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 12:5]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 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 본문은 '아들들인 너희에게 말한 권면을 완전히 있었느냐?' 라는 의미의 수사학적 의문문이다. 이 물음을 통해서 저자는 수신자들이 훈련과 교육의 측면에서 부과된 고난의 바른 개념을 완전히 잊어버렸음을 확고하면서도 부드럽게 비난하고 있다.
다음에 언급되는 인용문을 통해서 저자는 수신자들이 인내해야만 했던 고난이 훈련의 성격을 띤 것임을 진술하고 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 본문은 잠 3:11,12의 인용이다.
이는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행위에 대한 의도를 나타내는 바,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더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을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고난을 통해서 훈련시키심을 시사한다. '징계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이데이아스'는 꾸짖음, 교정, 징벌과 같은 수단을 통해서 교훈하시며 교육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와 같이 자기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뜻에 순종하도록 함으로 목표에 도달하도록 훈련시키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임을 나타내어 '아들됨'을 강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과 사랑을 시사한다
한편 본문의 '내 아들들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휘에 무'이나 인용문인 70인역 잠 3:11에는 '휘에'로 되어 있어 본문에 인칭대명사 ''무'
가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우'가 없는 '휘에'는 잠언 전체에서 교사가 학생을 부를 때 사용된 표현이다. 저자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70인역에 '무'를 삽입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새 언약을 이루신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됨을 강조하고 있다.
[히 12: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 본문은 '아들들인 너희에게 말한 권면을 완전히 있었느냐?' 라는 의미의 수사학적 의문문이다. 이 물음을 통해서 저자는 수신자들이 훈련과 교육의 측면에서 부과된 고난의 바른 개념을 완전히 잊어버렸음을 확고하면서도 부드럽게 비난하고 있다. 다음에 언급되는 인용문을 통해서 저자는 수신자들이 인내해야만 했던 고난이 훈련의 성격을 띤 것임을 진술하고 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 본문은 잠 3:11,12의 인용이다. 이는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행위에 대한 의도를 나타내는 바,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더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서 그리스도인들을 개인적으로 혹은 집단적으로 고난을 통해서 훈련시키심을 시사한다. '징계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이데이아스'는 꾸짖음, 교정, 징벌과 같은 수단을 통해서 교훈하시며 교육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자식이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와 같이 자기 백성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고난을 통해서 자신의 뜻에 순종하도록 함으로 목표에 도달하도록 훈련시키신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징계와 책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가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임을 나타내어 '아들됨'을 강조하는 것이며 동시에 자식에 대한 하나님의 책임과 사랑을 시사한다
. 한편 본문의 '내 아들들아'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휘에 무'이나 인용문인 70인역 잠 3:11에는 '휘에'('아들아')로 되어 있어 본문에 인칭대명사 '무'('나의')가 삽입된 것으로 보인다. '우'가 없는 '휘에'는 잠언 전체에서 교사가 학생을 부를 때 사용된 표현이다. 저자는 이러한 의미를 지닌 70인역에 '무'를 삽입하여 그리스도인들이 새 언약을 이루신그리스도의 중재를 통해 하나님의 아들됨을 강조하고 있다
[히 12:7]"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 '너희가 참음은'의 헬라어 '휘포메네테'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1) 혹자는 직설법으로 이해하여 개역성경 본문처럼 해석한다). (2) 혹자는 명령법으로 이해하여 '너희는 징계를 참으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왜냐하면 문맥상 명령법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
본문은 아버지로서 자녀를 징계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임을 말하는 수사학적표현이다. 아들이 아버지와 징계를 받는다는 사실은 아버지가 그 아들을 진정한 아들로 인정한다는 의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고난을 통해 징계를 하신다는 것은 아버지로서의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아들로 인정하고 계심을 시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을 슬퍼하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로 하나님의 아들됨의 증거임을 깨달아 기뻐해야 한다.
[히 12: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니라 - 저자는 본절에서 징계를 받지 않는 경우를 통해서 징계가 아들됨의 증거임을 반증한다. '사생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노도이'는 노예나 첩의 아들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로 모든 사생아를 의미한다. 또한 '참아들이 아니니라'의 헬라어 '우크 휘오이'는 서자를 가리킨다.
만약 그리스도인에게 하나님의 징계가 없다면 그는 서자이며 사생아이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도 될 수가 없다. 반대로 그리스도인이 당하는 고난의 징계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사랑과 상속자로서의 특권적 위치를 소유하고 있음을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