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존엄한 죽음 - 최철주
삶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런 물음 못지않게 죽음에도 그런 의문부호가 생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죽음이란 밥상 위에 앉아 있는 파리 한 마리를 파리채로 때려죽이는 일 같은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나는 아주 작은 일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하지만 생각하는 동물,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에게 죽음이란 살아서 행복한 삶을 생각하고 즐기는 만큼이나 죽음에도 어떤 의미를 포함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죽음에 대해서도 고민해 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영어 웰다잉!(Well Dying)은 존엄사* 혹은 ‘삶의 아름다운 마무리’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인데 이 말은 사랑과 이별, 산자와 죽는 자의 기억과 인간으로서의 가치까지 포함하고 있는 말이다.
*존엄사 : 임종단계의 환자에게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인간으로서의 품위와 가치를 지니고 자연적으로 죽을 수 있게 하는 죽음.
우리 모두는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남의 일처럼 봐서는 안 되고 그것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대 또 해야 하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고, 그럴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2018.2부터 웰다잉법*(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의 시행으로 우리사회는 여러 가지로 마찰이 생길 것도 우려되고 있으나 그 마찰을 줄여나가기 위해서라도 죽음에 관한 토론과 교육이 필요해졌다. 삶만큼이나 죽음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스스로도 고민해보아야 하는 문제가 된 것이다.
* 웰다잉법 제정이유 : 삶을 정리하고 죽음을 자연스럽게 맞이하기 위한, 넓게는 무의미한 연장치료를 거부하는 존엄사를 포함하는 개념으로 웰다잉은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죽음을 준비하는 행위를 일컫는다. 고령화와 가족해체 등 여러 사회적 요인과 맞물려 등장한 현상이다. 또한, 노인1인 가구 증가로 가족의 도움 없이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의식도 퍼졌다. 건강체크로 고독사를 예방하고 삶을 기록하거나 유언장을 미리 준비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웰다잉을 실천할 수 있다. 웰다잉에 대한 관심이 늘자 기업과 복지관 등에서는 비문 짓기 및 사후 신변정리 등 웰다잉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서비스가 등장하고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에서의,
1."임종과정"이란 회생의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아니하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되어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말한다.
2."임종과정에 있는 환자"란 담당의사와 해당분야의 전문의 1명으로부터 임종과정에 있다는 의학적 판단을 받은자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책〈존엄한 죽음〉의 저자 최철주씨는 1970년 중앙일보사에 입사, 방송사에서 10년, 신문사에서 26년간을 근무한 기자출신이다. 동양방송, 중앙일보 경제부장, 일본총국장, 편집국장, 논설위원실장 등을 역임하고 중앙방송 대표이사로 경영에도 참여했다. 저서로 《해피앤딩 우리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이별서약》등을 썼다.
1970년에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었으니 나 보다는 3∼4년 앞선 것 같다. 그는 오랜 세월 언론사에서 일했으며 지금은 은퇴해 웰다잉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고 한다. 퇴직 즈음에 딸과 아내를 암으로 먼저 보내고 아들과 손자와는 따로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의 글은 세련되고 아름답다. 일부를 옮겨 본다. “가족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엄숙한 일이다. 그러나 엄숙해서는 안 될 일이다. 우리 이야기는 흐르는 강물처럼 평화로워야 하고 선창가의 유행가처럼 추억과 낭만이 있어야 한다. 편안한 죽음도 가족에게 물려주는 좋은 자산이다. 거기엔 죽은 자의 기억과 사랑이 응축되어 있다. 그게 남아 있는 가족에게 삶의 에너지가 될 거다...”
누구에게나 죽음은 두려운 일이다. 죽음을 이겨낸 사람이 아직은 없다. 죽음이 두렵지만 두려움을 이겨낼 방법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는데 내가 기억하기로 나보다 먼저 간 사람들 어느 누구도 두려움을 이겨낸 것 같지는 않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랬고, 내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 할머니는 내가 모르지만, 내가 어릴 때 돌아가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도 두려움을 이겨낸 것 같지는 않다. 또 먼저 간 친구들, 이웃들모두 두려움 속에 죽음을 맞았을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고 있다. 만약 자신이 뇌졸중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진다면 뒤늦게 연락을 받고 가족들이 달려올 것이고 이때는 이미 골든타임은 지나버렸고, 의사의 회복할 수 없다는 판단이 내려졌음에도 가족들은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달라고 의사를 조를 것이라며 이미 인공호흡기가 부착되어 있다면 이를 뗄 수는 없지만 작년인 2018. 2.부터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환자의 뜻이 분명하다면 이 경우에도 인공호흡기 등을 뗄 수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건강할 때 죽음을 생각하고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거부한다는 의사표시를 분명히 해 두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이는 인권에 관한 문제고, 존엄에 관한 문제로 자신은 존엄을 잃은 채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도 했다. 이를 위해 병원이나 정부를 상대로 이제는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말기상태의 환자라면 의료현장에서 판단내리기 어려운 애매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데 중요한 건 삶의 마지막 순간에 내가 편안한 죽음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하고 누구나 그런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세상을 돌아보면 곳곳에‘웰빙’과‘힐링’이라는 활력 넘치는 말과‘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는 말들이 난무한다. 그러나 ‘의미 있는 삶의 마무리’에 대해서는 여전히 사람들은 별 관심이 없다. 그러면서 환자나 의사가 신중하게 치료를 받고 시술하는 ‘슬로 메디신’즉 명의를 찾고, 좋은 치료를 받는 데는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표준의학에 의한 정확하고 안전한 의료행위보다는 환자의 삶의 질을 높여주는 인간적인 서비스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살 때까지 사는 것과 죽을 때까지 사는 것에는 엄청난 가치관의 차이가 있다. 둘 다 죽는다는 점에서 결과는 동일하다. 그러나 전자가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는 반면에, 후자는 의료기기에 매달려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버둥거리다 숨이 끊길 것이다. 전자가 남겨진 이들에게 추억거리를 줄 수 있다면 후자는 악몽에 시달리는 듯 신음소리만 들려줄 것이다. 그것은 결코 사는 게 사는 것이 아닌 인생이다.
내가 살 때까지만 살겠다고 하는 것은 나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서다. 내 가족이나 의료진이 나의 선택에 개입하거나 방해하는 것을 나는 원치 않는다. 내 삶의 마지막을 내가 선택할 수 있다는 자유가 나에게는 무척이나 소중하기 때문이다. 편안한 죽음이야말로 가족에게 넘겨줄 행복한 유산이다. 호스피스 병동의 풍경을 오랫동안 보아온 탓에 그런 생각이 확고해 졌다”저자의 말이다.
2015년 여름, 카터 전 미국대통령은 간에 생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았다. 그는 암이 뇌로 전이되었다고 공개하며 “나는 놀라울 정도로 편안하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마지막일지 모르는 성경학교를 계속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위로하려고 몰려들었다. 그로부터 4개월 후 그는 전통적인 방사선 치료와 신약투여로 완치되었다고 발표해 국민의 환호를 받았다. 상황이 역전 된 것이다. 그러나 보름도 채 안 돼 그는 사랑하는 손자가 잠을 자다 심장마비로 돌연사하는 비보를 접했다. 그럼에도 그는 이전에 하던 자원봉사를 계속했다. 한때 강대국의 대통령이던 그는 죽음의 경계선에서 반전이 거듭되는 삶을 받아들였다. 그는 생사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고,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미국 국민들에게 묻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발전에 늘 따뜻한 시선을 보냈던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2015년 자신이 남긴 유언대로 연명치료를 거부하고 국민의 곁을 떠났을 때 추모의 열기는 이웃나라를 넘어 유럽에까지 번졌다. 그는 생전에 쓴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다.
“내가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고 인공튜브로 연명하게 되면 의사들은 내가 떠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사는 동안에도 그렇지만 죽음에서도 어떤 롤 모델을 찾고 있는지 모른다. 좋은 죽음은 살아남은 자에게 삶의 지침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반성과 눈물을 동반하기도 하지만 우리는 이미 김수환 추기경과 법정스님과의 이별에서 그것을 경험했다. 언제나 주인공은 최후의 순간에 위엄을 잃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때문에 감동의 폭이 깊고 크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안다. 살아서 인간답게 살았다면 죽을 때도 인간답게 죽어야 할 것 같다.
책 읽으면서 언제일지 모르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나름대로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래서 죽기 전에 더 치열하고 행복하게, 재미있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해 보았다. 사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는 것이 죽음일 것이다. 그것을 뜨겁게 혹은 따뜻하게 맞을 준비를 하고서 맞는다면, 준비 없이 허겁지겁 맞는 것 보다 훨씬 편안하고 또 인간적이고 수월하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저자는 책 후기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웃이나 가족이 겪는 죽음의 고통은 날로 커지고 있다. 삶과 죽음을 둘러싼 갈등을 이겨내지 못해 외로워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연명의료가 빚어내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웰다잉법이 제대로 시행되려면 똑똑해져야 스스로 존엄을 찾게 된다는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삶에서 아무 노력 없이 공짜로 인간대접을 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인생의 마지막을 치닫는 죽음의 길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우리가 존엄한 죽음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또 존엄사에 대해 말하면서 이런 말도 했다. “사람답게 살다가 사람 같은 모습으로 떠나길 바란다”고.
만약 나는 내가 암이나 면역결핍증, 간경화 등으로 돌이킬 수 없는 병에 이른다면 존엄사를 택하겠다고 감히 말해 본다. 사실 죽음이란 단어 앞에 존엄이란 수식어를 붙이면 거부감이 생기기도 하지만 심폐소생술을 하거나 인공호흡기 부착 등을 거부해야 존엄한 죽음이 되는 것은 아니다. 존엄사란 단어가 21세기 들면서 국어사전에 등장한 것으로 이전에는 우리나라 언론에서 ‘소극적 안락사’라고 쓰면서 혼란이 일어나기도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호스피스 시설에서도 말기환자에게 사망 직전까지 물과 영양을 공급해 준다. 하지만 미국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이전 단계에서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 복음 전도사로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그의 아내가 말기환자로 투병 중일 때 물과 영양공급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린바 있다. 그는 이것을 존엄사라고 했다. 물론 이를 비난하는 여론도 있었다. 만약 비슷한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면 소극적 안락사라고 부르며 뜨거운 논쟁이 빚어졌을 것이다. 존엄사란 용어에도 나라마다 큰 문화적 차이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여기서 내 죽음에 대해 몇 가지 제언을 해 두기로 한다. 만약 내가 인공호흡기를 달고서 연명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면 그것을 하지 말라고 또 내가 죽은 뒤에는 조용히 화장해서 뼛가루를 깨끗한 곳에 버리거나 여의치 않거나 그래도? 하는 생각이 들거든 근교 납골당에 얼마간 보존해 두고 1년에 한두 번 찾아 영혼을 위로해 주는 것이면 족할 것이다. 이 말은 아들과 딸 등 가족에게 하는 말이다. 만약에 이 독후감을 읽는다면 참고해 주기 바란다.
그리고 나는 지금 가족들에게 엄숙히 선서하려고 한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려는 것이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라는 것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지만 그것은 196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생전유언’또는‘사전유언’이라는 뜻을 가진 것으로 대개 다음과 같이 시작된다고 한다.
“제가 불치병에 시달리며 죽음에 가까워졌을 때를 대비해 저의 가족과 저를 담당하는 의료진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합니다. 이 선언서는 제가 건전한 정신상태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따라서 건전한 정신상태에서 제가 이 문서를 파기하거나 철회하지 않는 한 이 선언서는 계속 유효합니다.”라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事前延命醫療意向書):생명의 연장을 위한 특정치료방법 여부에 대한 본인의 의사를 서면으로 미리 밝힌 공적문서. 의학적 치료에 관한 의사결정능력이 있을 때 자신의 연명치료에 대한 의향을 미리남겨, 죽음을 앞두고 인간의 존엄을 유지하게 하려는 취지에서 2016년2월3일 공포한〈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약칭 연명의료결정법)에 의해 법제화되었으며,위 의향서는 보건복지부장관이 지정하는 등록기관에서 작성되고 데이터베이스화해야 법적효력이 있음.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보건복지부 지정 등록기관에서 작성되어야 하고 또한 그 기관에 데이터 베이스화 되어 있어야 효력이 있는 것이므로 근일 중에 북구건강보험공단을 방문하여 그것을 작성할 예정이다.
- 2019.1.31. 오전 화명동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