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번역가가 되었는가 ?』,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 권영주 옮김, 씨앗을뿌리는사람, 2004
우선 이 책은 번역가가 되는 방법을 일러주는 책이 아니다. 책의 제목이 딱 오해하기 좋게 되어 있다. 이 책은 일본문학을 전공하고, 일본 분단을 기웃거리며 프리랜서 저술가 겸 번역가로 활동한 미국인 에두워드 사이덴스티커의 자전적 회고록이다. 책은 쉽고 재미있게 읽히는 편이다. 사이덴스티커는 2차세계대전이 터져 입대해야 할 처지에 놓이자, 좀 더 편한 군대생활을 하려고 해군 일본어 강습소를 졸업하고 해병대 통역요원으로 입대했다. 그것이 사에덴스티커가 일본과 일본문학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다. 전쟁이 끝나자 어렵게 공부한 일본어가 아까워 하급 외교관이 되어 도쿄에 부임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곧 자신에게 외교관의 기질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진로를 수정한다. 그 뒤로 사이덴스티커는 다니자키 준이치로, 가와바타 야스나리, 미시마 유키오 등 당대 일본 최고의 소설가들과 교류하며, 그들의 소설을 영어로 번역 소개함으로써 미국의 일본 문학 번역자로서 명성을 얻는다. 1968년 10월 18일,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일본 사람으로는 처음으로 노벨문학상을 받는데, 가와바타는 이 상의 절반은 사이덴스티커의 것이라고 말한다.
사이덴스티커는 평생을 꼼꼼하게 일기를 적어내려 간 사람이다. 이 책은 그 일기에 크게 도움을 받았다. 결정적인 대목마다 사이덴스티커는 일기를 인용함으로써 기억의 부실함을 보충한다. 1968년 6월 어느날의 일기 한 토막 ; "저녁에 긴자의 한 음식점에서 미사마 유키오를 만았다. (...) 처음에는 우리 두 사람뿐이었다. 그는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 그리고 동료 작가들에 대한 증오를 이야기했다. 또한 폭력과 자살에 대해서도. 그는 이 두 가지의 결합이 일본의 본질이라고 한다. 「우국」에 이르는 대부분의 소설작품을 포함해서 많은 문제에 있어 솔직하지 못한 그이지만, 이 둘에 대해 그가 느끼는 매력은 적어도 그의 솔직한 심정인 것 같다." 사이덴스티커는 미시마가 50세가 되기 전에 자살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러나, 미시마는 그의 예상을 4년이자 앞질러 자살한다. 미시마의 자살은 "국수주의와 천황 숭배, 군대놀이, 그리고 다테노카이를 일종의 사랑으로 결속된 젊은이들의 집단을 갈망하는 마음이 표출된 것"으로 보았다. 그는 미시마의 자살에 대해 일기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긴다 ; "아름다운 젊음 속에, 아름다운 젊음과 함께 죽는 지복, 따뜻한 피와 피의 뒤섞임."
사이덴스티커의 책을 통해 우리는 1950년대와 1960년대 일본 문단과 지식인 사회의 풍속을 엿보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아울러 한국과 서울을 좋아해서 여러번 방문했던 사이덴스티커의 덕분에 외국인의 눈에 비친 그 시대의 빛바랜 사진과 같은 한국의 모습도 함께 엿보는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노벨문학상 수상소식이 일본에 알려진 날에도 사이덴스티커는 산행을 마치고 돌아온 광주의 한 여관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한가지 불만스러운 점. 사이덴스티커는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미국 사람의 오만함을 끝내 숨기지 못한다. 사이덴스티커는 15년 동안의 일본 생활을 청산하면서 "외국인이라는 입장에 신물이 나 있었다."고 말한다. 그에게 일본은 "신기한 이국"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신기한 이국의 풍물을 가진 일본을 좋아했지만 진심으로 일본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그것은 타자에 대해 친절하기는 하지만 진심을 보여주지도 않고, 마음 한 구석에 경계와 의혹을 갖고 대하며, 일본 사회에 편입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일본 사람 탓일까 ?
『테러 시대의 철학 ― 하버마스, 데리다와의 대화』, 지오반나 보라도리, 손철성·김은주·김준성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2
20세기의 역사가 식민주의, 전체주의, 홀로코스트로 얼룩졌다면, 21세기의 역사는 테러로 얼룩졌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국제관계에서 더욱 신경질적으로 자국 이익우선주의를 추구하며 신보수주의로 빠져들고 있다. 21세기의 역사는 전지구적 테러로 시작되고, 테러에 대한 공포 때문에 미국은 타자에 대해 더 적대적이 되고 경계를 하게 되었다. 세계는 과학기술과 정보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테러리즘의 위험이 얼마나 큰가에 대해 더 두려워하게 되었다. 의심할 여지없이 테러는 전지구적 현안이다. '테러'의 본질은 무엇이고, 우리는 '테러리즘'을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저자는 하버마스와 데리다라는 두 철학의 거장과 그 주제를 놓고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이 책은 그 대화의 기록이다. 하버마스와 데리다가 테러 공격과 그것의 정치적 여파라는 한 주제를 갖고 한 책에서 만나는 것도 처음이다.
『미소 ― 안티고네에서 모나리자까지』, 소피 쇼보, 진인혜 옮김, 영림카디널, 2004
얼굴은 자신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감춘다. 얼굴은 얼마나 다양하고 깊은 영역인가 ! 그 얼굴에 홀연 떠오르는 미소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미소는 유토피아를 향해 열린 마지막 창문이다. 그것은 "불가능 속에서 가능함이 솟아오르게 하는 것"(조르주 바타이유), 혹은 "땅 위에 하늘이 잠시 나타나는 것"(크리스티앙 드 바르티야)이다. 미소가 출현하는 장소는 물론 얼굴의 표면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눈·입·이마·관자놀이·입아귀 등이 관련된 신체의 움직임이다. 그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드러낸다. 얼굴에 나타나는 미소는 누구의 눈에도 쉽게 띄며, 따로 저를 증명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미소는 붙잡을 겨를도없이 한순간에 사라진다. 미소는 수수께끼다. 이 책은 문명의 가장 소박하고 가장 이상적인 이미지라는 미소에 대한 매력적인 탐구를 담은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