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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비와 양선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갈5:22-23)
2013, 1/27 설교문()
오늘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은 갈5:22-23절 말씀으로“자비와 양선의 사람이 되어야합니다.”이런 제목으로 말씀 선포하겠습니다.
이 말씀, 선포될 때 주의 크신 은혜와 사랑이 이곳에 충만하길 원합니다.
한 주간 평안하셨는지요?
우리 모두 앞뒤, 옆에 계신 분들과 함께 인사 나누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보고 싶었습니다.
갈라디아서는 사도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공의회에서 율법의 일부가 지켜져야 한다는 결의가 있고 난후, 자기가 전도했던 갈라디아지방의 식구들이 걱정되어 구원은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이뤄진다는 사실을 밝히기 위해 썼습니다.
오늘 본문은 성도는 필연적으로 성령의 인도를 받을 수밖에 없으며 그 증거가 바로 본문에 나온 성령의 열매로 나타난다는 것을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자비와 양선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성령의 9가지 열매를 맺어야하는데 그 중에 자비와 양선이 있습니다.
오늘 성령의 9가지 열매 중에 5, 6번째로 언급한 자비와 양선이 무엇일까요?
년 말이 되면 정치인들이나 유력자들이 고아원이나 양로원등을 찾아 선물을 전달하고 사진 찍기에 바쁜 모습을 봅니다. 이때 정말 긍휼한 마음으로 선물을 전했다면 자비한 마음으로 양선을 했고, 방문은 했지만 선한마음 없이 억지로 체면 때문에 전달했다면 자비는 없고 양선만 한 것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 양로원에 가서 그냥 도왔다면 자비한 것이고 정말 미운사람을 만났지만 그를 불쌍히 여겨 도왔다면 양선한 것입니다.
이렇게 자비와 양선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자비와 양선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려드리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본문의 말씀을 따라가면서 자비와 양선의 열매 맺는 것이 어떤 것인지 성령께서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자비와 양선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하십니다.
본문22-2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아멘.
여러분!!! 성령의 열매가 무엇일까요? 정말 하나님의 자녀라면, 구원받은 백성이라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모습이 열매로 나타나는데 이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이 열매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나타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의 자비(크레스토테스)의 원어적 의미가 유용함, 적절함을 뜻합니다.
물건과 자비가 결합하면 탁월함. 훌륭함이 되지만. 사람+크레스토테스= 선함, 긍휼함, 친절함으로 번역됩니다.
자비는 친절한 성품, 긍휼한 마음으로 남에게 기꺼이 봉사하고자하는 선한 마음정도가 되겠습니다. 성령의 6번째 열매인 양선(아가도스네)은 자비보다 더 능동적인 단어로써 선한생각을 밖으로 나오는 행동을 말합니다.
자비가 선한생각이라면 양선은 행동입니다. 자비가 믿음이라면 양선은 행함입니다.
자비가 예수님의 선한 음성이었다면 양선은 그 음성을 듣고 바다에 나가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자비와 양선은 한 묶음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양선이 없는 자비는 공허하고 감동도 없고 사람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반대로 자비가 없는 양선도 감동도 없고, 시끄럽고 소음만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비가 양선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사회는 신뢰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말만 할 줄 알지 전혀 도움이 안 되는 허탄한 사람일 뿐입니다.
머리만 커지고 생각만 깊어지면서 아무 것도 못하는 무능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이런 사람은 사회에서도 신앙인으로써도 가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이 한창일 때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죽은 양심이다.”라는 말이 있었는데 본문으로 바꾸면 “양선이 없는 자비는 죽은 자비다.”이 말이겠죠.
EX)민주화운동이 한창인 70-80년대에 많은 젊은이들이 불의에 맞서 학업을 중단하고 독재정권에 항거했습니다. 그때 많은 것을 희생하며 정의를 외쳤던 사람들 때문에 우리나라에 민주화가 왔는데 그때 희생했던 사람들은 나중에 민주화보상법에 따라 정치적, 경제적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때 당시 나름대로 공감하고 분노는 했는데 참여하지 못한 사람은 보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내 안에 정의가 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도 그것이 밖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아무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약2:14, 17절 말씀에“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처음생각은 성령의 생각이고 두 번째 생각은 내 생각이고 세 번째 생각은 마귀생각이다.” 무슨 뜻일까요?
어떤 사람이 은혜를 받고 하나님께 어떻게 하겠다고 결단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까운 생각도 들고, 몸도 마음도 게을러서 귀찮다는 생각이 드니 결국 세 번째 생각으로 마음이 바뀌더라는 겁니다.
이 말은 생각이 깊어지면 결국 처음생각과 다른 결정을 하고 또 처음 가졌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는 뜻도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동주시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야 악한 생각이 틈타지 못합니다.
새해에는 십일조도 하고, 봉사도 하고 성경공부도 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그런데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않고 다음 달부터 해야지 하면 결국 못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선을 말씀하시는데 양선 없는 신앙은 죽은 신앙입니다.
➤그러나 양선만 있고 자비가 없는 경우도 참 아름답지 못합니다.
행동을 하는 그 동기가 아름답지 못한 경우입니다. 선한생각과 긍휼한 마음도 없이 형식적이고 의식적으로 하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상가에 가면 상가 주인공은 분명 죽은 사람인데 그 사람에게는 관심도 없고 전부 먹고 마시고, 또 만난사람들끼리 이야기하고 또 노름하다 싸우기도 하고 그리고 돌아감. 죽은 자에 대한 애통함이 없이 그냥 체면 때문에 가서 그렇지 않을까요?
우리가 예배하는 것은 어떨까요?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기쁨의 자리이고 감사의 자리이며 축복의 자리입니다.
그런데 그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기쁨도 감사도 없이 단지 기계적으로 나왔다가 졸다 가면 그것도 양선만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이런 자비가 없이 양선만 행하다가 버림받은 것입니다.
목회도 저렇게 자비 없는 기능적인 목회를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주님 앞에 자신을 돌아보면서 주님의 마음으로 공동체를 사랑하며 목회하지 않으면 자비는 없고 양선만 있다면 하나님 앞에 얼마나 역겨우시겠습니까?
같은 의미로 여러분들이 설교를 들을 때 어떤 마음으로 들으신지요?
보통 은혜받기 위해 듣는다고 하는데 은혜 받아서 어떻게 하시려고요?
설교는 은혜 받으려고 듣는 것이 아니라 결단하기 위해 듣는 것입니다.
말씀을 아무리 많이 알고, 많이 깨달아도 실제 행동으로, 결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저 내 만족, 내 위안이 될 뿐입니다.
교회지도자에게 자비 없는 양선만 있고, 교인들에게는 양선 없는 자비만 있다면 안 됩니다. 이렇게 되지 않도록 깨어서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초대교회성도들은 지금 우리들처럼 복음을 공개적으로 전하지 못했습니다.
로마의 강한 핍박과 유대인들의 도를 넘는 견제, 그리고 사교집단으로 알려진 소문 때문에 복음전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과 200여년 남직에 로마와 온 세계가 복음화 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바로 저들이 가진 자비를 양선했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주님께 받은 말씀으로 저들과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저들은 말씀을 철저히 지켰고 자기들을 미워하고 핍박했던 사람들을 품었습니다. 온갖 핍박과 고통을 당하면서도 저들을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용서했습니다.
극한 가난과 핍박 속에서도 주님을 사랑하며 어려운 환경을 이겼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핍박자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저들은 우리와 완전히 다르구나, 도대체 예수가 누구길래 사람을 저렇게 만들 수 있단 말인가? 예수 안에 무언가가 있나보다.” 이렇게 생각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이 모습이 자비를 가지고 양선을 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잘 말해줍니다.
EX) 어느 병원에서 선교사님부부 70쌍에게 무료로 건강검진 해줌. 추가되는 비용을 받지 않고, 하루를 주무시는 분이 있으면 숙식을 제공,
그런데 그 병원장이 교회 안 다니는 사람.➞어떻게 이런 일이 있었는가?
그 병원원목이 병원장설득, 평소 하나님의 능력이 그분을 통해 병원에 복으로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 병원장이 은혜를 받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서서 일 추진.
마5:16절 말씀에“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이 지금 잘 안돼서 사람들에게 욕먹고 주님영광을 가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밟히는 소금신세를 면하고 죽어가는 영혼을 구하기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선해야합니다.
성령의 열매인 자비를 가지고 양선해야합니다.
선한 성품으로 겸손하게 나를 돌아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ex) 7-80년대에 민주화운동 했던 사람들, 90년, 2천년대에 사회주류로 부상하여 정치장악. 그러나 2010년대 들어와 이들의 영향력이 현저하게 줄었는데 이유??
자신들만 선이라는 진영논리에 빠져 독선을 드러냈기 때문.
90-2천년대는 독선이 통했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상을 다 해 부채의식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독선이 통하지 않은 겁니다.
나를 돌아보고 배려하는 자비와 긍휼 없이 양선만 앞세우면 이들처럼 실패합니다.
➤ 그렇기 때문에 양선에 앞서 하나님께 자비를 구해야합니다.
왜냐하면 자비와 양선이 하나님의 근본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시편에는“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하시도다.”라는 말씀이 참 많이 나옵니다. 시34:8절 말씀에서도“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눅15장에서 돌아온 탕자를 버선발로 나가 맞이하는 말씀이 나오는데 이는 탕자가 선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선했기 때문입니다.
수없이 불순종하고 불신앙했던 저 이스라엘백성들을 그래도 끝까지 가나안땅으로 이끄신 것은 저들이 선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복 주시는 것은 하나님이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하나님께 자비를 구해야합니다.
➤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선한마음을 갖는 것도 행동으로 나타내는 것도 주님이 함께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요15:5절 말씀에“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내안에 내가 저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주님은 나무고 우리는 가지의 관계인데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뿐더러 아예 생존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 살 수 있겠습니까? 한 나절이면 다 말라버리겠죠?
때문에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하나되어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는 정말 중요합니다.
요14:20 절 말씀에“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주님이 떠날 날이 가까이 오자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준다고 약속하면서 당신이 성령으로 우리에게 오셔서 함께 머무시겠다고 하신 말씀입니다.
거듭난 백성은 성령으로 오신 주님과 하나 되어 함께 살고 있습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들어와 계시니 우리가 주님의 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전3:16절 말씀에“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전 되어 주님과 함께 살아가면 저절로 신앙생활이 되어져 버립니다.
주일이 부담되고, 봉사와 헌신이 힘들고, 희생이 안 되고, 신앙생활이 무거운 짐으로 느껴지면 성령으로 오신 주님이 내 안에 계신지 확인해야합니다.
또한 주님과 하나 되어 살면 요한복음15:7절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아멘, 어떻습니까? 여러분!!!
이렇게 주님과 하나 되어 살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주시겠답니다.
주님과 하나 되어 살아갈 때 주님이 자비를 주시고 양선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그러면 목사님!!! 교회 안 나오는 사람들도 잘 먹고 잘살기만 하던데요?”
맞습니다. 그들의 몸은 살았어도 영이 죽어있는 상태라(엡2:1) 논외의 대상입니다.
성경은 대부분 영의 세계를 말하지 육의 세계를 말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께 성령의 열매인 자비와 양선을 구하고 나무되신 주님에게 떨어지지 않도록 꼭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비도 양선도 가능합니다.
우리 희락교회 식구들은 올 해 자비한 마음으로 양선을 행하시어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고 복된 한해 되시기 축원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자비와 양선을 통해 신앙의 지침을 주셨습니다.
자비와 양선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주변에 약속은 잘하면서 행동은 따로 인 사람이 있고 행동을 해도 정성 없이 성의 없이 시간만 때우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주님이 자비와 양선에 대하여 정말 좋은 본을 보이셨습니다.
주님가신 길만 바라보고 주님을 따라 달려가시기를 다시 한 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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