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高宗 皇帝의 後孫들 ♣
조선의 마지막 황제 고종에게는 정실부인 명성황후외 7명의 귀인과 4명의 후궁이 있었다. 즉 1비 11첩을 두고 있었는데 여기서 소생한 자식들이 아들 9명, 딸 4명 계 13명이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모두 어려서 죽고 명성황후 소생 아들(순종)과 귀인엄씨 소생 아들 (영친왕), 귀인장씨 소생 아들(의친왕) 그리고 귀인양씨 소생 딸(덕혜옹주) 만 살아 남았다.
고종은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등을 비밀리에 밀사(헤이그 밀사사건)로 파견하였으나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과 친일파의 압력으로 강제로 퇴위를 당하게 되었으며 1907년 황태자로 있던 순종이 제위에 올랐다. 그러나 허울 뿐인 순종은 황위에 올랐으나 원래 심신이 나약하고 자식도 없어 이복동생인 영친왕에게 황태자를 양위하여 재위기간은 3년밖게 되지 않았다.
고종의 셋째 아들(원래는 7번째 아들) 영친왕은 황태자의 신분으로 일본에 인질로 끌려가 일본 황실의 옹주 이방자(이 마사코)와 강제로 결혼해 두 아들을 낳았고 이들이 낳은 큰 아들 이진은 어려서 고국 방문길에 죽고 막내인 이구(마지막 황세손)는 우크라이나계 미국 여자 줄리아와 결혼했으나 자식이 없었다.
이들과 달리 고종의 둘째 아들 의친왕 이강은 성격이 호탕하고 자유분방하여 1비 13첩을 두었으며 슬하에 12남 9녀 라는 많은 자손을 남겼다.
한편 의친왕의 장남 이건(용길)씨는 오래전에 일본으로 귀화해 일본인과 결혼하고 일본 군대에서 근무하다 숨졌으며 둘째 이우(성길)씨는 대원군의 손자 준용씨가 아들이 없자 대원군의 증손자로 양자 입적했으며 일본군에 입대하여 소좌계급까지 올랐다가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때 사망했는데 그의 부인 박찬주씨는 귀국하여 운현궁에서 살다가 1995년 사망했다. 토목공학과를 나온 둘째 이우씨의 아들 이청씨(63)는 미국생활을 청산하고 1990년 귀국, 어머니가 살던 운현궁을 서울시에 넘기고 현재 북아현동에 살고 있다.
3남 이방(흥길)씨는 어려서 병사했으며 4남 이창(창길)씨는 안평대군 가문의 양자로 입적 했으나 포장마차 등 어렵게 살다가 사망하였고 5남 이주(수길)씨는 농대를 졸업, 허정 내각 때 문화재 관리소장을 지냈으며 전주 이씨 종약원 이사장을 지냈고 1982년 사망했다. 그의 부인 김신덕씨(77)는 현재 개포동 시영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아들 한주씨는 일본에서 의류업을 하고 있다.
6남 이곤(명길)씨는 국회사무처 수위와 홍릉 관리인을 지내다 1984년 죽었으며 부인 황경생씨가 아들과 함께 살고 있는데 아들 이준씨(38)는 외판원을 하고 있다.
7남인 이광(형길)씨는 교사로 근무하다가 부산에서 물에 빠져 익사하였고 8남인 이현 (경길)씨는 아버지의 묘소인 화양리 의왕묘소 관리인을 했으며 수년전 수원의 양로원에서 죽었는데 덕수궁에서 태어나 1945년까지 덕수궁에 살았던 실질적인 덕수궁 주인이었다.
9남 이갑(충길)씨는 1980년에 이민가서 미국에서 잡화상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 의친왕의 장례식날 홀연히 나타나 의친왕이 아버지라고 주장하였으나 누구도 알아주지 않자 "어머니 별명이 깨떡어미" 라고 주장하여 아버님의 본부인인 덕인당 김씨에게 자식으로 인정받기도 하였다.
10남 이석(영길)씨는 외국어대 서반어과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이석이란 이름으로 가수를 하다가 1989년 귀국해 강남의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며 동신 참치집을 운영하였으나 신통치 않아 지금은 황실문화재단 총재로 전주 한옥마을 승광재에 살고 있다.
11남 이환(문길)씨는 1985년 미국으로 이민가서 미국 산호세에서 노동일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으며 12남 이정(정길)씨는 미국 로스앤젤리스에서 자동차정비공으로 일하고 있는데 자식은 없다고 한다.
딸들은 의친왕 생존시에는 제대로 교육비를 지원 받고 양반 가문으로 시집을 갈 수 있었으나 이들이 시집을 간 양반 가문 또한 몰락하여 현재는 어렵고 궁핍한 처지로 살고 있다 한다.
첫딸 이영(해완)씨는 결혼은 하였으나 자식없이 일찍 죽고 둘째 이진(해원)씨는 강원도 강릉의 둘째아들 집에 살다가 수년전 미국 LA의 방송기술자로 일하는 큰 아들한테 갔다고 하는데 몇년전 귀국하여 황실 재산 찾기에 몰두한다고 한다.
3녀 이찬(해춘)씨는 운전기사로 일하는 서울 명일동의 아들집에 살고 있고 4녀 이숙(해숙)씨는 일찍 사망하였으며 5녀 이공(해경)씨는 음악학과를 졸업한 뒤 6.25직후 도미하여 미국 아시아 도서관에서 일하며 독신으로 살고 있다.
6녀 이장(희자)씨는 전남 순천에 거주하고 있으며 7녀 이용(해란)씨는 1982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현재 LA에서 봉제공장을 하고 있고 8녀 이현(해련)씨는 선릉관광묘원을 운영하는 남편과 분당에 살고 있고 9녀 이민(창희)씨는 미국 산호세에서 어렵게 살고 있다고 한다.
특히 셋째 이찬(해춘)씨는 어머니가 궁녀 출신으로 안암동에 살았는데 학교가 끝나면 매일 사동궁에 들어가 아버지 의친왕께 문안 인사를 드렸으며 사동궁(현재 종로예식장 터)은 지금은 없어졌지만 양관, 사랑방 등 10여개의 큰 집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큰어머니인 덕인당 김씨는 작은 부인이 7명씩이나 되는 집안을 잘 통솔했는데 일제시대 때만해도 부인과 자식마다 당시 돈으로 1인당 1백원씩 계산해 생활비를 대주었다고 한다.
해춘씨는 "왕손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것이 우스운 일처럼 돼버렸지만 지금도 궁중사극에 나오는 의상들을 보면 옛날 생각이나 TV를 끈다."고 말한다.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는 1931년 옛 대마도 번주 가문의 당주이자 백작인 소 다케유키와 강제로 정략 결혼을 하여 1932년에 딸 소 마사에(정혜)를 낳았으나 1955년에 이혼하였고 1962년에 대한민국으로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 내의 수강재에서 거주하다가 1989년 사망하였고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의 홍유릉 부속림에 안장되었다.
아무튼 많은 황손중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은 영친왕의 둘째아들 이구 (마지막 황세손)씨와 의친왕의 열째아들 이석(영길)씨라 할 수 있다.
영친왕과 이방자여사의 외아들인 이구씨는 일본에서 공대를 졸업한 뒤 1963년 귀국하여 사업을 시작하다가 1979년 6월 부도가 나면서 일본으로 되돌아 갔으며 우크라이나계 미국 여성인 쥴리아씨와 결혼했으나 어머니는 일본인이고 부인도 미국인이라는 종친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이혼했으며 현재 일본에서 특별한 직업없이 공대 동기생인 점성가 여자와 살고 있으나 그는 영친왕의 직계로 황실(마지막 황세손)을 대표할 수 있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의친왕의 열째아들 이석(영길)씨는 황손이라 원래 호적이 없어서 6.25때 친척아저씨의 도움으로 호적을 만들어 배급을 타먹을 근거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사동궁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아버지가 사동궁을 팔아 넘긴 뒤 해방 이후부터는 아버지의 별장이 있던 혜화동의 성낙원과 별궁(풍문여고 뒷편)을 거쳐 칠궁에서 살았다. 1979년까지 칠궁에서 형님인 이현(경길)씨 내외와 함께 살았는데 이승만 정권이 들어선 뒤 그옆에 영빈관을 지으면서 개포동의 15평 아파트 한 채씩을 받고 내쫓겼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석(영길)씨는 생활고로 인해 대학 재학중에도 DJ 일을 보았고 가수의 길을 걷게 되는데 미8군 무대에서 노래를 불렀고 워커힐 호텔에서 밤무대 가수로 일하다가 이후 방송 MC와 건전가요 가수로서 계속 활동하면서 입지를 굳혔으나 왕족이 광대를 해서 돈을 번다고 집안 어른들에게 불려가 혼지검을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분연히 일어나 월남전쟁에도 참전했고 "비둘기집"이라는 건전가요를 불러 유명해졌으며 첫째 부인 독고정희와의 사이에서 첫딸 이홍이 태어났고 둘째부인 김진옥에게서 둘째딸 이진이 태어났으며 큰딸 이홍은 미국에서 탈랜트를 하고 있고 둘째딸 이진도 미국에서 도예가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
2005년부터 전주대 사학과 강사로 있으면서 "황실문화재단" 총재로 전주에서 일하며 전주시청 소유의 승광재(전주 이씨의 조선왕조 설립 이전의 사저)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영길씨는 말하기를 "대한제국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린 적이 없다. 오직 일제가 강점했고 서류를 위조했을 뿐"이라며 황실 복원 운동에 나서고 있는데 시대 착오적인 행동일지는 몰라도 1994년 6월 "대한황실 종정부"를 구성하여 대한제국 황실 복원 운동을 열심히 추진하고 있다.
그는 "꿈같은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연중 49차례나 열리는 조선 왕조의 제향에 참석하고 있으며 조선 왕조의 흔적을 찾아 전국을 누비기도 하고 대구에 광무제(고종)과 융희제(순종)를 모신 이제묘를 찾아 제향을 지내면서 포항의 대보등대 천정에 새겨진 황실 상징「오얏 문장」을 확인해 주기도 했다. 또한 서울교대의 안천교수라는 후원자를 만나 황실 복원의 이론적 바탕을 마련한 그는 지금도『황실을 복원 합시다』라고 외치며 다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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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종황제의 가계도 ... 
▲ 고종황제 사진 ... 
▲ 고종황제와 황태자 순종 ... 
▲ 영친왕과 영친왕비(이방자)... 
▲ 결혼 전의 이름은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梨本宮方子) 공주 일본 황족은 본래 성씨가 없는데 영친왕과 결혼하면서 부부가 동성을 쓰는 일본의 민법에 따라 '이(李)' 씨 성이 되었으며 마시코(方子)를 한국식으로 불러 이방자 여사가 되었다 ... 
▲ 한많은 덕혜옹주 ...
▲ 덕혜옹주와 남편 소 다케유키 ... 
▲ 의친왕 이강과 의친왕비 김수덕 ... 
▲ 의친왕의 아들 이우(성길)의 초상화 ...  ▲ 이우(의친왕 아들)와 박찬주 결혼후... 
▲ 이우(의친왕 아들)부부, 아들 이청 ...  ▲ 의친왕(고종의 다섯째 아들) 자손들 ... 
▲ 의친왕의 10남 이석(영길)씨... 
▲ 의친왕의 둘째딸 이진(해원) 옹주...  ▲ 치욕적인 을사늑약이 체결된 곳 (덕수궁 중명전)...  ▲ 사동궁(寺洞宮)은 한성 중부 관훈동 196번지에 있던 궁으로 고종의 5남 의친왕의 사저이자 친왕부(親王府)...

▲ 의친왕의 자손들이 살던 성낙원 ... 
▲ 칠궁(七宮) : 왕을 낳았지만 왕비가 될 수 없었던 어머니들을 위로해 주기 위해 세운 일곱개의 작은 궁으로 이곳에는 왕후가 이닌 빈이나 귀인들 일곱분이 모셔져 있다. 다시 말해 七宮은 서울시 종로구 궁정동(청와대 내)에 위치해 있는데 조선의 왕들을 낳은 친모이지만 왕비에 오르지 못한 후궁 7인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 육상궁(毓祥宮) - 숙종의 후궁이며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신주(神主)를 모신 사당 ...  ▲ 연호궁(延祜宮) -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왕 진종(영조의 첫째 아들)의 생모인 정빈 이씨의 사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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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우궁(景祐宮) - 정조의 후궁이며 순조의 생모인 수빈 박씨의 신위를 모신 곳 ... 
▲ 선희궁(宣禧宮) - 영조의 후궁이자 비운의 사도세자의 생모였던 영빈이씨의 신주가 모셔진 곳...  ▲ 덕안궁(德安宮) - 고종의 후궁이자 영친왕의 생모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 귀비 엄씨는 생전에도 이곳에서 살았으며 이때 의친왕의 아들 이석(영길)과 형님인 이현(경길)내외와 함께 1979년까지 살았다고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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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복중 더위에 잘 계시는지요?
한참만에 들린 카페 불 지피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홍천 친정에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