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팍 도사에서 호탕함과 귀여움(?)으로 작가에 대한 내 이미지를 철저히 파괴했던 황석영. 손님에 이어 바리데기를 읽으면서 그가 허를 찌르리라는 예상은 했지만 마주치는 당황스러움은 피할 수 없는 관문이었다.
두어 장 읽고 나서야 바리가 북한 사람임을 알았다. 첫 번째 당황함이었다. 창피한 얘기지만 소설에 대한 아무런 정보도 없이 바로 읽었기에 당연히 남한 사람이 주인공인 줄 알았다. 한 마디도 통하지 못하는 아프리카 오지 마을 사람과 마주앉아 밥을 먹는 어색함이랄까? ‘왜 하필 북한 사람이 주인공인가?’ 그녀와 그녀의 가족과의 첫 만남은 좌불안석이었다.
그러나 작가의 설정은 놀라운 효과를 냈다. 어느새 그녀와의 간격은 좁아지더니 마침내 바리와 같은 인물인 듯한 느낌이었다. 사람은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느냐에 따라 그 입장과 생각이 천지 차이이다. 황석영은 바리를 주인공으로 두어 독자가 바리의 눈으로 소설의 흐름을 따라가게 해서 바리가 ‘북한 사람’이 아닌 ‘나, 우리’가 되도록 했다. 북한에 있는 이들도 같은 핏줄을 나눈 사람이라고 아무리 떠들어대도 이보다 더 강력한 효과를 보지는 못하리라.
정신없이 바리를 따라 여행하던 내내 나는 종국에 그녀가 남한에 도착할 줄 알았다. 최소한 남한으로 가는 기회를 잡을 줄 알았다. 두 번째 당황함이었다. 바리가 꿈꾸는 땅이 당연히 남한이 되리라 생각했다.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다. 남한이 좋은 땅이고 북한은 열악하다는 교육 때문이었을까? 공산주의에 대해 배우고 이해하고 있다고 여겼음에도 내 마음속에는 은연중에 우월감과 자만이 있었다.
누가 그러던가. 남한에 오면 무조건 행복하다고. 바리가 남한에 왔다면 불행했을지도 모른다. 더 자유롭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혈혈단신으로 와서 다른 민족만 못한 대우를 받았을지 모른다. 작가는 이런 사실을 간파하고 바리를 모든 족쇄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 동시에 우리에게 일침을 놓고 싶었던 게 아닐까?
마지막 당황스러움은 바리의 딸 홀리야 순이가 죽었을 때였다. 그녀가 걸어온 길이 너무나 험하고 멀어서 첫 아이를 가졌을 때 이제는 바리가 행복해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길은 끝나지 않았다. 고통을 밟아야만 지나갈 수 있는 길. 지쳐도 지칠 수도 없는 고행길. 행복으로 가는 길은 참 멀었다.
지금 한국에 살고 있는 새터민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어디선가 살고 있을 북한 사람들도 그러지 않았을까? 또 지금 북한에 있는 사람들 중 그런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더 나은 삶을 찾아 죽음을 담보로 걷기 시작한 길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가혹했을 것이다. 여러 명의 새터민을 직접 만나보고 사실 나는 그들이 힘들다는 생각을 별로 못했다. ‘언니’라고 부르면서 그저 재밌고 즐겁게 놀았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이 오기까지 얼마나 괴로운 시간의 땅을 밟았을까? 많은 이들이 또 밟고 있을까? 우리는 그들이 걸을 때 무얼 하고 있는가?
신비로운 능력을 갖췄기에 역경을 이겨낼 수 있었던 바리(물론 그녀의 의지를 높게 평가하지만)의 다소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지독히도 현실적인 아픔을 품고 있다는 점은 참 아이러니하다. 그럼에도 그것을 뛰어넘는 메시지는 분명해 보인다. 바로 화합과 용서이다.
바리는 가족을 원망하지 않았다. 환경도 원망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를 죽게 만든 샹도 결국은 용서한다. 바리데기의 결말은 바리데기가 모두를 용서하고 구원함으로 끝난다. 자신을 버린 부모도, 형제도 용서하고 모두를 고통에서 구하는 바리데기. 우리에게도 화합과 용서가 수반되어야만 비극적인 민족사에서 시작된 상처와 고통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이 아닐까?
성장 소설의 대가라는 황석영. 그의 이야기로 내 마음이 자람을 느끼는 걸 보니 틀린 말은 아닌가 보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자신의 이야기로 키우고 싶은 것은 수많은 바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첫댓글 * 박보람 : 1) 두 어 장 읽고 나서야 -> 2) 북한사람임을 -> 3) 당황스러움 이었다. -> 4) 오지마을 사람과 -> 5) 단둘이 밥을 먹는 -> * '단'의 용법을 [바르고 고운 우리말 우리글]에 정리하여 보세요. 6) 동일시 된 느낌이었다. -> 7) ‘북한사람’이 -> 8) 당황스러움 이었다. -> * '이었다'를 앞에 붙여 써야 하는 이유를 [바르고 고운 우리말 우리글]에 밝히세요. 9) 북한사람들도 ->
수정하고 게시하였습니다. 교수님, 그런데 '단둘이'의 어떤 부분이 잘못 되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