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별연재 : 이 詩, 나는 이렇게 읽었다
신현락의「바닥을 본다」
한 수 재(시인)
외로울 땐 바닥을 본다
가끔 내 생이 어디까지 왔나
궁금해질 땐 발바닥을 주물러본다
발바닥엔 못에 찔린 자국 두어 점
먼 길의 통점이 각질로 굳어져 바닥을 보이고 있다
내 몸을 돌고 돌아 아직도 그믐처럼 어둑해질
이승의 길바닥이 남아있기는 한 것인지
확인해 보곤 하는 것이다
외로울 땐 바닥을 더듬어본다
몸에서 빠져나온 머리카락과 먼지가 전생처럼 엉켜있다
손바닥을 내려다본다
손바닥에는 강물소리가 난다
손바닥으로 두 귀를 막고 들어보면
먼 들을 적시는 강물의 숨결이 자장자장 잦아들다가
왼손바닥과 오른손바닥이 만나는 합수머리에서는
한동안 방목했던 울음들이 돌아와 콸콸콸 흐르기도 한다
합장할 때 누군가를 끝없이 불렀던 까닭이다
강물이 잦아들며 목쉰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바닥이 드러나는 것이다
강물이 깊어지는 건
흐르면서 제 안의 바닥을 몇 번이나 쓸어보기 때문이다
외로울 땐 바닥도 의지가 된다, 바닥을 본다
가끔 내 안의 바닥이 얼마나 깊어졌는지
더듬더듬 바닥을 만져본다
생의 굴곡이 요철처럼 숙연하다
—「바닥을 본다」전문
바닥이 없다면 우리 중 그 누구도 멀쩡히 서 있지 못하리라.
그럼에도 그 ‘바닥’은 우리의 무의식 속으로 추방되어 종종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어디에서 있는지를 잊게 할 뿐 아니라, ‘나’를 부정하기도 하는 것이어서 바닥과 마주하는 것이 이처럼 불편하기도 한 것이다.
시인처럼 ‘내 생이 어디까지 왔’는 지 확인해 보고 싶어질 때, 왼손과 오른손, 생과 죽음이 합장할 때 들리는 목쉰 소리 속으로 ‘방목했던 울음들이 돌아와 콸콸콸 흐를’ 때 바닥을 보고, 바닥을 더듬고, 만져보며 깊이를 재게 되는 것일 게다.
그때 시인은 맨발바닥에서 시작된 ‘먼 길의 통점’을 지나 ‘몸을 돌고 돌아’ ‘누군가를 끊임없이 불렀던’ 외로운 한 순간을 지나고 있었으리라. 바닥 외에 남은 것이 없었으리라.
생의 어느 우울한 지점에서 만나게 되는 바닥에 맨살을, 살 아래 흐르는 더운 핏줄기를 대어보는 일, ‘몸에서 빠져나온 머리카락과 먼지가 전생처럼 엉켜’ 있는 자신과 정직하게 마주보는 일, 외로움 앞에서 철저하게 바닥을 쓸어 보는 일…….
사람 속에서 사람이 그립듯, 살고 있으면서도 생이 그립듯, 왜 우리는 허기 속에서도 충만보다는 허기를 그리워하게 되는 것일까. 시인의 바닥이 그러하듯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충만해지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해야하는 것일까.
‘내 생에 더 이상
기적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 중략 -
무언가 서러운 것이 자꾸만
아침마다 목이 메었다’
-「 봄은봄을낳다- 사강5」부분
던 그의 기적 같은 어느 봄날처럼 볼품없는 바닥이지만, 유일하게 나를 읽어내는 바닥이라 외로울 때 잠시 잠깐의 의지가 아닌 이 생을 당당히 그리고 차분히 피워 올리는 바닥이다.
나는 그의 바닥에서 바닥을 보지 못했다. 깊고 깊은 강물소리만 가득할 뿐, 그 강물소리 아래 바닥의 깊이를 그저 상상만 해볼 뿐. 그는 늘 그렇게 몰래 몰래 ‘제 안의 바닥을 몇 번이나 쓸어보’며 더듬더듬 강물을 품었던 것일까. 붉은 핏줄기가 뜨겁게 흐르는 그의 바닥이 그의 바닥을 다 읽고 나서야 궁금해지기 시작한다.
◀한수재 시인
2003년 월간《우이시》로 작품 활동.
시집으로『싶다가도』『내 속의 세상』이 있음.
jumimjang@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