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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 시인의 사랑 - 브레히트
그저께, 홍대앞의 어느 사무실에서 즐거운 회의를 했다.
회의가 즐거울 수 있을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그런 회의는 '논의는 하되 실무는 하지 않는'
자들의 무책임한 언변의 장이거나 일의 시작 단계라서 여러 가지 생각들을 나눠보는 정도일 것이다.
그날 그 회의는 그 두 가지 성격을 다 갖고 있었다.
훗날 벌어질 수많은 실무와 파란들을 예상하지 않은 바는 아니지만, 그런 것을 생각하면,
일은커녕 생각도 진행이 안되기 때문에, 그런 막중한 것을 잠시 미뤄둔 채 회의를 가진 것이다.
포스트~ 삭제. 해마다 가을이면 홍대앞에서는 책 축제가 열린다. 이름하여 '와우북페스티벌'. 1970년 4월 8일에 그 당시에는 흔치 않았던 아파트가 붕괴된 적 있었는데, 그 이름이 와우아파트였다. 홍익대가 들어앉은 산 일대가 와우산(주저앉은 소가 아니라 느긋하게 누워있는 소)이다. 이른바 홍대앞 주차장 거리 일대를 3일 정도 완전히 비워서 책의 축제를 갖는다. 공영주차장 임대 수익, 주차장 이용자들의 불만, 줄지어 서있는 유흥업소와 옷가게 주인들의 불만 그리고 요처를 차지하고 있는 '조폭 떡볶이' 포장마차의 위세 등에도 불구하고 와우북페스티벌조직위은, 마포구청 협조를 얻어, 9월 말 가을볕 가장 좋을 때, 길다란 공영주차장 길을 완전히 터서 책 축제를 연다. 올해가 그 4회째다. 그래도 뭔가 흥미로운 게 없을까 하는 회의였는데, 나는 '연애 시대'라는 말을 잠시 생각했다. 정호승 시인이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 그런 시도 썼는데, 어느 때 누구라도 지금 이 순간에 사랑을 하고 있겠지만, 그 사랑을, 그 사랑과 시와 소설을, 그런 책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나눠보자, 그런 생각이었다.
한 달 반 쯤 남아서 대강의 프로그램이 확정되어 추진 중이지만,
그런 말을 하면서, 사랑의 시를 몇 편 떠올려 보았다. 고 1 때, 지금은 음악 칼럼니스트이자 시인이자 오디오 마니아이자 책 프로그램의 패널로 활동하는 김갑수 선생이 잠시 국어 강사로 왔었는데, 황동규의 '즐거운 편지'를 4월의 어느 봄날에 읽어준 일이 기억난다.
황동규 시인
1. 내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잇닿은 그 기다림으로 바꾸어버린 데 있었다. 밤이 들면서 골짜기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내 사랑도 어디쯤에선 반드시 그칠 것을 믿는다. 다만 그때 내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그 동안에 눈이 그치고 꽃이 피어나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눈이 퍼붓고 할 것을 믿는다.
며칠 외우기도 하였고, 그렇게 몸 속에 들어온 듯 싶었을 때부터는 오히려 잊어버린 시였다. 그리고 시인 황지우가 있다. 특히 <나는 너다>라는 시집은 내게는 통째로 연애시집이었다. 그 시집을 단순히 연애 시집이란 틀로 읽을 수는 없겠지만, 아침저녁으로 불안과 초조와 지루함이 뒤섞여 있던 때에 읽던 시집이라서 내게는 연애시집이었다. 물론 황지우의 연애시는 '너를 기다리는 동안'이지만 말이다.
황지우 시집 <나는 너다> 초판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 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이, 에리히 프롬의 말대로 한 개인을 사랑함으로써 세계 전체를 새로 보고 더욱 사랑하게 되는, 그런 힘을 진짜로 갖고 있다면, 그래서 사랑할 때는 우중충한 하늘도 전봇대도 낡은 차들도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
라면, 역시 기억나는 사랑의 시는 김수영의 '사랑의 변주곡'이다. 아래 일부분을 인용하거니와 이 시에서 '사랑'은 그 '사랑'이 아니지만, 그러나 그 '사랑'을 생략한 그 무엇도 아닌 것이다. 사랑은 사랑인 것이다.
시인 김수영
복사씨와 살구씨와 곶감씨의 아름다운 단단함이여 고요함과 사랑이 이루어놓은 폭풍(暴風)의 간악한
신념(信念)이여
봄베이도 뉴욕도 서울도 마찬가지다
신념(信念)보다도 더 큰
내가 묻혀사는 사랑의 위대한 도시에 비하면
너는 개미이냐
아들아 너에게 광신(狂信)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사랑을 알 때까지 자라라
이런 사랑의 시에 대응하는 외국의 시로는 브레히트의 '후손들에게'가 있다. 90년대 초에 MBC에서 '유럽문학기행'이라는 연속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 있는데, 그 프로그램의 내레이션을 성우 김세원이 맡았었다. 해방공간의 천재 작곡가 김순남의 딸이 되는 이 성우에 대하여 조금 나이 든 독자라면 '김세원의 영화음악실'로 다들 기억할 것이고, 젊은 독자라면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내레이션을 생각하면 된다. 시리즈 가운데 하나인 '브레히트 편'에서 김세원은 이 시를 낮고 차분하게 읽었다. 그 일부분이다.
우리가 잠겨 버린 밀물로부터 떠올라 오게 될 너희들.
부탁컨대, 우리의 허약함을 이야기할 때
너희들이 겪지 않은
이 암울한 시대를
생각해 다오.
신발보다도 더 자주 나라를 바꾸면서
불의만 있고 분노가 없을 때는 절망하면서
계급의 전쟁을 뚫고 우리는 살아왔다.
그러면서 우리는 알게 되었단다.
비천함에 대한 증오도
표정을 일그러뜨린다는 것을.
불의에 대한 분노도
목소리를 쉬게 한다는 것을. 아 우리는
친절한 우애를 위한 터전을 마련하고자 애썼지만
우리 스스로 친절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너희들은, 인간이 인간을 도와주는
그런 세상을 맞거든
관용하는 마음으로
우리를 생각해 다오.
브레히트는 셰익스피어 이후의 정통 연극을 '하루 저녁의 입맛을 위해 먹어치우고는
깨끗이 잊어버리는 요리와 같은 연극'이라고 비판하면서
1926년 경부터 독창적인 연극론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브레히트 특유의 치고 빠지는 날렵한 문장은 발표할 때마다 논쟁거리가 되었으며 그 자신도 되도록이면 공개된 논쟁을 통해 서로의 의견이 일치되거나 상승되기를 원했다.
'정통파 리얼리즘의 수호자'인 루카치가 브레히트의 논쟁 파트너가 되어 야만의 시대에 예술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풀이했다.
브레히트는 하나의 작품 속에서 인물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고정돼 있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변화 발전하는 모습으로 그려져야 하며 결말에서는 기존의 상식과는 다른 면을 보여주어 사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브레히트는 이 목표를 위해 전통 연극을 모조리 바꾸려고 시도했다.
작곡가 폴 데싸우(앉은 사람)와 함께 있는 브레히트
그에 따르면 전통 연극은 감정이입을 기본성격으로 갖는데 이는 극중 인물과 관객과의 거리가 사라져 작품 속의 인물과 관객의 심리 상태가 동일시되고 결과적으로 작품 속의 세계에 대해 관객이 무비판적으로 긍정하고마는 폐단을 낳게 된다. 서사극은 이러한 성격을 배격하고 관객으로 하여금 연극을 통해 사회 현실을 배우고 깨닫게 하는 데 노력한다.
브레히트는 서사극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연극 방법으로 ‘소격효과’를 내세웠다. 이는 말 그대로 관객과 무대 사이에 심리적 견제 거리를 두어 관객으로 하여금 바로 앞에 펼쳐지는 연극을 통해 어떠한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러한 효과를 얻기 위해 브레히트는 합창단, 유령, 해설자등을 등장시켜 사건의 진행과정을 설명 또는 논평하였으며 극중극, 두 이야기 동시진행, 막간극 등의 극적 장치를 동원하였다. 또한 무대를 밝게 하거나 무대 설치나 소도구 이동을 그대로 관객에게 노출시켜 연극이 ‘환상’이 아니라 ‘연극’임을 보여주었다. 요즘이야 이런 방법들도 '식상한 고전'이 되었지만, 브레히트 시대에는 연극의 혁명이었고, 그것은 곧 혁명을 위한 연극 방법이 되었다.
동베를린 도로텐슈타트 묘지에 있는 브레히트 부부의 묘비
그가 1956년의 오늘, 8월 14일에 동베를린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 그는 인간의 자유를 위하여 투쟁하였지만, 구동독의 관료적 사회주의는 그 자신이 원한 사회는 아니었다. 그 사이의 정치적 상황 속에서, 쉽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는 없었던 구동독 최고 권위의 예술가로서 그는 심각한 갈등에 휩싸였고 수많은 비난과 옹호 사이에서 고뇌하였다. 시 '기분 나쁜 아침'이 그 증거다.
"호수는 구정물의 늪, 휘젓지 마시오! 금어초들 사이의 푹시아 꽃은 값싸고 천박해 보인다. 왜? 어젯밤 꿈에는 마치 문둥이를 손가락질 하듯 나를 가리키고 있는 손가락을 보았다 그 손들은 너무 일을 해서 닳아빠지고 잘려져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놈들 같으니라구 죄의식 속에서 나는 이렇게 소리쳤다."
매카시 선풍 당시 '반미조사위원회'에 출석하여 심문받고 있는 브레히트
이런 시를 기억할 때마다 마음이 엉클어지고 불편해진다. 그래서 1956년의 오늘, 8월 14일에 사망한 브레히트에 대하여 뭔가 기억해야 하거나 써야 할 때마다 나는 이런 고통스런 시들 대신에 '마리아의 추억'을 떠올린다. 이 시에 대하여 여러 차례 언급한 바 있는데, 어제 이 블로그에서 골랐던 영화 <타인의 삶>이 기억난다. 구동독의 유명 연출가와 여배우를 감시하던 비밀경찰 비즐러. 그들을 도청하고 감시하던 비즐러는 여배우를 사랑하게 된다.
그래서 몰래 <브레히트 시집>을 훔쳐 와서 읽는다. 바로 그 '마리아를 추억함' 말이다. 아래 그 일부를 인용하거니와 이번 가을에 사랑에 관한 시와 소설들이 애틋하게 기억되어 모두들 사랑하는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
영화 <타인의 삶>에서 주인공이 브레히트의 시 '마리아를 추억함'을 읽고 있다.
1.
그 푸르렀던 9월의 어느 날
어린 자두나무 아래서 말없이
그녀를, 그 조용하고 창백한 사랑을
나는 귀여운 꿈처럼 품에 껴안았다.
우리의 머리 위로 아름다운 여름 하늘에는
구름은 하얗고 아득히 높아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때는, 이미 사라져 버렸다.
2.
그 날 이후 수많은 달들, 숱한 세월이
소리없이 흘러 지나가 버렸다.
그 자두나무들은 아마 베어져 없어졌을 것이다.
사랑은 어떻게 되었느냐고 너는 나에게 묻는가?
생각나지 않는다고 나는 너에게 말하겠다.
하지만 네가 무슨 뜻을 품고 있는지 나는 이미 분명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녀의 얼굴은 정말로 끝끝내 모르겠다.
내가 언젠가 그 얼굴에 키스를 했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이다.
3.
그 키스도, 구름이 거기 떠있지 않았더라면
벌써 오래전에 잊어 버렸을 것이다.
그 구름을 나는 아직도 알고 앞으로도 항상 알고 있을 것이다.
구름은 아주 하얗고 위에서 내려 왔었다
어쩌면 자두 나무들은 아직도 변함없이 꽃피고
어쩌면 그 여자는 이제 일곱번째 아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구름은 잠깐동안 피어 올랐고
내가 올려다 보았을 때, 이미 바람에 실려 사라졌었다.
아름다운 소도시 아우구스부르크에서 태어난 브레히트는 예술의 도시
황동규의 후기 시들을 많이 읽지 못했다. 더러 읽기도 하였으나 페이지마다 '깨달음'이 너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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