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마을>육백48호 : 새농어촌 건설은 마을기업형으로
이천십이년칠월이십칠일쇠날,오래된미래마을,정풀홀씨
* <월간디지털농업> 8월호 '마을발전전략 돋보기'에 7번쨰 마을이야기로 실렸습니다. |
강원도의 마을만들기 역사는 길고 깊다.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원도형 마을만들기 사업인 새농어촌건설운동이 1999년에 시작됐다. 2002년도부터 시작한 농식품부의 녹색농촌체험마을조성사업 보다 3년 빠르다. 전국 최초의 주민주도형 자율실천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동안 총 300여 마을에 1,500억원의 사업비가 지원됐다. 마을 수로 보나 사업비로 보나 적지 않은 규모다. 강원도는 2020년 까지 도내 마을의 40% 가량을 새농어촌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다.
특히 올해부터는 추진모델과 실행전략부터 혁신적으로 개선했다. 이름하여‘마을기업형 새농어촌건설운동’의 깃발을 높이 들었다. 슬로건은 ‘소득 2배, 행복 2대’. 소득이 창출되지 않는 마을만들기는 공허한 구호에 불과하다는 말로 들린다. 그래서 소득사업을 추진할 책임있는 사업주체로 마을기업을 전면에 들고 나섰다. 그동안 의사결정구조에 그쳤던 추진위원회부터 사실상 실무집행기구에 가까운 마을기업 조직으로 전열을 재정비하고 있는 것이다.
돈 보다 마을공동체 재생이 목적인 한별마을
1,000m가 넘는 구룡령 깔딱고개를 넘어서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오지마을, 양양군 서면 영덕리 한별마을도 새농어촌건설운동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다.
“돈 보다는 공동체가 먼저라는 생각입니다. 산과 계곡 같은 천혜의 자연환경 말고는 특별히 내세울 게 없는 마을이지만 공동체 정신이 살아있는 복지마을로 건설하겠습니다.”
한별마을 김영철이장(54세)이 털어놓은 마을지도자의 각오는 의외로 담담하다. 잘못 들으면 사업에 대한 열의가 부족한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지만 가만히 사연을 들어보면 이해가 간다.
“1995년부터 마을에 상전벽해 같은 큰 변화가 불어닥쳤어요. 난데 없이 마을 계곡에 양수댐 공사가 시작된거죠. 10년만인 2006년에 국내 최대 양양양수발전소가 들어섰어요. 영덕호라는 커다란 호수가 생기면서 대대로 물려 짓던 농토가 한꺼번에 수몰됐고요. 집과 땅을 잃은 마을의 많은 청년들은 뿔뿔이 흩어질 수 밖에요. 지금은 30가구, 73명의 마을주민들만 겨우 남았어요. 마을공동체의 기반이 한꺼번에 무너진거죠.”
겉으로 보면 한별마을은 사실상 농촌마을이라고 부를 수 없는 풍광이다. 마을의 농경지라야 다 합쳐봐야 전국 1개 농가의 평균치에 불과한 2ha에 불과하니 말이다. 농사를 지어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는 농경제 구조인 것이다. 마을 뒷산에 올라 산나물을 채취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 그래서 김이장을 비롯한 마을주민들은 농사 말고 함께 할 수 있는 새로운 마을공동사업을 절박하고 절실하게 궁리할 수 밖에 없었다. 오로지 무너진 마을공동체, 고향을 되살리기 위해서.
다행히 호수와 댐에 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내준 댓가로 수자원공사로부터 몇 년마다 3억원 정도의 보상금이 나온다. 김이장은 일단 그 돈을 종잣돈으로 삼아 마을공동사업을 벌였다.
오대산에서 흘러내려 마을 앞을 지나가는 후천계곡에 38야영장을 조성하고, 관광모텔과 관광농원을 새로 열고, 공동축사, 공동표고버섯하우스, 저온저장고 등도 지었다.
내침 김에 마을 이름도 새로 지어 달았다. ‘넓은 호수에 별이 빛나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한별마을이라는 마을브랜드를 내걸었다.‘한’은 넓은 호수와 주민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고,‘별’은 호수의 물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해 빛을 밝힌다는 의미다. 마을공동체를 무너지게 한 부정적 원인인 호수와 댐을 마을의 미래비전을 상징하는 긍정적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2010년부터 새농어촌건설운동을 유치해보기로 김이장은 마을주민들과 뜻을 모았다. “이거다 싶었어요. 양수발전소 댐과 영덕호가 농경지 뿐 아니라 마을과 지역의 문화와 전통마저 잠식하고 있는 상태에서. 한별마을의 돌파구는. 게다가 동서고속도로가 마을 앞으로 지나가면서 그나마 남은 천혜의 경관조차 파괴되는 지경이어서 더 미룰 수 없었어요. 이제 시름과 실의에 빠져 마냥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불안감, 절박함이 마을 안에 이심전심으로 전해진 셈이죠. ”
하지만 한별마을은 마을만들기 사업을 시작하는 여느 마을들처럼 의욕만 넘치거나 급히 서두르지 않으려고 한다. 궁극적인 목표도 지원받는 사업비나 소득이 아니라 공동체의 재생에 두고 있을 정도다.
“마을 한가운데로 38선이 지나가요. 38선으로 마을이 나뉜 사연이 마을의 자원이 될 수 있다고 봐요. 스토리텔링이 될만한 흥미있는 소재인거죠. 그래서 야영장도 38, 관광농원에도 38을 붙였어요. 이야기를 따라 트레킹을 할 수 있도록 `38되넘이길'도 만들고 있어요. 38야영장은 1박2일 촬영지로 알려지면서 방문객들이 적지 않아요.”
이미 외부 전문가들과 협의해 마을발전 계획을 구체적으로 정리해놓은 김이장. “마을 밖에도 가볼만한 자원이 많아요. 38선, 에너지, 생태건축 등을 테마로 한 차별화된 자원들이죠. 연간 20만명 정도가 찾아오는 양수발전소의 에너지월드, 교촌아트갤러리, 영덕호, 38폭포 등을 활용하면 38선과 생태자연이 어우러지고 에너지가 넘치는 마을이라는 비전은 현실이 될겁니다.”
강원도의 마을도우미, 농도상생포럼
한별마을의 마을공동체 재생 노력은 밖에서도 인정받고 있다. 이른바 외부 전문가 도우미들이다. 개중에서도‘농촌사랑농도상생포럼’의 활약은 눈에 띈다.
농촌사랑농도상생포럼은 2006년에 발족했다. 농식품부, 농어촌공사, 강원발전연구원, 강원도청, 한림대, 민간컨설팅회사 등 산.학.관.연 등의 마을도우미 전문가들이 모인 재능기부 네트워크라 할 수 있다.
포럼을 이끌고 있는 농어촌공사 강원지역본부의 김기업차장은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다양한 사업들이 시행되고 있는데 마을주민들은 잘 알지 못해요. 설사 사업에 선정된다 해도 주먹구구식으로 무계획적으로 추진되는 경우가 다반사죠. 그런 농촌지역개발사업의 현실이 안타까워서 시작한 일”이라며 "무엇보다 최소한 마을공동사업을 진행되면서 마을공동체가 갈라지거나 깨지는 부작용만큼은 막아보자“고 뜻있는 전문가들이 분연히 나서게 된 것이라고 한다.
아울러 강원도, 강원일보사, 강원도교육청, 강원발전연구원, 농어촌공사 강원지역본부, 농협 강원지역본부가 참여하는‘도농상생 희망만들기’ 프로젝트도 따로 진행하고 있다.
최근 포럼에서 한별마을을 찾아간 이유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별마을은 이제 막 새농어촌건설운동이라는 새로운 마을공동체사업을 시작하려는 마을이에요. 아직 마을만들기에 입문하지도 않은 그야말로 새내기인 셈이죠. 그래서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난 2년 동안 한별마을 나름대로 준비와 연습을 열심히 했지만 아직 부족한 것, 할 일이 적지않아요. 목표로 하고 있는 방향이나 전략은 정말 맞는 것인지 냉철하게 재점검할 필요도 있고요. 특히 새농어촌건설운동이 마을기업형으로 전환되는 첫해이니만큼 한별마을이 마을기업처럼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더불어 공부하고 훈련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최근 한별마을 38야영장에서 열린 제76회 `농촌사랑농도상생포럼'에서는‘마을을 먹여살리는 마을기업’특강을 필두로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특히 한별마을 특산물인 취나물, 부지깽이, 며늘취(금낭화) 등 산채, 그리고 마을주민들이 직접 가공한 인진쑥 등을 직거래 판매하는 `오! 시장'도 열렸다. 한별마을 부녀회장은 “영덕리는 한때 인진쑥마을로 불릴 정도로 인진쑥이 전통적으로 유명한 특산물이었지만 지금은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어요. 전통적인 방법으로 가공한 무공해 자연식품인 마을특산품으로 개발할 생각 ”이라고 자랑했다.
김기업차장은“한별마을이 새농어촌건설운동 사업을 하려는 이유와 목적은 5억원의 사업비가 아닙니다.
이미 발전소의 지원금으로 마을사업을 몇가지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적지 않은 보상금이 추가로 나올 예정이라 돈이 절실하게 필요한 건 아닌 셈이죠. 문제는 마을공동사업 운영조직이에요. 그리고 마을주민들 간의 화합이죠. 바로 새농어촌건설운동을 통해 서로 화합하고 협력하는 마을의 공동체정신을 되살려보자는 것“이라며 도내에서도 보기 드믄 바람직한 사례로 꼽는다.
이번 포럼에서도 한별마을 주민들의 남다른 각오와 자세는 그대로 드러났다. 유니폼을 맞춰입은 마을주민들이 총출동하다시피했다. 잘 학습하고 훈련된 사업조직처럼 부녀회, 청년회, 노인회 등은 각자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그뿐 아니다. 지역의 지원과 지지도 확고해보였다. 부군수, 도의원, 농협조합장, 양수발전소장 등이 참석해 마을의 노력을 격려하고 응원했다.
강원도의 대학, 언론, 연구소, 컨설팅회사 등 각 분야의 외부 전문가들도 아무런 댓가없이 자원해 참석했다. 한별마을에 흔쾌히 주로 지식정보를 나누는 재능기부를 했다. 그렇게 밤을 새워 토론하며 한별마을의 미래를 함께 고민했다.
이제 한별마을은 외롭지 않다. 미래가 불안하지도 않다. 졸지에 산촌마을이 강촌마을로 상전벽해하면서 겪었던 충격과 상처도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다. 이제 한별마을 앞에는‘마을기업형 새농어촌건설운동’이라는 지상과제와 미래비전이 놓여있다.
필자도 그 자리에서 지속발전가능한 마을을 위한 한가지 해법을 제시했다. “마을기업 이전에 마을시민이 먼저입니다. 그리고 훈련된 마을시민들이 마을기업의 경영을 책임지고, 마침내 나도 살고, 우리도 살리는 살림마을로 거듭 나야 합니다. 이건 농민, 농업, 농촌 등 3농정책에 대응하는 마을시민, 마을기업, 살림마을의‘세마을 해법’입니다. 돈 보다는 공동체 재생이 당면과제인 한별마을은 그래서 가능성이 보입니다.”
그렇다. 한별마을은 가능성이 있다. 일단 마을의 문제점이 잘 조사, 분석, 정리돼 있다. 마을주민들이 대부분 컴맹인 점, 마을이 3개 반으로 서로 거리가 많이 떨어져 함께 모여 회의를 하거나 사업을 추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점, 농지가 2ha 밖에 되지 않는 점, 호수에 배를 띄우거나 둘레길 산책로를 개설하고 싶은데 발전소가 허가하지 않는 점, 에너지월드의 20만 관광객이 마을소득과 연계되지 않는 점, 마을 숙박시설인 낙산선샤인모텔과 38관광농원 위탁 임대 수익이 적은 점, 기득권을 갖고 있는 원주민과 새로 귀농한 주민들간의 수익 지분 갈등이 있는 점, 무엇보다 발전소에서 지속적으로 마을에 지원을 해주고 있다는 등이다.
문제를 알고 있으니 남은 일은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차근차근 찾는 일이다. 그런데 포럼 토론 자리에서 노인회장이 주민 모두에게 간곡하게 당부한 말에서 이미 해법은 반 이상 구해진듯 하다.
“이제 시작이다. 눈을 크게 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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