_ 가압류, 가처분소송의 중요성과 활용도는 날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보전처분 자체로서 분쟁이 쉽게 해결되기도 하지만 때때로 채무자가 결정적인 타격을 입기도 한다. 채무자의 부동산처분이 사실상 불가능해져서 담보설정이나 매매 등에 큰 장애가 생기며 소액의 채무에 관한 분쟁으로 인하여 주된 부동산이나 대금채권이 가압류되는 바람에 사업 전체에 큰 피해를 입는 일도 적지 않다. 그런데 가압류, 가처분(이하 가처분도 포함하여 가압류라고만 설시한다)결정은 위와 같이 막강한 위력과 달리 대부분이 서면심리에 의하여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가압류의 경우는 주로 금전채무의 부담을 증명하는 채무자명의의 처분문서사본이 제출되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한 결정이 내려진다. 통상적인 가처분도 역시 서면심리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_ 요사이 실무상 가압류신청은 이전에 비하여 그 신청원인이 훨씬 다양해지고 법률상 무리한 구성을 한 경우도 많아서 보정명령을 내릴 때가 많다. 그러나 서면심리의 한계상 과잉 가압류나 부당 가압류등 부적절한 결정이 내려질 때가 적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이러한 가압류결정에 대하여 불복할 때 이를 구제하기 위한 이의소송이 매우 중요한데 현재 실무상 가압류이의소송은 두 가지의 결정적인 문제를 갖고 있다. _ 첫째는 이의소송에 시간이 너무 걸린다는 것이다. 서면심리에 몇 분 걸리지 않은 가압류 결정을 취소하기 위하여 최소한 몇 달이 걸린다. 복잡한 사건은 1, 2년 이상 걸리기도 한다. 더욱 채무자에게 부당한 것은 가압류 법원에서는 본안재판의 결과를 기다리면서 심리를 형식적으로 하거나(사실상 실질심리를 중단하는 셈이다), 특별한 고려도 없이 아예 본안재판부로 가압류사건을 이송함으써 본안재판과 병행심리를 하도록 하는 실무관행이다. 따라서 형식만 가압류이의소송이지 실제는 본안소송과 동일한 절차를 밟는 셈이 되고 판결도 본안판결문과 동일한 내용을 담게 된다. 법원 입장에서도 대부분의 신청사건 재판부가 보전신청사건만을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재판업무를 주로 하면서 이를 부수적인 재판으로 맡아 처리하기 때문에 이의신청의 처리는 더 더디게 될 수밖에 없다. 결국 이행의무가 없는 가압류채무자는 가압류이의소송의 지체로 인하여 억울한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_ 둘째로 가압류결정에 불복할 경우 그 절차가 너무나 복잡하다는 점이다. 우선 변론을 거치느냐 여부에 따라 가압류의 재판형태가 판결과 결정으로 나뉘고 판결에 대한 불복은 항소로 하지만 결정에 대하여는 가압류신청을 기각한 결정에 대하여는 통상항고, 인용한 결정에 이의로 하도록 되어 있다. 이러다 보니 가압류신청을 일부 인용하고 일부 기각한 경우 채권자와 채무자 쌍방이 불복할 경우에는 동일한 사건이 원심법원격인 가압류결정법원과 그 상급심인 항고심의 두 심급에 계속되는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동일한 사건의 처리에 이와 같은 불복절차가 달라야 할 근본적인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_ 이러한 문제는 근본적으로 가압류소송의 구조와 관련이 깊다. 가압류소송은 긴급성과 밀행성을 그 특질로 하고 있다. 가압류신청에 대한 재판은 변론없이 할 수 있고 증거도 증명이 아닌 소명이 가능하고, 담보제공으로도 가압류가 가능하다. 또한 보전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상대방에게 신청사실을 알리지 않고 신청인이 제출한 일방적 주장과 소명자료에 의하여 비밀리에 결정이 이루어진다. _ 이렇게 일방적으로 간이하게 내려진 가압류결정에 대하여 채무자가 불복할 경우 채무자에게 충분한 주장과 소명의 기회를 주어 원점에서부터 재심리한다는 것이 가압류이의소송의 기본적 구조이다. 이와 같이 채무자에게 공평한 기회를 부여하는 기본장치가 바로 필요적 변론절차이고 가압류이의소송은 예외없이 변론을 거쳐 판결로서 결론을 내리게 된다. 결국 가압류소송은 신속성과 잠정성을 그 특질로 하여 간이한 심리구조를 가졌음에 반하여 가압류이의소송은 공평성을 도모하기 위하여 필요적 변론에 의한 대심적 심리구조를 가졌다고 하겠다. _ 이를 본안판결과 연결하여 간단히 도식화한다면 〈가압류소송-가압류이의소송-본안소송〉은 〈간이절차-정식절차-정식절차〉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전통적인 구조는 재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문제는 가압류이의소송을 과연 변론에 의한 정식절차로 구성하는 것이 옳으냐에 있다. 결론부터 제시한다면 필자의 생각은 〈가압류소송-가압류이의소송-본안소송〉은 〈간이절차-중간절차-정식절차〉의 구조로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가압류이의소송의 본질을 가압류소송과 동일한 연장선상에 서있는 속심으로서 권리보전소송의 한 단계로 보아 본안소송과 완전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이의소송을 본안소송에서 독립시켜 철저하게 보전소송차원 내에서 이해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명확한 구분이 보전소송을 둘러싼 이해관계의 조정에 더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가압류소송이 철저하게 채권자의 권리보전을 위한 절차라면 가압류이의소송은 이미 가압류집행이 되어 있으므로 채권자의 권리보호 못지 않게 채무자의 권리보호도 필요한 것이다.
_ 가압류이의소송을 중간절차로 바꾸어야 할 필요성은 아래의 두 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다. _ 첫째 가압류이의소송에서도 신속한 재판의 필요성은 가압류소송 못지 않게 크다는 점이다. 가압류의 위력에 비추어 볼 때 억울한 채무자에게는 신속한 결정이 공평한 절차 못지 않게 중요하다. 일단 가압류집행이 된 이상 채무자는 자기 재산에 처분의 제한을 받고 있는 상태에서 이의소송을 수행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상태가 길어지면 자칫 채무자에게 심각한 손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가압류채권자의 권리보호는 신속하고도 일방적인 절차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이에 대한 불복절차는 공평성을 기한다는 명목으로 장기간이 걸린다면 이는 그 자체가 공평성을 상실한 것이다. 요사이 무리한 가압류신청이 증가하며 가압류를 채무자 압박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추세에 비추어 볼 때 신속한 결정의 필요성은 어느 때 보다도 크다고 하겠다. _ 둘째 가압류이의소송은 가압류가 어디까지나 잠정적 처분이라는 전제하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현재는 변론절차로 인하여 가압류이의소송이 사실상 본안소송화하는 경향이 있다. 가압류이의소송의 변론절차에서 권리관계에 대하여 본안소송에서와 같은 정도로 심리가 이루어지며 본안소송이 제기되면 가압류이의소송은 본안소송과 병행심리되는 것이 관행이다. 그리고 가압류이의판결은 사실상 그후의 본안판결에 기속한다. 피보전권리의 존부에 대하여 이의소송과 본안소송은 동일한 결론을 내리며 양자는 그 형식만이 다를 뿐이다. 그러나 가압류는 권리의 보전을 위한 잠정적, 가정적 처분에 불과하므로 이러한 처분의 적부를 다투는 가압류이의재판도 이러한 차원에서 심리하는 것이 어떨까? 가압류이의소송의 소송물은 피보전권리의 존재 및 보전필요성이지만 실체적 권리관계의 최종인정여부는 본안재판의 몫이며 가압류이의재판의 기판력은 본안판결에 미치지 않는다. 따라서 피보전권리의 존재도 본안소송과 달리 소명으로 인정할 수 있고 마찬가지로 그 부정도 소명으로 가능하다고 할 것이므로 본안소송과 동일한 심리를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의소송의 자체적인 기준에 따라 심리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_ 그렇다면 현재와 같은 필요적 변론은 이러한 신속성과 잠정성의 기준을 충족시키는데 오히려 장애가 된다. 신속한 결정을 위하여 필요적 변론이 아니라 심문절차 등 보다 자유로운 심리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가압류이의소송이 현재와 같이 복심적 절차가 아니라 속심적 절차로 되어 절차의 연속성도 인정되고 기존의 제출서면을 소명자료로 사용하는 등 효율상 훨씬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불복절차도 현재와 같이 복잡하지 않고 단순해질 수 있다. 필요적 변론은 가압류이의소송의 이러한 현실적 필요성을 간과한 채 대심적 구조에 의한 심리를 통해 권리관계를 확실히 밝힌다는 다분히 형식논리에 사로잡힌 입장이다.
_ 일본의 경우 우리와 거의 동일한 문제를 겪었고 이러한 반성으로 1991년 독립된 민사보전법을 시행하면서 가압류이의소송에 대하여 대폭적인 손질을 하였다. _ 첫째, 가압류이의소송에서 필요적 변론절차 대신에 임의적 변론절차를 채택하여 구두변론을 임의적인 것으로 하였다(법 29조). 즉 서면심리를 보충하고 법원의 석명을 위하여 구두변론을 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준비서면의 진술이나 증거채부결정에 관계없이 제출된 모든 서면이나 자료가 소명자료로 될 수 있고 의제자백이나 취하간주효과도 발생하지 않는 등 소송절차가 간편해졌다. 둘째 이의에 대한 결정을 하기 위하여는 구두변론이나 당사자 쌍방의 참여가 가능한 심심기일을 반드시 거치도록 함으로써(법 29조) 심심절차를 가압류이의소송에서의 핵심적인 심리방식으로 도입하였다. 심심은 일반적으로 법원이 당사자의 서면 또는 구두로 진술하는 기회를 주는 비공개심리절차인데(민사소송법 125조 2항) 가압류이의소송에서는 나아가 반드시 1회는 쌍방이 출석하도록 하였고, 이 경우 간이증거조사로 참고인 심심도 가능하도록 하는 등 특수한 기능을 부여하였다. 이는 구두변론처럼 완전한 대심적 절차는 아니지만 상대방의 진술을 직접 듣고 반론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최소한의 대심적 구조를 보장하는 것이다. 따라서 판결절차와 결정절차의 중간적인 성질을 갖는 이러한 방식으로 대심적 심리의 필요성과 간이적 심리의 필요성 모두를 충족시키기 위한 제도로 이해된다. 심리의 충실성과 동시에 심리의 유연성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_ 셋째 가압류결정에 대한 불복은 이의만이 가능하고, 이러한 이의재판에 대한 불복은 항소가 아니라 보전항고에 의하도록 되었다. 민사보전절차에 관한 재판은 구두변론을 거치지 않아도 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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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 함으로써(법 3조) 그 재판은 판결 대신에 모두 결정으로 하도록 하였고 이에 따라 가압류결정에 대한 채무자의 불복방법은 이의만이 가능하도록 정리되었다.
_ 입법적인 해결을 당분간 기대할 수 없으므로 현재의 필요적 변론 절차 아래에서 위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살펴본다. _ 첫째 현재 관행화 되어 있는 가압류이의소송의 심리방향과 심리범위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현재는 권리관계에 대하여 확정적인 판단을 사실상 심리의 목표로 삼고 있으나 권리보전을 위한 잠정적 판단이라는 전제 하에서 심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본안판단과 같은 차원의 심리는 제한되어야 하고 본안판결과 동일한 결론을 내기 위하여 장기간 소송이 진행되는 관행은 폐지되어야 한다. 대법원규칙으로 가압류이의소송의 심리기간을 6개월 이내로 명시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또한 이의소송 판결문의 내용을 보다 권리보전에 필요한 범위 내에서 간이화할 필요가 있다. 본안판결과 동일한 내용의 판결을 하거나 나중에 선고될 본안판결을 염두에 두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본안판결을 기다리거나 이의소송을 본안재판과 병행하여 진행하는 것도 피하여야 한다. _ 둘째 해방공탁금의 일부 감액변경을 하거나 가압류대상의 범위를 감축변경하는 주문례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피보전권리의 존부나 범위에 대하여 확정적인 결론을 내리기 어렵더라도 적정한 수준에서 변론을 종결하고 해방공탁금을 심리결과에 맞추어 감액하거나 가압류대상 중 일부를 제외하는 판결을 하는 것이다. 현재 가압류결정 시 해방공탁금을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피보전권리액 전액으로 정하는 관행에 비추어 볼 때 해방공탁금을 가압류이의소송절차에서 탄력적으로 조정한다면 채무자의 신속한 구제와 채권자의 권리보전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동시에 이룰 수도 있다고 본다. 또한 현재 과잉 가압류가 흔히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보전필요성에 맞추어 최소한으로 대상을 조정한다면 채무자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보전소송에서의 재판부의 재량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_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가압류제도가 지향하는 권리보전이라는 목적 못지 않게 부당한 가압류에 대한 채무자의 구제도 실질적인 접근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하여 가장 필요한 방법은 필요적 변론을 없애고 임의적 변론 및 심문을 통한 이의소송의 신속한 종결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10월에 발표된 대법원의 민사소송법 개정안은 보전소송에 여러 가지 개선방안을 도입하면서도 정작 핵심쟁점이라고 할 필요적 변론의 문제에 대하여는 아무런 개선방안도 제시하지 않았다. 이제라도 이 부분에 대하여 연구와 토론을 통하여 새로이 개정의견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