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시진 회관'에서 점심식사를 간단히 하고, 다음 일정은 금각사. 그 이름의 유사함 때문에 금각사, 은각사 하며 함께 많이 불리는데, 일정에 은각사가 들어간 경우는 거의 본 적이 없다. 은각사의 다소 가라앉은 듯한 멋스러움에 금각사보다 더 좋아한다는 사람을 꽤나 여럿 보았는데도 말이다. '금칠'이란 말이 불러일으키는 호기심 때문일까?
주차장에 내려서 입구까지는 금새. 어느덧 4월이라 초록이 눈부시다. 그러고보니, 금각사를 세 번째 찾지만, 이 시기-햇볕이 눈부신 봄날-에 찾아오기는 처음인걸! 한 번은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써늘한 초봄이었고, 또 한번은 단풍이 붉게 물든 가을날이었으니. 이번에야말로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금각사를 볼 수 있을까, 설레인다.
입장권을 끊고, 큰 문을 통과하여 안쪽으로 고고씽! 옛날 전래동화가 문득 떠오른다. 새엄마의 구박을 받아, 한겨울에 냉이를 캐려 산을 헤매다 어느 동굴을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니, 따스한 봄날의 세상이 펼쳐졌다는.
돌담길을 돌아 나오니 무언가 강렬한 느낌이 번쩍! 고개를 돌리니 눈앞에 금각사가 있다. 은은한 금빛의 아름다움!
물에 비친 그 모습이 참으로 은은하구나!
한 바퀴를 주-욱 돌아, 뒷태도 찰칵!
이런 곳에 오면 '바라보아야만' 하는 것에 흥이 깨진다. 그 옛날 누군가 그랬듯이, 나도 저 난간에 기대어 호수를 바라보고 싶고, 방에 앉아 후스마에 그려진 그림을 보며 명상에 잠기고도 싶은데,, 눈 앞에 있지만, 허상을 보는 듯한 허전함이 아쉽다. 하긴, 이 금각사에도 그러고보니 사연이 있었다. 얼마 전, 남대문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억장이 무너졌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이 금각사에 똑같은 아픈 기억이 있는 것. 하여 미시마 유키오는 소설 '금각사'에서, 탐미주의자인 주인공이 금각사에 방화를 하고, 함께 타 죽는다는 이야기를 쓰기도 했다. 극우파로, 자위대의 궐기를 외치며 할복자살했던 그의 삶과 어울리는(?) 소설.
글쎄,, 솔직한 느낌으로 난 금각사는 큰 감동이 없었더랬다. 물론, 물 위의 금빛과 물에 비친 금빛의 어울림은 일품이지만. 혼자 덩그러니 떨어져 있는 느낌?
금각사 맞은편에 옛 저택이 하나 있었는데, 그곳은 따로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듯했다. 얼핏 듣기에, 그 안의 후스마에 그려진 그림이 일품이라고 했던 것 같다. 만약, 금각사와 네 번째 인연이 닿는다면, 그땐 그곳을 꼭 들어가 보리라! 이제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교토를 떠날 시간~ 너무너무 아쉽다. 풍정, 아취, 풍류, 멋스러움, 운치. 교토와 다음번 좀더 긴 인연을 기약하며, 안뇽!
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마을 풍경들을 보다가, 가이드님의 재치있는 이야기를 듣다가 하다보니 어느덧 나라(奈良)라는 글자아 보인다.
이번 여정의 마지막 방문도시 나라. 저 '나라(奈良)'라는 이름이 한국어 '나라'에서 왔다는 설이 있을 만큼, 고대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고대사에 관계된 유적, 유물도 참 많다고 하는데~항상 시간이 아쉬울 뿐. 토다이지 주차장에서 조금 걸으니 어디서 구리구리한 냄새가 풍겨온다. 범인은 바로 요녀석!
'사슴 눈 같아요'라는 대한 찬사에 끄덕끄덕한다. 눈이 너무너무 예쁘다! 사슴들이 자유로이 돌아다니고 있어서 사진도 찍고, 과자도 주고 할 수 있지만, 저 길 아래 사슴똥이 굴러다니고 있다는 것도 잊지 않도록!
한 할머니가 부지런히 비와 쓰레받이를 들고 다니며 사슴똥을 쓸어담고 계신다. 에고, 할머니~ 그거 하루종일 하고 계시면 코가 삐뚤어지겠어요!
토다이지 입구.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저 나무의 세월빛이 뿜어내는 오오라가 마구 느껴진다. 역시, 색깔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시간이 만들어내는 색. 전진하여 문을 통과한 후, 왼쪽으로 꺾어서 좀 더 걸으면 매표소가 나온다. 가이드님께 입장권을 받아들고 들어서면, 짜잔~
장엄하게 우뚝 선 모습이 무장을 한 옛 군사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쉬는 날이어서인지 산책 나온 사람들이 많았다. 다정하게 손 잡고 걸어가는 연인들, 엄마아빠 손 잡고 나온 아이들, 카메라를 연신 들이대는 키큰 서양인 관광객, 그리고 우리들...
토다이지 앞에는 커다랗게 향을 피우고 있는데, 이걸 몸에 쐬면 좋은 기운을 받을 수 있다고 하여, 둘러선 사람들이 손부채를 부치며 향을 맡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에는 그 향을 저어주시는 아저씨. (아저씨, 힘들어보이세요..;)
본당 안쪽으로 들어가려다가, 문득 왼쪽을 바라보았다.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는 이 절에서, 마치 저곳만 다른 세상인 듯한 고요함.
드디어 대불 앞에 이르렀는데,, 카메라 메모리가 없다. 오마이갓! 이곳 토다이지가 유명한 큰 이유가 바로 이 본존인 대불이지만,, 사실 난 그 크기만으로는 그닥 감흥이 없었다. 그저, '저 대불 청소할 때면 머리 위에 사람 다섯이 올라간답니다'라는 가이드님의 말을 떠올리고, 고개를 끄덕끄덕. 대불 뒤로 한바퀴 돌아서 나오는 곳에 위치한 요 기둥. 기둥에 구멍이 뚫려있다는 거! 신기신기~ 하여 소풍 나온 아이들이 들락날락(구멍 뚫려 있어도 설마 무너지거나 하지 않겠지? .;)
나라라는 도시의 느낌은 진한 회색빛..이랄까? 예전에 태안의 퇴적층 해변을거닌적이 있었다(기름 유출 사고가 나기 전에.;) 그 시간이 만들어낸 층층의 회색빛,, 그런 느낌. 마음의 휴식이 필요할 때, 그저 거닐면 참 좋을 것 같은! 다음엔 메모리카드 완비하고! 또 한번 올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