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와이너리의 모범사례 '코코팜 와이너리'
입력 : 2015.03.19 09:00
제2부. 지역 주민에게 존경받는 와이너리 일본 6차산업의 성공사례
일본 경제신문 추천 와이너리 제3위
와인을 즐기지 않는 사람에게도 즐거운 와이너리
한국인에게 와이너리라 하면 어떤 모습이 떠오를까? 드넓은 포도밭에 거대한 성안에서 우아한 모습으로 와인을 마시는 모습일까? 아니면 병당 수십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고급 와인을 만드는 이미지일까? 어느 쪽도 와이너리의 모습일 것이고 실질적으로 유럽에는 이렇게 화려한 와이너리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한 모습과 달리 아담하지만 사랑받는 와이너리가 일본에 하나 있다. 바로 ‘코코팜 와이너리’. 도쿄에서 100km 정도 떨어진 도치기현에 위치한 이 와이너리는 화려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으로 일본인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과연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을 찾기 위해 직접 방문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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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팜 와이너리의 포도밭. 스키점프대만큼 경사가 심하다. 그래서 모두 손으로 따야 한다. 출처 코코팜 와이너리 홈페이지
관광지도 유명한 지역도 아닌 소박한 시골의 ‘코코팜 와이너리’
도쿄에서 도부이세자키선 전철을 타고 달리기를 약 1시간 40분, 아시카가시역에 내리면 소박한 시골 동네가 하나 나온다.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또 30분을 가면 깎아지를 듯한 절벽에 포도를 재배하는 ‘코코팜 와이너리’를 만날 수 있다. 겉보기에는 그냥 포도밭과 판매점 하나 정도만 있는 평범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곳은 여행비수기인 한겨울에도 방문객으로 붐볐다. 모두 와인을 이곳에서 직접 구입, 시음, 체험해 보기 위해서다.
급경사 40도의 절벽 같은 포도밭, 그래서 모두 손으로 따는 이야기로 더 유명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은 급경사를 이루는 곳에서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포도의 당도를 높이기 위함. 어느 과실이나 강렬한 햇볕을 받아야 당도가 높은 포도가 재배되고, 이 당도로 인하여 알코올도수가 결정이 난다. 즉, 와인의 도수를 결정하는 것은 포도 속의 당도인데 이 당도가 낮은 것은 좋은 와인이 나오기가 극히 힘들다. 그래서 이곳은 아침부터 저녁 해가 질 때까지 계속 햇볕을 받을 수 있는 곳에 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이렇다 보니 기계를 쓰지도 못하고 직접 사람이 하나씩 따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는데 이로 인해 오히려 더 유명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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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팜 와이너리 입구. 판매와 커피, 그리고 식사를 할 수 있다, 와이너리 카페 내부
코코팜 와이너리의 시작은 1950년 지적장애인 대상 학교로 출발
코코팜 와이너리의 시작은 와이너리가 아니었다. 복지 시설이 거의 없던 1950년대 지적장애 학생을 대상으로 가르치는 학교로 시작하였다. 학교 이름은 고고로미가크엔(고고로미학원).고고로미란 뜻은 ‘시도해보자’란 뜻으로 포기하지 말고 ‘해 보자’란 뜻이기도 하다. 이 학교명대로 졸업한 학생들이 당장 일할 터전을 잡지 못하는 것에 안타까움을 느껴, 다 같이 과일을 재배해서 생계를 꾸릴 목적으로 포도를 재배하게 된다. 1970년대 일본의 고도성장기에는 맛보다는 보기에만 예쁜 포도를 찾는 나머지 판매가 줄어들었고, 이후 포도 본연의 맛 중심이 된 제품개발을 하던 중, 와인제조에 착안 1984년부터 와인을 만들기 시작한다.
더불어 사는 방법을 제시한 와이너리
사회복지적 성격의 학교로 시작했지만, 이곳이 사랑 받는 이유는 학교 자체만의 이유가 아니다. 세상의 편견과 복지시설이 극히 없었던 1960년대에 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농업과 와이너리란 터전을 만들어 준 것이 중요하다. 지금 현재 이곳에서는 수십년 째 일하는 분들도 있으며, 그분들 스스로 가족과 친구, 친지들에게 인정을 받는 삶을 살고 있다. 무엇보다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은 모두 와인 전문가로 일반인들조차도 접근하기 어려운 와인 장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고 이로 인해 지적장애자 분들도 충분히 이 사회와 더불어 살 수 있다는 길을 증명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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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와이너리의 와인 터널. 거대한 규모가 아닌 소규모로 숙성시키고 있다.
철학이 있는 와이너리 지역의 포도와 야생 효모가 만들어 낸 이곳만의 와인
31년이라는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곳에는 와이너리만이 가진 특별한 철학이 있다. 포도 재배에는 화학비료 및 제초제를 쓰지 않으며, 와인을 만들 때도 효모도 별도 투입하는 것이 아닌 이 지역의 야생효모로 발효시킨다. 즉 지역의 포도와 효모가 만들어 낸 이곳만의 와인이 탄생하는 것이다. 안내 담당인 가쯔마타 씨는 학교 이야기보단 와인 맛과 문화로 경쟁을 하고 싶다고 전한다. 좋은 뜻에서 시작한 학교 이야기가 홍보용으로 오인당하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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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와인 시음체험. 500엔을 지불하면 5종의 와인을 시음해 볼 수 있다.
여름에는 샴페인, 가을 수확기에는 오크통에서 꺼낸 생(生)와인 시음 체험 등
와인 맛으로 승부를 내려는 만큼 이곳에는 늘 다채로운 와인 체험이 기다리고 있다. 전문적인 와인 교육부터 여름에는 탄산의 짜릿한 맛으로 즐기는 샴페인, 가을에는 포도 수확 체험과 오크통에서 바로 꺼내 효모가 살아 있는 생(生)와인 체험 등 오직 이곳에서만 즐길 수 있는 체험으로 짜여 있다. 포도 축제 기간에는 수만 명이 집결하기도 하며, 일반 평일에도 방문하면 수십 종의 와인과 심플하면서도 아담하고 귀여운 점심도 같이 즐길 수 있다. 와인을 즐기지 못해도 포도 카스텔라, 포도 과자 등 다양한 것을 즐길 수 있다. 그래서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이 찾는다. 주변에 유명한 여행지도 없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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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빵, 잼, 지역 양계장의 계란, 호두 등 지역 농산물과 같이 판매한다. 와인을 즐기지 않아도 쇼핑을 올 수 있다.
끈끈한 유대관계로 지역 사회에 공헌, 작은 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분야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지역 주민에게 ‘코코팜 와이너리’에 대한 인식을 물어봤다. 특히 아무리 취재를 했다 해도 보이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 실례를 무릅쓰고 진행을 했는데 시원한 대답이 나왔다. 이곳에서 일하는 지적 장애자 분들의 월급상태를 투명하게 하기 위해서 가족에게 어떻게 업무를 했고, 그 업무로 인한 월급을 가족에게 공개하고 있으며, 동시에 얼마나 어떻게 이윤이 있었는가를 정확히 해서 남은 이윤은 모두 학교재정에 충당, 지속적인 학교복지 운영에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지역의 농산물도 이곳에서 판매하는 등 지역 경제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이렇게 지켜온 것이 70년 가까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 주민은 이곳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이러한 지역 주민의 인식이 이곳을 유명한 명소로 만들어 준 것이다. 한국에서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상생이 늘 논쟁거리가 되는데, 개인적으로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지역적 유대감이 무척 중요하게 느껴졌다. 지역사회에 공헌하고, 그들과 소통하고 문화적인 것을 알리는 것이 대기업이 못하는 중소기업만이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량이 아닐까? 지역에서 존경 받는 곳은 전국적인 곳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코코팜 와이너리’, 소박한 매력으로 아류였던 일본와인을 주류로 만들어 주고 있는 모습에 문화적인 감동이 느껴지는 매력 있는 와이너리였다.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명욱 mw0422@chosun.com
출처 : 조선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