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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시 외국인복지센터에서 주최한 문화체험행사. 8월16일 제부도에서 이 행사를 가졌다 |
"캄보디아에 돌아가면 학교를 세우고 싶어요"
단일민족을 주장하던 대한민국이 바뀌고 있다.
어느새 100만 이상의 외국인이 직업을 찾아서건 결혼을 해서건 이 땅에서 함께 살고 있다.
얼마 전까지 '단일민족'을 강조하던 대한민국에서 '단일민족'을 운운하는 일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일이 돼 버렸다.
외국인 근로자와 결혼이민자가 전국 세 번째로 많은 화성시에 지난 5월 23일 '외국인복지센터'가 문을 열었다.
교육과 문화, 인권 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들어진 외국인복지센터에는 주말이면 화성시뿐 아니라 경기도 타지역과 심지어 대전에서 찾아오는 외국인들까지 백명에서 2백명에 이른다.
8월도 막바지로 접어드는 20일 저녁, 외국인복지센터를 찾았다.
평일이라 찾는 사람이 드문 그곳에서 타국에 와 자신의 꿈을 키워가는 외국인근로자들과 그곳 센터 직원들을 만나 그들의 꿈과 한국생활에서의 어려움, 센터를 운영하며 느끼는 고충을 물었다.
5월18일 개관식 및 세계인의 날 홍보행사장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신포핍(캄보디아, 28)
한국에 온지 1년 반이 된 신포핍씨는 6남매 중 막내다. 누나가 세 명, 형이 두 명이라는 그는 언젠가 8명의 가족이 다 모일 날을 기다리고 있다.
돈이 벌고 싶어 한국에 왔다는 신포핍씨는 캄보디아어와 영어,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를 세우고 싶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말이 안 통해 어려웠고 일을 배우기도 힘들었다.
그러다 회사를 옮기며 캄보디아 인이 세 명이 되니 셋이 같이 다니며 열심히 한국말과 글을 공부해서 이제는 많이 알아들을 수 있다.
자신이 태어나기 전인 1965년부터 73년까지 내전이 발생했고, 1975년부터 79년까지 크메르 루즈에 의해 대학살이 자행됐기에 그 시대엔 먹을 것이 없었다고 한다. 3년 8개월 20일 동안 전쟁을 했다고 구체적인 날짜를 꼽아 말한 신포핍씨는 캄보디아가 전쟁도 없고 한국처럼 잘 살게 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했다.
국민의 70%가 농사를 짓는 캄보디아를 근대화시키기 위해 학교를 만들고 싶다. 그의 형도 2004년 한국에 와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 이제는 고향에 돌아가 학교를 만들었다.
스스로 번 돈으로 대학도 다니고 있는 형처럼 되고 싶은 신포핍은 대학에 가서 한국어를 배워 가르치고 싶다며 "이곳 외국인복지센터에서 한국어를 잘 배울 수 있게 잘 가르쳐줬으면 좋겠다"는 작은 바람을 표현했다.
▲ 가족을 데려오고 싶어요
다나이(태국, 37)
태국에 가족이 있는 다나이씨는 부인과 10살 된 아들 시리롯, 5살 된 딸 아리사가 보고 싶다.
작년 7월27일에 입국한 그는 복지센터에 오기 전에는 한국말을 잘 못했다.
복지센터가 생기고 이곳에서 한국어 공부를 하게 되며 한국말을 할 수 있게 됐다.
센터에 오면 컴퓨터와 한글공부를 한다는 다나이씨는 양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함께 일하는 친구는 한국말을 배우다 너무 어려워 포기하고 오지 않는다.
태국에서는 전기공을 했다는 그는 사장님이 너무 좋단다.
구문천에서 자전거로 복지센터에 온다는 다나이씨가 좋아하는 음식은 불고기와 삼계탕이다.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친절하고 잘 대해주지만 몇 사람은 안 좋게 대하는 것이 힘들다.
때로 소주를 많이 마시고 한국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봤다는 그는 아내와 자식들이 보고 싶으면 집에 전화를 하며 그리움을 달랜다.
처음에 와서는 가족이 보고 싶어 많이 힘들었다는 그는 이제는 쉬는 날이면 여기 저기 다니며 외로움을 덜고자 한다.
부인과 아이들을 데려올 수 있다면 함께 와 일하고 싶다는 다나이씨는 3년이 지나면 돌아갔다가 2년 뒤 다시 오고 싶다.
고향에는 집도 마련했고 자동차도 샀다고 말하며 "통장에 돈이 없다"며 웃었다.
20일 저녁, 외국인복지센터에서 |
5형제 중 셋째 아들인 산토씨의 큰 형과 넷째 동생은 함께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24일이면 넷째 동생이 3년이 끝나 집에 가야 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지만 요즘 불경기라 일이 없어 어렵다.
돈을 모아 고향에 가면 식당을 하고, 한국사람과 같이 사업을 하게 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 한국말을 잘 하고 싶다는 산토씨는 여자친구가 없어 외롭다.
그래도 센터에 오면 한국어도 배우고, 태권도와 춤도 배울 수 있으며, 탁구를 할 수 있어 즐겁다는 산토씨가 제일 좋아하는 것은 '태권도'다.
숙소에서 복지센터까지 10분 정도 걸린다는 산토씨는 "좀 더 다양한 프로그램을 해주면 좋겠다"며 "센터에서 배우는 것이 즐겁다"고 말했다.
▲ 한국에서 일을 계속 할 수 있으면...
덴나공(스리랑카, 36)
2007년 11월에 한국에 왔다는 덴나공씨는 변압기회사에 다닌다. 대화가 어려워 좀 힘들다는 그는 한국어를 배울 수 있는 복지센터가 생겨서 너무 좋다. 외국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은 어렵지 않다고.
3년이 되면 귀국했다 2년 뒤에 재입국해야 하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로 인해 스리랑카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걱정이다.
다시 돌아와 계속 일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덴나공씨는 예전에 스리랑카에서 사귀던 여자친구가 얼마전 결혼했다. 언젠가 고향에 돌아가 프리랜서 사진작가가 되고 싶다는 그는 '한국인 친구가 있냐?'는 질문에 "이곳 센터에 있는 한국인들이 모두 친구다"며 웃었다.
화성외국인근로센터 |
작년에 한국에 왔을 때 너무 힘들었다는 비스나씨는 부모님과 형제가 보고 싶으면 전화를 한다.
처음 일할 때는 한국말을 몰라 일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한국말을 배우게 돼 어려움을 덜었다.
변압기 공장에서 일하다 배관을 만드는 '닥터'란 회사에 온지 한 달 됐다는 그는 한국사람들이 잘해주고 친절하게 대해줘 좋다고.
한국말을 많이 배워 캄보디아에 가면 한국어 교사가 되고 싶다는 비스나씨는 캄보디아에서는 한국을 좋아해 한국문화가 잘 알려져 있고 한국어를 많이 쓴다고 전했다. 한국말을 잘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어 한국에 오게 됐다는 비스나씨는 한국이 좋지만 가족이 있는 고향에 돌아가고 싶다.
센터가 없을 때는 수원에 있던 외국인센터에 다녔다며 고향에 송금하면 그 돈을 부모님이 관리해준다고 했다.
돌아가면 그 돈으로 대학을 다니고 싶다는 비스나씨의 눈빛이 기쁨으로 빛났다.
▲ 컨테이너박스가 숙소, 복지문제가 심각하다
임 희원 홍보팀 팀장(34)
임 희원 홍보팀장이 복지센터에 일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로 인해서다. 일반 기업체의 홍보 마케팅일을 하다가 아는 사람으로부터 '화성에 외국인 노동자 복지센터가 들어선다'는 말을 듣고 더 나이들면 못할 것 같아 연봉이 절반밖에 안 됐지만 옮기게 됐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조금 꺼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막상 대하고 보니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순수하고 인간적인 모습에 선입견이 사라졌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3D업종에 종사하다보니 환경이 좋지 못해 지저분할 수 있지만, 단지 피부색이 다르고 가난한 나라에서 왔다는 이유로 편견을 가지고 무시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외국인 근로자를 데리고 가면 쳐다보는 눈빛부터 다르고 옆에 오지 않으려 하는 한국인들이 대다수다.
그래서 외국인 근로자들은 한국사람이 많은 곳에 가려하지 않는다.
그 편견을 없애려 봉사활동을 시키고 있다.
환경정화사업이나 다문화 가정 결혼이민자가 빵을 만들어 소외계층에 나눠주는 사업 등을 통해 내국인의 외국인에 대한 편견을 고쳐나가려 노력하고 있다.
내국인과 많이 접할 기회를 갖게 하려 유앤아이의 아이스링크 체험 등을 통해 함께 어울릴 기회를 갖고자 한다.
외국인 근로자들이 어떤 환경에서 일하고 어떤 곳에서 생활하는지 돌아봤는데 복지문제가 가장 심각하다.
내국인 근로자에 대한 복지시설은 잘 갖춰져 있는데 외국인은 컨테이너박스를 숙소로 사용하게 하는 곳도 있다. 너무 덥고 지저분해 '어떻게 생활할까?' 걱정이 되는 곳이 한두 곳이 아니다.
또 내국인의 급여는 지급하며 외국인이 모른다는 약점을 이용해 급여를 안 주려는 회사도 일부 있다.
하지만 외국인 근로자에게 더 잘해주는 회사도 있다고.
철원철강과 한국오바라에 가보니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임금체불 문제도 없으며 센터행사가 있다고 말해주면 근무도 빼준다.
또 찾아가는 한국어교실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참여해주고 행사 때 인적자원과 공간활용 등의 도움을 줘 고맙다.
6월23일, 베드민턴챔피언십 대회에서 상금을 받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
노인전문요양원에서 사회복지사로 일했던 강은지팀장이 외국인 근로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외국 여행지에서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을 만나게 되면서다. '용산'과 '구로'와 같은 지명을 대며 한국에서 일했다고 밝힌 외국인을 보고 한국에서 어떤 생활을 했느냐에 따라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고.
여행에서 돌아와 외국인 복지센터에서 직원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한국사회복지에서 외국인이 차지할 비중이 커지겠다는 생각에 참여하게 됐다.
처음 '외국인은 내국인과 다를 것이다'란 생각이 그들을 만나고 함께 생활하는 시간이 늘어나며 달라졌다.
"이제는 사진을 찍어 그걸 보고서야 '아, 외국인이었지'란 생각이 들어요. 식성과 문화, 피부색이 다르지만 의식을 안하게 되더라구요."라며 웃었다.
강팀장은 "한국사회가 아직도 외국인에 대해 굉장히 배타적이고 보수적이라 길을 가다 외국인을 쳐다보는 시선조차 무의식적으로 배타적이다"며 "그런 부분에서 생각을 깨는 작업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애인 통합교육을 시작하며 장애에 대한 편견을 없앴듯이 어린아이 때부터 '살색없애기, 인종차별에 대한 편견 없애기, 국경 선 긋는 일 없애기'등을 통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외국인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는 것을 자연히 알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외국인고용허가제가 만들어진 의도는 알지만, 규칙을 잘 알지 못해 추방되거나 환경이 어려워 직장을 옮기려해도 규정에 의해 옮기지 못하는 경우를 보면 수정ㆍ보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얼마전 임금체불로 인해 직장을 세 번 옮긴 외국인 근로자가 회사에 일이 없어 한 달에 열흘 정도밖에 일하지 못해 회사를 옮기려니 '출국하던지, 그 직장에서 계속 다녀야 한다'는 답을 들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에 대해 법적으로 구제해주지 못하고 도와줄 수 없어 안타까웠다.
이런 부분에 대해 관공서와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소통해서 규제에 대한 부분들을 고쳐나갈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사업주와 외국인근로자 간에 언어소통으로 인해 오해가 발생한 경우 안타까웠다는 강팀장은 "직장을 그만두고 나서 오해란 걸 알 게 된 경우가 많다"며 "그런 경우 잘해줬던 기업주도 상처받고 직원도 안 좋은 경험을 갖고 퇴사하니 언어능력이 있는 분이 봉사해 한국의 이미지도 좋게 하고, 사업주도 적은 비용으로 많은 효과를 낼 수 있게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부탁의 말을 전했다.<화성신문 이연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