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팔아 유학 보낸 달맞이꽃 딸, 내년 칠순엔 다녀갈까
김민철 기자
입력 2026.08.15.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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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희 단편 '어느 밤' 노년 여성
딸과 함께 한 달맞이꽃 추억 간직
달맞이꽃은 해방 전후 널리 퍼져,
성희 단편 ‘어느 밤’은 한밤중에 킥보드를 타다 사고로 쓰러져 있는 노년 여성이 옛일을 회고하는 내용이다. 칠순을 앞둔 이 여성은 아파트 놀이터에서 킥보드를 훔쳤다. 밤마다 이웃 아파트 단지에서 이 킥보드를 탔는데 어느 밤 넘어져 꼼짝할 수가 없다. 도움을 청하지만 으슥한 곳이라 응답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구조를 기다리며 찬찬히 옛 기억을 되짚는다.
딸 업고 오는 밤 달맞이꽃이 환했다
결혼 초기 ‘나’는 남편과 지물포를 차렸다. 도배지를 바닥에 깔고 앉아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었지만 입이 달던 시절이었다. 인테리어 업자에게 밀려 가게를 접은 후 남편은 공사 현장 경비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순찰을 제대로 돌지 않은 어느 날 사고가 나서 해고를 당했다. 이후 남편이 하루 종일 집에서 뉴스를 보며 미친놈, 미친년이라고 욕하는 것이 듣기 싫어 ‘나’는 밤마다 킥보드를 타고 있다.
부부는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딸을 미국에 유학 보냈고 딸은 그곳에 정착했다. 사람들은 집 팔아서 유학을 보냈다고 비웃었지만 ‘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내년 칠순 때 딸이 올지 모르겠다. 딸과 추억을 떠올릴 때 달맞이꽃이 나오고 있다.
달을 보니 달맞이꽃이 생각났다. 시아버지의 병문안을 갔다가 막차가 끊겨서 딸을 업고 집으로 돌아오던 날, 달맞이꽃이 참 환했다. 곧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거라는 사실도 잊을 정도로. 소꿉놀이를 좋아하던 딸은 달맞이꽃을 따다가 꽃밥을 짓곤 했다. 딸과 함께 달맞이꽃을 튀긴 적도 있었다. 여름방학 숙제였다. 엄마랑 요리하기. 아카시아꽃도 튀겼다. 중학생 때 딸은 아픈 엄마에게 꽃을 튀겨 생일상을 차려주는 아이의 이야기를 써서 글짓기 상을 받았다. 그때부터 똑똑했다.
윤성희 소설은 휙휙 이야기 소재가 변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 달맞이꽃 이야기는 비교적 자세하게 나오고 있다. 딸과의 추억이 가장 소중한 기억이고 그중에서도 달맞이꽃 관련 기억이 화자 최고의 기억 중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침내 새벽에 한 청년이 ‘나’를 발견했다. 청년은 점퍼를 벗어 ‘나’를 덮어주고 구급대원을 부른다. 비로소 마음을 연 ‘나’는 청년에게 킥보드를 다시 놀이터로 갖다 놓아 달라고 부탁한다. 더 이상 그녀에게 킥보드가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그녀에게 같은 아파트에 살며 다음에 만나면 맥주에 치킨까지 먹기로 한 사람이 생겼기 때문이다.
윤성희 소설은 몇 줄 읽어 보면 짐작할 수 있을 정도로 개성 있다. 그의 소설엔 우연한 일이 많고 유머, 그중에서도 좀 뜬금없는 유머가 많다. 또 단문 위주의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이뤄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달 뜨는 저녁에 피는 꽃
노년 여성이 쓰러져 있다가 떠올린 달맞이꽃은 여름에 피는 꽃이다. 바늘꽃과 두햇살이풀로, 4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진 밝은 노란색 꽃이 잎겨드랑이마다 한 개씩 달린다. 이름 그대로 꽃이 달을 뜨는 저녁에 피었다가 아침에 시든다. 저녁에 꽃이 피는 이유는 주로 밤에 활동하는 박각시나 나방 등 야행성 곤충이 꽃가루받이를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꽃잎이 축 처진 모습을 보지만 밤 8시 정도부터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싱싱한 꽃이 활짝 피어 있는 반전을 볼 수 있다.
겨울에 공터 등에 가보면 땅바닥에 잎을 방석 모양으로 둥글게 펴고 바싹 엎드려 있는 식물들을 볼 수 있다. 냉이·민들레·애기똥풀·뽀리뱅이 등이 대표적으로, 그 모양이 마치 장미 꽃송이 같다고 로제트(rosette)형이라 부른다. 그중 잎의 가장자리가 붉게 물들어 푸르지도 붉지도 않은 색으로 자라는 식물이 달맞이꽃이다. 이런 형태로 겨울을 견디다 봄이 오자마자 재빨리 새순을 올려 쑥쑥 자라는 식물이다.
달맞이꽃은 어릴 적부터 보아온 아주 친근한 식물이지만 남미가 고향인 귀화식물이다. 하지만 일찍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자리 잡고 씨앗을 퍼트려 이제 전국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다. 아주 우거진 숲에는 들어가 살지 못하고 사람들이 파헤쳐 공터를 만들어 놓았거나 길을 만든 가장자리 또는 경사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길쭉한 주머니 같은 열매 속에 까만 씨앗이 들어 있는데, 한때 이 씨앗으로 짠 기름이 성인병에 좋다고 유행을 탄 적이 있다.
그럼 달맞이꽃은 언제 귀화했을까. 달맞이꽃의 별칭 중 하나가 ‘해방초’다. 일제강점기에서 풀려나는 시점에 널리 퍼졌다는 데서 나온 이름이다. 학자들은 달맞이꽃이 이보다는 전에, 개화기 즈음 우리나라에 귀화한 것으로 보고 있지만 해방 전후 널리 퍼진 것은 맞는 것 같다. 반면 망초·개망초는 이름 자체가 개화기 나라가 망할 때 전국에 퍼진 풀이라고 붙은 것이다. 요즘에는 낮에 꽃이 피게 개량한 낮달맞이꽃도 주택가 화단 등에 많이 심고 있다. 그냥 달맞이꽃보다 꽃이 좀 더 크다. 낮에 피면서 꽃이 분홍색인 분홍낮달맞이꽃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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