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6일 – 성 바오로 미키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일본은 우리나라보다 먼저 서양 문물을 접했습니다. 신대륙 개발에 혈안이 되어 있던 해상강국들, 스페인과 포르투갈 등과 일찍 만났습니다. 도요또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면서 이런 외국의 세력이 자신에게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 혹은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지를 판단했고, 그 결과로 자신의 통치에 도움이 되는 과학이나 무기제조 등과 같은 것은 받아들이고, 종교적인 차원에서는 그리스도교가 가지고 있는 이질성을 염려하여 박해를 합니다. 처음에는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 유화정책을 쓰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그리스도교를 금지합니다. 특히 그리스도교가 가지고 있는 하느님만이 임금이시라는 생각,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생각, 무기를 가지고는 사람을 얻을 수 없다는 비폭력의 원칙은 그에게 장애물이 되었던 것이지요. 나가사끼를 중심으로 하여 많은 순교자들이 탄생하게 됩니다. 바로 일본의 26위 성인들입니다. 우리가 잘 알 듯이 나가사끼는 나중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도 병인박해의 양상이 그랬습니다. 흥선대원군 시절에 일어난 병인대박해가 바로 그것입니다. 프랑스 군대를 이용하여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려고 시도한 그는, 프랑스가 유용하지 않고, 더 나아가 자신이 집권하던 원리인 유교와 배치됨을 알기에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정책을 씁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즉 오랑캐를 오랑캐로 제압한다는 망상으로 서구열강끼리 싸움을 시켜 제풀에 조선을 넘보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지요. 그 영향으로 거의 만 명에 달하는 신자들이 떼죽음을 당합니다. 정권을 공고히 하려는 이들, 정확히 표현하면 자신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권력을 무분별하고 이기적으로 휘두른 이들에게 우리 순교자들이 의미없이 목숨을 잃었던 것이지요. 결과적으로 조선은 점점 자생력을 잃고 이 나라 저 나라에 힘을 빌어 연명하려고 하다가 치욕적으로 망하게 됩니다. 하지만 정권을 가졌던 사람들은 나라를 팔아먹고도 호의호식하지요. 그들에게는 국가는 돈벌이 대상이었을 뿐입니다.
일본 순교자들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나라 순교자들이 덧없이 죽어간, 더 정확히는 안 죽을 수도 있었을 상황을 우리나라가 만들지 못한 것이 다시 연상이 되고 서글퍼집니다. 국가가 약하여도 권력자들이 야욕을 가지고 통치하고 정쟁을 하지 않았다면 품위와 고귀함을 지킬 수 있었을 나라입니다. 국력이 약하여 국가가 망해도 다시 살아날 힘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비굴하고 천박한 이들에 의해 나라가 망하면 국민이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분단국가입니다.
오늘 신앙이 국가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잘 들어봅시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건강한 국가에 속해서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국가는 인간 본성이 요구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런데 그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공권력이 필요하고, 공권력을 가진 이들이 국가를 위한 봉사를 하지 않고 개인과 이익 집단의 영달을 이해 그것을 사용한다면, 어느 시대에나 그 고통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어 왔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순교자들은 이 사실의 증인들입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이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그 국가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반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도 우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신자답게 국가도 사랑하고 나라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하느님의 통치 방법인 “모든 사람이 살게하고, 모든 사람이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을 늘 고민하고 찾아내고 가르치고 표현하도록 합시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 위로 하늘이나 아래로 땅 그 어디에도 당신 같은 하느님은 없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당신 앞에서 걷는 종들에게 당신은 계약을 지키시고 자애를 베푸시는 분이십니다.”(1열왕 8,23)
(비전동성당 주임신부 정연혁 베드로니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