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영희님의 자전에세이 “나의 꿈 나의 삶”을 읽고
지난 12월 14일 12시 대덕복지관 로비에서 성영희님으로부터 자전에세이 “나의 꿈 나의 삶”을 교부 받아 돌아와 오늘 까지 3일간 다 읽었다. 5부 72편 257쪽이었다.
소진 박기옥 수필가의 跋文에서 책 내용을 상세하게 품평을 해서 공감을 더하게 했다. 육남매의 맏며느리로 그 고된 시집살이를 이겨 내면서 삼남매를 훌륭하게 키워 자기 못한 학업의 소원을 이루었고 그 덕으로 노경을 행복하게 누리고 있으니 한마디로 대단한 분이다. 칠십 후반에 검정고시를 거쳐 대학을 나왔고 외손녀 덕으로 두바이 7성급 호텔에서 4만 원 짜리 금가루 커피를 음미 했다는 구절에 입이 벌어졌다. 해피 엔드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이었다. 立志傳的인 여장부다. 정상적인 학업을 이수 했다면 아마 큰 인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자전 중 아래와 같이 마음에 닿는 글을 발췌해 봤다.
1. 64쪽 “수의”
~末尾~ 남편의 마지막 가는 길, 내손으로 만들어 입혀 보낸 소색의 수의, 님은 도포 넓은 소매로 팔을 벌려 하늘로 훨훨 날아 극락왕생 했으리라 믿는다. 나는 법당을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이 푸른 하늘로 도포자락을 펄럭이는 남편을 향해 팔을 들어 안녕을 고했다. 편히 가세요. 내 사랑.
2. 86쪽 “새로 지은 작은 집”
~ 말미~ 집 짓는 고생에 나의 앞머리가 엉성해졌지만 행인들의 칭찬에 고생한 보람이 있는 것 같았다. 커피 한잔의 여유와 함께 소파에 앉아 내 힘으로 새로 지은 작은 집을 둘러보니 모든 것이 감사하다.
3. 100쪽 “나의 꿈”
~말미~ 꿈을 바라보는 나는 장거리를 뛰는 마라톤 선수처럼 멀리 내다보며 매일 매일 열심히 공부 했다. 황혼의 공부라 남들 눈에 어떻게 보였든 나는 내식대로 최선을 다했다. 내가 가진 조건과 환경에서 남은 인생도 나는 최선을 다할 것이다. 이제 나의 꿈은 가까이 오고 있다. 꿈을 잡는 그 날이 오고 있다.
4. 103쪽 “검정고시 합격”
~전략~ 방송국에서도 76세 할머니의 고졸 합격 인터뷰를 했다. 내 삶의 한이 되었던 고졸 합격증이었다. ~중략~ 합격이란 두 글자가 나에게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 같았다. 학원 앞에도 골목길에도 현수막이 걸렸다. ~ 중략~ 그러나 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대학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5. 128쪽 “수필과 나”
책을 한권 받았다. 문학동아리 연간집인데 자기의 글도 실려 있다면서 한번 읽어보라 했다. 수필집이라 관심이 생겨 나 도 그 모임이 가도 되느냐고 했더니 흔쾌히 승낙을 했다. ~중략~ 6남매의 맏딸로 태어났다. 부모님 농사일 돕고 동생들 돌보느라 초등학교 졸업도 못했다. ~중략~ 지인을 따라 수필모임에 참석은 했으나 나는 아무것도 몰랐다. 회원들이 글을 써와 돌려가며 합평을 했으나 나는 꿀 먹은 벙어리였다. 그러나 나는 매달 참석을 했다. ~중략~ 회원들이 돌아가며 합평을 했다. 회장은 내 글에다 빨간 수성 펜으로 죽죽 긋고 동글동글 체크를 했다. 글이 온통 딸기밭 같았다. 나는 충격을 받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으나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이해가 안 갔다. 비로소 수필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다. 어느 날 우연한 인연으로 대구대학 수필창작의 소진 박기옥 선생을 만났다. 소진 선생의 강의는 목마른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곳이 바로 내가 원하는 그곳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열정을 쏟았다. ~중략~ 소진 선생이 나의 글 “수의”를 잘 썼다고 칭찬을 했다. ~중략~ 수의정도 되는 글 몇 편 만 더 나오면 등단도 가능하다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뛸 듯이 기뻤다. 등단이라니!
6. 134쪽 “文誠의 길”
~전략~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호를 받았다. 文誠이었다. 글로서 이루어진다는 뜻이었다. ~중략~ 호 탓인지 시간이 되면 늘 글을 썼다. ~중략~ 내 눈에 각인된 경험들은 글쓰기에 바탕이 되었다. 한자리에 정체되거나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했다면 나는 글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작은 것에서부터 점차 큰 것으로 두려움을 극복 할 수 있었기에 文誠 이란 호와 인연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 인연을 소중이 끌어안으며 나는 쉼터에 앉아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이상 여섯 편의 글에서 마음에 닿는 구절을 뽑아보았다.
작가는 수의의 글에서 진실과 정성이 담긴 필력의 소질이 임자를 만나게 되어 발탁의 계기가 되 었고 5의 “수필과 나”에서 생각도 못했던 글쓰기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합평회에 제출한 딸기밭 수모를 당하지 안했다면 그대로 주저앉았을 런지도 모른다. 여기에 작가는 남다른 패기와 용단이 새로운 길을 찾게 된 것이리라. 6의 밑줄 친 글과 같이 한자리에 정체되거나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했다면 인생 판도가 달라졌을 것이다. 바로 여기에 작가의 장점이 오늘을 있게 한 동력 이었다고 볼 수 있다. 道吾善者는 是吾賊이오 道吾惡者는 是吾師라 했다.
却說 하고 나와의 인연은 아래 글과 같다. 청보리 수필 반에 들어와 처음 품평 받을 때의 글에 레드 라인으로 발갛게 꽃이 피였다고 호소한 글이 생각난다. 각고의 도전 끝에 등단을 했고 검정고시를 거쳐 학사모까지 쓰게 된 만학의 영광을 얻게 되었으니 苦盡甘來 란 말이 이를 두고 한말 같다. 아직 건강하고 도전심이 강해 100시대에 앞길이 창창하다. 이제 대학을 마쳤고 문인으로 등단을 했으니 왕성한 피력으로 많은 작품이 나오리라 기대한다.
책의 크기도 알맞고 표지의 아름다운 그림과 은박지 디자인이 너무 예쁘다.
祝 發刊
성영희님의
“나의 꿈 나의 삶”
자전에세이 출간을
마음깊이 축하합니다.
코로나로 인해 출판축연을
취소했다니 아쉽습니다. 주신
책 감명 깊게 잘 읽었습니다.
수필가로 등단하셨고 책가지
출간했으니 이제 당당한
작가입니다. 건필을
빕니다.
2020년 12월 17일
愚聾 드림
아래 글은 1년 전 작가에게 보낸 나의 메일이다.
보현행님께
보현행님! 등단 하셨다는 메일 너무 반갑고 기쁩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제 당당한 수필가입니다. 그기에 사진작가까지 겸 했으니 금상첨화입니다.
학사과정을 마치시면 본격적으로 글쓰기에 매진하여 중견 수필가가 되기를 밀고 바랍니다. 立志傳的인 삶의 과정 자랑스럽고 본받고 싶으며 한편 시샘도 납니다. 청보리 11집에 실린 보현님의 글 “무딘 걸음”이 드디어 목적을 이루었습니다. 글이란 별건가 그저 삶의 진실이 묻어나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으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했지요. 그게 통한 것입니다. 무딘 걸음이 아니라 跳躍입니다.
글쓰기 공부를 하는 우리에겐 등단이란 登天의 영광이지요.
저는 여러 번 탈락에 이제 나와는 너무 먼 거리임을 체념하고 말았습니다. 원래 등단을 꿈 꿔본 적도 없고 계속 쓰고 있는 일기라도 제대로 써보겠다는 바램과 수필 읽기를 좋아 했어 삶의 부대낌으로 받는 스트레스를 뱉어 내는 배설작용의 수단으로 시작 했지요. 그래서 붓 가는대로 쓰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
작했는데 갈수록 어려워지네요. 그래도 청보리 수필과 함께한 세월이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 득으로 “먹구의 푸념”이란 수상집도 내게 되었고 첫 수상집에서 빠진 글과 종사에 관한 글, 편지 글, 그리고 80이후의 글을 한데 모아 제2 수상집 발간을 준비 하고 있습니다. 보현님도 자서전을 내시겠다하니 그를 본받아 이번 수상집은 출판 기념회도 가져 볼가 합니다. 나이 탓인지 그렇게 좋아하는 독서마저 무디게 되고 그저 내 마음속의 응어리를 푸는 삶의 카타르시스이며 내 삶의 충전으로 자족할 뿐입니다.
“수필 입문은 쉬울지 모르나 그 완성은 실로 어렵습니다. 그래서 흔히들 웃으면서 들어가서 울면서 나오는 장르가 수필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만큼 얼핏 아무나 쓸 수 있는 허접한 글 같아도 사실 제대로 쓰기는 참으로 어려운 장르가 또한 수필이 아닌가 싶습니다.” 이는 곽홍열 원로 수필가의 말입니다. 그러니 보현님은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 부터입니다. 나이 80에 등단이란 영광을 얻었지만 한편 그에 부응한 노력이 따라야하는 무거운 짐을 지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수필집과 자서전도 내시고 여러 사람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는 훌륭한 작가가 되리라 믿습니다. 대기만성의 영광과 건필을 빕니다.
돌이켜 보니 보현님과 알게 된 것이 퍽 오래된 것 같습니다. 대덕 복지관 컴퓨터 중급반으로 기억됩니다. 20년이 가까워졌네요. 그 때 나는 초급에서 중급반으로 올려가 강의에 따라 가기가 힘 들었을 때였는데 그 때 보현님과 같은 반에 수강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지요. 내가 70에 컴퓨터를 처음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늦게 배운 도둑질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한창 몰입할 때 이였습니다. 그 때 보현님은 고급수준으로 디지털 카메라로 사진편집 메일 보내기, 엑셀 파워포인트, 동영상까지 마스터한 고급 수준으로 홈페이지와 카페운영까지 하며 많은 회원과 소통하고 있을 때 이였습니다. 수강생이기보다 조교로 강의에 따라가지 못하는 수강생을 돌봐 주는 수준이었지요. 그 때 내가 많이 배우고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 후 메일로 좋은 글 과 그림 동영상을 보내주고 메일 친구가 되었고 그러든 중 우리 청보리에 제가 인도를 했지요. 10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수필로 인해서 삶의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모두의 것이며 나의 아픈 고뇌와 감추고 싶었던 흠도 털어내 놓을 수 있는 용기를 갖게 했습니다. 서로의 어려웠던 지난 시절을 알게 되었고 동병상련의 연민을 느끼게 했습니다. 책이 나오면 등단 글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출판기념에 참석의 영광을 얻게 되기를 기다리겠습니다.
제 2수상집의 글을 알집을 묶어 첨부 파일로 보냅니다. 시간 나시면 열어보시고 취사선택의 보완과 충언을 바랍니다.
2019년 7월13일 한용유
첫댓글 성영희샘님 수필집 발간 매우 축하드립니다 대단하십니다
나는 요사이 별 할일도 없고 해서 자주 카페문을 두드린다. 회원님들의
소식도 궁금하고. 노크의 손등만 아프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하니 그렇게
자위 할 수 밖에. 코로나로 인해 집콕신새가 된지 1년이 넘었는데도 요놈의
코로나는 800선을 넘어서며 더 기승을 부리고 있다. 다음주 중 남구도 백신을
실시한다하니 아내는 부작용으로 겁이난다고 안맞겠다고 해서 맞고 죽어나
안맞고 죽어나 이제 저승 문턱에 왔는데 뭐그리 삶에 애착 하느냐고 티방을 줬다.
104세의 생물학자가 골절상을 입고 2년을 고생하다가 그 고통을 못이겨 스위스
까지가서 2천만원 의 거금까지 주고 안락사 했다는데 살만치 살았는데 주사 한방에
돈 한잎 안들고 간다면 얼마나 행복한 죽음이냐고 뱉고나니 막말 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2021년 4월 24일 어리석은 먹구 愚聾
한선생님 고맙습니다. 제 책을 읽으시고 저의 과분한 칭찬까지요
부끄럽습니다. 너무 늦게 들려 이제야 답을 적습니다. 죄송합니다.
앞으로는 자주 들릴게요 많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