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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상 당선자 스크랩 [수필과비평 2018년 12월호, 제206호 신인상 수상작] 내 인생의 기차여행 - 고진숙
신아출판 추천 0 조회 186 18.12.07 10:2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젊었던 시절은 몸으로 전국을 누볐지만 이제는 나의 통찰력으로 정신세계를 달려야겠다. 지도에 표시된 그 지점들의 도시가 아니라, 정신 세계에 표시된 그 지점들을 찾아가야 한다. 나의 글쓰기를 위하여."






   내 인생의 기차여행   -   고진숙


   계절에 관계없이 지금도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쉼 없이 빠르게 달리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은 사춘기 시절처럼 내 마음을 마냥 설레게 했다. 이전에는 KTX와는 다르게 차창이 넓어서 바깥 경치를 즐기며 갈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것이 아쉽다. 비가 내리면 차창으로 흘러내리는 빗물이 내 눈물 같았고, 눈이 내리면 한없는 그리움들이 소복이 쌓이는 것 같았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기차와는 인연이 깊었다.
   전국 서점을 이십 년 넘게 출장을 다닐 때 나는 주로 기차를 타고 다녔다. 당시에는 고속버스는커녕 우등버스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이었다. 매달 20일이 지나서 4박 5일 일정으로 이동할 때는 새벽 첫 기차를 많이 이용했는데, 어둠 속을 달려와 미리 예매해 두었던 내 좌석에 앉으면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바쁘게 움직였던 서울에서의 생활들이 내 마음속에 떠오른다. 마음 역시 편안했다. 기차가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용산을 거쳐 한강철교를 지날 때쯤이면 동이 트는 모습 속에 한 달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출장 다닐 때는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를 주로 이용했다. 서울역에서 출발하여 논산에서 대전, 익산, 전주까지, 혹은 서울역에서 천안, 대전, 대구, 부산까지 이동했다. 때로는 대구에서 마산으로, 순천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경우도 있었다. 기차 타고 네 시간 이상 달려도 지루한 줄 몰랐었다. 새마을 열차는 최고의 승차감과 안락감 그리고 아무리 등받이를 젖혀도 뒷사람에게 불편을 주지 않았고 앞좌석과의 간격도 넓었다. 출장 기간이 끝나는 금요일에 올라오는 경우 미리 표를 예매해 두었다가 시간 맞추어 오느라 정신없이 내 좌석에 앉을 때의 그 안도감, 그렇게 숨가쁘게 열차와 함께 전국을 돌았다.
   인터넷이 보급되어 인터넷 서점이 생기고, 스마트폰이 필수품이 되면서 기차 요금은 비싸졌지만 업무에 소요되는 시간이 단축되어 KTX로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50분이면 대전역, 1시간 반이면 동대구역, 대구, 부산을 하루에 다녀올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처음 기차를 탔던 기억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제주에서 원주에 왔을 때였다. 다시 서울에 잠시 살다가 아버지 직장이 광주 상무대로 바뀌는 바람에 광주로 가야 했다. 짐은 미리 부치고 서울에서 광주까지 기차를 타고 갔던 기억이 난다. 아마도 군인들이 많이 탔던 군용열차 같은데 굉장히 복잡했다. 둥그런 찬합에 가득 채운 김밥, 삶은 계란, 사이다, 건빵 등을 여행 중에 먹었다. 올망졸망한 딸린 식구들, 특히 어린 우리 형제 자매들은 철없이 마냥 신이 났던 기억이 난다.
   광주에서 일 년을 넘게 살고 다시 서울로 올라왔다. 서울에서 자리 잡고 사는 줄 알았다. 제대하신 아버지는 꽃가게, 상점 등 여러 가지 일을 하시고 제대 직후라 사업을 하시다가 사기를 당하셨다. 결국 제주도 고향으로 내려 가셨다. 그때는 지금처럼 값싼 항공표가 없었다. 목포에서 제주 가는 배를 타기 위해 우리 식구들은 서울에서 목포까지 가는 기차를 탔다. 전학도 이사도 참 많이 다녔다. 
   결혼하고 신혼여행을 경주로, 그리고 해인사로 간다는 남편 말을 믿고 나는 마냥 좋기만 했다. 해인사 백련암은 성철 스님이 주석하셨던 곳이라 꼭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비행기를 타고 남들처럼 꽤나 분위기 잡고 떠났다. 부산 해운대역에서 경주 가는 기차표를 끊고 보니 비둘기호였다. 화려한 코사지를 가슴에 단 검정 벨벳 재킷을 입고, 커다란 여행 가방을 들고 탔다.
   마주 보는 좌석에는 오일장에 다녀오셨는지 할머니들이 타셨다. 보따리에는 각종 농산물과 닭이 있었다. 할머니들을 마주보고 앉은 우리 부부. 차창 안으로 햇빛이 쫙 펼쳐지듯 비춰 주었다. 오후의 한가로움이 햇살 속에 졸고 있었다. 할머니들도….
   지금 생각해도 참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기차는 요술쟁이처럼 어디든 갈 수가 있어서 좋았다. 역을 떠나올 때의 그 아쉬움, 그리고 다음 역에 대한 기대감, 칙칙폭폭 소리 내며 내 인생도 끊임없이 긴 철로를 따라 달려왔다. 일곱 형제 키우시느라 엄청 고생하시며 독선적이셨던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눈물겹게 고생 많이 하신 울 엄마는 요양원에서 지내신다. 형제들도 이제는 모두 늙어가고 있다. 친구도 나도 모두 늙어가고 있지만 기차와 함께 보낸 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다 사라지는 느낌이다. 뒤돌아보니 내 인생이 걸어온 길과 같다는 생각이 든다.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간 느낌이다.  
   무궁화, 통일호, 비둘기로, 새마을호 등 내 인생은 한국 기차의 변천만큼 다양하게 바뀌며 살아왔다. 열차 이름은 그렇게 바뀌었지만 나는 내 인생이라는 한 기차를 타고 왔다고 볼 수 있다. 새마을호 열차가 2018년 4월 30일로 운행이 종료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한없이 서운했다. 내 젊음도 그 열차와 함께 저무는 느낌이 들어서…. 그러나 나는 지금 글쓰기에 새롭게 도전하고 있다. 내게는 적어도 새로운 길이다. 새마을호 대신 KTX가 나타나지 않았는가. 열차 여행 대신 이젠 정신 여행을 할 시기가 된 것이다. 완행열차에서 새마을호를 거쳐 KTX로 바뀌어 가듯이 나의 정신적 성장도 그것들과 같이 해야 할 것이 아닌가. 젊었던 시절은 몸으로 전국을 누볐지만 이제는 나의 통찰력으로 정신세계를 달려야겠다. 지도에 표시된 그 지점들의 도시가 아니라, 정신 세계에 표시된 그 지점들을 찾아가야 한다. 나의 글쓰기를 위하여.

  

 


고진숙  ---------------------------------------------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출판정보미디어 졸업, 원석문학회 회원.
 



당선소감


   따뜻한 겨울 햇살 속에 가슴 일렁이게 전해 오는 기쁜 소식. 허무맹랑할 것 같던 꿈이 또 한 발짝 제 곁에 와 있습니다.
   치열하게 지냈던 생활을 정리하면서 가슴 한편에 켜켜이 묻어 두었던 문학이라는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없다며 쌓아 두기만 했던 책들을 책상 앞에 갖다 두고, 서점에 가서 보고 싶은 책들과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사들고 왔습니다. 책 읽기 시작하고 무엇인가 쓰고 싶어 안달하던 예전의 저를 기억했습니다.
   그러면서 만난 교수님은 제 눈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주셨고, 다시 꿈을 꿀 수 있는 용기와 글을 쓸 수 있는 큰 힘을 주셨습니다. 더불어 선배님과 문우님들은 머뭇거리는 저에게는 큰 힘이 되주셨구요. 교수님과 선배님, 문우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작품을 쓸 때마다 꼼꼼하게 읽고 지적해 준 남편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제 인생의 글을 쓰는 기차 여행을 떠나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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