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 둘레길 세 번째
하림각에서 하차하여 구기동 터널로 가는 7022번 버스로 환승하여
지난번 독박 골에서 하차한다.
이곳이 장미공원으로 자투리땅을 활용하여 조경에 많은 신경을 쓴 흔적이 크다
그러나 공원 바닥에 숨통을 막고 깔아 놓은 고무제 우레탄 바닥이
지열과 자체 팽창력에 혹이 단단히 나서 부풀어져
고무다리처럼 지나가면 흔들거린다.졸속 부실공사의 표본이다.
생태공원이다
나무이름과 꽃 이름 등을 적어 팻말을 달고 산림을 울타리로 막아
인간의 출입을 막은 모습이 흉물스럽지만 다른 대안이 없지 않은가?
하늘 길 구간이다 좁은 길에 작은 배추밭이나 텃밭에는 무단경작 금지
팻말이 붙어 있다 한사람 봐주면 다른 사람이 또 농사를 지을 것이고.......
그래서 결국은 노는 땅을 활용 못 하게하는 것이 정치인가?????
국유지에 작은 텃밭이 있는 것이 뭐여 그리 큰 잘못인가????
알 수 없습니다.
그냥 나무 심은 것만이 능사란 말인가???
이곳은 서울에서도 경기도 양주와 인접한 힘없고
어려운 사람들이 주로 사는 곳인데!!!
내려가다 보니 기자 촌이 나오고 지금은 한참 철거 공사 중이다
아마 이곳도 뉴타운 자리인가 보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삼각산의 경치가 빼어났다!!!
그리고 능선이 계속된다.
작은 소 여물통 같은 석물 받침이 널브러져 있다
가만히 자세히 보니 비석도 자빠져있다
통훈대부 내시부 승선 아무개 지묘..... 내시의 무덤인 듯하다
그리고 작은 너무 작아서 앙증맞은 문인석이 있다
어린동자석만한 크기다
그것도 누가 훼손을 했는지 머리는 도끼로 잘라버리고 이곳저곳 뒹군다.
그리고 더 내려가니 거대한 화의군 군 묘가 나타난다.
그리고 이곳에 이장한 현대와 고대가 합쳐진 석의를 갖춘 묘가 나온다.
세종의 손자(화의군)의 아들인데 초기는 守의 벼슬이었다 봉 군이 된 묘다 양주에서
아버지 산소 옆으로 이장한 모양이다
옆의 화의군 묘는 울타리가 쳐져 있고 아래에 홍살문이 있고 재실이 있다
옆을 막고 선 거대한 아파트에 후원 정도로 보인다.
오른편 줄기 진관사와 계곡을 가르는 줄기에도 중종???의 아들인
군 묘가 있던 기역이 난다
아파트 단지의 홍예브리지근처로 하산하여 진관사를 바라보며 걷는다.
뒤를 돌아보면 북한산과 계곡이 한눈에 들어오는 대단한 지세의 기세가 대단해 뵌다.
범부의 눈에도 대단해 보인다. 이곳이 왜 왕릉이 아닌
군 묘들만이 판을 치나 의아하다
진관생태다리를 건너 우측 길로 안내판이 붙어 있다
이곳은 농원으로 각종 나무를 심고 잘 전지하여
관리한 틈새로 열무와 채소를 심어 소득을 올리는 농원이 밀집된 밭을 지난다.
그리고 버려진 풀밭이 많이 나온다.
이곳이 내시의 묘역리라 명명된 것으로 봐서 묘역이 관리가 안돼서 풀밭인지?
훼손해서 풀밭인지? 모르지만 석물은 뵈지 않는다.
조경 석으로 반출될는지도 모르겠다.???
자식이 없으니 관리가 안 되고 천하게 여긴 왕조의 손발들이니 방치한지 모르고
아무튼 무자식은 천덕구니다
지금은 청소년들은 제 증조 고조의 諱자(죽은 할아버지 이름)도 모르고 선영의
관리는 점점 더 어려워져 머지않아 저기 내시 묘 같은 처지가 될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묘소는 아닐는지 걱정이다
나면 죽는 것이고 죽으면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인간이 수 백 년을
너무 독식하여 산의 주인인 산무나 산짐승의 몫을
빼앗은 것은 아닌가 생각도 든다.
세월의 변화와 풍속과 종교의 변화는 우주의 섬리 아닌가!!
달도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돋고....변할 자는 변할 것이고
지킬 자는 지킬 테이니 괜스런 상념이 아닐지!!!
오늘은 사진 찍기에 바쁜 나의 보폭을 맞추려다 화가 난
마누가가 치고 앞서 갔다 점심때인 2시경에 전화가 왔다
북한산성 입구 초등학교 앞이란다
동네구멍가게 의자에서 막걸리 한 병 사서 싸간
김밥 전류 사과 커피로 요길 하고 다시 나선다.
북한선성 입구개울가에 둥근 대형 자연석위에
전주이씨 무슨 군의 묘소란 큰 붓글씨가 있다.
글씨가 하 졸필이라 그 전부터 한번 가보고픈 욕심이 있었는데
드디어 오늘 가본다
묘역은 울타리가 처져 비문을 보지 못했으나
큰 묘역 군이다 산의 경사가 큰지 묘 제절에 볼품없게 석축을 쌓았다
모두 그렇다.
묘역의 제절은 넓어 졋겟지만 전체 조화는 맞지 않아 뵌다.
그냥 그대로 두면 보기도 좋고 제절은 좁은 대로 시향 때
편편한 곳에서 절을 하면 될 일을 ????
지금은 향사에 제관이 이곳이라 많이 모이진 않을 진데 말이다??
지난번 서오 능에서 우연이 어느 영빈이씨의
제사를 목격하고 올라가보니 불과 20명 안팎의 인원이다
이장된 묘역이엿다.
이곳을 지나면 다시 송추 가는 대로로 나온다
한참을 가면 임시 허름한 식당이 나오고
그 산길을 따라 오르면 숲이 된다.
이곳은 이제 휀스를 치면서 공사 중이다
요란한 징소리 괭가리소리 북소리가 난다 국사당이란 안내판이 붙어있고
무당의 상징인 솟대와 여러 깃발이 날린다.
들어가 본다. 어느 누가 치성중이다 40대로 뵈는
신식 무당들이 화장을 곱게 하고 반말을 연실 해대며 두발로 뛴다.
밖에는 통돼지가 놓여 잇다
개울출입차단 울타리 쪽문을 뚫고 들어간 곳에
촛불 여러 개와 제물 놓고 머리를 기른 남자무당이 북에 괭가리를 묵어놓고 두 개
채로 치며 무슨 주문을 저만 알아듣는 목소리로 왼다.
한참을 쳐다보니 치성을 드리려는 70대로 보이는 여자는
의자에 편의 앉자 서 손 바닥을 연실 부비는 것을 봐서 그분의 치성주인인가 보다
고객을 위한 써비스 정신의 발전계승인지 모르겠다.
방안의 벽에 걸린 문구는 한자와 한글병기 했다
봉원 아무엇무엇이 기록 됐다
가만히 보니 출옥기원치성인가보다
직업은 소요가 공급에 의해 이뤄지는 것 아닌가
지금도 많은 수요가 있으니 굿이 판을 치는 모양이다
산 고개를 넘으니 사기막이다 왼편으로 갈을 따라 다시 대로로 나온다.
그리고 각 구별의 예비군 훈련장이다 그 후 양주 땅에 들어선다.
오른쪽 석굴암 입구가
우이령 탐방코스다
인테넷으로 신고한 사람만 통과되고 65세 이상은 컴맹으로 간주하여
이곳에서 공원관리자가 신청을 해준단다.
시간도 늦고 켐멩 인정 군번도 안 되어 귀가한다.
그리고 10월4일 월요일에 신청을 하여 다시 교현리에서
우이동코스로 가기 로하고 출발한다.
집에서 704번 버스를 서울역에서 환승하여 석굴암입구에서 하차하여
공원관리자의 확인을 받아 군부 대 울타리길 을 오른다.
소달구지 넘던 시골길이다 송추에서 우마차에 농작물 싣고
고개 넘어 서울 쌍문동으로 물건 팔러 다니던 길이고
우리가 부르던 동요“ 바위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님
그리워 그리워 눈물납니다 “
“바위고개”란 동요의 이흥렬시 이흘렬 작곡의 그곳이었다.
일제의 강점기에 민족의 비운을 표현한 노래로
고개 위에 숨어 기다리던 님은 이제 해방이 되여 우리 곁에 왔다.
그러나 육이오와 김신조 공비가 이곳을 통과 한 뒤로
지금껏 군사용이란 미명으로 통제하던 길을 이제
우리가 다시 인터넷에 실명을 올리고 확인을 받아 오르고 있는 길이다
반 쯤 주인에게 돌려 주고 아직 반은 청직이 놈들 차지다
오봉이 잘 뵈이는 곳에 전망대가 있다
그리고 오봉산 석굴암이란 암자가 있었다.
경기민요에 등장하는 오봉산타령이 이곳인가 보다
석굴암이라면 당연이 오봉 밑의 암에 있을 진데 700미터란
팻말을 우습게 알고 오르다보니
보통 높이가 아니다 이곳 경유 하는 데 1시간이 소요 됐다
올라가보니 절경이고 소나무와 자연에 순응하여 쇠망치로
쪼아 만든 대위에 지은 아담한 암자는 자연과 조화로 절경을 이룬다.
그러나 웬 굉음과 바위를 긁는 쇳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바로 중장비를 동원하여 잘 마당을 확장하는 공사다
그리고 사찰경내가 온통 공사판이다 상부에 신축한 사찰과
기존 옹벽 붕괴를 막으려고 버트레스옹벽을 콘크리트로 설치했고
되메우기 중이다 다짐장비는 뵈지 않는 부실이다 .
그리고 절 마당에 대형 건물을 짓고 경관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외형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거기에 10월 마지막 날 점심때부터 장사익과 고만고만한 가수들의
라이브 공연이 있다는 프랭카트가 붙어있다
참으로 저속하기 이를 때 없다
이곳이 사찰 내 종교 포교시설이 아니고 음료를 파는 접객업소런 말인가?????
참으로 안타깝고 속해 보여 불쾌하다
아무아미 타불 관세음보살
우리령 고개에 큰 마당엔 초등5학년 학생 2학급이 단체로
생태 학습을 나와서 점심 식사중이다
남자아이 둘이 멍석만한 자리를 깔고 젓가락질을 제법하면서
깁 밥을 먹고 한 아이 는 육표봉지를 막 까고 있다
귀여워 말을 석는다.
서울 등촌동에서 온 사립학교 학생들이라 애들이 귀티가 나고 청순하다
같이 자리하여 막걸리를 딴다.
그녀석이 육포를 건네며 저는 안주타입의 간식을 좋아한단다.
저는 일찍이 담배를 피워보니 해로운 것을 알아서 이제는 안 피운단다.
우리도 3-4학년 때 호기심으로 박하 잎에 할아버지 담배를 석어
피어물곤 콜록거린 던 때기 있었으니 그 말도 일이는 있다
한 녀석은 진주 강 씨고 한 녀석은 곽산곽씨라 하더니
현풍곽이 아니냐니까?
다른 이야기 끝에 대구 곽 씨라 정정한다.
강 씨란 아이는
무선파인지는 할아버지가 일찍 죽어 모른단다.
할머니가 69세며 어머니는 3급 판사란다.
모기가 날아가자 잡아서 깔개 위 돌조각 밑에 묻고 “아이고아이고”
곡을 하면서 절을 여러 차래 한다.
다른 녀석도 아이고 곡을 같이 하며 논다
강서방! 학생에 고쳐준다.
“아이고”는 친상만 하는 거야 (부모님 상)
할머니부터 또는 다른 사람은 아이고가 아니고 “어이여”라 하는 거란다.
길을 올라가니 대 전차 장애물이 나온다. 작은 구조물이다 저걸 핑계대고
통제하고 있다니!!!!
아직도 군대는 안이한 발상이
어이 없다
전차 장애물과 인근 사격자이 핑계인 모양인데!!!!
웃음밖에 안 나온다
내려오니 바로 직진하면 수유리길이였다
방학동에서 오는 길이 이상하게 시옷자로 연결됐던 이유를 오늘에야 알겠다.
첫댓글 갈수록 구수한 글 재밋구려
세관선생은 전주 서흥군파는 아니겟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