층으로 이루어진 건물의 협소한
계단을 올라가니 작은 방에 야전용
군용 침대를 놓고 지내고 계신다.
이곳 아쉬람은 요가난다님의 직계제자인데
인도의 요고다 마트에서 따로 떨어져나와
독립적으로 아쉬람을 갖고있는 분이라 한다.
현재는 그분은 입적하시고 그의
아들이 관리하고있다고 한다.
내가 우리 아쉬람 귀가 시간(정문 닫는
시간밤 9시)를 준수하기 위해 돌아
가야해서 스승님 제자의 아들을 내일
소개 받기로 하고 급히 돌아왔다. 그
곳은 하루 머무는데 25루피 씩 낸다고 한다.
스와미지는 내일 10시에 히말라야
리시케시로 떠난다고 한다. 문 입구에서
나를 사랑한다 하시며 꼭 안아 주신다.
그리고 “너는 성스러운 사람이다”라고 하신다.
격이 없고 정말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다.
근데 내가 holy man이라니 이런 영광이
있을까. 스와미께서 말씀하신 이상 나도
성스러운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겠다. 진짜.
이곳에 와서 가만히 지켜보니 수행을
많이 하신 분은 격이 없는 것 같다.
항상 웃으며 푸근한 평화와 정겨움이
흘러 넘친다. 그러나 명상의 경력이
낮은 사람은 표가 나는 것 같다.
너무 형식적이고 딱딱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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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파르나가 보고 싶다. 알 수가 없다.
이상하다. 계속 자식 같은 애착이 들고
뭔가 사랑 주고싶고, 모든 것을 주고
싶은 느낌이 자꾸 든다.
전생의 인연인가. 모르겠다. 더 지켜보자.
마헤스와리 굽타 아줌마가 뭔가
줄 것이 있다고 해서 가니까 스승님
사진과 편지를 써서 준다.
“해피 뉴 이어 98! ” 정말 고맙다.
굽타 아줌마는 항상 인도 전통
사리를 입은 맵시가 정말 아름답다.
자신의 모습이 멋있다는 것을
음미하는 것 같다.
지금 나는 사랑을 듬뿍 받고, 축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겠다. 구루지의
사랑과 성스러운 어머니의 축복이 많이
내리고 있다. 신이시여. 내가 당신께
보답하는 길은 오직 헌신하고, 명상하는
길임을 압니다. 내 속에 있는
당신을 알 때까지-.
-------옴 샨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