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원 시인의 제2시집이 나왔다.
내일(8월 31일) 출간 축하 소모임이 예정되어 있다.
성함 가나다 역순으로 존칭 생략하고 면면을 살펴보면...
허소 민주당 대구시당 위원장,
최영 시인,
정기숙 금오서원 원장,
류승호 사임산장 장주,
김해경 번역가,
김성순 수필가,
고경하 대구이육사기념사업회 사무처장
등등 귀한 분들께서 왕림할 예정이다.
책을 발간해온 지난 날이 죽 떠오른다.
첫 소설집을 낸 1990년만 해도 (아, 까마득한 옛날!)
서울 푸른나무 출판사가 책을 발간해 인세를 받았고
웅진출판사 소설선집에도 작품이 수록되었다.
그때까지는 대구의 온갖 일간지와 사보들에 글도 썼다.
그런데 첫 소설집이 나오기 전후 전교조로 해직된 이래
대구에서 원고청탁은 끊겼고
소설쓰는 일을 멀리하면서 이른바 중앙문단에서도 차차 이름이 잊혔다.
그래서 자비 출판을 시작했는데
경비를 줄이기 위해 1인 출판사 등록을 했다.
원고를 직접 쓰고, 편집도 스스로 하고,
표지도 자체 디자인을 하니
맡기는 데 견줘 반 정도 돈이면 가능했다.
지금 '참작가' 현진건을 현창할 목적으로
매달 <빼앗긴고향>을 어렵게나마 펴낼 수 있는 것도
대략 그 덕분이다.
그래도 상당한 무리가 따른다.
재산도 없고 연금도 없으니
그리 큰 돈이 아닌데도 허덕인다.
"돈 '쓰는' 일을 왜 하느냐?"고 묻는 사람도 드물지 않다.
생각해보면, 저축이나 부동산 구입 등을 제외하면
사람이 하는 일은 대체로 돈을 쓰는 일이다.
누군가는 음식을 찾아서 먹느라 돈을 쓰고
누군가는 (배우자 아닌) 애인 기분 맞추느라 돈을 쓰고
누군가는 룸싸롱에서 돈을 쓴다.
갈래가 다를 뿐, 나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돈을 쓸뿐이다.
다만 그 탓에 더욱 궁색해져서
점심을 거의 사먹지 않는다(얻어먹을 생각이 없기 때문에
웬만하면 건강식과 체중조절의 명분을 내걸고 건너뛴다).
나보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나은 사람과 술을 마실 때면
거의 술값을 내지 않는다(40대까지는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물론, 대접받은 만큼 기회를 보아 꼭 갚으려는 노력은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속물이 되거나 거지가 된다.
그런데 내가 종종 만나는 대구사람들 중에서
나보다 가난한 이는 본 적이 없다.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김규원 교수 시집 만들기는 했지만
나는 다른 사람 책을 만들어주는
세칭 기획사는 아니다.
그 일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전통사회 때는 행장을 누가 썼는가에 따라 그 사람이 평가되었다.
좋은 사람의 좋은 글이 책으로 탄생해서
세상에 좋은 기능을 하기를 바랄 뿐이다.
아무튼 나의 책을 내는 데에도
집필과 편집을 직접하지만
인쇄소, 제책소, 제본소 등을 거쳐야 하니 돈이 든다.
그런데 스스로 출세했노라 자만하면서도 속성은 찌질한 인간은
"정 선생 책을 읽으려면 어디서 구할 수 있느냐?"고
나에게 묻는다. 어이가 없다.
반면, 안팎으로 찌질한 인간은 잔머리를 굴려
나의 친한 후배(자신도 아는) 등에게
"정 선생에게 이야기해서 책 한 권 구해달라"고 한다.
순진한 후배는 나에게 책을 달라고 해서 그에게 준다.
목적을 달성한 그 자는 돌아다니면서
"책을 왜 돈주고 사서 보냐? 나 정도 되면
저자들이 책을 보내온다"며 뻐기고 다닌다.
젊은 후배를 이용해 책 한 권 값 아끼는 일에 늙은 인생을 건다
지금까지 약 30년 동안 책과 관련해 여러 인간형을 보았다.
대구사람 중 상식적 책값을 치를 줄 아는 이는 10% 미만 수준이었다.
김규원 교수, 최영 시인, 김형근 시인, 김미경 번역가의 출판기념회는
참석자 수가 소수정예여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절대 그런 차원은 아니었다.
오후 내내 시집을 읽다가 옛날 생각이 나서 몇 자 적었다.
내일 가져갈 책이 무거운 김 수필가 집에
방금 배달을 마쳤다. (2024년 8월 30일 저녁 7시)
10월이면 아내가 은퇴를 한다.
나의 1989년 해직을 앞두고
대비책으로 시작한 옷가게를 35년 동안 했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한다.
그래야 생활을 할 수 있고
현진건학교도 유지할 수 있다.
모레(9월 1일)부터
<전국 임진왜란유적 답사여행>을 기획하고
취재하러 다닐 때
그 후속으로 <전국 통일운동 유적 답사여행>을 염두에 두었는데
이제 그것을 실행해야겠다.
강의가 없는 날이면 전국을 돌아다니며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다.
(<전국 임진왜란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처럼
약간의 수입이 생길 것은 거의 확실하다.)
65세 이상 고령자에게
고속도로 진입과 야간 운전을 금지할 계획이라 하니
시간이 없다. 서둘러야 한다.
임진왜란 때는 혼자 다녔는데
이제는 부부 둘이 다닐 수 있다.
현진건학교 행사가 있는 토요일이 가장 한가하고
그 외 다른 날들은 분초를 아껴야 한다.
살아 있을 날,
그리고 의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생활해야 한다.
그래야 사람답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