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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늦가을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들던 우이시낭송회가 있던 날, 박홍 시인과 첫 대면을 하였다. 그날은 누리에 온통 단풍 일색이어서인지 회원들의 출석이 눈에 띄게 적었다. 인천에 사신다는 박홍 시인이라는 분이 얼굴을 내민 것 외에는 여느 때와 다름없는 시낭송회였다. 낭송회가 끝나고 뒤풀이도 인근 중국집의 원탁에서 가족처럼 둘러앉아 가졌다. 시인께서 자기소개를 하는데 나하고 동갑인 듯했다. 모자를 눌러쓰고 약간 나잇살이 배인 두툼한 얼굴에 풍상깨나 겪은 고참병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시회에서 동갑내기를 모처럼 만났다는 반가움에 살갑게 대했다. 내심 나도 저렇게 나이 들어 보이나 싶기도 하고, 모처럼 만만찮은 인물 하나 만났구나 싶었다. 뒤풀이가 끝나고 방향이 같아 버스를 기다리다가 순간에 의기투합, 전철역 부근에서 한잔 더하기로 하였다.
둘이서 건배하며 나하고 동갑이냐고 재차 물었다. 동갑은 동갑인데 띠동갑이라는 것이었다. 아뿔싸, 세상 헛살았구나. 세상에 십 년도 더 터울이 지는 터수에 나하고 동갑인 줄 알고 슬슬 말꼬리를 잘라 먹었으니, 정색을 하며 급히 사과부터 했다. 그런데 정작 박 시인은 안절부절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며 즐기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나이가 꽉 찼음을 결코 감추려 하지는 않지만 굳이 내색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두 곳 시회를 전전하면서 자기 나이를 밝혔더니 기존 회원들이 아예 상대조차 해 주지 않아 언제부턴가 나이를 속이는 것이 아니라 굳이 밝히지 않으면서 젊은 시인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노라고.
이렇게 해서 띠동갑끼리 시우가 되었다. 박 시인은 소설을 쓰겠다고 청춘을 불사르다 뒤늦게 생업 전선에 뛰어 들었고, 은퇴 이후 시 공부를 하였다는 늦깎이 시인이다. 이후 관심을 가지고 그의 신작시를 읽어 보니 그 연세에도 마르지 않은 상상력과 시어의 깔끔함이 여느 젊은 시인 못지않아 내심 존경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비록 만남은 짧았지만 그는 무성한 나무 같아서 들어설 만한 그늘도 넉넉했다. 이렇듯 시인은 육체적인 나이가 그리 절대적이지 않다. 어느 시인은 이십 대에 천재 소리를 듣다가 하마 인생 중반도 못 넘기고 조로 현상을 보이는가 하면, 박 시인처럼 노년에 시를 시작하였어도 날로 푸르러지고 무성해지니 어찌 그를 노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시인은 나이를 시로 먹는다.
에코토피아ecotopia의 시
박 시인의 몇 편의 시는 분명 생태시 범주 안에 든 것들이 있다. 생태시라 하면 자생적인 것 말고 1990년대 이후 외국의 시운동에 힘입어 한때 유행했다가 주변부로 자리잡은 일련의 시들을 말한다. 그러나 생태 파괴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에코토피아 지향의식은 갖가지 현대시 양식과 융합되어 인류가 생존하는 한 어떠한 유형으로든 지속되리라 생각한다.
에코토피아란 무엇인가? 에코eco와 유토피아utopia가 합성된 말로 자연과 인간이 일체감을 지닌 생태 세계, 자연과 자연 사이에도 생태적 갈등이나 거리감이 대두되기 이전의 총체성을 의미한다. 즉, 자연과 인간, 자연과 자연의 상호의존의 관계성을 간직하고 있던 때가 에코토피아의 세계이며, 바로 생태시의 한 부류가 이들 간의 상호의존적인 관계가 원활하여 자연의 생명력이 절대로 유지되는 에코토피아를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시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박홍의 시에도 에코토피아를 지향하는 시들이 있다.
까마중이 그렇게 좋은가
텃밭 가장자리에서 기웃거리는 놈들을 모조리 뽑았다
먼저 삼지창을 곤두세우고 노란 쐐기들이 떼거리로 떨어져 나왔다
감돌고기 알 같은 것이 잎의 뒷면에 몽롱하게 붙어 있다
엽록소를 다 갉아먹고 습자지처럼 잎맥만 남은 것들도 있다
그것들 다 잘라버리고 물에 담갔다
숨을 못 쉬겠다고
왜 갑자기 수몰지구로 변했냐고
뭔 천지개벽이 이렇게 빨리 왔냐고
와글와글, 수군수군 난리다
피난행렬처럼 보이지 않던 것들이 꼼실꼼실 기어나온다
갈색 나무껍질을 뒤집어쓴 듯 울퉁불퉁한 것들이
초록 눈에 붉은 테를 두른 것들이 새끼들 데리고
동료들을 데리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기어 나오고 있다
몇 번 더 물에 헹구어서
신문지 위에 펼쳐 놓았다
빨간 등껍질에 검은 점이 찍힌 무당벌레 한 마리가
어떤 잎의 뒷면에 붙어 꼼짝하지 않는다, 죽었나?
알을 까는 자세다
옆구리를 노랑쐐기가 삼지창으로 쿡 찌르고 간다
그날 밤 꿈에
나는 한 마리 벌레가 되었다 개미들에게 물려
끌려가는 지렁이처럼
어딘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 박홍, 「까마중 효소」 전문
화자는 까마중 효소가 몸에 좋다 하여 집에서 몸소 그것을 담그는데, 까마중을 뽑아다가 붙어 있는 벌레를 구제하는 작업을 한다. 일년생 푸나무에 붙어 있는 쐐기며 감돌고기 알 같은 것, 보이지 않던 것, 갈색 나무껍질을 뒤집어쓴 듯 울퉁불퉁한 것, 무당벌레들이 영문도 모른 채 죽거나 씻겨 나간다. 그리고 그날 밤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화자가 벌레가 되어 거꾸로 구제를 당한다.
인간이 자연에 가하는 구제 작업은 인간과 자연의 상호 의존성이 아니라 반의존적이다. 인간의 소용과 편의에 의해서 자연과의 의존 관계를 깨뜨리는 행위다. 이는 한갓 미물이지만 자연에 대한 폭력이다. 이 폭력에 의해 인간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겠지만 자연 입장에서는 생태계 파괴이며 한 생명에 대한 멸절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먹이 사슬의 가장 윗단계에 처해 있다고 해서 인간에게 그런 권리가 부여된 것은 아니다. 그러기에 현실에서 정반응正反應이 꿈속에서 역반응逆反應으로 나타나 똑같은 고초나 멸절의식을 겪게 된다. 생명 훼손에 대한 무의식적 양심이라고나 할까. 이 시에서 재미있는 것은 변신과 가역반응可逆反應 모티브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변신 모티브는 신화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고대 신화에서 비롯된 이 모티브는 인류 무의식의 저장고에 축적되어 현대 문학에서도 변이종을 양산하고 있다. “어느날 아침 뒤숭숭한 꿈에서 깨어난 그레고르 잠자는 자신이 침대에서 흉측한 모습의 한 마리 갑충으로 변한 것을 알아차렸다.”라는 첫 문장으로 시작되는 카프카의 「변신」과 「장자莊子」의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다가 깬 뒤에 자기가 나비의 꿈을 꾸었는지 나비가 자기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는 호접몽胡蝶夢 이야기를 이 시와 비교해 보는 것도 의미심장하다.
인간의 변신 모티브로 실존과 부조리를 묘사하고 있는 카프카의 「변신」, 자아와 외물은 본디 하나라는 이치를 말하고 있는 「장자」의 호접몽, 현실에서 자연에 가한 정반응이 무의식에서 역반응으로 나타나는 「까마중 효소」는 각기 의도를 내포한 변이종들이다. 독자들은 변신이라는 자체 하나만으로도 무의식적 관심과 충격을 받기에 충분하다. 이 셋 중 가장 충격이 큰 것은 카프카 쪽일 것이다. 인간이 한 마리의 갑충으로 변한다는 사실은 현실과 큰 차이가 있다. 이 아이러니는 이 소설의 주제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까마중 효소」의 “나는 한 마리 벌레가 되었다”는 카프카만큼의 차이를 느낄 수 없다. 그것은 유사성에 접근한 은유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미 벌레 구제 행위를 앞에서 보여 주었고, ‘꿈은 반대다’라는 통념에 기대어 은유적인 벌레에게 시적 충격은 그리 큰 편이 아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현실과 꿈속의 벌레라는 차이에는 역시 카프카의 「변신」처럼 주지主旨가 담겨져 있다. 인간이 하찮게 여겨 구제한 생명에 대한 양심, 나=벌레라는 등식이 성립되면서 자연과 일체감을 드러내고 있다.
독일이 낳은, 20세기의 정신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사상가인 하이덱거를 존재의 철학가라 한다. 특히 그의 난해한 후기 철학은 이 자가 철학가가 아니라 시인이지 않나 싶을 정도로 그의 철학이 시쪽으로 경도되어 있음이 주지의 사실이다. 그가 말하기를 인간이 이 지상에 제대로 거주한다는 의미는 ‘지상에 시인으로서 거주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의 말은 우리가 모두 직업적인 시인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진정한 시인이 갖는 감수성을 가지고 이 지상에 거주해야 한다는 의미다. 시인으로서 거주한다는 것은 세계와 사물에서 발현되는 ‘존재의 성스러운 빛’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덱거는 우리 인간이 시인으로서 거주해야만 인간을 비롯한 모든 사물이 기술적인 소모품으로 전락해버린 이 시대의 궁핍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의 말대로 한다면 세계와 사물에서 발현되는 존재의 성스러운 빛을 보는 자가 시인이며 그렇게 쓴 것만이 진정한 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기에 시인들은 길가의 하찮은 풀 한 포기 들꽃 하나에도 눈길을 놓치지 아니하며 벌레 한 마리에도 소중한 생명 의식을 가지지 아니한가. 그런 의미에서 생태시는 그가 말한 진정한 시에 포함된다. 박홍 또한 그의 시에서 어떤 시각으로 세계와 사물을 바라보고 있는지 다음 시를 인용해 보자.
시골집 텃밭에 풀이 무성하다 가까이 다가가자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졌다
우부룩하게 몰려 있는 강아지풀들, 꼬리 흔들 듯 바람에 흔들린다 바랭이들은 아래쪽이 햇빛을 듬뿍 받게끔 우산살만 앙상하게 남겨 놓았다 방동사니도 마디풀도 엇비슷하게 떨어져서 끼리끼리 모여 있다 지네들 집성촌 같았다
웅덩이 쪽 방동사니들은 초록이 왕성했다, 살벌했다 우산방동사니는 우산방동사니 대로, 드렁방동사니는 드렁방동사니 대로, 왕골은 왕골 대로 이삭을 피워내고는 무섭게 외치고 있었다 저마다의 초록이 섬뜩했다
키 작은 마디풀들은 밭둑에서 눈곱 같은 빨간 꽃망울을 마디마디 겨드랑이에 매달고 엎드려 있다 빨간 꽃망울은 흰색으로 터졌다 하얀 거품 같았다 바람에 날려 갈 것 같은 거품을 매달고 땅에 붙어 있느라 생똥을 싸지 싶었다
─ 박홍, 「묵정밭에서」 전문
묵정밭의 생태군들-강아지풀, 바랭이, 방동사니(우산방동사니, 드렁방동사니, 왕골), 마디풀의 생태에 대해서 세세한 것까지 꿰차고 있는 시인의 해박한 지식에 대해 우선 압도된다. 아무리 자연과 더불어 사는 자라고 하더라도 평소 자연에 대한 애착과 관심이 부족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단지 사전류나 인터넷을 검색하여 생경스러운 이름이나 나열하는 시가 아니라 보통 사람들은 관심도 없는 잡초와 푸나무의 이름은 물론이고 그 생태적 특성을 완전 파악하여 그것을 언어로 붙잡는 힘이 대단하다.
문제는 시인의 시각이다. 적어도 잡초를 사람들의 발밑에 짓밟히는 잡풀로 보지 않고 인간과 대등한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저 잡초가 우거져 있는 묵정밭으로 보지 아니하고, 마치 사람들의 군집을 군중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호명하며 그의 외모적 특징이나 개성을 보듯이 대등한 존재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사물에 대한 개별적이고 따
뜻한 시각의 소유자가 시적 감수성을 제대로 견지한 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시 와이너리winery
박홍의 시에서 가장 그다운 시들은 바로 이 군의 시들이다. 나는 그의 「옥상 와이너리」를 패러디하여 그것들을 ‘시 와이너리winery’라고 명명하였다. 와이너리란 ‘포도주 양조장’으로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양조장·주조장·술도가’ 정도의 의미렷다. 술은 신께서 인류에게 내린 최고의 선물이라고 한다. 이 최고의 선물을 빚는 곳이니 예사로운 곳은 물론 아니다. 시인은 어떻게 술을 빚는지 그의 주정 공장을 견학해 보기로 하자.
옥상에서 포도주를 담그는 날은 우리도 즐거운 수공업자가 되는 거다
그래, 터질 듯 까맣게 익은 포도알을 으깰 때면 느끼지 캄캄한 여름밤의 즙액이 흘러나오고 아득한 거리를 달려온 황도십이궁의 별빛이, 밤새 어딘가로 흘러가던 은하수의 물소리가, 은하전파를 타고 날아 온 우주의 씨앗들이, 알 수 없는 암흑물질들이, 물결처럼 출렁이던 보름달빛과 초승달빛이 부화하는 알 속의 핏줄처럼 툭, 툭 터지면서 향기를 내뿜는 거야 태아처럼 웅크리고 있던 여름 한낮의 고요도 울컥울컥 하늘에다 단내를 토해내지 희미하지만 폭우와 폭풍의 냄새도 풍긴다네 잠깐 쉬고 있으면 먼 곳의 천둥소리가 거품이 되어 떠오르는 것도 보인다네
그때쯤이면 벌과 나비들이 날아오기 시작하는 거야
꽃등에가 방향을 잘못 잡은 어리호박벌을 데려오고
도시처녀나비와 시골처녀나비가 손잡고 날아오고
검은테떠들썩팔랑나비도 날아온다네
간간이 아내와 딸아이는 어리호박벌에게 호통도 치는데
멀찍이 하늘 끝으로 내려앉은 뭉게구름은
우리식구들을 또 하나 항아리로 속에 가둔다네
그런 뒤에 바람과 햇살과 천둥소리와 밤의 즙액이
빠져나가지 않게끔 꼭꼭 밀봉하는 거야
부글거리면서 저희들도 새롭게 태어나려고 힘든 시간을 견디고 있겠지
그때 한 번쯤 뒤집어주는 거야
다시 힘든 시간을 기다렸다가
육탈시키듯 걸러버린다네
냉장고에 넣고 차게 해 두면
육신의 희미한 기억들까지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투명한 붉은 영혼이 만들어진다네
병에 담아 조심스레 뉘어서 잠을 재우는 거야
어느 날
주먹처럼 커다란 별들이 하늘에서 둥둥 떠다닐 때가 있을 거야
우리 어렸을 때처럼 말이야
그러면 잠재웠던 영혼들을 하나씩 흔들어 깨우는 거야
투명한 붉은 영혼 속에서 깨어난 별들이 춤을 춘다네
그때부터 은하수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네
─ 박홍, 「옥상 와이너리」 전문
이 시는 옥상에서 포도를 으깨 즙액을 받아 얼마 동안 숙성시켜 걸러내어 저장해 두었다가 어느 날 드디어 시식하기 위하여 잔에 따르기까지(목울대를 타고 술이 넘어가지는 않는다) 과정을 시로 보여 준다.
먼저 포도주를 담그기 위해서는 장소가 중요하다. 우주와 소통되는 공간, 옥상이 필요하다. 작업 방식은 수공업. 옥상에서 자연에서 채취한 포도를 으깨는데, 이 과정에서 미묘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첨가물로 ‘황도십이궁의 별빛’, ‘은하수 물소리’, ‘우주의 씨앗’, ‘암흑물질’, ‘보름달빛과 초승달빛’ 등이다. 천상의 첨가물이다. 2연에서는 단내에 취한 지상의 것들, ‘벌과 나비’, ‘꽃등에’, ‘어리호박벌’, ‘도시처녀나비와 시골처녀나비’, ‘검은테떠들석팔랑나비’가 호응한다. 3연에서는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다. 마침내 찌꺼기를 걸러내면 투명한 붉은 영혼이 만들어지고, 이를 냉장고 안에 잠재우듯 저장해 둔다는 것이다. 마지막 연에서는 포도주를 꺼내 잔에 따르는데, 별들이 하늘에 둥둥 떠다닐 때 잠자던 영혼을 흔들어 깨우면 붉은 영혼이 춤추며, 포도주잔에 떨어지는 은하수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는 것이다.
어떠한가, 그럴듯하다 못해 장엄하기까지 않는가. 얼마나 신비롭고 동화적이며 낭만적인가. 이렇게 빚은 포도주 한잔 마시고 싶지 않은가. 이런 포도주는 막걸리 마시듯 꿀꺽꿀꺽 목울대를 울리며 넘기는 것이 아니라 우선 눈으로 맛을 보고, 향을 코로 깊이 들이마시고, 입안에서 혀를 굴려 맛을 음미하며 조금씩 넘겨야 제 맛이지 않겠는가. 평상시 즐겨 술을 마시는 박 시인이지만 이렇듯 술에 대해 시적 감수성과 소년 같은 신비스러움이 배어 있을 줄이야.
이 시에서 전경前景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은 비상한 포도주 담그기와 숙성, 저장, 따르기의 일련의 과정이다. 그러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주지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세상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것들의 형성 과정, 이를테면 예술이라든지 시 창작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시인이 한 편의 시를 쓰기 위해서는 대지에서 소출한 것(포도)을 재료로 하여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이 함께 버무려져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숙성의 시간이 필요하고, 어느 시점에서 최초의 영감 같은 첫 행이 떠올라 이윽고 시의 형태가 갖춰지게 된다. 시인은 그의 시작 과정을 ‘와이너리’라는 은유를 통해 신비스럽게 추체험하고 있는데, 그 솜씨가 매끈하고 번화롭고 향내 나면서도 핵심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장인의 노련미를 결코 잃지 않았다. 가히 양조장에서 술을 빚듯 시를 빚는 솜씨가 ‘시 와이너리’ 공장의 공장장과도 같다.
와이너리 공장장다운 솜씨를 유감없이 펼쳐 보이고 있는 시 한 편을 더 보기로 하자.
개망초꽃봉오리에 남아 있는 紛紅을 보셨는지요 예비군 사내들이 땀내 푹푹 풍기면서 포복하고 있는 훈련장 둔치에 우우 몰려 있는 꽃들 사이에 숨어 있는 紛紅 꽃망울들을 보셨는지요 똑같이 흰색으로 피어나기가 싫은 듯 사라지는 紛紅의 끝자락을 붙들고 있는 안간힘을 보셨는지요 촌스런 순정이지요 가장자리로만 살짝 남은 집착이지요 흰색으로 만개하는 개망초꽃의 한 살이가 싫은 거지요 그러는 사이에도 紛紅은 시나브로 빠져나가고 있어요 꿈이 떠나고 남은 흔적처럼 누렇게 바래는 흰색이 싫어서 기를 쓰고 매달리는 거지요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삶의 한 순간을 붙들고 있는 안타까움이겠지요 紛紅은 슬프네요 다른 생을 찾아 헤맨 일탈의 흔적 같네요
예비군 훈련장 둔치에서 개망초꽃들이 하얗게 제식훈련을 받고 있어요
─ 박홍, 「분홍粉紅을 놓치다」 전문
원래 개망초꽃은 분홍이 없다. 그런데 시에서는 분홍이 있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이 차이, 원래 흰색인데 분홍이 있다고 우기는 연유가 이 시의 주지다. 화자는 분홍을 ‘촌스러운 순정’, ‘집착’, ‘흰색의 한 살이가 싫어서’ 라고 말한다. 흰색도 분홍이라고 여기면 분홍이 된다. 그런데 이 분홍이 시나브로 다 빠져나가고, 꿈이 떠나고 남은 흔적처럼 누렇게 바래는 흰색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안타까움이다. 슬픔이다. 분홍은 다른 생을 찾아 헤맨 일탈의 흔적이라고 친절하게 말하고 있다.
이 시는 개망초꽃에서 개별적이며 또한 보편적인 인생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은 타자와 구별되는 자기만의 삶을 희구하나 그런 삶 자체가 인생의 보편적인 모습이라는 것이다. 아니 혈기왕성할 때는 남과 다른 나만의 삶을 중히 여기나 나이 들어 갈수록 이런저런 분별없이 엇비슷한 삶에 대해 슬퍼하는지도 모른다. 비록 무채색이지만 자신만은 분홍으로 살고 싶어 하는 개망초꽃, 과연 와이너리 공장장답게 매끈하면서도 깊이 있게, 노련하게 쑥 뽑은 수작이다.
이상에서 박홍 시인의 시들이 생태시적인 일면과 자연에 대한 섬세한 배려의 시각과 아울러 시를 짓는 장인다운 솜씨까지 겸비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 이면에 숨어 있는 의미를 잡아내는 시적 감수성이 뛰어난 시인이다. 다시 말하거니와 그를 나이를 잊은 시인이라 함은 그의 왕성한 시작만을 말함이 아니고, 그가 젊은이 못지않게 사물을 보는 시각과 의미를 붙잡는 능력, 언어로 형상화하는 힘이 결코 시들지 아니하고 갈수록 더욱 단단해져 간다는 것이다. 이런 좋은 시인이 우리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말목처럼 힘이 솟구친다.
임채우 시인은 2011년 시집 『새가 날아간 자리』로 등단.
시집 『새가 날아간 자리』 『오이도』 등이 있음. pckli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