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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친구를 부르지 말고,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을 초대하여라.>
✠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의 초대
그때에 예수님께서
당신을 초대한 바리사이들의 한 지도자에게 12 말씀하셨다.
“네가 점심이나 저녁 식사를 베풀 때,
네 친구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유한 이웃을 부르지 마라.
그러면 그들도 다시 너를 초대하여
네가 보답을 받게 된다.
13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14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루카 14,12-14
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가롤로 보로메오 성인은 1538년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의 아로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신심 깊은 가정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일찍부터 학문을 쌓는 데 힘썼다. 1560년 외삼촌인 비오 4세 교황께서 평신도인 그를 추기경으로 임명하시자, 뒤늦게 성직자 교육을 받고 1563년에 사제가 되었다. 그는 밀라노의 대주교로서 교회 개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또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지원하는 제도를 마련하여 널리 보급시켰다. 1584년에 선종한 그를 1610년 바오로 5세 교황께서 시성하셨다(오늘의 전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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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유대 철학자 마이모니데스는 자선의 등급을 8단계로 나누었습니다.
1단계 : 억지로 베푼 자선(마지못해 주는 것; 주고 나서 후회하는 것; 보상을 바라는 선행)
2단계 : 즐겁게 베풀지만 충분하게 주지 않는 자선
3단계 : 즐겁게 베풀고 양도 충분하지만, 부탁을 하는 경우에만 베푸는 자선
4단계 : 즐겁게 베풀고 양도 충분하고 자발적으로 주지만, 받는 사람이 열등감을 느끼도록 행하는 자선(자신을 과시하며 주는 것)
5단계 : 받는 사람은 누구에게 도움을 받는지 알지만, 주는 사람은 누가 받는지 모르는 자선
6단계 : 베푸는 사람은 누가 받는지 알지만, 받는 사람은 누가 준 것인지 모르는 자선
7단계 : 베푸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서로 상대방이 누구인지 모르는 자선
8단계 : 불우한 사람이 일어서고, 생계를 벌고, 자존심을 회복하고 그 사람도 자선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자선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기 위해 하는 자선은 낮은 수준의 자선입니다. 누가 주는지 모르게 하는 자선은 높은 수준의 자선입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자선은 그 사람도 자선하는 사람으로 이끄는 자선입니다. 상대의 변화를 이끄는 자선이 가장 완전한 자선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이런 자선을 하라고 권고하십니다.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 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왜 보답을 바라지 말고 자선을 하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보상을 바라며 하는 자선은 상대의 변화를 이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내가 준 것을 되갚을 능력이 없을 때 양심이 있다면 다른 방법이라도 찾게 됩니다. 나를 위해 기도해준다던지,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를 결심합니다. 그런데 그 자선에 대한 보답을 할 수 있다면 그 자선 때문에 상대가 변하는 일은 없습니다. 가장 높은 수준의 자선은 누군가를 변화시키는 자선입니다.
한 양치기가 양을 몰고 집으로 가던 중 사자 한 마리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것을 봅니다. 너무 놀라 도망치려 했는데 사자는 앉아서 발만 앞으로 내미는 것이었습니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사자의 발을 보았는데 커다란 가시가 박혀있었습니다. 양치기는 가시를 빼내어주었습니다.
얼마 뒤 양치기는 모함을 받고 원형 경기장에 던져졌습니다. 그 안에서는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사자가 그에게 달려오더니 그를 보호하는 것이었습니다. 간수가 아무리 채찍으로 사자를 내려쳐도 사자는 그 양치기를 보호하였습니다. 양치기도 그 사자가 자신이 도와준 사자임을 알아차렸습니다. 이 이야기를 간수에게 하고 간수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자 사람들은 사자와 양치기를 풀어주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렇게 사자는 정글로, 양치기는 양치는 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아무리 사자라 하더라도 절뚝이며 걷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사자는 자신의 방법으로 은혜를 갚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우리는 되갚을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은혜에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필요한 것이 없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은혜를 되갚으려는 마음을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으로 보여주라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되갚을 수가 없기에 우리는 우리 방식으로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모습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되갚을 수 없는 자선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도 가난한 이웃에게 그러한 자선을 해야 합니다. 가장 완전한 자선은 자신처럼 다른 사람도 되갚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풀 줄 아는 사람으로 만드는 자선입니다. 가장 완전한 사랑은 사랑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되갚을 능력이 없는 이들에게 자선을 베풀어야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러 오신 것입니다.
전삼용 신부님 「보상을 바란 자선은 변화의 힘을 잃는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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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조명연 신부니님 글 드립니다~~
「나만 옳지 않습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한 남자가 이 비를 온몸으로 맞으며 유유히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갑니다. 그런데 그 옆을 또 다른 남자가 커다란 우산을 쓰고서 지나갑니다. 이 둘 중에서 누가 정상적일까요? 당연히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있는 이 남자를 향해서 손가락질합니다. 왜 그럴까요?
1750년 무렵의 영국 상황이라면 이럴 수 있습니다. 당시에 남자가 우산을 쓰면 비겁해 보인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조나스 하웨이라는 남자가 우산을 쓰자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고 하더군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사고의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이 맞는다고 생각하는 지금의 모습이 정말로 영원히 맞는 생각일까요? 훗날 비정상이라면서 손가락질당할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판단하고 나를 드러내는 것에만 집중하는 우리들의 모습에 영원의 시간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 보시기에 얼마나 안타까우실까요?
***<하느님, 내가 당신으로부터 떠날 때, 나는 살아도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에게 꼭 붙어 있으면, 나는 죽어도 산 것입니다(할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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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가롤로 보로메오 주교 기념일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루카 14,12-14)
「宴会を催すときには、むしろ、貧しい人、
体の不自由な人、足の不自由な人、
目の見えない人を招きなさい。
そうすれば、その人たちはお返しができないから、
あなたは幸いだ。
正しい者たちが復活するとき、
あなたは報われる。」
(ルカ14・12-14)
When you hold a banquet,
invite the poor, the crippled, the lame, the blind;
blessed indeed will you be
because of their inability to repay you.
For you will be repaid
at the resurrection of the righteous.”
(Lk 14:12-14)
カルロ・ボロメオ司教記念日
네가 잔치를 베풀 때에는
오히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다리저는 이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여라.
그들이 너에게 보답할 수 없기 때문에
クドリ ノエゲ ボタブル ハル ス オッキ テムネ
너는 행복할 것이다.
ノヌン ヘンボッカル コシダ。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
ウィネドリ ブハラル テエ ネガ ボダブル バドル コシダ。
(루카 14,12-14)
宴会を催すときには、むしろ、貧しい人、
엔카이오 모요오스 토키니와 무시로 마즈시이 히토
体の不自由な人、足の不自由な人、
카라다노 후지유우나 히토 아시노 후지유우나 히토
目の見えない人を招きなさい。
메노 미에나이 히토오 마네키나사이
そうすれば、その人たちはお返しができないから、
소오 스레바 소노 히토타치와 오카에시가 데키나이카라
あなたは幸いだ。
아나타와 사이와이다
正しい者たちが復活するとき、
타다시이 모노타치가 훗카츠스루 토키
あなたは報われる。」
아나타와 무쿠와레루
(ルカ14・12-14)
When you hold a banquet,
invite the poor, the crippled, the lame, the blind;
blessed indeed will you be
because of their inability to repay you.
For you will be repaid
at the resurrection of the righteous.”
(Lk 14:12-14)
Memorial of Saint Charles Borromeo, Bishop
Lk 14:12-14
On a sabbath Jesus went to dine
at the home of one of the leading Pharisees.
He said to the host who invited him,
"When you hold a lunch or a dinner,
do not invite your friends or your brothers or sisters
or your relatives or your wealthy neighbors,
in case they may invite you back and you have repayment.
Rather, when you hold a banquet,
invite the poor, the crippled, the lame, the blind;
blessed indeed will you be because of their inability to repay you.
For you will be repaid at the resurrection of the righteous."
2024-11-04「宴会を催すときには、むしろ、貧しい人、体の不自由な人を招きなさい。」
+カルロ・ボロメオ司教記念日に、神に賛美をささげよう。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はカルロ・ボロメオ司教記念日です。
慈しみ深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力強い乙女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聖カルロ・ボロメオ、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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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宴会を催すときには、むしろ、貧しい人、体の不自由な人を招きなさい。>
そのとき、14・12イエスは招いてくれたファリサイ派の議員に言われた。「昼食や夕食の会を催すときには、友人も、兄弟も、親類も、近所の金持ちも呼んではならない。その人たちも、あなたを招いてお返しをするかも知れないからである。13宴会を催すときには、むしろ、貧しい人、体の不自由な人、足の不自由な人、目の見えない人を招きなさい。14そうすれば、その人たちはお返しができないから、あなたは幸いだ。正しい者たちが復活するとき、あなたは報われる。」(ルカ14・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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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カルロ・ボロメオは1538年にイタリアのロンバルディア州アローナの貴族の家庭に生まれました。信心深い家庭で幼少期を過ごし、早くから学問に励みました。1560年に叔父のピウス4世教皇が彼を一般信徒として枢機卿に任命すると、遅ればせながら聖職者教育を受け、1563年に司祭になりました。彼はミラノの大司教として教会改革に大きく貢献しました。また、貧しい人々や苦しんでいる人々を支援する制度を整え、広く普及させました。1584年に逝去した彼を、1610年にパウルス5世教皇が列聖しました(今日の典礼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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田・サンヨン神父様の黙想文「お返しを期待した施しは、変化の力を失ってしまいます」です。
12世紀のユダヤ人哲学者マイモニデスは、施しを8つの段階に分けました。
1段階:しぶしぶ行う施し(不本意に与えること、与えて後悔すること、お返しを期待する善行)
2段階:喜んで与えるが充分ではない施し
3段階:喜んで充分に与えるが、求められたときのみ与える施し
4段階:喜んで充分に自発的に与えるが、受け手に劣等感を感じさせる施し(自分を誇示しながら与えること)
5段階:受け手は誰から助けを受けたか知っているが、与え手は誰に与えたか知らない施し
6段階:与え手は誰に与えたか知っているが、受け手は誰から受けたか知らない施し
7段階:与え手も受け手も互いを知らない状態で行う施し
8段階:困窮者が自立し、生計を立て、自己尊敬を回復させ、その人も施す人にする施し
自分を顕示したり、自分の功績を認めてもらうために行う施しは低いレベルの施しです。誰からのものであるかわからないようにする施しは高いレベルのものですが、それよりもさらに高いレベルの施しは、その人も施す人に導く施しです。相手の変化を引き出す施しが最も完全な施しです。
今日の福音書でイエス様はそのような施しを行うことを勧めています。
「宴会を催すときには、むしろ、貧しい人、体の不自由な人、足の不自由な人、目の見えない人を招きなさい。14そうすれば、その人たちはお返しができないから、あなたは幸いだ。正しい者たちが復活するとき、あなたは報われる。」
なぜお返しを期待せずに施しを行うべきとおっしゃるのでしょうか?お返しを期待して行う施しは、相手の変化を引き出すことができないからです。相手が私が与えたものを返す能力がないとき、もし良心があるなら、他の方法を探すようになります。私のために祈ってくれたり、私が望む人生を送ることを決意したりします。しかし、その施しに対するお返しをすることができるならば、その施しによって相手が変わることはありません。最も高いレベルの施しは誰かを変える施しです。
ある羊飼いが羊を連れて帰る途中、一頭のライオンがうろうろ歩いているのを見ました。驚いて逃げようとしましたが、ライオンは座り込んで前足だけを差し出していました。恐怖を押し切ってライオンの足を見ると、大きなとげが刺さっていました。羊飼いはそのとげを抜いてあげました。
しばらくして、羊飼いは濡れ衣を着せられ、円形競技場に投げ込まれました。その中ではライオンが人を食べていました。しかし、あるライオンが彼に駆け寄り、彼を守りました。看守がいくらムチでそのライオンを打っても、ライオンはその羊飼いを守り続けました。羊飼いもそのライオンが自分が助けたライオンであることに気付きました。この話を看守が人々に伝えると、人々はライオンと羊飼いを解放するよう声を上げました。そして、ライオンは森へ、羊飼いは羊を飼う仕事に戻りました。
イソップ寓話に出てくる話です。弱肉強食の世界で、どんなにライオンであっても片足を引きずって歩くことはすぐさま死を意味します。
ライオンは自分なりの方法で恩返しをしました。
キリストが私たちに与えてくださった愛に私たちはお返しすることができません。どんなに努力しても、その恩恵にお返しをする方法はありません。神は必要なものが一切ない方だからです。ただ、その恩恵にお返ししようとする心を隣人を許し、愛することで示すようにと掟を与えられました。お返しをすることができないからこそ、私たちは自分なりの方法で隣人を愛するしかありません。その姿こそがイエス・キリストの姿です。キリストのお返しをすることのできない施しによって、私たちはキリストのように隣人を愛する者となるのです。
私たちも貧しい隣人に対して、そのような施しを行うべきです。最も完全な施しは、自分と同様に他の人もお返しをすることのできない人々に施す者にする施しです。最も完全な愛は、愛するように導くことです。そのためには、お返しをする能力がない人々に施さなければなりません。だからこそ、イエス様は貧しい人々に福音を伝えに来たので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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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返しができない隣人を通して主に御返しができますように、毎日福音を伝え、祈りながら貧しい人やお返しができない人々に施しの実践ができ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い。