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서쪽 하늘 붉은 노을 158
주기철 작사 · 김남수 작곡
1.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언덕위에 비치누나
연약하신 두 어깨에 십자가를 생각하니
머리에 쓴 가시관과 몸에 걸친 붉은 옷에
머리에 쓴 가시관과
피흘리며 걸어가신 영문밖의 길이라네
피흘리며 걸어가신
2. 한발자국 두발자국 걸어가는 자국마다
땀과 눈물 붉은 피가 가득하게 고였구나
간악하다 유대인들 포악하다 로마병정
머리에 쓴 가시관과
걸음마다 자국마다 갖은곤욕 보셨도다
피흘리며 걸어가신
3. 눈물없이 못가는 길 피없이는 못가는 길
영문밖의 좁은길이 골고다의 길이라네
영생의복 얻으려면 이길만을 걸어야해
머리에쓴 가시관과
배고파도 올라가고 죽더라도 올라가세
피흘리며 걸어가신
4. 아픈다리 싸매주고 저는다리 고쳐주고
보지못한 눈을 열어 영생길을 보여주니
온갖고통 다하여도 제십자가 바로지고
머리에쓴 가시관과
골고다의 높은고개 나도가게 하옵소서 아멘
피흘리며 걸어가신
순교자 주기철 목사가 작사한 이 노래는, 오랫동안 윤심덕(1897 ~ 1926)의 「사의 찬미」곡조로 불려 왔다. 한국 최초의 성악가요 비련의 주인공인 윤심덕은, 루마니아의 작곡가 이바노비치(c.1845 ~1902)가 작곡한 「도나우강의 잔물결」곡조를 수정하여 「사의 찬미」란 가사를 붙여 음반 취입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1926년 8월 호남 재벌가의 아들인 애인 김우진(金祐鎭,1897 ~1926)과 함께 연락선을 타고 귀국하던 중, 대한해협에서 바다에 뛰어들어 동반 자살을 하였다.
이 사건은 1920년대 후반 한국 사회에 큰 화젯거리가 되었고, 그가 부른 「사의 찬미」 노래는 전국에 전염병처럼 유행하여 모방 자살자들이 속출하였다.
주기철(朱基徹,1897~1944)목사는 이 애절한 곡조 전반부 절에 맞춰 「영문 밖의 길」이라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는 가사를 썼고, 이 노래는 전국 각 교회에서 오랫 동안 불려왔다.
《찬송가(신작 중보판),1995》583장에 구두회 장로 곡으로 처음 실렸지만, 이번에 가사만 채택하여 새로 작곡해 실린 것이다. 가사가 우리 운율인 44조로 작사되어 있고 곡조도 한국음계인 5음계로 작곡되었다. 주 목사는 날카로운 못이 박힌 판자 위를 이 노래를 부르며 걸어가 순교하였다.
주기철 목사는 장로교 목사요 순교자다. 아명은 기복(基福), 호는 소양(蘇洋),1916년 오산중학교를 졸업하고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하였다. 1921년 평양 장로회신학교에 입학해 1925년 경남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26년 부산 초량교회에 부임했으며, 1931년 문창교회에 부임해서는 신앙운동과 애국계몽운동을 벌였다. 1936년 10월에는 평양 산정현교회에 부임하여 재직하던 중 일제가 신사참배를 강요하자 이를 결사적으로 거부하며 신사참배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이로 인해 1938년 체폳되어 황실불경죄, 치안유지법 위반이란 죄목으로 징역10년형을 선고받고 평양형무소에 수감되었다. 복역 중 날카로운 쇠못을 박아놓은 판자 위를 걷는 잔혹한 고문을 받으며, 위의 자작 찬송을 부러 마침내 순교하였다. 1963년 대한민국국공로훈장에 추서 되었다.
작곡자 김남수(金南洙,1954~ )목사는 현, 신탄진 침례교회 음악목사다. 목원대학교음악대학(B.M),경인대학교 음악대학원( M>M,)을 마치고 남침례회신학교에서 음악박사학위를 받았다. 교회음악과 학과장, 교회음악대학원장, 한국 수자원공사합창단 상임 지휘자 등을 역임하였다. 현재, 한국기독교교회음악학회 회원, 한국작곡가협회 회원, 대전현대음악협회 이사, 미국 찬송가협회회원, 침례신학대학교 교회음악과 교수, 신탄진침례교회 음악목사로 섬기고 있다.
수상경력; Distinguished Composition Award(SBTS), 제18회 서울음악제 수상, 제19회난파 음악제 우수상, 제19회 서울음악제 수상, 제21회 동아음악콩쿨 입상, NATS (midsouth Region) 입상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