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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내용은 필자가 이미 인터넷에 올린 글(48회 ~55회) 중 일부로 ‘박정희 대통령 부동산정책’이라는 제하의 글이다. 36년 전 필자가 부동산학이 우리나라에 부존재 하던 시절에 부동산에 관련된 분야에서 유일하게 현존하고 있었던 모든 시공의 결과물이 박정희 대통령의 부동산정책에서 비롯된 유일한 교과서 이었기에 그분의 정책을 모델로 삼아 공부를 시작하였던 것이다. 후에도 부동산 법원경매에 관련 한 민사집행법읠 제정에서부터 공인중개사의 법정업무인 매수신정대리업무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부동산입지학을 공부하게 된 밑바탕이 된 것이 박정희 대통령의 부동산정책이었다. 때문에 지금처럼 부동산을 등한시하거나 투기의 대상으로 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박정희 대통령의 부동산정책’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면서 우리나라가 부동산을 통한 제3의 도약을 필요로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부동산 개발 및 정책의 선도자 박정희 대통령의 정책을 바로 보자는 의미에서 차기정권을 향한 부동산정책에 대한 강한 메시지적 내용의 글이다. |
박정희 대통령의 부동산정책 이야기
편집과 글쓴이: 전준우(韓國不動産競賣硏究院 院長)
* 편견과 아집은 본인은 물론 다른 사람 모두를 힘들게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는 지역편중적인 지역감정에 대하여 필자가 정리한 것을 수록하기로 한다. 우리가 선진국가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지역감정(국민 공통과제)을 어떻게든지 해소해야만 진정한 선진국이 된다는 전제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은 5.16혁명 이후 대통령이 되기 전에 파벌과 유대관계에 의한 한국사회의 문제점에 대하여‘동문관계(同門關係), 지연(地緣), 혈연(血緣) 기타 어떠한 형태로든지 연고관계로 하여 특정 집단이 형성되게 되면 그것이 친목의 범위를 벗어나 곧 특수 특권의식(特權意識)화가 이루어지면서 집단체로 변모하여 많은 사회적 문제를 야기 된다. 그리하여 동창(同窓), 우리 고향(故鄕)사람, 우리 파(派)가 아니면 모두 밉고 믿을 수가 없다고 여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풍토가 몹시 아쉽다. 네가 미우니까 너의 처자도 부모도 형제도 밉다는 식의 배타정신으로 흐르게 된다는 것이 지역감정의 속성이며, 이것이 오늘날 우리 한국의 실정(實情)이다.’라고 개탄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박대통령이 지역감정이 노정된 지역차별에 대하여 자유스러웠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가고 있다.
(1) 지역감정이란?
지역감정은 삼한시대 부터 생긴 것으로 우리민족이 풀어야 할 영원한 숙제 중의 숙제이다. 우리나라만 지역감정이 있는 것이 아니고 프랑스 등 유럽의 여러 국가들에게 그리고 많은 민족이 모여 사는 나라,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가 그 형태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지역감정에 휘말려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다. 그것은 인류가 살고 있는 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며, 영원히 풀리지 않는 무리들(동족 민족..) 간의 갈등과 충돌의 역사이며, 문화의 차이에서 비롯되어 발생되어지고 있는 자연현상(自然現象) 중에 하나가 지역감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실은 삼한시대 부터 지역감정이 유발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역시 남북한,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와 경상도, 충청도와 전라도, 강원도와 경상도 강원도와 충청도(전국체육전에서 보면 극명히 나타 남), 그리고 경상도 안에서도 경상북도와 경상남도,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북도 안동과 영주 그리고 영주 안에서도 마을과 마을 또 리와리(동네와 동네) 사이에 생긴 진정한 의미의 갈등과 충돌적인 요소가 있는 것은 엄밀히 말하여 내 것에 대한 아름다운 경쟁심리이고, 내 것과 내고장을 지키고 자랑하고자 하려고 하는 인간 본래적 사고에서 일어나는 기본적인 정서(情緖)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그것이 지나치게 표출되어 집단(무리) 간에 충돌로 표출되었을 경우에 나쁜 지역감정이라고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역감정은 좋은 의미에서 지역발전을 위한 내 고장의 자랑과 우수성을 내세우기 위한 고집스런 주장이고 자랑거리인 셈이다. 그러한 것들을 지나치게 주장하거나 내세우다가 충돌(衝突/Versus)을 일으켜 나쁜 지역감정으로 발전하여 무리(집단)간에 확산 된 경우로 그로 인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게 되어 그 사회에 해악을 끼치게 된 경우에는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문헌상으로는 고려 태조왕건의 "훈요십조"에 처음으로 지역감정을 노골적으로 표명하게 된 것이 최초가 아닌가 생각한다. 물론 그 이전에도 다양한 형태의 지역감정을 유발하는 내용들이 있었을 것이나, 문헌상으로 남아있는 것은 차령산맥을 중심으로 그 이남의 인물은 산맥이 조악하여 성품도 그러하니 인재로 등용치 말라는 내용이 들어있는 훈요십조가 지역감정을 노정한 효시라고 까지는 말할 수 없으나 그 진원이었다고 보아진다. 아마도 지금 그런 왕(王)이 살아있었다면 또 그런 왕을 충동질하여 그러한 내용을 조장한 인물이 살아 있었다면 온전치 못했을 것이다. 아무런 근거나 과학성도 없는 다분히 미신적이고 비과학적인 그러한 내용을 당시의 정치적 이념이나 통치의 일환으로 삼았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시대적 비극으로 보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심스럽게도 현대 일부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부추기며, 조장하고 그분야로 정치생명을 연장하려 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점은 좀 아이러니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애석하게도 한때 훈요십조가 지역감정의 유래라는 주장을 한 것은 제3공화국 때 당시 절대 권력자 이었던 경상도를 대표하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야당으로 유력한 정적 라이벌관계에 있었던 호남을 대표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관련지어 지역감정을 악용한 사실이 있었다는 점은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우울한 사건이었다. 너무나 터무니없고 우매하고 황당무계하면서도 비경제적이고 쓸 때 없었던 일이었다는 점을 그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은 다 알고 있고, 그 것이 잘못된 생각 이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또 한 그러한 잘못 때문에 우리 사회가 지불하게 된 사회적비용이 엄청났다는 점과 그것이 화해와 용서의 수단이 되어 지고 있다는 역사 속 숙제로 일부는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해야 할 것이 솔직한 표현이다. 즉 겉으로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말을 하면서도 나쁜 지역감정의 찌꺼기들이 사람들 마음 속 깊은 곳에는 아직도 남아 있다는 슬픈 현실이다. 예를 들면 박정희 대통령을 표현할 때 ‘우리나 남이가?’라는 표현과 김대중 대통령을 표현할 때 ‘우리선생님!’ 라고 표현을 한 것은 일면은 지역의 인물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또 한 일면으로는 지역대결을 조장하는 지칭이었고 표현이었다. 평소에 친했던 사람들조차도 고향을 알고 나게 되면 결정적인 순간에는 다시 한 번 상대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게 되고, 혼담이 오가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고향이 다른 다는 것 때문에 결혼 승낙을 받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리고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현상 중에 하나가 정치하는 분들이 고향이 다르게 되면 같은 당에 소속되지 않는 다는 점이다. 일반당원인 경우는 그렇지 않다가 국회의원 정도의 대표성을 갖는 정치인이 되면 반드시 지역을 대표하는 당으로 가버리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고 현실이다. 그것은 당선이라는 것에 대한 지역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지금도 우리 모두가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나쁜 지역감정에 의한 지배력에 의해 그들 스스로가 묶이게 되고 있는 현상 중에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도 지역을 대표하는 당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것이 정치현실이라는 사실에 누구도 부인 할 수 없는 지역감정이 녹아 있는 현상중의 하나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는 그러한 현상을 상당히 타파 하려 했던 청치인 이었고, 그 것을 극복해 보려고 노력을 한 대통령이었으나, 그 역시 그 것 때문에 탄핵의 대상이 되는 등 얼마나 많은 힘이 들었고, 고통을 받았는지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모든 정신적인 고통과 사회ㆍ경제적 피해에 따른 현상과 사실들을 추정하여 사회ㆍ경제적 손실비용으로 계산을 한다면 아마도 상상을 초월할 천문학적인 숫자에 달할 것이다.
단순히 고향이 다르다고 정치적 이념을 달리해야만 하고, 고향이 다르다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결혼을 할 수 없고, 고향이 다르다고 친구가 될 수 없는 사회, 사는 지역이 다르다고 특정한 사람을 배척을 해야 하고, 지역이 다르다고 동일한 사건이나 현상을 보고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해야 하는 것 보다는 편파적이고 편견을 가지고 생각을 달리해야만 하고 그에 따른 결론을 다르게 내야만 하는 현상이 지금도 우리 주변에서는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현상과 사람들이 겪게 되는 고통을 어떠한 방법으로 무엇으로 보상해야 할 것인가를 알 길이 없다. 사람들은 지금은 나쁜 지역감정은 사라졌다고 말을 하지만 그러한 말에 동의 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 작금의 현황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러한 현상은 우리 모두에게 도움이 될 수 없는 일인대도 지역감정에 좌우되는 사람들의 심리는 무엇 때문인지 알 수가 없다. 고향이 그렇게 중요하고 지역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를 묻고 싶을 때가 너무나 많았다. 필자는 사람과의 친구보다는 책과 친구가 되어 살아서 인지 강의를 하고 살아가는 직업을 갖고 살아서 인지 정치를 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인지 지역감정 같은 것은 느낄 필요도 없었고 그렇게 살아가지 않아서 인지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고향은 대한민국이고 자가가 살고 있는 지역이 고향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지 딱히 어떤 곳을 지정하여 태어난 곳을 꼭 고향이라고 생각을 하는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필자처럼 생각이 잘 안 되는 것이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다. 필자의 생각이 전적으로 맞는다고는 볼 수도 없을지 모르지만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철들어 이 나이가 되도록 살면서 지역감정 때문에 피해를 본적은 별로 없었다.
훈요십조의 내용은 사실 오늘날의 지역감정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로 보는 게 정설이다(아래에서 상세 설명). 얼마나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이었던가를 알아볼 수 있고, 영양가 없었던 일이고 부질없었던 일이었다는 사실 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에 부분적으로 그러한 나쁜 지역감정에 대한 사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 이후에 발견된 문헌 등 자료에서는 그러한 내용, 즉 영ㆍ호남에 대한 대립된 나쁜 지역감정에 대한 어떤 사실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영ㆍ호남의 지역감정은 훈요십조나 우리역사상의 지역감정과는 상관없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관련하여 3공화국 때 3김 씨와 관련하여 생긴 것으로 보는 것이 맞는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그것은 3공화국 당시의 시대상황논리에 꿰맞춘 불행한 지역감정의 발생이었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당시의 정객들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억지라는 것이 맞고, 단지 백제와 신라의 문제는 역사 속에서 이미 녹아 없어진 지역감정일 뿐으로 그것이 영ㆍ호남의 지역감정으로 되살아 난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비약이 아니다.
참고로 제3공화국 이전의 1공화국 및 일제 강점기 시대 때는 서울/경기 지역과 평안도등지 지역의 남북 지역감정이 더 심했다. 지역감정은 그 시대에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의 출신에 따라 많이 발생했는데, 일제 때 평안도 출신의 안창호와 황해도(평산) 출신이지만 양녕대군의 후손으로 왕족의 일촌이었다는 점에 따라 수도권과 해외에서 정치적 입지를 잡게 된 이승만 때문에 이북지역과 수도권지역 간 지역감정이 심했다. 그 결과 독립운동 때도 상해 임시정부, 한성정부, 연해주의 대한 국민의회 정부 등 지역별 대표인사에 따른 독자적 활동으로 폐해가 많았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수도권 출신인 윤치호 선생이 이북 출신의 사위를 맞아 고민했던 일화나 고 장준하 선생이 상해 임정에서 지역감정을 타파하려 했던 일화 등은 유명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맥락으로 살펴보면 3공화국에서 발생된 영ㆍ호남의 지역감정 역시 3김이라는 인물중심에 따른 정치적 배경에서 필요 따라 일시적으로 발생된 지역감정이라고 보아야 할 것으로 보면 큰 문제가 아닐 것이나, 사람들은 너무 지나치게 민감하게 의미부여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박정희 대통령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3김 중 2분은 지금은 정계를 은퇴했고 김대중 대통령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지금에도 그러한 지역감정이 살아 있다면 문제일 것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그 분들이 한창 분주하게 정치할 동을 하던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갔다면 별 문제가 없다고 본다.
필자가 2009년도에 주창한 우리나라 지역구도의 변화가 수도권, 중부권(충청권), 영ㆍ호남권으로 3구분의 지역구도에서 이제는 수도권과 영ㆍ호남권이라는 2구분의 지역구도(성공창업을 위한 상권입지분석<2010,매경출판, 전준우 저>)가 되어가고 있고 GTX와 KTX의 교통수단의 발달에 따라 머지않아 새로운 행정수도인 세종시 주변의 대전, 청주, 공주, 오송, 천안 등을 중심으로 한 21세기의 직주공간과 정주공간의 변화에 따른 메타시티의 등장이 예상되는 시대가 되기 때문에 이제는 지역갈등을 유발할 지역의 의미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
태조 왕건이 유훈으로 남겼다고 하는 훈요십조에도 차령산맥 이남과 공주 강 밖의 사람들은 쓰지 말 것 이라는 조항이 있다. 이 지역이 곧 전라도 지방(호남)인 것이다. 당시상황을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태조 왕건이 이때 백제의 견훤 왕과 그를 따랐던 토호출신을 당연히 싫어했을 것이고, 오랜 동안 영토 때문에 전쟁을 많이 했던 백제(지금의 전라도와 충청도 일부)와 신라(지금의 경상도)가 당연히 사이가 좋지 못했던 것은 사실이었을 것은 당연한 것으로 필요에 따른 지역감정이었을 것이다. 영ㆍ호남에 대한 원천적 지역감정의 발로가 이때부터 발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3공화국 때 일부 정객들이 조작한 영호남의 지역감정과는 상관관계가 멀다고 보아야 할 것이나, 그렇다고 전혀 무근하지는 않은 것 같기 때문에 그동안 우리민족의 내부적 갈등으로 있어 왔던 지역감정에 대한 것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2) 망국으로 가는 길, 지역감정(갈등)
"오늘날 우리 사회(한국 사회)에서 대중(大衆)을 지배하는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던진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정치구조(도)로는 자유민주주의(自由民主主義)나, 경제구조로는 자본주의(資本主義)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나 현대 한국(우리)사회의 정치체제와 지배구조를 형성하는 데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이데올로기는 바로 '지역감정(地域感情)'이라는 것을 부인(否認)할 수 없을 것이다. '이데올로기'란 '사회의 구조와 작용에 관한 신념의 체계' 혹은 '특정한 계급(階級)이해에 상응하는 행동규범, 입장(立 場), 윤리적, 미적, 종교적, 철학적 관점과 관념들'이라고 정의되어지고 있다. 그래서 사실 '지역감정'이 '이데올로기'가 될 수 있다는 말이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 지도 모르지만 우리 사회에서 가장 독특한 대중정서(大衆情緖)의 성격을 띠고 있는 지역감정은 우리 사회의 계급구조를 결정하며 지배체제가 가장 의지하는 통치수단(統治手段)이라는 점에서는 하나의 '천박(淺薄)한' 이데올로기라고 보아도 무방하겠다. 사실 이러한 치욕적이고 천박한 이데올로기인 '지역감정'이라는 것은 그 정도의 차이 일뿐 어느 나라에서나 조금씩은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는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좀 특수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 사회의 지역감정은 다른 나라들의 그것과는 달리 민족 내부의 문제인 것이며, 이러한 '지역감정'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악용(惡用)'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점에 가장 큰 문제가 있다. 지극히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사회현상이 아닐 수 없고 참담한 일이다.
인간에게만 있는‘감정(感情)'이라는 용어는 '이성(理性)'이라는 용어와 대치(對峙)되어 쓰이는 용어이다. 감정은 그 자체로서 '충동적(衝動的)'인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어떠한 결정에 '감정'이 라는 용어가 붙게 되면 자연히 '비이성적'인 결과가 나오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언급하는 지역감정이라는 용어는 사람들의 냉철(冷徹)한 이성적인 사고나 행동보다는 성급하고 단순하며 비이성적인 사고와 행동을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사회에서 보통 이러한 지역감정을 대표하는 가장 단적인 경우는 주로 '영남(경상도)'과 '호남(전라도)'과의 대립의 경우를 들고 있다.
따라서 지역감정하면 자연히 연상되는 것이 호남과 영남간의 반목(불신)과 대립(갈등)이다. 영남지역과 호남 지역은 중앙(서울)로부터 거리가 가장 멀어 원심력(遠心力)이 크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주체적 지역의식이 가장 강할 뿐만 아니라 인구 구성비나 사회세력의 잠재력에 있어서도 이 두 지역이 우리나라 특히 남한의 반 이상을 비슷하게 점유(占有)하여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꼭 이 두 지역 이외에도 지역서로 간에 지역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이 두 지역이 유별나게 우리 사회에서 가장 첨예(尖銳)하게 지역감정으로 대립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에서는 누구든지 부인 할 수 없다.
이들 두 지역(영•호남) 간에 무슨 특별한 이유와 원인과 근거도 없이 대립과 반목(反 目)이 생겼고, 그로 인해 발생된 지역감정은 이제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사회문제(社會問題)로 떠안게 된 것으로 심각성이 크고 사회적 소모가 큰 것이 또한 사실이다.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며, 이 나라를 지켜온 우리에게 어떻게 지역감정이 존재할 수가 있느냐? 라는 관념적이고 당위적인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통일의 문제, 더 나아가 국익의 도모와 사회의 발전과 안녕, 자유와 복지사회 이룩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무의미하고 가치 없고 이성적이지 못한 민족 간의 극단적인 지역감정(갈등)은 사회의 발전과 안녕에 기여하기는커녕 망국에 이르는 병이 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계속>(49)
(3) 사회학적 측면의 지역감정(갈등)의 의미
사회학에서 다루는 용어 가운데에는 '갈등(葛藤/discord/trouble)'이라는 용어가 있다. '갈등'이란 '개인 또는 집단 간에 서로의 목표나 이해관계가 달라서 상대방을 제거(除去), 파괴(破壞)하려는 상태'라고 규정(規定) 되어 진다. 이러한 '갈등'은 어느 사회나 어느 집단 간에도 존재하는 것이다. '갈등'의 관계가 나타나는 주된 이유는 어느 집단이나 개인이 희소(稀少)한 자원이나 재화 등을 획득(獲得)하기 위한 목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갈등'의 관계에서는 항상 '희소한 자원 등'의 '분배(分配)'가 중요시 되게 된다. 물론 심리적인 측면도 고려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는 다루지 않기로 하겠다.
갈등요인 중에 권력은 가장 크나큰 요인으로 작용되고 있다. 권력구조사회에서는 '권력(權力)' 을 가진 쪽이 더 많은 '희소자원'을 분배받을 수밖에 없다. 이 때,‘더 많이 가진 쪽’은 별 문제가 없겠지만 문제는'못 가진 쪽(Have-nots)'이 문제를 야기시킨다. '못 가진 쪽'은 낙후계층으로 전락되면서 소외(疎外)와 박탈감(剝奪感)으로 인하여 가진 쪽(Haves)에 대하여 '상대적 빈곤감(貧困感)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게 됨에 따라 여러 가지 갈등적 요소를 유발하게 된다(실제적으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 이러한 갈등적 요소에 따라 불평등의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에는 문제가 더욱 심각하게 된다. 그러한 것들이 특정 지역 간에 발생하게 되면 집단적대감(集團敵對感)'을 형성하게 되면서 급속히 지역감정으로 비화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되면 '못 가진 쪽'에 대해서는 '가진 쪽'에 대한 감정적 요소에 의한 편견(偏見)으로 적대감(敵對感)을 갖게 된다. 마찬가지로 '가진 쪽'에서도 또한 문제가 발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못 가진 쪽'의 편견이 '가진 쪽'에 대한 행동적 요소로서 차별(반발)행동으로 나타나고 이것은 또 '가진 쪽'의 '못 가진 쪽'에 대한 우월감(優越感)이 라는 편견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러한 상호간의 편견이 '갈등'을 더욱 심화, 증폭시키게 된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한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발생되어진 현상 중에 하나이다.
지역감정을 구성하는 '지역(地域: A region/An area)'이란 '지리적, 공간적인 구분'을 의미하며 중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역과 지역 간의 상호관계는 우열(優劣)의 관계를 미리 전제하지는 않는다. 각 지역은 자연스럽게 그 지역을 장악한 사람들에 의해 형성된 문화에 의해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지역성(地域性)'을 가지게 되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지역성'이라는 것에는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집단(무리) 간 어느 정도의 문화적이고 심리적이며, 감정적(感情的)인 동질감과 운명 공동체적 속성을 포함하기도 한다. 이러한 지역성에 의해 형성된 '지역의식(地域儀式)'이란 '어떤 특정지역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무리) 간에 표출(表出)되어 나타나는 의식'으로써, 이들 특정지역의 고유 한 문화 양상을 나타내어 보이는 이데올로기적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지역의식은 특정지역의 공동체 성원(成員) 모두가 간직한 공통의 신념(信念)이나 가치관(價値觀)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지역을 형성하여 살고 있는 집단의 이념적 요소). 호오(好惡)등을 이로써 이러한 '갈등'의 관계가 '지역'이라는 집단(무리)간에 나타나는 현상을 '지역갈등'이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으며, 이러한 갈등의 요소가 '지역의식'과 관련되어 집단 간에 해결할 수 없는 이념적 갈등(충돌:Versus)으로 나타나게 되면 이것을 '지역감정(地域感情)'이라는 것으로 표현해도 무방(無妨)할 것이다.
우리가 흔히 언급하고 있는 '지역감정'이라는 용어는 '지연(地緣)에 기초하여 형성된 여타 지역민(구성원)에 대한 부정적이고 배타적인 그리고 편견적인 속성의 심리상태' 또는 '지역적 연고(緣故)에 따라 구분되어지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집단적대감(集團敵對感)'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여기서 말하는 집단적대감은 세 가지 요소에 의해 이루어지는 데 그 첫째는 고정관념(固定觀念:stereotype)이라는 인지적(認知的) 요소이고, 둘째는 편견(偏見:prejudice)이라는 감정적(感情的) 요소이고, 마지막으로 셋째는 차별(差別:discrimination)이라는 행동적(行動的) 요소이다.
'희소(稀少)한 자원 획득(獲得)'을 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을 동원하거나 사용되어진 힘(권력 등)에 의해 집단 간에는 ‘가진 자(Haves)’와 ‘못 가진 자(Have-nots)’라는 집단으로 구별되어 지게 되면서 힘의 균형이 쏠림현상에 의해 깨지게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집단 간에는 크든 적든 어떤 형태로든지 지역감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집단 간에 균형을 깨뜨리게 하고 지역감정을 생기게 한 힘(力: Power &Force)이란 눈에 보이지 않는 잠재된 것에 의해 형성된 것(the source of power)으로‘가진 자들(국민/집단)’에 의해 부여받은 실체적인 권한을 말하는 것으로 권력(權力)이나 권리(title)를 모두 획득하여 갖고 있는 상태를 의미하고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규제되거나 제한 될 수 없는 쏠림현상에 의해 발생된 가진 자가 취하게 된 힘 때문에 못 가진 자들의 반발이 집단적대감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이 지역감정의 발로인 것은 틀림없는 것이다.
엄격하게 구별하자면 힘(Power)이란 물리적이고 표면적인 의식적인 권력(權力)이라는 의미의 힘(Force)과는 구별되고 있으며, 정신적으로나 법(제도)에 의해 규제되거나 통제 될 필요가 있는 권리(權利)와도 구별되고 있다.
가진 자들(또는 지배계급)이든 못 가진 자들(또는 피지배 계급)이든 모두 그 집단이 허용하는 일정한 권리만은 필연적으로 가지게 되나, 못 가진 자들에게는 가진 자들에 비하여 권력이 없다.
권력은 부(富)와 명예(名譽)를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됨에 따라 권력을 가진 자들이 부와 명예를 얻게 되면 못 가진 자들은 상대적 빈곤감을 갖게 되면서부터 집단적대감으로 잠재되거나 표출되는 형태로 지역감정이 발생하게 되어 집단 간에 해결할 수 없는 이념적 갈등(충돌:Versus)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집단적대감(集團敵對感)을 없애고 지역감정을 유발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나 또 이미 발생된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못 가진 자들에 대한 가진 자들의 절대적 배려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배려(配慮)라고 하는 것은 힘 있는 자(가진 자)의 보살핌이다. 다만, 체념(諦念)이라는 것은 힘없는 자의 포기(抛棄)인 것이다.
따라서 힘을 가진 쪽(가진 자)이 힘을 덜 가진 쪽(못 가진 자)을 배려하는 문화가 형성되면, 이는 지역감정을 없애는 아름다운 행동이 되고 그것을 기초적 바탕으로 하여 집단적대감을 해소시키게 된다. 즉 힘을 가진 자들(집단)이 특혜나 수혜를 받은 집단이며, 지역감정을 유발시키는 데 있어 우월적 위치에 있는 집단이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피해를 본(또는 피해를 보고 있는) 못 가진 자들(집단)에 대하여 배려하려는 적극적 자세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다.
예컨대 과거 역사적으로 얼토당토하지 않은 훈요십조에 의해 고정관념화 되다시피 한 차령산맥(공주이남) 이남(以南) 지역민(호남 및 충청 일부지역)이 입고 있는 정신적 피해, 그리고 그러한 허무맹랑한 내용을 마치 사실인양 조작하여 제3공화국 이후에는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전반에 대하여 다소 소외 시킨 지역이라 할 수 있는 전라도(호남)에 대하여 전라도지역 민들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경상도(영남)지역민들이 뒤에서 호남사람들이 자존심상하지 않고 표 나지 않게 아우르며 배려(配慮:Care)하고, 충청도민들이 그러한 배려를 부추겨 주고, 강원도민과 경기도민들이 그러한 아름다운 모습을 진정으로 격려(激勵)하여 주는 화합(和合)된 모습으로 나아가는 것이 지역감정을 없애주게 하는 것이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아름다운 모습을 구현하는 것이 바로 지역감정을 해소시키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실체적으로는 그러한 지역감정을 해소시키는 역할에 있어서는 모든 면(정치, 경제, 사회...)에서 분담 또는 순환방식으로 수행하는 것이 지역 간 계층 간에 또 다른 새로운 형태의 지역감정이 발생하는 것을 막으면서도 집단적대감을 진정으로 해소하여 없앨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보다 더 구체적인 해결방안에 대해서는 아래 5.항에서 다시 거론하가로 한다. 아래 (4)항에서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공통과제라 할 수 있는 영호남의 지역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공간입지론적인 측변에 대하여 두지역간의 갈등요인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4) 공간입지론(공간성)적인 측면에서 바라본 지역감정을 유발한 대상지로써『경상도(영남)지역』과 『전라도(호남)지역』의 특성과 지역감정의 무의미(無意味)
□ 부동산의 공간성 부동산의 공간성이란 부동산 공간(절대적 공간, 상대적 공간)이 형성하고 있는 입지(Condition of location)로 대상 부동산에 존치하고 있는 사람의 생각과 행동을 결정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도심의 일상에서는 그냥 지나칠 사람들인데도 산(山)에서 하이킹을 하러 갔을 때, 또는 외국여행을 할 경우 자기와 비슷한 환경에 처해있는 낯선 사람을 보고 반기는 것은 같은 공간이 형성하고 있는 공간성(입지)때문 이라는 것이다. 여흥을 즐기는 장소에 갔을 때 같은 분위기에 취하는 것 같은 현상을 말한다. 공간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性)은 지역성, 지역감정(집단지역감정),언어, 식습관, 성격 및 의식주 등을 형성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을 공간성이라 하고 그러한 공간성에 따른 요인을 비보입지요인(裨補立地要因)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한 비보입지요인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도 부동산이 형성하는 공간성에 의해 형성 되는 요인을 든다. 이러한 요인은 부동산 공간이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어떤 힘(Power)이나 작용(Act/Fact)에 의해 부동산에 새로운 가치(New-Value)를 형성하게 되는 것으로 환경구조적생활과학이라고 하는 풍수로 이해가 가능하다. 이러한 입지는 계량화 할 수도 없고, 과학적으로도 규명은 할 수는 없으나, 자연의 잘서와 인간의 합리적인 사고의 결합에 따른 보다 더 좋고 가치 있는 땅 또는 좋은 터(明堂/吉地/祥瑞地/勝地/可居地/Paradise), 주택, 공장, 상가, 빌딩, 공장, 건물 등에 대한 경제적가치가 높은 부동산에 대한 비보(부족한 것을 채워서 보완하는 것)를 뜻한다. - 입지분석(전 준우 저) 중에서-. |
(가) 호남지역 - 金(금)龜(구)沒(몰)尼(니)形(형)
전라도는 옛 백제의 땅으로 금구(귀)몰니형(金龜沒泥形局)의 공간입지를 갖고 있는 곳이다 . 우리인간이 살 수 있는 가거지(家居地)에 대한 거시적 측면으로 살펴보면 유라시아 대륙의 거대한 육괴(陸塊)를 적격지로 했을 경우 전라도(호남)는 명당지로써 혈지(穴地:Paradise)에 해당하는 공간입지를 구성하고 있다. 거북이가 황금 알을 품고 있다가 그 알을 낳고 뭍(陸地)으로 올라가는 길지(혈지)에 해당 한곳이 전라도(호남)이고, 황금 알이 제주도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국(입지)을 지니고 있는 전라도 지세(地勢)를 주장하는 풍수학자들이 많다.
혈지는 모든 것을 감싸 안고 혼융과 조화를 이루는 땅으로 그 곳이 호남 땅으로 전라도인 것이다. 전라도(호남)는 생명의 근원(Life Source/Energy Source)을 제공하는 축복받은 땅으로 모든 사람들이 살기를 선호 했던 길지로써 혈지에 해당 하는 곳 이였다. 그래서 이런 곳은 생명의 모태(母胎/聖地)지로서 화해와 창조와 희망과 비전이 있는 곳으로 새로운 세상을 여는 개벽(開闢)의 땅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역사 속에서는 그와는 반대로 전라도(호남)를 소외시키고 왜곡과 편견으로 배역열세(背逆劣勢)의 땅으로 몰아친 적이 있었다. 그 첫째가 견훤으로부터 호된 고통과 시련을 격은 뒤 후삼국을 통일하고 고려를 건국한 왕건과 그 후예들이 훈요십조라고 하는 조악하고 말도 되지 않는 지침서를 만들어 전라도를 야(野)의 땅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진부한 것이지만 그 동안 지역감정을 유발시킨 훈요십조 제8항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무슨 되먹지 못한 훈요십조이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 내용이 쓸모없는 것 일지라도 그 내용 자체가 자연의 구조 즉, 부동산과 인간과의 관계 및 입지를 연구하였다는 점에서 허무맹랑할 지라도 사람이 얼마나 불필요한 것 까지도 만들고 있는 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또한 그 내용의 본류는 우리사회에서 전해지고 있는 것처럼 호남사람에 대하여 폄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왕가(王家) 내부문서 또는 사회에 대한 경계의 교훈서인 것을 후세 사라들이 편의적 또는 악의적으로 해석을 한 것으로 보아진다. 이정도의 정권을 수호해한다는 뜻의 다소 악의적인 표현을 두고 지역감정을 조장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권력의 속성을 모르는 사람들의 편의적 해석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車(차)現(현)以(이)南(남), 公州(공주)江外(강외), 山形(산형)地勢(지세), 並(병)趨(추)背逆(배역), 人心(인심)亦然(역연), 彼(피)下(하)州郡(주군)人(인), 參與(참여)朝廷(조정), 與(여)王(왕)侯國(후국)戚(척)婚姻(혼인), 得(득)秉(병)國政(국정), 則(칙)惑(혹)變亂(변란)國(국)家(가), 惑(혹)銜(함)統合(통합)之(지)怨(원), 犯蹕(범필)生(생)亂(란), 且(차)其(기)曾(증)屬(속)官(관)寺(사)奴婢(노비), 津驛(진역)雜(잡)尺(척), 惑(혹)投(투)勢(세)移(이)免(면), 惑(혹)附(부)王侯(왕후)宮(궁)院(원), 姦(간)巧(교)言語(언어), 弄權(농권)亂政(난정), 以(이)致(치)灾(재)變(변)者(자), 必(필)有(유)之(지)矣(의). 雖(수)其(기)良民(양민), 不(부)宜(의)使(사)在(재)位(위)用(용)事(사).
[ 차현(車峴 또는 車嶺)이남, 공주 강(公州江: 錦江) 밖의 산형지세가 모두 본주(本主: 主山)를 배역(背逆 : 금강의 유역이 남에서 북으로 역류함을 말함인 듯)해 인심도 또한 그러하니, 저 아랫녘의 군민이 조정에 참여해 왕후(王侯)· 국척(國戚)과 혼인을 맺고 정권을 잡으면 혹 나라를 어지럽히거나, 혹 통합(후백제의 합병)의 원한을 품고 반역을 감행할 것이다. 또 일찍이 관노비(官奴婢)나 진· 역(津驛)의 잡역(雜役)에 속했던 자가 혹 세력가에 투신하여 요역을 면하거나, 혹 왕후· 궁원(宮院)에 붙어서 간교(姦巧)한 말(言行)을 하며 권세를 잡고 정사를 문란하게 해 재변을 일으키는 자가 있을 것이니, 비록 양민이라도 벼슬자리에 있어 용사하지 못하게 하라.] 라고 훈시(訓示)한 것이다.
이중환의 “택리지” 의 표현을 살펴보면 전라도에 대하여“領(령)以南(이남)水(수)皆(개)背(배)走(주)遺(유)命(명)勿(물)用(용)車(차)嶺(령)以南(이남)人(인)至(지)中葉(중엽)間(간)有(유)登(등)宰(재)相(상)者(자)亦(역)罕(한)少(소)人(인)我(아)”로 표현 한 바에 의하면 훈요십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는 부문을 엿볼 수 있다. 최 창조 교수는 훈요십조에 대하여 그의 저서 “한국의 풍수지리”에는“車(차)峴(현)以南(이남) 公州(공주)江外(강외) 山形(산형)之(지)勢(세) 竝(병)趨(추)背逆(배역) 云云(운운) ”으로 훈요십조에 대해 소개를 하면서 그 내용이 전라도(호남)를 배역(背逆)의 땅으로 취급을 한 악의적(惡意的)이고 부도덕(不道德)한 기준을 내용으로 한 지역차별주의(나쁜 정책)이라고 지적하여 직역을 하고 있다. 그러한 것도 학자나름대로의 주장이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 할 수 없는 부분이다. 시대적으로 살펴보면, 이러한 악의적 내용 등이 조선조에 와서는 그 흔적이 약간 남았다가 기대승, 이황(李滉)과 같은 대학자들에 의해 민족정기를 흔든다는 주장과 함께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무맹랑한 내용으로 취급이 된 것 같다.
해도정책론으로 중앙(한양)의 행정력이 미치지 아니하는 남해의 도서(섬 지방)가 북방에 뒤지지 않는 주요한 요충지로 수산업 진흥과 국방정책 차원에서 섬(島)을 관장하는 타원사라는 별도의 관청을 세울 것을 주장한 실학의 거두인 다산 정약용의 주장은 자원관리와 국방론에서 발상한 해상정책론으로 전라도(호남)의 중요성을 강조한 남진정책의 탁견이라 할 수 있어, 이러한 주장 속에는 훈요십조의 허구성을 정면으로 비판한 정책이 아니었겠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한 토정비결의 저자인 이지함(1517~1578) 선생 역시 국토(不動産)가 지니고 있는 자원의 효율적인 개발을 해야 한다는 육해개발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하여 다산과 동일한 맥락의 정책론을 폈던 것도 전라도의 중요성을 강조한 정책을 입안한 부분이라 해야 할 것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 실용학의 선구자로써 주산인 북악(北岳)을 발견하여 조선조를 창건하는 과정에 깊숙이 관여하여 조선조의 도읍지를 지금의 서울(한양)로 정함에 있어 가장 기여한 무학대사가 이러한 훈요십조의 허무맹랑하고 근거 없는 내용을 동조했을 리가 만무하리라 본다.
그리고 영 ․ 정조 시대에는 실사구시(實事求是)와 이용후생(利用厚生) 및 경세치용(經世致用) 등을 구현하고자 한 실학자(정약용, 이익, 박지원, 박제가, 김정희 등) 같은 대학자들도 그들이 추구하고 주장한 것과는 동떨어진 훈요십조의 내용에 대하여 인정하지 않으려 했을 것으로 당연히 여겨진다.
정확한 기록이나 문헌에는 나타나 있지는 않고 있으나, 미루어 짐작컨대 분명히 그들이 주장한 실용사상 논리에 의한다면 훈요십조는 그들의 주장과 사상에 배치되는 부당성과 모순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조는커녕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것이라 하여 비판과 함께 그 허구성을 강력히 주장하였어야만 옳았으리라 생각한다.
역성혁명(易姓革命)을 일으켰으나 실패한 동학란의 거점이 전북지방(호남)이었던 점으로 보아 그 후유증으로 약간의 동요가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훈요십조의 악령은 조선조는 물론이고, 일제 36년의 침탈기간을 거치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는 사실상 그 자취를 감췄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근거와 논리성마저도 없고 부도덕 한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던 아무 쓸모가 없던 혹세무민한 것으로 수백 년 동안 잊혀 일고의 가치도 없는 허무맹랑한 훈요십조의 악령(惡靈)을 되살려‘지역갈등’과‘전라도 멸시전략’으로 악용한 것은 다름 아닌 제3공화국의 얄팍한 추종자들이었다.
그들은 정권연장을 위해 시의적절하고 절묘하게 훈요십조의 악령을 되살려서 고려창건에 이어 두 번째로 전라도를 모욕과 굴욕의 땅으로 전락시키려 했던 것이다. 고려 창건 이후에나 제3공화국의 몰지각한 위정자들에 의해 훈요십조의 악령을 이용하여 전라도를 음해 ․ 폄하하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모두가 철저히 당대의 못된 위정자들이 정권유지나 정권연장을 위해 정략적으로 악용되었던 것일 뿐, 그 어떤 학술적 근거나 정책적 가치나 의미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이제 호남(전라도)에서도 대통령도 나왔고 국무초리(재상)를 지낸 분들이 나온 이 마당에 전라도(호남)를 음해 ․ 폄하(貶下) 하려했던 해괴망측하고 시대착오적 발상인 훈요십조의 내용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우리민족 스스로가 입증하여 해결한 셈인 것이다.
정권을 장악한 당시대의 위정자 집단과 그들의 편익에 의해 왜곡 된 지식 남용과 편협 된 정책에 의해 이유 없이 희생의 역사 속에서 일시적으로 다소의 야지(野地)로 몰려 몸살을 약간 알았던 곳이 전라도(호남)이다.
훈요십조에 의해 수혜를 받게 될 몰지각하고 의식 없는 지극히 일부의 당 시대의 위정자와 그 위정자로부터 녹을 먹고 살았던 주체성이 결어 된 사가(史家)들이나 모리배 정치꾼들이 자그마한 자기이익을 위해 자기모멸과 폐륜의 기록을 남겼거나,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방법으로 훈요십조를 빌어‘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수단으로 악용했기 때문에 지금 까지도 그들 자신들이 역사 속에서 영원히 오명을 벗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무현 정권 때의 야당(한나라당)의 당대표가 전라(호남)민에게 사죄를 하게 된 것도 그런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사죄의 말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역사적으로 살펴보건대 고려를 새운 태조 왕건 자신이 전라도 연해안(호남해안 및 나주)세력과 협력하고 경기만 해양세력의 도움을 얻어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던 입장에서 그의 자식들에게는 보은의 땅 전라도(호남)를 경계하고 멸시하라고 유훈서인 훈요십조를 남겼다는 것은 정사(正史)로 받아들이기에는 상황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떨어진다.
고려시대 최대의 권력가였던 최항 등은 강조가 거란의 성종에 의해 살해된 뒤 현종이 돌아오자 강조와 더불어 현종을 옹립하는 데 공을 세운 전남 출신 위종정 · 박승종· 탁사정 등을 해도로 유배시켜 버린다. 그리고 경주 출신 최치원과 설총을 문묘에 배향하고 경주를 동경(東京)으로 승격시켰으며,「훈요십조」의 권위를 보완할 목적으로 전남 출신 도선(신라말기인 827년 전남 영암군 구서면 에서 태어남)을 대선사로 추봉하는 조치를 취했다. 특히 왕건의 유훈을 받은 박술희(전라남도 당진출신으로 왕건의 重臣) 마저 혜종에 이어 왕위에 오른 정종에 의해 강화로 유배된 뒤 살해당했으므로 훈요십조의 위작 진위여부를 알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일부 학계의 주장이기도 하다. 또 일본인 사학자 금서룡(今西龍)은 훈요십조에 대한 위작의 주동인물로 최항(현종 15년 사망)과 최제안(문종 즉위년 사망)을 꼽고 있으나, 그 가 주장하는 것 또한 정확한 역사적 근거는 없다. 학계 일각에서 고려사(조선조에 앞서 당대의 최고 권력자 최항이 거란의 침입을 겪은 3년 뒤 새로 편찬 한 국사)가 편찬된 시기와 배경을 두고「훈요십조」의 위작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는 것은 위와 같은 이유에서 이다.
훈요십조의 위작 진위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도 한국 정치사에 있어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있으며, 여전히 국가발전의 장애로 작용하고 있는‘지역감정’과 특정지역에 대한 폄하와 멸시 풍조에 따른 해악에 대한 수많은 지적에도 불구하고 선거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었고, 오늘날의 정치판에서도 지역감정의 벽을 극복하지 못한 채 그러한 허무맹랑한 말장난에 대거 휩쓸려가고 있는 볼품사나운 형국은 아이러니가 아니라고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이 쓸모없고 한푼의 가치도 없는 허망한 과거의 잔상을 다시는 떠올려서는 안 된다. 어떤 역사책에도「훈요십조(訓要十條)」가 거론 되고 있는 것과 그러한 망국적인 지역감정의 근거로 흔히 고려 태조 왕건이 유훈으로 남겼다는 어떠한 근거도 없고 논리에도 맞지 않기 때문이다. 왕건이 당대에 지어 유훈으로 남겼다고 보기에는 앞뒤가 맞지 않아 후대에 못된 사악한 위정자들이 자기 편익대로 만들어 왕건을 빌어 유포하여 조작하였다는 주장이 많은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훈요십조 조작 진위여부를 떠나 위대한 우리민족이 이러한 진부(陳腐)하고, 하등 일말의 가치도 없는 못된 위정자들의 말장난에 놀아나 민족의 에너지 소모를 불필요하게 하거나 비용낭비를 하게 하거나, 과거의 잘못된 낭설에 매달려 있어야 할 이유가 절대로 없다는 점이다.
태조산(白頭)과 중조산(철원)에 이어 한반도의 주산(主山)으로 서울의 북악(北岳山)이 혈지(穴地: Paradise)로 유라시아대륙을 향하는 추축(Pivot)이 되고 있고, 북악의 대칭축으로 남해의 끝자락에 위치해 대양권의 중심이 되고 있는 남악(南岳)이라는 혈지(穴地: Paradise)가 존재하고 있다고 믿었던 우리선조들의 공간입지(풍수)에 대한 주장이다. 이라한 공간성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는 없으나, 하늘의 에너지가 흐르는 천기(天紀)와 땅 속 보이지 않는 에너지가 존재한다고 믿고 있는 지기(地氣)에 의해 구성된다는 환경구조과학의 풍수(風水)를 믿는 우리민족의 입장에서는 훈요십조의 허구성을 믿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남악(호남), 동악(경상)은 북악(이북 및 경기)과 함께 지정학적 의미가 더 컸다. 전라남도 중심의 적격지로 남악이 지성(地性)을 갖추고 있는 곳이 전라도이고 경상도의 중심의 적격지로 동악이 지성을 갖추고 있는 곳이 부산이다(木浦와 釜山). 이렇게 장쾌하고 웅거한 지세론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과 비전을 제시하는 것으로 매우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공간입지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현 되고 있는 순수우리의 생활과학(학문)이기 때문이다.
우리민족은 선조대대로 지세(地勢)를 살펴 삶의 터전(정주공간= 좋은 집터에 지은 집)을 찾았던 민족으로써 풍수가 부동산학에서 말하는 입지에 대한 것으로 인간과 함께 부동산이 상교(相交)하여 삶의 질을 높이데 필요한 공간에 대한 입지연구를 위한 환경구조친화적생활과학(環境構造親和的生活科學)으로써 새로운 학문의 영역으로 그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바람직하다.
풍수가 생활과학으로 부동산학의 한 분야로 자리를 잡아야지 그렇지 못하고, 혹세무민(惑世誣民)하거나 찬자감응(親子感應)의 잡술(雜術)로 전락하는 그런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할 것이다. 또는 다른 형태의 나쁜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적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도 절대로 안 된다.
우리나라 백두대간을 가르는 형태의 대운하(大運河)를 설치하는 것 등 우리 땅 전체를 훼손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대역사(大役事)가 실행되는 경우에는 공간입지학(풍수)에서 말하는 공간입지구성(空間立地構成)의 파괴(破壞)에 의한 환경문제로 우리인간에게 엄청난 재앙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접근이 있어야 한다.
(나) 영남(동악)지역 - 飛(비)鶴(학)歸巢(귀소)形(형)
경상도는 지금의 경상남북도를 합하여 부르는 이름으로 '경상'이라는 지명을 명한 것은 고려 때 이 지방의 대표적 고을인 경주와 상주 두 고을의 머리글자를 합하여 만든 합성 지명이다.
서기 995년(고려 성종 14년) 9월 전국을 처음으로 10도로 나눌 때 상주에 딸린 고을을 영남도, 금주(지금의 김해)에 딸린 고을은 영동도(嶺東道), 진주에 딸린 고을은 산양도(山陽道)라고 하였다. 경상좌도(慶尙左道)와 경상우도(慶尙右道)는 조선시대에 경상도 지방을 동서로 나누었을 때 부른 행정구역 이름이다.
서기1407년(태종 7년) 9월 군사행정상의 편의를 위하여 경상도를 좌도와 우도로 나누어 낙동강 동쪽을 경상좌도, 서쪽을 경상우도라 하였다. 경상남도가 지금의 행정 구역 이름으로 등장하여 확정된 것은 조선조 말엽 1896년(고종 33년, 건양원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지방제도 관제 등을 개정하여 종전 23부를 13도로 고쳐 둘 때 경상도를 남ㆍ북 2개 도로 나누면서부터 비롯되었다.
삼한시대 북부는 진한, 남부는 변한에 속하였고, 금관가야를 비롯한 6가야 존속, 가야문화 발상지이다. 삼국시대에는 신라 진흥왕 24년 신라 땅이었으며, 고려시대에는 예종원년(1106년) 경상진주도라 칭하였다. 충숙원년(1314년) 경상도라는 명칭이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이다.
조선시대 고종33년(1896년) 8월 4일 경상도에서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분리, 도청 소재지를 진주로 하였다. 1914. 3. 1. 부령 제111호(1913.12.29. 공포)로 부군 폐치·분합 (2부 19군)하였고, 1925. 4. 1. 도청 소재지를 진주에서 부산으로 이전하였다.
지금 세계 각국과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발전을 위한 비전을 수립하여 미래를 선점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동북아시대의 경제중심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당양한 지역적인 좋은 요인을 활용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미래 성장 동력을 창출하고 21세기 국가발전전략을 재정비할 시기에 와 있는 이 시점에서 지역적 좋은 요인을 발굴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요인을 찾기 위해서는 공간입지적 요인이 가장 중요하다.
경상도는 우리민족의 대동맥이라 하는 태백산맥(대동악)에 이어 소백산 자락에 위치한 곳으로 백두대간을 내리하여 소백을 거처 사람살기 가장 좋은 공간입지를 구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상도는 진정한 국가균형발전, 나아가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북에 위치한 수도권에 대응하고 전라도와 함께 삼남의 중심지로써 해양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해양경제 축으로써 국가발전 전략의 중심적 입지조건을 구축한 전진기지의 공간입지구성요건을 구비한 곳이기도 하다. 특히 부산은 인천이 서해안시대를 대비한 관문이라고 한다면 부산은 환태평양 시대를 열어 갈 관문의 공간입지성을 갖추고 있는 곳으로“남해안시대 구현”을 위한 요건을 구비하고 있는 곳이다.
우리정부가 구상한 고속철도망 확충 계획은 전국 주요 거점을 `X자형`과 해안권을 연결하는 `ㅁ자형`의 결합된 형태이다. 주요 거점 지역을 GTX & KTX로 잇고 KTX가 운행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철도 노선 개량화 등을 통해 시속 230㎞ 수준의 고속열차를 운행하겠다는 것이다.(내륙발전계획-‘동ㆍ서ㆍ남해안권발전특별법 - 2010.10.6일시행)’
경상도는 찬란한 신라 천년의 불교문화와 신비의 가야문화 그리고 선비정신의 유교문화 등 민족 문화의 본산지이자 한국문화의 얼굴에 해당하는 비학귀소형(飛鶴歸巢形)의 공간입지를 갖추고 있다. 또한, 호국충절(護國忠節)의 고장으로 국난극복의 보루(堡壘)였으며, 새마을운동과 자연보호운동 등 국민정신운동(國民精神運動)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특히 경상북도는 기원전부터 삼한의 하나인 진한이 자리 잡은 곳이며, 삼국을 통일하여 천년 왕조와 찬란한 문화를 꽃 피웠던 신라의 본토였다.
경상도의 인구는 부존자원이 없는 우리나라의 근대화 메카로 첨단산업단지 조성 등으로 인한 도시지역의 팽창, 농어촌의 소득기반 강화와 쾌적한 생활 환경조성 등으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며, 특히 평균수명 연장으로 노인인구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산업구조가 2 · 3차 산업 중심으로 고도화 된 곳이며, 선진국 수준의 풍요로운 생활을 영유하게 될 지역경제의 여건을 구성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민족의 먹 걸이 근간을 이루고 있는 농어촌은 기술집약적 신지식 농업과 유통기반이 완비되어 소득수준이 높아지고, 도로, 상· 하수도, 의료, 문화, 복지 등 생활환경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어 도농복합의 전원도시적인 생활터전으로 변모하고 있는 곳이다.
세계문화교류의 중심지로서 전통문화의 현대문화가 조화를 이룬 문화르네상스 시대가 전개되고 주5일근무의 영향 등으로 도내 전 지역이 국내외 관광객이 즐겨 찾는 체류형 체험관광지로 변모하고 있다.
그리고 1인 1PC보급과 인터넷 전자상거래 등이 생활화되어 행정 · 산업 · 생활의 모든 부문에서 정보화가 이루어져 디지털사회가 실현되는 선택받은 지역특성을 갖추고 있다.
과거 산업화시대를 뛰어넘어 환경 친화적 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으로 인하여 대기·수질이 크게 개선되어 도심지의 강물에서도 물장구치고 밤하늘에 반딧불도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등 자연생태·환경이 복원되어 살기 좋은 환경요건을 갖추고 있다.
화랑정신과 선비정신을 이어받아 의리와 뚝심, 정의감을 중시하는 굳건한 기상과 아울러 산업근대화의 주역으로서 드높은 미래개척정신(未來開拓精神)도 가지고 있는 도민정신이 우수한 고장이기도 하다.
경상남도는 수려한 자연경관과 우리국토의 1/3에 해당하는 해산물과 어족이 풍부한 긴 해안선과 청정 동해와 남해, 그리고 다양한 잠재력과 개발수요를 간직하고 있고, 세계적인 철강 섬유산업의 중심지로서 우리나라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으며, 수도권 다음으로 많은 대학(39개)이 소재하여 풍부한 연구 인력과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다.
북쪽(경상북도)은 대체로 산지가 많고 고도가 높은 편이며, 특히 북부와 서부의 높고 험준한 소백산맥(소동악)이 낙동강 유역의 광활한 평야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남쪽으로는 운문산, 비슬산 등이 있어 전체적으로 거대한 분지의 지형의 공간입지를 갖추고 있는 길지(吉地/穴地)에 해당하는 선택받은 고장으로 공간입지구성요건 중 자연입지구성요인이 뛰어난 곳이다.
(5) 지역감정 문제의 해소(해결) 방안
상기 3.항 말미에서 거론한 것과 같이 지방의식이나 지역갈등의 해소방안으로서 제시될 수 있는 것들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알아보자.
우선적으로 인재를 선발하고 교육훈련을 거쳐 배치하고 평가해서 승진시킬 때 각 수준에서 지역 간의 안배원칙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각종 국가고시나 3군사관학교, 경찰대학뿐 아니라 국립기관에서 채용하여 교육양성 하는 각종수준의 선발에 이르기까지 지역쿼터제와 균등고용의 원칙(인사의 균등정책)이 적용되도록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성을 감안한 순환적인 인사배정 또한 시도해 볼 만한 하나의 방안이라고 할 수 있겠다.
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지역 간 계층 간의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의 현상은 욕구충족의 형평성에서 크게 이탈 된 경제 질서와 경제의 민주화에서의 파탄의 일면을 나타내는 현상이다. 특히 지역 간의 경제성장에서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면 정치, 경제적인 발전과정에 그리고 그 지표에 문제가 있음을 나타내어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그릇 된 경제개발정책으로 특정지역 주민들이 상대적인 빈곤감(貧困感 ) 내지는 박탈감(剝奪感)을 조성하게 된다면 전 국민이 하나가 되는 근본을 해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국민 전체의 일체감 조성을 위해서는 계층 간의 경제적 수준의 격차를 좁히고 상대적 빈곤감과 박탈감을 없애고 치유하는 방법이 국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되고 수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지역 간의 균등한 경제개발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정책적인 차원에서의 배려(配慮)가 선행되어야 한다. 즉 국가적 차원에서의 경제성장도 중요하지만 지역 간 소득발생의 균등성이 확보될 수 있도록 일차적 정책 감안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문화 및 문명에서 오는 편의성은 말할 것도 없고 교통의 편리성과 연예, 오락, 그리고 각종 문명의 이기를 활용하는 수준 및 정도에 차이를 없애야 한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나타나는 저마다의 문화적 특성과 전통을 잘 육성하여 지역 서로 간에 활발한 상호교류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정치와 경제 등에서 중심이 되고 있는 서울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통망은 지역 간의 소통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지역 간의 소통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교통망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필자가 여러번 주장한 GTX 및 KTX 개설에 주저함이 없어야 할 것이다. 스위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철도개설은 환경 측면에서나 영구성을 따져 보아도 개설에 대한 이점이 많은 교통수단으로 비교적 안전성이 보장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통망의 개발과 아울러 인위적인 인적자원의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것은 물론 각 지역에 분산되어 있는 각종 매스컴 네트워크의 교류를 적극 추진하여 TV프로의 교류, 각종 출판물의 교류에 이르기까지 상호이해와 화합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접촉의 빈도를 높이는 과감한 방책이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서 지역정서(地域情緖)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여 국민전체의 정신세계(國民全體의 精神世界)를 새롭게 만들 것이다. 21세기 우리민족이 나아가야 할 길은 경제성장에도 있으나, 우리국민이 느껴야 할 공통의 정신세계((Mind<마음>/Spirit<정신>/Mental<지력>)의 일체감을 형성하는 일이다 그 것이 딱 무엇이라고 규정할 수 는 없으나, 애국(愛國) 또는 국가관(國家觀)이라는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사회적 각종 단체의 장(長)을 포함한 임원진의 구성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전 지역을 대표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와 함께 그들이 이러한 정신세계를 형성하는 지도자(Leader)로써 선도적 역할을 할 필요성이 있다.
이러한 정서 속에서 지역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할 조건은 정치적인 민주화를 들 수가 있겠다. 정치적인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지역감정은 결코 해결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치적으로 힘의 쏠림현상에 의해 권력이 편향적으로 이동하여 가장 나쁜 형태의 지역감정을 유발시켰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감정을 해소(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지역사회의 특성을 살릴 수 있는 지방자치제도의 활성화가 무엇보다 절실히 요구된다. 지역적인 특성에 바탕을 둔 지방자치제도가 정착 되어야만 이 오늘날의 첨예하게 대립되고 있는 지역성을 둔화시킬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이 지역감정을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
다음으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선거제도의 개선이다. 우선 지금 국회의 소선거구제를 대선거구제로 전환하고, 대통령제를 임기에 있어서는 4년 중임제로( 또 한 방법으로는 우리나라 정서상 매우 어렵겠지만 대통령직선제에서 간선제나 결선투표제를 택하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라고 본다.) 바꾸는 것이 책임정치에 대한 부분과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측면과 함께 상당부분 지역성이 희석되어 지역 당을 초월하여 모든 국민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선출되어 갈등과 반목을 지양하여 화합으로 뭉치는 계기를 마련하는 대통령선거 제도가 될 것이다.
더불어서 대의민주정치의 문제점과 지역성에 대한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는 자치이념(自治理念)이 강한 참여민주주의 주요한 제도로써 국민투표제, 국민(주민)발의제, 국민(주민)소환제, 주민감사제, NGO, 인터넷 등에 의한 국민(주민)의 감시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여 문제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다. 특히 국회의원선거에 있어 대선거구제로 전환을 하지 아니고, 당리당략에 의해 몇몇 소수(또는 특정 정당별) 국회의원들에게 당선이 용이한 소선구제를 고수한다면 자칫 지역간정(갈등)의 망령이 재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으며, 그렇게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현재와 같이 각 정당이 지역성을 대표하게 됨으로 정당이나 국회의원 역시 영원히 지역당, 지역 국회의원의 역할 밖에는 더 하지 못할 것이다.
건전한 의회민주주의를 육성 발전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지역성을 초월한 정치제도를 도입하기 위하여서는 정치, 제도적인 개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힘의 편중을 박을 수 있는 선거제도의 개선이야 말로 지역감정을 해소(해결)할 수 있을 방법 중에 하나라는 것은 재언(再言)이 필요 없는 자명(自明)한 것이다.
(6) 지역감정(갈등)은 이미 해결(해소) 된 것 - 국민의 자긍심으로
해(태양)를 띄우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생각으로 과거 중국인들은 자기들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서 중화(中華)라고 불렀고, 주변의 민족은 모두 오랑캐라고 불렀다. 오랑캐를 뜻하는 그들의 글자를 보면, 동쪽에 있는 민족은 이(夷), 서쪽에 있는 민족은 융(戎), 남쪽에 있는 민족은 만(蠻), 북쪽에 있는 민족은 적(狄)이라 칭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동쪽의 우리 민족은 큰[大] 활[弓]을 사용하는 민족(東夷族)/東夷國)으로 보았고, 서쪽의 티베트나 터키는 싸움(무기= 戈 = 矛 = 창)을 좋아하는 민족, 남은 벌레[蠻] 같은 민족, 북은 짐승[狄/적] 같은 민족으로 보았던 것이다. 활은 당시로서는 가장 발달한 강력한 무기였으므로 '동이(東夷 = 東大弓國)'라고 표현한 것은 존경의 뜻이 그 속에 묻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여러 역사학자들이 주장한 것 중에는 ① 중국 최초. 최대의 성인으로 치는 요(堯)임금이 바로 우리의 단군이었다. ② 한문은 중국 글자로 알지만 실은 우리 민족이 만든 것이다. ③ 고구려, 신라, 백제가 활동한 무대는 한반도나 만주가 아니라 중국 본토 내에 있었다. 라고 하는 흥미로운 내용도 발표되고 있다.
각국과 우리 민족의 자긍심(프라이드)을 나타내는 표현을 살펴보면, 영국은 ‘대영제국(해가 지지 않는 나라)’, 러시아는 ‘세계를 구할 빛과 힘은 모스크바로부터’, 프랑스는 ‘문화 예술의 나라’, 그리고 그리스와 로마는 ‘고대 문명의 발상지’ 라는 등의 표현으로 자국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동방의 해 뜨는 나라'정도로는 나타내고 있으나, 너무 진부하고 어쩐지 약하다는 느낌이 든다. 왜냐하면 지정학적으로 보아 일본이 우리보다 먼저 해 뜨는 나라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좀 약하다고 본다.
21세기 주역의 역할을 꿈꾸는 우리나라는 공간입지학적으로 보나 역사적 근거나 사회학적 논리나 가치관으로 볼 때 우리국민정서에 절대로 맞지 않는 지역감정 따위는 우리내부의 아름다운 지역사랑의 감정(이성)으로 승회시켜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진정으로'민족을 위해 세계 지구촌을 위해 해를 띄우는 나라'가 되어야겠다는 각오로 세계 속 한국의 꿈을 실현하는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IT강국에서 K-pop(한국음악), K-food(한식)처럼 문화강국으로 향하려는 즉, 문화 권력화(勸力化)를 추진해 가려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본다. 그것은 사람의 의식(정신)을 지배하면 모든 것을 지배할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이 문화이고 우리민족 문화의 본바탕이 예(禮)와 선(善)을 본바탕으로 하고 있어 그것은 곧 평화와 자유를 원하는 모든 인류가 추구하는 최대가치와 일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쁜 지역감정을 유발 시켜왔던 잘못된 것들은 버리고 새로운 지역감정을 창조하려는 인식의 전환(New-paradigm)이 절실히 요구된다. 우리국민 각자가 잘못된 지역성에 대한 인식과 편견을 버리고, 비틀려진 역사관과 나쁜 지역감정을 갖고 있다는 자체를 부끄럽고 창피한 일이라 생각하는 것, 그리고 그런 것이 바르지 못한 태도라는 것을 인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대국민적 홍보가 필요하다. 홍보를 통해 국민정서를 고취시킬 수 있는 메커니즘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언론으로 언론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하며, 또한 책임 있는 사회지도계층의 역할도 중요시된다. 분명한 것은 버릴 것을 버리고, 고쳐야 할 것은 고치고, 잘못된 법과 제도는 과감히 개선해 할 시점이 지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를 필요이상으로 괴롭혔고 사회적 비용을 발생케 했던 나쁜 의미의 지역감정은 사실상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고,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그런 것들조차 없었던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쁜 지역감정이 존재하였던 것은 엄연한 우리의 현실이었고 사실이었기에 우리들의 잘못이었기에 슬픈 일이다.
자기 편의적으로 조작에 의해 만들어졌던 나쁜 지역감정은 좋고 아름다운 지역감정(동질성, 일체감, 지역주체성/local identity, 협동성 등)으로 승화시켜 우리가 살고 있는 고향을 빛낼 수 있는 자랑거리에 해당하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지역감정은 이제 지역발전을 위해 권장해야 할 지역정서로써 길이 남아 있어야 할 덕목(德目)에 해당한 것으로 육성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과 국회의원을 뽑을 경우에도 지역감정 같은 것은 생각치도 말고 우리민족의 운명(運命)을 바꿀 수 있는 대의(大義)를 가진 열정(熱情)과 판단력(判斷力)과 책임감(責任感)이 강한 정신력(精神力)을 갖춘 사람을 선택(選擇)하여 뽑아야 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지금의 세종시로 행정수도를 옮기려고 기획했었고 노무현대통령의 의해 결정지어진 것은 우연이 아닌 운명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본다. 세종시로 인하여 대한민국이 수도권과 영ㆍ호남권으로 2권역으로 된 것은 우리민족에게 주어진 운명으로 받아들여 화합하고 지역감정 같은 불필요한 것들을 떨쳐버리고 세계 속 한국의 위상을 드높일 수 있는 기회로 삼기 위한 국토 개발의 모델이 되어 새로운 부(富)를 창출하여 인류사에 빛나는 국가를 이룩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이 우리의 국토를 개발한 부동산정책은 가진 것이라고는 땅덩어리(부동산) 밖에 별로 없었던 그 당시에 자생적 경제학(自生的 經濟學)과도 같은 부동산개발정책으로 미국 루즈벨트 대통령이 감행했던 뉴딜정책과 버금가는 성공신화를 만든 것으로 부자나라로 가는 길목을 개척했다는 사실이다. 이제 세종시를 기점으로 하여 또 한 번의 기세로 도약을 이룩하는 것이 21세기에 주어진 우리민족 공동의 과제라고 본다. <계속>(54)
(7) 자연스러운 현상을 이용한 지여감정의 해소 - 국토의 2권역화 현상
하늘이 우리 국민에게 지역감정을 없앨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준 것이다. 국토가 자연스럽게 2권역(수도권 : 영호남권)으로 나뉘게 된 것이다. 세상은 2분법이 모든 출발의 기점인 듯하다.
하늘(天)과 땅(地) 해(日)와 달(月) 남자와 여자 음(-)과 양(+) 밤과 낮 어둠과 밝음 긍정과 부정 등 수없이 많은 것 들이 2분법적 구분으로 시작되고 있다. 물론 3분법 4분법 등 무수히 많지만 1개에서 2개로 나누어 진 것이 가장 기본적인 분리의 출발로 다시 하나로 합치기 위해 되돌아가기 가장 쉬운 상태가 2분법적 분리 상태이다.
그러나 하나에서 둘이 아닌 3으로 나누어 진 상태인 트라이앵글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 리가 쉽지 않은 안정적인 분리 상태라고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3개로 쪼개질 경우 다시 1개로 합체가 되기는 쉽지 않은 상태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리와 합체의 역학구도를 말하는 것은 물리학적 구조이나 생태학적 구조만을 말하는 것은 아닐 수 있다. 우리나라는 선사시대는 몰라도 유사 이래로 3국가 체제로 가장 오랜 세월을 보냈고. 지금처럼 열강국의 이해관계에 따른 이념적 갈등으로 국가가 분단 된 경우는 별로 없었다는 것은 2분법에 따라 1개의 국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단일민족 이면서도 사실상 통일 된 국가 산적이 별로 없었다. 민족, 언어, 문화가 같으면서도 항상 갈등과 대결의 상태, 또는 적대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살아 온 것이 우리의 역사다. 남북으로 양분이 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시대보다 통일의 가능성이 가장 높다. 대한민국(남한)의 경우 수도권, 충청권, 영ㆍ호남권 등 3권역으로 나누어져 살고 있다. 이러한 구도에 따른 지역감정으로 우리사회가 엄청난 비용을 지불했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여러 면에서 저해요인으로 작용되어 그 피해가 매우 크다.
다행이랄까 세종시라는 행정복합용도 특별시(중앙행정부의 특별자치시)의 기능과 역할에 따라 충청권은 수도권과 영ㆍ호남권의 점이지역으로 양쪽에 속해 있어 그 역할과 기능을 하게 됨에 따라 수도권의 팽창으로 과거에 있었던 기호지방이 사라지듯이 중부권(충청권)도 점차 사라지게 되고 수도권과 영ㆍ호남권으로 자연스럽게 2권역이 된 것이다. 지역감정 유발의 근원이 된 3권역이 사라지고 2권역이 됨에 있어서는 세종시의 기능이 매우 크다.
자연스럽게 2권역이 되면 그동안 불필요하게 사회적 비용과 지역갈등 문제로 고통 받았던 우리국민이 편안해 짐으로 그 여력을 국가발전을 위해 국내외로 돌리게 되어 일석다조의 효과가 있게 될 것이다. 현 정부는 참여정부시절에 입법화 된 세종시에 대하여 정치적 논리로 세종시를 기능적인 면으로 바꾸어 보려고 부단한 노력을 시도 했으나, 결국 국민적 저항으로 세종시를 원안대로 시행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기 때문에 주저하거나 그 시기를 늦추어야 할 이유가 없이 가능한 한 서두를 필요가 있다.
사실상 세종도시는 위치적으로는 충청권에 있을 뿐 중앙정부의 기능과 역할을 연계수행해야 할 도시이기 때문에 법적지위는 당연히 중앙정부의 특별자치시가 될 것이고, 그에 따른 실질ㆍ위치적 상징성 있는 특별자치시가 될 것이다. 세종시설치법에 따른 도시기능을 제대로 발휘 할 수 있도록 하여 국가 번영에 새로운 견인차가 되어야 할 것이다. 도시 기능을 위한 사회기반시설(SOC)의 구축은 정부가 해야 할 너무나도 당연한 책무이다.
왜냐하면 세종시에는 우리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전체적이고 전반적인 분야를 운영하는 중앙행정부의 명실상부한 핵심전략기관이 거의 모두 들어 있는 국가중심기관(23개 소속기관 - 중앙행정관서 중 통일, 외교, 국방, 법무, 행정, 여성부 등 6개 부처와 청와대 감사원, 금융감독위원회 대검찰청 경찰청을 제외하고 26개 기관<2실 12부 4처 2청 6위원회>과 23개 소속기관 등 49개 부서가 이전될 것임)이 운집 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서울 강남간의 고속버스노선이 130여회, 일반 시외버스(강남, 남부, 동부 등) 운행횟수가 125회 이상 그밖에 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정규 비정규 노선과 승용차와 기타 그 밖에 여러 가지 교통수단을 총괄적으로 합하여 보면 수도권이 되어 있다. 2010년 11월에 개통될 KTX까지 합하게 되면 하루 이동인구가 10만 명 이상을 훨씬 넘을 시대가 될 것이다. 따라서 호남으로 연결되고 있는 오송 분기역의 기능이 활성화 되는 2030년 쯤에는 인구 200만으로 구성되는 메가시티가 형성되어 세종시 주변의 대전, 공주, 오송과 청주를 아우르는 1,000만 명이상의 인구구성을 기본으로 하는 메타시티가 형성되면서 우리나라의 정주공간과 직주공간에 대한 개념이 확 바뀔 것으로 보아진다. 교통수단으로는 앞으로 세종시와 중앙행정부와의 접근성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제2경부고속도로나 새로운 교통망에 따른 교통수단이 생겨야 할 것이다.
예컨대 수도권의 동남부 지역(강남, 송파, 성남, 하남, 용인, 수원)과 청주공항까지 연계할 수 있는 도심권을 통과(大深道)하는 GTX(수도권광역급행열차)와 KTX를 연계하는 교통망을 신설하여 강원지역과 수도권의 남부지역을 거점으로 하는 청주국제공항을 활성화하여 대한민국을 명실상부한 동남아 허브로 만들어야 할 것이다(GTX & KTX에 대한 별도의 논고가 있음). 이를 위해 추진 중에 있는 수도권의 서남부지역(수원, 오산, 화성, 안산, 서산, 천안)과 청주공항을 연계하는 수도권 전철을 천안에 이어, 서울의 동부권을 관통하는 수서를 출발하여 17번 국도를 잇어 청주공항에까지 이르는 도로가 하루 속히 연결하여야 할 것이고, 이어서 충주를 거처 대구, 그리고 포항에 이르는 새로운 KTX & GTX의 도로망이 구축되어 우리나라 내륙을 관통하는 교통수단이 구축되어야 할 것이다.
수도권의 중심부에서 또는 영ㆍ호남의 중심부에서 청주권(세종도시)으로까지 접근에 필요한 시간은 현재로써는 대략 90분대(KTX의 경우 40~ 50분대)를 유지 하고 있으나, 이를 더 단축하기 위한 기술개발에 대한 노력이 필요함에 따라 정부는 머지않아 서울을 기점으로 하여 전국의 대부분의 대도시까지 90분대에 주파할 수 있는 교통체제를 갖추겠다고 발표한 바가 있다. 세종시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교통망 구축은 필 수가 될 것이다.<계속>(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