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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수없이 많은 삶의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한다.
현실(사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영화란 없지만, 현실(사실)을 반영하지 않는 영화란 또한 없다.
과거(역사), 현재, 미래의 무수한 이야기들이 영화 속을 채워 간다.
知好樂은 간혹 영화를 보며 안타까운 우리의 역사를 생각한다.
특히, 스케일 큰 영화를 볼 때마다 왜 우리 역사는 저런 장엄한 소재가 없을까?
전 세계 영화 관객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소재가 없을까?
세계사의 변방에서 구석탱이 자리조차 없는 내 나라의 빈약한 역사를 생각해 본다.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전쟁 소재의 영화를 볼 때마다 ‘무슨 놈의 나라 역사가 맨 날
당하고만 사냐?‘ 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요즘 뜨는 드라마 ‘선덕여왕’ ‘천추태후’, 과거의 ‘이산’ ‘대장금’ ‘이순신’ 등 역사극을 볼 때마다
지지리 궁상떨며 지덜 밥그릇 싸움에 더 넓은 세상은 생각하지도 못한 ‘동방예의지국’
‘남의 나라를 한 번도 침범하지 않은 평화의 나라’ 대한민국을 슬퍼한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이후부터 조선이 망할 때까지 중국의 그늘로부터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한
우리의 종속적 역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음을 슬퍼한다.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에 이런 장면이 있다.
계백(박중훈)과 김유신(정진영)이 장기를 두는 장면이다. 김유신이 계백에게
김유신 : 계백아 ! 니는 전쟁은 알지만 정치는 모른다 아이가. 마 고집부리다 니 아덜 다 죽느데이.
니가 지랄뺑 안 해도 백제는 망하는기라
계백 : 그려서 너는 그라고 정치를 잘 알아갔고 소정방이 쌀 배달이나 하는 갑소이잉
우리 얼라들은 거시기 할 때까정 거시기 할땐께 임자는 배달이나 잘 하소
만약 김유신의 쌀 배달이 계백에 의해 실패했다면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했을까?
아닐 것이다. 좀 늦어졌겠지만 당시 고구려, 백제의 상황을 볼 때, 신라는 당나라와 손잡고 삼국을 통일했을 것이다.
세 나라 중, 가장 경제력 약하고 인구도 부족한 신라는 땅이 필요했고, 승리하려면 당나라의 도움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고구려의 방심이다. 웅장한 기상, 수나라, 당나라도 무서워하는 군사력을 가진 고구려가 광개토대왕 사후,
100년만 세력을 유지하고 발전시켰다면 한국의 역사는 바뀌었다.
광개토대왕이 잠깐 한 달 정도만 짬을 내 신라와 백제를 정벌하고
“나는 너희들을 멸망시키려 한 것이 아니다. 같이 가자. 한 핏줄 아닌가. 낮은 단계의 연방제로 너희 국가를
인정하고 과거와 같이 귀족들의 권역 또한 인정 하겠다. 더 큰 꿈을 꾸자. 광활한 중국으로 나라를 넓히는데
너희도 동참하자. 변방의 소국에서 벗어나 후손에게 넓은 세상을 물려주자”
그리고 함께 했다면, 적어도 거란, 여진 땅, 만주벌판은 우리 땅이 되었을 확률이 높지 않았겠는가?
자연스레 북방의 민족들도 국가에 편입이 되었을 것이고, 징기스칸도 우리 역사에 편입되지 않았을까?
간혹 탁월한 장수였던 연개소문과 양만춘 아저씨가 원망스러운 것은 이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은 나라의 운명을 건진 훌륭한 결정이었다고 나온다.
지덜이 썼으니 당연히 그렇게 썼겠지만 사실 한 번 붙어 볼만한 기회였다.
이 때, 이성계가 주장한 4대 불가론은 당 태종이 고구려를 칠 때 주장한 4대 가능론과 내용이 거의 같다.
다르다면 ‘불가’와 ‘가능’의 차이이다.
1. 당태종 :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치는 것은 가하다.
이성계 :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치는 것은 불가하다.
2. 당태종 : 자연의 이치로 반역을 토벌하는 것은 가하다.
이성계 : 농사철에 군사를 동원하는 것은 순리가 아니니 불가하다.
3. 당태종 : 평안한 나라가 어지러운 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가하다.
이성계 : 명나라를 치러간 사이 왜구가 침입할 수 있으니 불가하다.
4. 당태종 : 사기충천한 군사로 군기빠진 군사들을 치는 것은 가하다.
이성계 : 여름철에 군사들의 사기와 무기가 형편없으니 불가하다.
어찌 이리 생각이 다르단 말인가?
물론 이성계는 마지못해 출병했고, 새로운 왕조를 꿈꾸었기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했지만
그 역시 훗날, 요동정벌을 하고자 한다. 조선은 개국 때부터 명나라의 속국에서 출발했다.
그나마 개념 있는 신하 정도전이 이방원에게 죽고 난 다음에는 쭈욱 명나라의 우산아래 살아간다.
생각해보시라. 조선왕조 500년 동안 전쟁이라곤 조일전쟁, 조청전쟁 딱 2개 밖에 없다.
세계 어느 왕조가 500년 동안 이어오면서 단 두 번의 전쟁만 겪었는가?
조선은 명이란 우산 아래 우물 안 개구리로 넓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나가려고 준비도 안 했고, 시도조차 안 했다.
태정태세문단세 예성연중인명선 광인효현숙경영 정순헌철고순
조종종종종종조 종종산종종종조 해조종종종종조 조조종종종종
학교 다닐 때 외웠던 위의 27명의 조선 임금 중, 밥 값이라도 한 왕이 누가 있는가?
성군이라 일컫는 세종과 정조와 밥 값이라도 한 태종, 세조, 광해, 효종, 영조를 제외하곤 뭐 건질 거 있는 임금이 있던가?
게다가 조일전쟁의 선조와 조청전쟁의 인조는 우리역사의 재앙인 임금이다.
또한 띨띨하고 하는 거 없이 밥만 축내는 임금들은 오래도 해 먹으니 명종이 22년, 선조가 41년,
인조가 27년이니 세 임금의 재위기간이 조선왕조 역사의 5분의 1이다.
한 마디로 지질이 복도 없는 민족이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이순신>을 볼 때마다 “어휴 저 때 이순신이 확 쓸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굴뚝이다.
고구려가 삼국통일과 중원 정복의 기회를 놓친 이후, 그만한 역사의 기회는 다시 오지 않았지만
몇 번의 보다 나은 국가건설의 기회는 있었다.
첫째는 조광조의 개혁이고, 둘째는 소현세자의 죽음이요, 셋째는 마지막 성군 정조이다.
중종은 조선왕조 중 가장 무시무시한 왕권을 휘둘렀던 연산군을 몰아낸 박원종, 성희안에 의해
자다가 왕에 오르는 인물이다.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요리한 음식을 먹으며 ‘맛있구나 !’ 며 좋아하는
탤런트 임호가 연기한 임금이 중종이다. 39년 재위 기간 중 초기에는 조광조와 함께 임금 노릇을 하는가 싶더니
꼬랑지 내리고 훈구파(수구파) 품속으로 백기 든 인물이다.
知好樂이 실패한 조광조 개혁이 안타까운 것은 조선 초기 우후죽순 늘어난 공신들, 훈구파의 세력을 잠재울 수
있었던 절회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태조 이성계때부터 세조까지 훈구파들이 공신이란 명목으로 소유한 땅은
조선 땅의 반이 넘는다. 그것도 알짜배기 땅으로...
개국공신부터 1,2차 왕자의 난, 세조의 정변 등을 통해 너도 나도 공신이다.
조선 초기를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용의 눈물, 세조대왕, 한명회, 대왕 세종)에 나오는 중요인물들은
죄다 훈구파 공신들이다. 정도전, 남은, 조준, 하륜, 이숙번, 조영무, 이거이 부자(父子), 이천일, 이화, 한명회,
신숙주, 정인지, 홍윤성, 홍달손, 정창손 등 공신들은 성종때까지 지덜 맘대로 였다.
이것이 패륜아 연산군에 의해 작살이 난다. 연산군은 훈구파의 잔소리도 싫고 사림파의 개혁도 싫어했다.
기냥 지 맘대로 어머니의 한(恨)에 묻혀 한 세상 잘 놀다 간 임금이다.
연산군의 폭정에 훈구파와 사림파 모두 피해를 입었지만 사실 훈구파의 세력은 과거에 비해 많이 약해졌다.
비록 중종이 훈구파에 의해 왕위에 올랐으나 조금만 똑똑했더라면 조선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조광조는 공신들의 70%을 위훈삭탈하고 재야 사림의 천거를 받아 젊은 사림들을 현량과를 통해 등용한다.
이것만 제대로 되어서 훈구파의 자리에 초기 사림의 젊은 선비들이 정치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깊은 것이다.
광해군의 실리정치를 뒤집고 왕이 된 인조는 명나라라면 자다가도 머리부터 조아리는 못난 임금이다.
나라 말아 먹고 청나라에 두 왕자를 볼모로 보내면서도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등신 같은 임금이다.
청나라에 끌려 간 두 왕자, 소현세자와 봉림대군(효종)은 조청전쟁의 치욕을 벗어나고자 노력하나 방법은 달랐다.
소현세자는 청의 근대화된 문물을 받아 들여 성리학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고, 봉림대군은 북벌을 생각했다.
소현세자는 9년간 중국 심양에 머무르면서 청의 존재를 인정하며 조선과 청나라 간의 외교적 조정자 역할을 했고,
명나라 정벌을 따라 북경에 가, 아담 샬 신부로부터 서양의 수학, 과학, 천문학, 천주학을 배웠다.
그는 서양의 문물을 배워 성리학의 담벼락에 갇혀 있는 조선을 바꾸는 꿈을 꾼 것이다.
그러나 반청친명정책(反淸親明政策)을 고수하는 미련한 조선의 조정은 소현세자의 꿈을 허락하지 않는다.
증좌는 없지만 독살을 의심할 만하다. 귀국한 지 불과 2달 만에 소현세자는 자신의 꿈을 시작도 못한 채, 죽어야만 했다.
아버지 인조가 아들을 직접 죽이라고 했겠냐만 적어도 묵인 했을 가능성은 크다.
시신의 9군데 혈에서 피가 흐르는 시신을 인조는 사인규명도 없이 서둘러 장사를 지내라 명한다.
그리고 며느리 세자빈 강씨도 역모의 누명을 쓰고 남편의 뒤를 따른다.
소현세자빈 강씨는 조선 왕실의 여인 중 가장 똑똑하고 세상을 읽는 안목을 가진 총명한 여자였다.
또한 가장 가슴 아픈, 한 많은 일생을 살다 간 비운의 여인이다.
우리에게 드라마나 영화로 많이 알려진 조선 왕실의 여인들, 태종의 부인 원경왕후,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소혜왕후),
명종의 어머니 문정왕후, 숙종의 부인 인현왕후,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 그리고 명성왕후 등과 비교할 수 있는 여인이 아니다.
이 기막힌 여인의 삶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픈 것으로 모자란다.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중국 심양관 식구는 총 200명 정도였다.
먹고 사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청나라가 약간의 경제적 도움은 주었으나 그리 큰 도움은 못되었다.
당시 청은 명과 전쟁으로 명으로부터 들여오던 종이, 면포, 생필품, 호피, 가죽 등이 부족했다.
영민한 세자빈은 청태조 누르하치의 열두 번째 아들 팔왕과 무역을 시작하고
청의 무역물품 장계는 세자빈의 손을 거쳤다. 나중에는 중국의 장사치도 심양관으로 몰려 들었다.
지금으로 말하면 심양관이 도깨비 시장이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은 돈이 당시 은 1만냥, 금 160냥에 이른다.
세자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청으로부터 불하받은 땅에 조선의 농업기술로 농사를 지었다.
심양관 식구들이 먹을 양식의 세 배 이상 수확을 했고, 나머지는 팔아 조선인 포로를 구했다.
인조실록에 의하면 인조 20년 세자빈 강씨의 수확량은 1339석이나 되었고 수백명의 조선인 포로들을 구했다.
이런 업어주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어여쁜 며느리를 시아버지 인조와 조선 조정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원수인 청을 상대로 돈벌이 한다는 것과 왕실의 여인이 장사를 한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은 것이다.
에고 ... 이 지질이 못난 인간들아....
오죽 못났으면 세자빈의 아버지가 죽어 잠시 상을 치르러 온 세자빈을 친정에도 가지 못하게 했을꼬.
세자빈은 눈물을 머금고 아버지 묘에 절 도 못 올린 채, 중국으로 다시 가야 했다.
소현세자가 죽자, 세자빈은 억울함을 인조에게 호소하고
인조는 왕의 결정(소현세자 죽음에 관한 조사를 중지한 것)에 토를 단다고 세자빈을 감금한다.
당시 임신 중이였던 세자빈은 갇힌 상태에서 출산하나 사산한다.
인조는 결국, 며느리에게 역모의 누명을 씌워 죽이고 그녀의 집안까지 도륙 낸다.
조선왕조에서 형제를 죽이고(태종) 아들을 죽이는(영조. 사도세자) 경우는 있었지만 아들, 며느리,
손자(소현세자의 세 아들은 제주도로 유배 보낸다. 그 중 둘은 풍토병으로 죽음)까지 죽인 왕은 인조가 유일하다.
생 양아치 임금이다.
뮤지컬 <명성왕후>가 브로드웨이에서 공연하고 세계의 많은 관객들이 관람할 때,
知好樂은 속으로 “왜 하필 명성왕후야 ! 그 여자가 한 게 뭐 있다고” 했다.
명성왕후는 백성과 나라를 위해 한 게 없다. 만일 그녀가 일제의 양아치들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지 않고
편안히 죽었다면 그런 작품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知好樂은 뮤지컬 <명성왕후>를 보면서 소현세자빈 강씨를 생각했다.
"정년 만들어야 할 뮤지컬은 소현세자빈의 슬픈 역사 이야기인데“ 하며 말이다.
만일, 소현세자가 왕위에 올라 명에서 벗어나 새로운 문물의 실용적 정책을 폈다면 조선의 역사는 분명 달라졌다.
사실, 청나라는 조선에 대해 관대했다. 명이 걷어가는 세금에 비해 청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명은 청이 아니더라도 당시 망할 나라 였다.
청의 당시 조정은 소현세자에게 상당히 호의적이었다.
이는 소현세자가 9년 동안 중국에 있으면서 정치를 잘 한 덕분이리라.
또한 명석한 세자빈이 있지 않은가? 소현세자빈 강씨는 지금으로 치면 힐러리 정도는 됐을 인물이다.
조선의 역사에서 정치에 참여하여 역사에 독이 된 여인은 세 명이다.
중종의 계비로 명종의 어머니인 문정왕후 윤씨와 영조의 계비이며 뼈 속까지 골수 노론인 정순왕후 김씨,
그리고 명성왕후 민씨이다. 문정왕후(SBS 여인천하에서 전인화)는 아들 명종을 세우고 수렴청정을
하는 동안 동생 윤원형(정난정의 정부 강수연 역. 이덕화) 과 사림의 씨를 말리고 조선의 삶을 100여 년 전으로 되돌렸다.
정순왕후 김씨는 정조가 죽은 후, 정조의 개혁정책을 원상 복구하고 노론의 나라로 만드는데 결정적 기여를 한다.
명성왕후 민씨는 바지저고리인 고종을 조정해, 조선 마지막 개혁가인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의 개혁을 물거품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 팽팽 돌아가는 머리를 백성을 위해 사용하지 않고 민 씨 집안 잘 먹고 잘 사는데 노력했다.
최근 정조가 노론 강경파(벽파)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들이 발견되어 과연 정조가 개혁을 하려 한 것인가?
라는 이야기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고 있다.
정조는 아버지가 노론세력에 의해 뒤주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았다. 어린 세손 <이산>은
급진적 개혁가는 아니다. 급진적 개혁이란 당시 노론의 세력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다.
왕위에 올랐으나 자신의 세력이라고는 홍국영과 체재공 밖에는 없었다.
정조가 연산군과 같은 성정을 가진 인물이라면 아버지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을 왕위에 오르자마자
도륙을 냈을 것이다. 허나 정조는 나라를 먼저 생각한 임금이다.
그는 재위 초기 노론 온건파 김종수를 파트너로 정치를 하며 힘을 기른다.
마찬가지이다. 정조는 결코 속을 드러내는 멍청한 임금이 아니다.
심환지는 수구 보수 골통이지만 최대정파의 수장이고 청백리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정조와 심환지 사이에 오간 서신은 다른 꿈을 꾸는 지도자 사이의 고도의 정치 게임이다.
박종원 감독의 영화 <영원한 제국 1995>은 정조가 노론을 제거하기 위해 서책을 이용한 정치 게임을
미스테리로 만든 영화인데, 실제와는 많이 다른 이야기이다.
정조의 개혁의 중심은 규장각과 화성 신도시이다.
썩어빠진 노론의 정치인을 대체할 인재를 규장각을 통해 등용하고 모든 제도를 만든다.
서얼을 등용하고 노비 해방을 준비하고 조선의 판을 뒤엎을 준비를 한다.
그것이 화성 신도시이다.
화성은 단순한 도시 하나 건설의 의미가 아니다. 정약용이 기중기를 발명하고 획기적으로 공기를 단축해
10년 공사기간을 34개월 만에 축조했다 등의 무용담을 넘어서는 정조개혁의 완성을 의미한다.
정조는 한양에서 노론의 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나라를 건설하는데 역부족을 느낀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이 만들어 놓은 뿌리 깊은 조정의 조직도 조직이거니와 경제력 때문이다.
노론의 자금은 한양의 장사꾼(시전)에게서 나온다.
정조는 화성을 새로운 국가건설의 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행정을 옮기고 경제 중심을 옮기려 한 것이다. 한양 시전의 횡포에 떠밀린 일반 장사치들과 평양, 개성의
경제력을 화성으로 유도하고 백성을 이주시켜 기득권 세력의 근본적 몰락을 꾀한 것이다.
정조는 1752년에 태어나 1800년에 죽는다. 재위기간은 24년이다.
그의 이른 죽음이 안타까운 것은 그가 살았던 시기였다.
18세기말에서 19세기로 넘어가는 시기, 지금 세계에서 큰소리치는 국가들은 이 시기를 잘 넘긴 국가들이다.
만일 정조의 개혁이 화성 천도 이후, 20년만 지속되고 뒤를 이어 두 세 임금만 잘 했어도 한국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후, 정순왕후는 정조의 개혁을 원상복구하고 그 후, 조선은 망할 때까지 노론의 세상이었다.
정조이후, 조선의 임금은 순조, 헌종, 철종, 고종, 순종이다.
이 다섯 중 임금이라 칭할만한 인물이 있던가?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조선이 망하기 직전 마지막 개혁을
꾀하지만 이미 조선은 명운을 다했다.
정조의 죽음으로 조선은 더 이상 기회가 없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무쟈게 많이 언급되는 두 인물이 있다. 왕이 아니다.
한명회와 송시열이다.
한명회는 훈구파의 대표적 인물이다. 단종 때부터 성종까지 4대 임금 동안,
권력을 놓지 않았던 칠삭동이 한명회는 2,000 번 이상 거론된다.
송시열은 노론의 거두로 효종 때부터 숙종에게 사약을 받아 죽을 때까지
노론의 나라를 위해 살았던 인물로 3,000 번 이상 거론된다.
이야기하다 보니, 조선 초기의 훈구파와 선조 이후의 사림을 이야기해야 될 것 같아
두 인물을 거론한다. 많은 역사 드라마, 영화에 나오는 훈구파와 사림파 학자 중심으로 이야기 하려 한다.
근디 넘 길어서 다음 회로 넘기고.......
To be continue......
蛇足)
영화 <글라디에이터>에서 막시무스 장군(러셀 크로우)이 콜롯세움에서 콤모두스 황제(호아퀸 피닉스)에게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있다(굉장히 근사한 장면)
“내 이름은 막시무스 .북부군 총사령관이자 펠릭의 장군이었으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의 충복이었다. 태워 죽인 아들의 아버지이자 능욕당한 아내의 남편이다. 반드시 복수하겠다.
살아서 안 되면 죽어서라도! ”
知好樂은 가끔 꿈에서 이와 비슷한 장면을 꾼다.
콜롯세움에서 시저, 폼페이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를 모두 잡아다 놓고
“ 나는 중원을 호령한 광개토대왕의 피를 이어 받고, 단 12척의 배로
300척의 전함을 박살낸 이순신의 후예이자 조선의 성군 정조대왕의 충복인
조선군 총사령관 知好樂 장군이다. 지금부터 로마는 본토는 물론, 갈리아 지방,
알렉산드리아까지 조선의 영토임을 선언 한다. ??”
知好樂 만의 개꿈인가??
첫댓글 음..굵직하게 콕콕찍어서 차말로 재미있게 썼구만요..꼬부랑 사람들 이야기가 아니라 단숨에 읽어내려왔구마는..

막판에 글라디...뭐 요런게 나와가꼬 속도가 파악 줄었다는..우쨋든 
미진진하게 잘 봤습니다..약 후딱 짜시고 다음 편 올려주시라요




ㅎㅎ <글라디에이터> 아직 안 보셨삼?. 그럼 함 보시삼. 역사와 스펙타클이 잘 조합된 오락영화임. 러셀 크로우는 이 영화로 완전 떠서 지금도 떠 다님.ㅋㅋ
한국영화만 본다니께 차말로..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축출된 것은 너무 안타깝지요. 보통 왕을 갈아 치울 때, 하나의 정파가 주동을 하는데 인조반정은 서인이 주도하고 남인이 동조하는 형태가 되었습니다. 정인홍, 이이첨, 허균, 백대연 등 북인 강경파(대북)들이 인목대비 폐비과정에서 서인과 남인을 모두 제거한 것이 원인이 된 것 같습니다. 물론 인조반정은 쿠데타이지요
그런데 어떡해요,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역사인데요.그래서 문학 특유의 개연성이 우리를 가끔 위로도 해 줄 때가 있잖아요.ㅎㅎㅎ
되돌릴 수 없는 것이 역사이긴 한데 이게 또 반복이 되거들랑요.... 그래서.....
울 남편만 역사에 박식한줄 알았는데...지호락님도 만만치 않네요.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두분 (지호락님과 ,울 남편)이 만나면 며칠이라도 모자라겠어요. 언제 서울에 오시나요? 정모때나 만나뵈올수 있을까요?
아 ! 바깥 분께서 역사에 심오한 내공이..... 언제 함 글을 올려 보시라고 하시지요. 곧 뵐 수 있겠지요. 건강하세요
역사는 가정이 없다는 사실이 슬플뿐입니다. 그래도 이차 대전이후 독립한 나라중 선진국 문턱에 다 다른 유일한 나라, 군부 독재 물리치고 민주주의를 실천한 유일한 나라, 뉴욕의 유태인을 우습게 만든 유일한 민족입니다. 좋은일이든 나쁜일이든 머리 잘 돌아가고, 좋든 싫든 한민족은 잠재 능력이 무한인 민족! 너무 열등감 가질 필요 없습니다.
저는 우리 민족의 열등감을 말씀드리려 한 것이 아니고 '도전'과 '응전'이라는 역사적 반복에 과거의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자 하는 것입니다.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는 역사가 다시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제 제발 좀 그러지 말자. 좀 제대로 하자' 이거죠.
지금껏 이 나라를 지키고 발전시켜 온 것은 일반 백성들이지 임금이나 정치인들이 아니라는 것에 항상 열을 받곤 하는데 이보다 더 끓게 만드는 현실은 그런 정치인들에게 빌붙어서 뭔가 얻어 내려고 염병떠는 것이 현명한 처세가 되어 있다는 것
위 닥터님 말씀대로 우리가 다른 외국인들 보다 자질이 우수한 데도 소위 Major가 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입니다. 지호락의 마지막 개꿈에 큰 박쑤
짝짝짝


우리 역사의 권력층의 가장 큰 문제는 '노블리스 오브리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옛날 양반네 자식들 군대 안갔습니다. 세금도 없습니다. 지금 한국을 이끌어가는 윗 분들. 별 다를 바 없습니다. 장관 청문회 할 때마다 위장전입, 부동산투기, 논문 이중게재는 기본이니 무슨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바라겠습니까? 아이 ! 또 뚜껑 열리네...
반복되는 역사가 있고, 반복되지 말아야하는 역사가 있는데...
글게 말입니다. 헌데 반복되지 말아야 할 역사가 계속 되는 것 같다는.....
대학에서 영화전공 안한 것으로 알고 있는디

거의 논문수준으로``지호락님은 전주 이
경주 이
덕수 이
이씨조선 왕조 왕들의 시호조차...뒷자가 '조'자 인지 '
'인지 구분 안갔던 단순욜렛아짐 앞에서 역사를 논하지 말라 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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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전주 이씨랑께요. 세조의 아들 덕원군의 20대손 이라든가요. 대군이 아니고 군이니 후궁의 자손들이것지유. 그 때 태여났슴 한 판 뜨거나, 계곡에서 한 잔 하며 거문고 띁거나 했것지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