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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번째 이야기>
따라잡아 볼까나
-팬 닝(panning)의 멋과 그 외의 것들-
지루한 장마가 끝나고 작렬하는 햇빛이 살 갓을 태울 듯한 8월도 거의 끝나 가는 어느 휴일의 양 수리(兩 水 里). 금강산에서부터 시작한 북한강 물줄기가 화 천, 춘천, 가 평, 청 평을 지나 양평군과 양주군을 가르며 흐르다, 잠시 뒤, 태백의 황 지에서 발원한 남한강과 만나려 하는 곳. 그 물줄기 위를 나란히 건너지르는 3 개의 다리가 있다. 그 2개의 다리는 6번 국도를 따라 양 평으로 가는 새로 난 강변로와 예전부터 자동차가 왕래하던 다리요, 또 하 나는 강릉행 기차를 타면 어김없이 건너야 되는 철교인데, 이 철교를 건너자마자 코앞에 닿는 역이 양 수 역이다.
두 강이 만나는 곳이므로 지명을 양수리라 한다지만 본디 우리말로는 두 물이 만난다는 뜻인 '두 물 머리', 또는 만나서 어울린다는 '아우라지'라고 부르는 게 훨씬 더 멋 이 있을 것 같다. 하여튼 이 양 수 역 근처 샛강 언저리에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분홍빛 소담스러운 연꽃들이 다투어 피어난다.
강가의 뚝 방 이곳 저곳에서 밤새 낚시를 드리웠던, 강태공들이 느즈러지게 하품을 하며, 돌아갈 짐을 추스르는 시간, 이제 막 흩어지려는 안개를 헤집고 관광 버스 한대가 도착하여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을 내려놓는데 한결같이 그들은 카메라를 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침이슬을 머금고 함 초 롬이 피어있는 그 우아한 연꽃의 자태를 찍으려 나온 사진 동호인들이 분명하다. 그들은 낚시꾼들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한 듯 까치발로 사뿐사뿐 걸어다니며 조심스럽게 셔터를 누르기 시작했지만, 그것은 잠시. 어떤 이는 연꽃을 '클로즈업' 하면서도, 배경인 주위의 넓은 풍경을 담으려면 광 각 렌즈를 사용해야 하겠다느니, 예쁜 연꽃을 화면 가득히 넣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에 망 원 렌즈로 갈아 끼워야겠다는 둥, 들뜬 목소리로 떠들고 있을 때 갑자기 '끼 약'하는 비단을 찢는 듯한 여자의 날카로운 비명이 들렸다.
모두들 무슨 다급한 일이 벌어진 줄 알고 우르르 쫓아 가보니, 아 글쎄 한 아가씨가 연잎에서 갑자기 튀어 오르는 청개구리에 놀라 그리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그 서슬에 엉덩방아라도 찧고 주저앉았었는지 '샤론스톤'의 그것만큼이나 빵빵한 엉덩이가 흙탕물로 얼룩져 이를 본 일행들이 웃음을 참느라 낄낄거리니, 그녀가 창피하고 야속하여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의젓한 목소리로,
" 명 숙씨 신경 꺼. 흙탕물 속에서도 연꽃은 피는 법이여"하고 달래듯 말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꼭두새벽부터 이곳에 오기 위해 아침을 설친 터라 시 장끼를 느낀 동호인들은 아 침 겸 점심을 들기 위해, 그늘이 있는 길섶에 앉아있을 때, 한 떼의 오토바이가 요란한 폭음을 내며, 양 평 쪽을 향해 질주해 가자 명 숙이 재빠른 동작으로 그 폭주족을 향해 셔터를 누르려 했지만, "오매오매" 하는 짧은 순간에 그들의 모습은 멀리 사라졌다.
" 오매! 언제 가 뿌렸당가 고로크롬 싸게 가 뿌릴 줄 몰 랐 당게"
" 고럴 때, '팬닝' 기법을 쓰는 것 이랑께"
" '팬닝'이 뭣 이 라요? 진즉 일러주셔야 써먹을 것이 아니 다요 "
"미안 하고만 이라 우 시방부터라도 늦지 않 았 씅 게 알아두시오 잉"
언제 들어도 쫄깃쫄깃, 감칠맛 나는 남도 사투리로 명 숙이 쫑알거리는걸 보니 아까 속상했던 일은 새털처럼 보드라운 뭉게 구름에 실어 두둥실 흘려 보낸 모양이지. 그녀의 고향이 아마 월출산 기슭 어디 메 라지.
" 선상님, 싸게 본론으로 들어 가시시오 잉"
" 알았당께로"
팬 닝(panning)이란 움직이는 물체의 속도와 진행하는 방향에 맞춰 카메라를 이동 시켜가며 촬영하는 기술인데 쉽게 말하면, 마치 트랩(trap)사격을 할 때, 총을 쏘는 사수가 날아가는 목표물인, 석회로 만든 접시모양의 클레이 피전(clay pigeon)을 따라가며,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셔터를 누르는, 이를테면, '따라잡는'기술이다. 이때 움직이는 촬영대상물을 따라잡으면, 움직이지 않는 그 배경이 심하게 흘러서, 달리는 물체가 더욱 빠르게 보이는 느낌을 주는 사진이 된다. 다시 말해서 유 동감(流 動感)이나 운 동감(運 動感)을 강조하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이 사진의 요령은 움직이는 피사체의 속도에 잘 맞춰 따라가며 찍는 것인데, 카메라의 이동이 물체의 움직임과 같은 속도로 맞춰 이동되어져야 한다.
예를 든다면, 사람이 바로 앞에서 걸어 갈 때, 1/30, 또는 1/8초의 느린 셔터 스피드로 그 움직임을 잘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만약 오토바이가 달리는 모습을 찍는다고 가정한다면 아마도 1/60, 또는 1/30 정도면 훌륭한 사진이 될 터이니 실험 해 보시라.
매우 빠른 오토바이의 질주를 단지 1/60초로 찍을 수 있다는 것을 퍼뜩 이해하기 어려울지 모르나 카메라를 재빨리 이동시켜 오토바이를 따라가게 되므로, 그 속도를 보상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오가 가까이되어, 늦여름의 따가운 햇살이 내려 쬐자, 회원 모두는 식사를 마쳤지만, 그늘을 벗어나 일어서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 오 매, 징 하게 덥 구 만이라" 라고 남도 아가씨 명 숙 이 메기니,
" 하 모, 이럴 땐, 이바구 나 푸는 게 최곤 기라"라고 경상도 머슴아가 받고,
" 그 류. 궁금한 게 겁나게 많 유"하고 충청도 총각이 맞장구다.
" 옳거니, 이런걸 손 안대고 코푼다지, 내 할말을 자네들이 하니 말야" 필자 역시 식곤증으로 노곤하던 터라, 그늘로 궁싯 거리며 파고든다.
" 누가 마 그라는데, 형광등불에서는 플래시를 써야 좋다 카 던 데, 그 기 무신 소 린 교?"
" 그거야 형광등 아래에서 그냥 찍으면, 기분 나쁜 청록색이 끼지."
" 그런디 플래시로 해결이 되 남 유"
" 그렇지. 플래시를 쓰면 플래시의 색 온도가 높아서 록 색이 압도되어 버리지"
색 온도에 대하여는 <여 섯 번째 이야기>에서 대강 말 한 바 있지만, 플래시의 색 온도는 매우 높아서 태양처럼 6000。k 이 된다. 고로, 이 플래시에 의해 색상이 조절되는 것이다.
" 그 기 내 나 같은 말 인 교? 지는 예, 생각도 몬 했 능 기라."
" 잘 알아 들 었 고 만 이라, 그런디 요건 어쩐 일이 다요?" 명 숙 이 내민 사진을 살펴보니, 광 각 렌즈로 촬영할 때 플래시를 발광시킨 것으로, 사진의 중심부에서 가장자리로 갈수록 어두워져서, 마치 주위가 무엇으로 가리워 져 있는 듯 보이는 것 이였다.
" 그건 간단해 플래시의 퍼짐 각(角) 보다 광 각에 의해 찍히는 범위가 넓어져서 그래"
" 그럼 어떻게 한 다 요?"
다시 한 번 자신의 플래시를 살펴보고, 아래에 설명대로 활용한다.
① 광 각 렌즈를 사용 할 때 플래시 발광 판 앞에 덧씌우는 반투명한 확산 판
이 붙어있는 것은 이것을 덧 씌워 찍으면 빛이 부드럽게 확산된다.
② 이 보다 발전된 형태는 28, 35, 50등으로 눈금이 매겨져 있어서 이를 잡아 뽑거나 밀어 넣는 방법으로 플래시의 확산각도를 조절한다.
③ 가장 세련된 첨단제품은 렌즈의 화각변화에 따라 플래시의 퍼짐도 자동적 으로 연동(連動)된다.
" 궁금한 게 또 있는 디 유"
" 그게 뭔고?"
" 렌즈 앞에 '텔 레 모어(tele more)'라는 것을 끼우면 크게 찍힌다지 유?"
" 오라, '컨버젼 렌즈( conversion lens )' 말이지"
" '컨버젼' 이라 구 유?"
원래 컨버젼( conversion), 또는 컨버터(converter)란 변환, 변환기라는 뜻으로, 이 것을 렌즈에 설치, 피사체의 크기를 크게 또는 작게 변환시킬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보통 렌즈 앞에 설치하는 것을 컨버젼 렌즈(conversion lens), 뒤에 설치하면 리어 컨버터 (rear converter) 라 하는데, 이 것을 렌즈를 붙이게 되면, 렌즈의 초점거리가 바뀌어 광 각, 또는 망원렌즈로 쓸 수 있게 된다. f값은 렌즈 앞에 설치하는 '컨버젼'의 경우에는 변함이 없지만, 렌즈 뒤에 연결하는 '리 어 컨버터'는 초점거리가 연장되므로 어두워진다.
즉 렌즈의 밝기는 초점거리를 길게 한 배율의 제곱에 비례하여 어두워진다. 또한, 그 렌즈의 전용으로 만든 양질의 컨버터는 화질이 괜찮은 편이나, 일반형으로 만든 것은 묘사력이 떨어지는 것을 피할 길이 없다.
" 결국 컨버터를 사용하면, 크기를 변화시킬 수는 있지만, 화질이 떨어진다는 소리구먼 유"
" 그렇지. "
" 잘 알겠심 더. 그라몬 우표처럼 작은 사진을 복사하려 카 는 데.." 이번에는 경상도 총각이다.
" 그거야 근접해서 찍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지"
" 고걸 알고 싶 응 께 싸게 말 해 주셔야 쓰 것 소 잉" 명 숙이 재빨리 묻고,
" 급하기는 우물가에서 숭늉 달라겠네" 라고 시컴스키 선생은 능청떤다.
표준렌즈가 최대한 접근할 수 있는 거리는 대개 45cm이므로, 우표처럼 작은 물건을 찍기 위해 가까이 접근하면 초점을 맞출 수 없다. 그러므로 가까이 접근해도 초점을 맞출 수 있는
방법, 즉, ① 마이크로 렌즈(micro lens)렌즈를 준비해서 찍어야 한다.
만일 마이크로 렌즈가 경제적으로 부담스럽다면, 컨버터(converter)인,
② 클로즈업 렌즈(close up lens)라는 것을 렌즈 앞에 끼워서 찍기도 하구,
③ 접사용 링,(extension tube)을 구해서 렌즈의 뒤에 물려서 찍으면 된다.
" 그 외의 방법은 없대 유?"
" 왜 없을라 구"
"그게 뭔데 유"
" 비정상적 방법이 이라서..."
" 그게 뭐래 유?"
" 표준 렌즈를 카메라에서 분리한 뒤, 이를 거꾸로 대고 찍으면 되지"
" 히 야 신기하네 유"
그러나 이 방법은 웬만하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한 손으로는 카메라를 흔들리지 않게 잡고, 또 한 손으로 렌즈를 쥐어 카메라에 밀착시켜 찍는 것이기 때문에 여간한 기술이 아니면 안 찍느니만 못하게 된다. 즉 이 것은 옹색하고 가난했던 시절, 왕년의 사진기자들이, 처절한 사고현장에서 죽은 자의 신분증을 복사할 때 곧잘 써먹던 비상 수법이다.
" 에이 병 주고 약 준다 아 닙 니 껴. 그런 말씀은 하나마나 아닌 교"
" 아녀. '이빨이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 다'는 식이지"
" 얼래. 제 것은 왜 마크로(macro)라고 되어있대 유?" 아까부터 고개를 갸웃거리던 종 구가 마침내 못 참겠다는 듯 물었다.
" 오라. 좋은 질문일세"
사실 마이크로(micro)와 마크로(macro)는 반대의 뜻을 갖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렌즈는 작은 물체를 접사하여 크게 찍히도록 하는 역할에서는 똑같다.
한 메이커에서는 작은 물체를 접근하여 크게 찍는다는 뜻에서 '작다'는 점을 강조하고있고,
또 다른 생산자 측에서는 '크게 찍는다'는 점을 강조하는 까닭 외에 아무런 의미가 없으므로, 혼란을 일으키지 말자.
자 이제 종 구가 궁금했던 문제는 해결되었으리라. 그러나 다시 한 번 정리를 해 보면, 마크로 렌즈란 접사에 중점을 두고 설계한 고 해상력 렌즈이다. 마이크로 렌즈라고도 하며 일반적인 렌즈는 ∞촬영에 기준을 두지만, 마크로 렌즈는 1/10배 정도의 촬영에 기준을 두고 있다. 표준 렌즈와 같은 50∼60mm렌즈, 또는 준 망 원인 100∼135mm급의 마크로 렌즈도 있다.
작은 동식물의 생태 사진을 찍을 때는 100mm급의 마크로 렌즈가 편리하다.
" 선생님. 저번에 제가 그린 그림을 찍었걸랑 요"
" 멋져. 경 진이가 화가인줄 미쳐 몰랐네 "
" 아냐 요. 취미로 그려요"
" 아마추어 화가는 화가가 아닌가"
" 선생님 그러시면 썰렁해요"
" 썰렁하다 구! 부끄럽다는 말을 그렇게 하나?"
" 죄송해요. 유행어가 튀어 나왔걸랑 요"
" 좋아 궁금한 게 뭐지"
" 제가 찍은 게, 유화(油畵) 걸랑 요. 근데, 왜 이래요?" 경진이 내민 사진은 제법 잘 그린 풍경화를 찍은 것이었지만, 모두 난 반사(亂 反射)가 생겨, 영 신통치 않은 그림이 되고 말았다. 그 까닭은 모든 물체가 빛을 받으면 많던 적던 반사를 하게 마련이고, 그 중에도 유화나 광택이 있는 사진들은 빛을 제멋대로 반사하여 번질번질하게 찍히는데, 이것을 난 반사(irregular reflection)라고 말한다.
예를 들면 그림 중에 유화 같은 것이, 한지(韓紙)에 그려진 한국화보다 훨씬 난 반사가 심하고, 신문지에 인쇄된 사진보다, 고급종이인 아트지에 인쇄된 잡지사진이 것이 더 난 반사가 심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이를 일러 명 약 관 화(明若觀火)라 한다지"
게다가 경 진 이는 실내이므로, 어둡다고 플래시까지 터트렸으니, 이는 불난 집에 부채 질 하는 격 이였다.
얼마 전 이웃나라로 연수를 다녀온 한 친구의 실패했던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가 어떤 공장을 견학을 갔었는데 그 공장의 사원들이 만드는 제품에 대한 그들의 긍지를 표어로 붙여 놓은 것을 보았다나. 게다가 그들은 그 표어에 먼지나 때가 묻을 세라 정성스럽게 코팅까지 해 놓았으므로 참으로 본받을 만한 일이고, 이를 귀국보고의 자료로 삼기 위해 그가 갖고있던 콤팩트 카메라로 열심히 찍어왔다지. 물론 실내였으므로 노출이 부족 되리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플래시를 터트려 찍었던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