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그림들은 이번에 1백 수십년만에 프랑스에서 반환되는 외규장각 의궤들 중 일부입니다. (연합뉴스 보도)
( 큰 사진으로 보면 훨씬 더 아름답고 생생한 그림들인데 아직 큰 사진을 못 구해서 아쉽습니다.)
만들어진지 2백년의 세월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종이가 너무나 생생해서
프랑스의 문화재 보관기술이 좋아서 그런게 아니냐고 얘기되었었는데
그게 아니라
알고보니 한지(한국종이 = 닥나무종이) 중에서도 고급품인 [초주지(草注紙)]라는 종이라서
2백년이 지나도 너무나 생생하다는 것이 드러났죠.
한지(한국종이)는 수명이 1천년 이상도 가기 때문에 한국에는 1천년 넘은 책들도 많죠.
조선의 의궤는 이미 유네스코에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도
세계적으로도 그 가치가 큰 유물이라 하겠습니다.
아래는 참고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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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의 종이-高麗紙
중국 사람들은 고려지를 종이 가운데 최고의 종이로 평가하였다.
그래서 붙인 별명이 '금령지(金齡紙)'라는 호칭이다. '황금과 같이 변하지 않고 오래가는 종이'라는 뜻이다.
서양의 고서들은 200년이 채 못 되어도 손으로 만지면 바스라져서 책장을 넘기기 힘들다.
반면에 우리 고려지(高麗紙)는 1000년이 지나도 유지가 된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1000년 세월을 견디는 종이는 세계에서 고려지뿐이라고 한다.
이번에 프랑스에서 돌아온 외규장각 도서들은 '초주지(草注紙)'로 되어 있어서, 200년이 지났지만 변색도 되지 않고 성성하다고 한다.
북송의 이름난 서예가였던 황정견(黃庭堅·1045~1105)은 자신의 문집인 '산곡집(山谷集)'에서 고려의 '성성필(猩猩筆·성성이 털로 만든 붓)'이 좋고,
고려지의 일종인 '백추지(百錘紙·추로 100번 두드려서 만든 종이)'가 아주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송나라 문인 진원룡(陳元龍)도 역시 '고려지는 비단을 만드는 누에고치실로 만들어 색깔도 비단과 같고, 질기기도 비단과 같다.
글, 그림에 사용하면 먹의 번짐이 아주 좋다. 중국에는 이런 종이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고려에서 만든 견사지(絹紗紙) 또는 잠사지(蠶絲紙)가 이것이다.
근래에 대만 고궁박물관의 수장고에서 소동파와 황정견의 서예 작품들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감정해 본 전북대 김병기(58) 교수에 의하면
이들이 쓴 종이는 대부분 '고려지'임이 확실하다는 주장이다.
작년에 경매에 나와 최고가인 770억원대에 팔린 황정견의 작품 '지주명(砥柱銘)'도 종이는 '고려지'라는 것이다.
청나라 건륭황제도 명말의 화가 동기창(董其昌)이 그린 '강산추제도(江山秋霽圖)'의 우상단에 '그림도 좋지만 종이도 아주 좋다'는 발문을 적어놓을 정도였다.
이 종이는 조선 왕실에서 중국 황제에게 선물로 보냈던 종이였다.
동아시아 정신문화의 핵심인 시(詩)·서(書)·화(畵)를 떠받치고 있는 최고의 종이는 모두 한지(고려지)였던 것이다.
임권택 감독의 101번째 영화 '달빛 길어 올리기'는 우리나라 한지의 상당 부분을 담당했던 '전주한지'의 이야기이다.
임실을 비롯한 전주 일대에서 자라는 닥나무는 그 껍질이 아주 단단하고 하천의 물이 좋아서 1920년대까지 최고급 한지의 주 생산지였다.
( 출처 - 조선일보 2011.04.17 [조용헌 살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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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기사는 일본 최고의 전통 종이라는 '센카지’(泉貨紙)'의 원류 즉 근원을 한국에서 찾은 어느 일본인에 대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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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 한겨레신문 2010-11-22 )
장지방-사카모토 특별한 인연
일본 화지의 원류 ‘음양지’ 찾아 한국에
97년 ‘전국 유일 장인’ 장씨 만나자 큰절
탁월한 보존성 전세계 알리는 ‘홍보대사’
지난주 서울 조계사 맞은편 골목에 자리한 ‘장지방’ 서울매장에서 만난 일본인 사카모토 나오아키(62·오른쪽·페이퍼 나오 사장)는
자칫 끊길 뻔한 한국과 일본의 500년 종이 인연을 되살리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사람이다.
장용훈(가운데) 한지장의 맏아들이자 전수자인 장성우(43·맨 왼쪽)씨는 사카모토 사장을 처음 만난 때를 어제 일처럼 생생히 기억한다고 한다.
“1997년 어느날 점잖은 외국 신사가 멀리 청평 공장까지 찾아와서는 아버지 손을 덥석 잡고 큰절까지 올리는 거였어요.
처음으로 아버지가 존경스러워 보였고 내가 해온 일에 자부심을 느낀 순간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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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카모토 나오아키(62·오른쪽·페이퍼 나오 사장)·장용훈(가운데)·장성우(맨 왼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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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우씨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건너온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시코쿠 ‘센카지’(泉貨紙)의 원류인 음양지를 드디어 찾았다’며 감격해하는 사카모토 사장에게서 큰 격려와 자극을 받은 것이 계기가 돼
2000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6호 지장 전수자가 됐고, 동생 진우씨와 함께 다양한 색깔의 한지를 만들 수 있는 옷칠·감물 등 ‘종이물감’을 개발하기도 했다.
사카모토 사장을 감동시킨 음양지는 흔히 문창호지로 쓰던 두 겹의 두꺼운 한지를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는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이 쓰인 종이도 이것으로, ‘천년 한지’의 명성이 여기서 비롯됐다.
“처음 한국에 왔던 88년만 해도 인사동에서 음양지를 구할 수 있었는데 10년 뒤 와보니 전주에도 원주에도 만드는 장인이 없어 놀랐다”는 사카모토 사장은
그때 이후 해마다 10만~20만장의 음양지를 주문해 가는 장지방의 큰 손님이 되었다.
그의 손에서 다양한 색과 용도로 재가공된 음양지는 일본만이 아니라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북미 등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명품을 알아보고 그것을 만든 장인을 찾아 장인정신을 북돋워준 사카모토 사장의 안목 또한 명장급이 아닐 수 없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호는 ‘지인(紙人)-종이를 지키는 사람’이다.
김경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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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기사에서 어느 일본인이 한국전통종이를 대량으로 사다가 색깔을 입히는 등 해서
세계에 호평을 받으며 많이 보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세계인은 이 한국전통종이를 일본종이로 오해하는 일도 많을 것입니다.
[한국종이]가 [일본종이]로 '둔갑'하는 것이죠.
임진왜란 때 많은 조선도공이 일본으로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일본에서 많은 도자기들을 만들어냈고
일본은 그 도자기들을 세계에 수출하여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세계인들은 대개 이 도자기를 그냥 '훌륭한 일본도자기'라고 알고 있겠지만
사실 이 도자기들은 [한국 장인]들이 만들어낸 도자기들이죠.
이렇듯이 훌륭한 한국전통물건들이
때로는 중국전통물건으로 오인되면서 세계로 퍼지고
때로는 일본전통물건으로 오인되면서 세계로 퍼졌다 하겠습니다.
물론 앞으로 그러한 오해들이 차차 바로잡힐 것이라 생각합니다.
출처 : 한국고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